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오의 삶은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맞물리며 전개된다. 해방, 전쟁, 군사정권의 폭력, 민주화 투쟁, 경제위기, 팬데믹까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뿐 아니라 세계적 격변의 한복판에서 그의 삶은 그야말로 끊임없는 전환점과 단절을 경험한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은 그의 삶을 깨우치게 하지도, 특별한 결단으로 이끌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를 더욱 모순되고 갈등적인 인간으로 만들 뿐이다. 처음에는 세상이 낯설고 무섭기만 했던 태오가 점차 그 안에 스며들며, 결국 자신도 세상을 닮아간다는 점은 섬뜩하다. 그는 무언가에 맞서 싸우는 대신, 체념하고 순응하고, 때로는 동화되어 간다. 부조리에 물든 사회 속에서 결국 부조리한 인간이 되어버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불편하고도 안타깝다. 이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질문을 던지게 한다. 부조리를 피해 도망칠 수는 없는 것인가, 아니면 모두가 결국 그 안에 흡수되어 파괴되어야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