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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도둑과 악인들 ㅣ 다이쇼 본격 미스터리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왜 하필 시계 도둑일까? 주인공들의 동선을 따라가면서도 궁금했다. 소설의 배경인 다이쇼(1912~1926)시대는 서구 문물이 깊이 정착한 시기로, 괘종시계는 부의 상징이었다.
시계 도난 사건은 '도둑맞은 편지'가 떠오르기도 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처럼, 유키 하루오의 작품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숨겨진 비밀이라는 아이러니가 곳곳에 존재한다.
유키 하루오가 이러한 상징적 물건을 도둑질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시계를 훔치는 행위는 단순한 절도가 아니라 시간을 매개로 사건의 실마리를 쫓아가는 미스터리의 본질을 드러낸다.
특히 법대 출신의 도둑이자 소설에서는 탐정 역할을 하는 하스노라는 인물이 흥미롭다. 그는 법을 전공했으나 도둑이 된다는 모순적인 설정을 통해 다이쇼 시대의 복잡한 사회상을 반영한다. 당시의 역동적으로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가치관과 규범의 혼란을 나타내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서구의 합리주의와 전통적 일본 가치관이 충돌하던 다이쇼 시대, 하스노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실현할 수 없는 정의를 도둑이자 탐정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통해 구현한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의 경계 속에서 그는 법의 바깥에 서는 길을 선택했지만, 그의 행동에는 나름의 윤리와 정의가 담겨있다.
하스노와 친구인 서양화가 이구치의 콤비는 다이쇼 시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이들이 함께 풀어나가는 여섯 편의 이야기는 각각 다른 수수께끼를 다루면서도 무심한 듯 긴밀하게 이어지는 등장인물들로 엮여서 연작이지만 하나의 장편소설 같이 느껴진다.
각 사건이 드러나고 해결될 때마다 느껴지는 쾌감과, 빈틈없이 짜인 서사 덕분에 빨려 들어가듯 읽었다. 추리소설의 묘미는 문제 해결이다. 문제가 해결될 때마다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이 제법 두껍지만, 소설은 마치 시계의 부품들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듯 탄탄한 논리로 빈틈없이 작동하여 내 시간을 도둑맞은 느낌이 들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