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주의 희망배달부입니다 -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위로와 나눔 이야기
김완필 지음 / 미다스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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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벚꽃이 피었는데, 4월 중순에 우박이 쏟아지고 진눈깨비가 내린다. 그런데도 방금 막 책장을 덮고 나는 따뜻한 온기에 감싸이는 것을 느꼈다. ‘예쁘다!’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돈다.


몇 해 전, ‘북유럽 열풍’이 불었다. ‘북유럽식 인테리어’, ‘북유럽식 교육’, ‘북유럽식 라이프스타일’ 등 ‘북유럽’이라는 수식어 자체가 삶의 질과 여유를 상징했다. 우리가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본 그들의 안정과 품위 있는 삶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장기간에 걸쳐 구축된 제도적 기반의 결과였다. 이들 국가는 높은 세율을 감내하면서 교육, 의료, 노후를 국가가 책임지는 체계를 마련했고, 이를 통해 소외된 이들도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나는 제주의 희망 배달부입니다』의 저자는 제주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다. 그는 현장에서 만난 이웃들의 삶을 기록하며, 복지제도가 닿지 못하는 틈새를 메우고자 애써온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책은 복잡한 이론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과정 속에서 발견한 진심과 감동을 담담한 문체로 풀어낸다.


솔직히 나는 공무원에 대해 사무적이고 무뚝뚝한 이미지의 편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이런 편견이 허물어졌다. 소외된 이웃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단지 직업에서 비롯된 의무가 아니라, 소명의식에서 출발한 것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복지는 결국 제도의 문제다. 북유럽 복지가 강력한 이유는 탄탄한 시스템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제도와 사람의 균형 잡힌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제주라는 특수한 지역에서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노력하는 저자의 모습은, 구조적 시스템과 개인의 실천이 함께 작동할 때 복지가 제대로 실현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개인적으로, 이런 소명의식이 필요한 직업군들의 처우 또한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이분들이 행복할 때, 그들이 이웃에게 배달해 줄 희망 또한 더욱 따뜻하고 단단할 것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휴직 중이라는 저자가 하루빨리 회복하시길 바란다. 그분의 회복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어질 희망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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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내비게이터 -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 탐구자를 위한 석학들의 과학 대화
도쿄대학교 교수진 지음, 다키구치 유리나 엮음 / 모노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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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등산을 한 지 오래됐다. 이사 오기 전에는 날 좋은 날이면 아차산에 오르곤 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도시와 한강은 묘한 안도감을 선사했다.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안에서 내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상에서 마신 막걸리 한 잔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요즘은 일상에 매몰되어 멀리 보는 시야를 잃었가는 것 같다. 산 정상에서 전체를 바라보듯, 혼란한 세상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한 시대다.


책의 앞부분에 'VUCA 시대'라는 표현이 나온다. '불확실성이 높고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을 뜻한다고 한다. 실제로 AI의 급속한 발전, 기후변화, 지정학적 긴장, 팬데믹,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 등 어떤 이슈도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물음을 마주하게 한다. 『과학 내비게이터』는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도쿄대학교의 이공계 석학 10명이 모여 AI, 에너지, 교육, 국가, 생명, 우주, 비즈니스, IT, 환경, 가상공간이라는 10가지 키워드를 통해 미래에 대한 예측과 담화를 담아냈다.


그 중 정보통신 분야와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공중에서 에너지를 끌어다 쓰고, 걷는 동안 스마트폰이 충전되며, 개인마다 맞춤형 반도체를 갖는 세상. 이런 기술의 미래는 상상만으로도 신기했다.


