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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사랑한 젊은 작가들 -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서 찾은 스물다섯 가지 꽃 이야기
김민철 지음 / 한길사 / 2025년 4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꽃은 나에게 아름다움이자 도취, 그리고 조용한 안식이었다. 매일 고속터미널 꽃 시장을 찾아 신선한 꽃을 고르고, 주문이 들어오면 정성껏 포장해 보내던 나날들. 주문은 많지 않았다. 다만, 꽃과 나만의 시간이었다. 향기와 색감, 꽃잎의 결까지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마음을 기울이던 시간. 시드는 모습마저 매혹적인.
길을 걷다가도,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 어딘가에 꽃이 비치면 가슴이 설레였다. 시선은 자연스레 꽃에 머물렀고, 그 순간의 아름다움에 취해 잠시 현실을 잊곤 했다.
김민철 작가도 그런 시선으로 젊은 작가들의 문장 속 꽃을 바라본다. 『꽃을 사랑한 젊은 작가들』은 꽃이라는 매개를 통해 각 작가의 고유한 서정과 은유를 섬세하게 들여다 본다. 25편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살짝 맛보는 재미에, 김민철 작가의 해설이 더해져 꽃과 식물을 바라보는 문학적 시선과 시대의 결을 함께 읽어내는 즐거움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마음을 움직인 문장은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과 윤성희 작가의 『어느 밤』 속에 있었다.
“삼천아, 새비에는 지금 진달래가 한창이야. 개성도 그렇니. 너랑 같이 꽃을 뽑아다가 꿀을 먹던 게 생각나.(중략) 인제 나는 꽃을 봐도, 풀을 봐도 네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됐어. 별을 봐도 달을 봐도 그걸 올려다보던 삼천이 네 얼굴이 떠올라.”
– 최은영, 『밝은 밤』
진달래는 그리 화려하거나 귀한 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꽃이 그리움이 되고, 지나간 시간을 다시 피워내는 추억의 이야기가 된다. 이 구절은 힘겨운 시절, 마음을 나눴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로, 사소하고 흔한 꽃 한 송이가 관계와 시간을 얼마나 깊이 그려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윤성희 작가의 『어느 밤』에서는 한 노년의 여성이 밤 일탈로 훔쳐 탄 킥보드를 타다 넘어진 채 누워, 문득 딸과의 지난 시간을 떠올린다. 할머니와 훔친 킥보드라니 뭔가 시트콤 속 한 장면 같기도 하다.
“달을 보니 달맞이꽃이 생각났다. 시아버지 병문안을 갔다가 막차를 놓쳐 딸을 업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달맞이꽃이 참 환했다.(중략) 소꿉놀이를 좋아하던 딸은 달맞이꽃을 따다가 꽃밥을 지었고, 함께 달맞이꽃을 튀긴 적도 있었다. 여름방학 숙제였다. 엄마랑 요리하기.”
– 윤성희, 『날마다 만우절_어느 밤』
그녀는 힘든 형편 속에서도 딸을 미국 유학까지 보냈고, 이제는 그 딸이 자신의 칠순에 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 속 딸은 늘 달맞이꽃과 함께 존재한다. 길가에 무심히 피어 있는 꽃 한 송이가 두 사람의 이야기를 품고, 그 기억은 서로를 이어준다.
꽃은 단지 식물이 아니다. 꽃은 누군가의 얼굴이자, 함께한 계절이고, 마음속 어딘가에 조용히 피어나는 서사이다. 젊은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꽃을 통해 인물의 내면과 관계의 깊이를 그려 보인다. 그 문장들 속에서 평범한 일상의 아름다움과 그리움의 순간을 조용히 만날 수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누구나 가슴 속에 꽃 한 송이는 품고 살아간다는 것을. 자기만의 서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