일본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에도 공감이 갔다. 교육을 크게 나눈다면 사령관을 기르는 '커맨더 교육'과 병사를 기르는 '솔저 교육'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전자는 문제를 고찰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며 팀을 이끄는 역할을 배우는 것이고, 후자는 명령을 완벽히 수행하는 역할을 배우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유럽의 교육도 이러한 형태로 이루어졌는데, 노예가 솔저 교육을 받았다고 하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받은 교육, 그리고 내 아이가 받고 있는 교육은 여전히 단순한 암기와 문제풀이에 치우쳐 있다. 이런 현실을 떠올리면, 우리는 결국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 속 부품 하나로 기능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각이 든다. 그러나 이제 솔저 교육의 대상자가 로봇 이나 AI로 대체되는 세상이라고 하니, 우리의 교육 시스템도 변화할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대담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상적 언어와 유머도 섞여 있어서 초밥집에서 나누는 대화나 잡담을 엿듣는 듯한 친근한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그들이 가진 상상력이 반복되는 나의 일상에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과학자들의 대화를 통해 미래의 흐름을 어렴풋이나마 그릴 수 있었고 그들이 준비하고 연구하는 기술에 대해 엿볼 수 있었다. 평소 책 편식이 심하지만, 이제는 과학 분야의 책도 읽으며 내 시야를 넓혀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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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재앙을 마주한다 - 탐험가의 눈으로 본 기후위기의 7가지 장면
제임스 후퍼.강민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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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후 위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왜일까?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일테다. 당장 눈앞의 일들이 늘 우선이기에, 기후 변화는 뉴스나 다큐멘터리 속, 어딘가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기후 위기처럼 거대한 담론은 개인이 해결하기에는 너무 막막하게 느껴진다. 시작조차 하기 전에 회의감과 무력감이 앞선다. 이런 일은 정부, 대기업, 국제기구 같은 거대한 권력이 나서야 하는 일이지, 평범한 시민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생각 때문이라 변명해 본다. 그러나 정부나 대기업 등이 움직이게 하려면 개인들의 관심과 지속적인 견제가 필요하다.


“사랑의 기본 전제는 그 대상에 대한 이해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이 지구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한다면 지구를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저자는 문제 해결보다는 ‘문제 자체’에 초점을 둔다. 북극 탐험 중 녹아 내린 얼음 위에서 겪은 위기, 열대 우림이 무너져 내리는 현장을 직접 목격한 경험. 북극에서 남극까지의 무동력 탐험. 그 생생한 기록은 기후 위기를 단순한 통계가 아닌, ‘감각할 수 있는 실체’로 다가오게 만든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각 현상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악순환의 고리’라는 사실이다.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이 상승하고, 폭염은 산불을 키운다. 산불은 다시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온을 높인다. 저자는 이 연쇄 반응을 ‘고요한 재난’이라 표현한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진행되고 있는 재앙. 그 고요함 속의 위험을 경고한다.


최근의 일들이 그 경고를 증명하는 듯하다. 1월의 캘리포니아 산불, 3월 의성과 산청의 이례적인 산불까지. 과학자들의 경고가 더 이상 이론이 아님을 체감하게 된다. 기후 위기는 이미 우리에게 현재진행형의 현실이다.


지구의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54도 상승했다. 우리가 넘지 않으려 했던 ‘기후 마지노선’ 1.5도를 이미 초과한 것이다. 이는 지구의 회복 탄력성을 위협하는 신호다. 어느 순간을 넘어서면 생태계는 걷잡을 수 없는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자 막막함이 밀려온다. 중학교 환경 캠페인처럼 끝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를 외면할 수도 쉽게 다짐을 내뱉을 수도 없다.


다만 맑은 하늘 아래 벚꽃이 흐드러진 산책길을 걸으며 생각해 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작은 응답이라도 하는 것. 그것이 최소한 우리가 해야 할 도리가 아닐까.” 라는 저자의 문장을 떠올려 본다. 

이 책의 목적이 독자로 하여금 문제를 외면하지 않도록,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적어도 그 목적은 분명 달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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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10대를 위한 최소한의 세계사 요즘 10대를 위한 최소한의 시리즈
임소미 지음 / 빅피시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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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지적 호기심이 아닌 노동으로 앎을 대했기에, 한때 줄줄 외웠던 암기 과목들은 이제 기억 속에 희미한 흔적만 남았다. 세계사도 그 중 하나다. 이 책은 10대 청소년이 주요 타겟층이다. 딱딱하게 나열된 교과서로 세계사를 접하기 전에 읽어본다면 역사의 큰 틀을 잡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중 특히 눈길을 끈 부분은 고대 아즈테카 문명과 오스만 제국에 관한 내용이었다. 멕시코 고원지대에서 번성했던 아즈테카 문명의 화려함과 잔혹함은 문화의 양면성이 공존했던 특이한 사회상을 보여주었다.


태양신에게 포로를 제물로 바친 뒤 식인행위를 했다는 부분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인류 역사에서 식인 행위는 다양한 이유로 존재했는데, 아즈테카 문명에서는 신이 취한 제물을 함께 나눔으로써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신성한 종교적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세 대륙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오스만 제국의 역사는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했던 제국의 통치 방식과 그 영향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부끄럽지만 오스만이 지금의 터키지역이었다는 사실을 얼마전에 알았다.)


특히 1453년 메흐메트 2세의 콘스탄티노플 정복은 비잔틴 제국의 종말을 가져왔고, 이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이 사건으로 많은 그리스 학자들이 이탈리아로 피신하며 고대 문헌과 지식을 전파했고, 이것이 르네상스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오스만이 기존 교역로를 장악하면서 유럽 국가들이 새로운 항로를 모색하게 되었고, 이는 곧 대항해 시대와 신대륙 발견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개별 문명이나 제국의 역사를 넘어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사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설명해주니, 교과서보다 훨씬 쉽게 큰 흐름을 잡을 수 있었다.


과거에는 점수를 따기 위한 과목에 불과했던 세계사가, 다시 읽어보니 인류가 걸어온 여정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다가온다는 점이 신기했다. 세계사에 첫 발을 내딛는 청소년은 물론, 잊고 지낸 역사 지식을 되짚고 싶은 성인 독자에게도 일독을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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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도둑과 악인들 다이쇼 본격 미스터리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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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왜 하필 시계 도둑일까? 주인공들의 동선을 따라가면서도 궁금했다. 소설의 배경인 다이쇼(1912~1926)시대는 서구 문물이 깊이 정착한 시기로, 괘종시계는 부의 상징이었다.


시계 도난 사건은 '도둑맞은 편지'가 떠오르기도 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처럼, 유키 하루오의 작품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숨겨진 비밀이라는 아이러니가 곳곳에 존재한다.


유키 하루오가 이러한 상징적 물건을 도둑질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시계를 훔치는 행위는 단순한 절도가 아니라 시간을 매개로 사건의 실마리를 쫓아가는 미스터리의 본질을 드러낸다.


특히 법대 출신의 도둑이자 소설에서는 탐정 역할을 하는 하스노라는 인물이 흥미롭다. 그는 법을 전공했으나 도둑이 된다는 모순적인 설정을 통해 다이쇼 시대의 복잡한 사회상을 반영한다. 당시의 역동적으로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가치관과 규범의 혼란을 나타내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서구의 합리주의와 전통적 일본 가치관이 충돌하던 다이쇼 시대, 하스노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실현할 수 없는 정의를 도둑이자 탐정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통해 구현한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의 경계 속에서 그는 법의 바깥에 서는 길을 선택했지만, 그의 행동에는 나름의 윤리와 정의가 담겨있다.


하스노와 친구인 서양화가 이구치의 콤비는 다이쇼 시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이들이 함께 풀어나가는 여섯 편의 이야기는 각각 다른 수수께끼를 다루면서도 무심한 듯 긴밀하게 이어지는 등장인물들로 엮여서 연작이지만 하나의 장편소설 같이 느껴진다.


각 사건이 드러나고 해결될 때마다 느껴지는 쾌감과, 빈틈없이 짜인 서사 덕분에 빨려 들어가듯 읽었다. 추리소설의 묘미는 문제 해결이다. 문제가 해결될 때마다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이 제법 두껍지만, 소설은 마치 시계의 부품들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듯 탄탄한 논리로 빈틈없이 작동하여 내 시간을 도둑맞은 느낌이 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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