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를 향해 쏴라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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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리앤프리' 카페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 인간의 인생사를 시대라는 큰 톱니바퀴 속에 던져 넣고, 그것이 어떻게 그의 존재를 갈기갈기 찢고 이끌어가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가는 도서의 작품 속 주인공 ‘태오’는 특별한 능력도 야망도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비범한 시대의 풍랑에 휘말려 자신도 모르게 방향을 잃고, 점점 자신이 바라던 삶과 멀어져 간다. 이야기는 단순히 개인의 성장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성장’이라는 단어를 조롱이라도 하듯, 거꾸로 흘러간다. 일반적인 서사가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간다면, 이 작품은 현재에서 시작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결국 인간의 시작, 즉 뱃속이라는 종착점으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단순한 형식적 실험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과 무력함을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장치다.



태오의 삶은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맞물리며 전개된다. 해방, 전쟁, 군사정권의 폭력, 민주화 투쟁, 경제위기, 팬데믹까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뿐 아니라 세계적 격변의 한복판에서 그의 삶은 그야말로 끊임없는 전환점과 단절을 경험한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은 그의 삶을 깨우치게 하지도, 특별한 결단으로 이끌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를 더욱 모순되고 갈등적인 인간으로 만들 뿐이다. 처음에는 세상이 낯설고 무섭기만 했던 태오가 점차 그 안에 스며들며, 결국 자신도 세상을 닮아간다는 점은 섬뜩하다. 그는 무언가에 맞서 싸우는 대신, 체념하고 순응하고, 때로는 동화되어 간다. 부조리에 물든 사회 속에서 결국 부조리한 인간이 되어버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불편하고도 안타깝다. 이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질문을 던지게 한다. 부조리를 피해 도망칠 수는 없는 것인가, 아니면 모두가 결국 그 안에 흡수되어 파괴되어야만 하는가?




작품이 끝을 향해 갈수록, 태오는 자신이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부조리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토록 갈망하던 구원은 결국 허상이었다. 작가는 그 순간을 단지 절망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절망 너머에 있는 자기 인식의 순간으로 다가간다. 총구를 들이댄 대상은 외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며, 그 총성은 세계를 향한 반항이자, 동시에 자신을 향한 참회다. 이 소설은 장르로 보자면 일종의 역사소설이자 성장소설이며, 철학소설이다. 그러나 그 어느 하나로도 규정하기 어렵다. 밀도 높은 문장, 적절하게 배치된 대사, 그리고 생생한 사건 묘사는 독자에게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특히 문체는 감정의 과잉 없이 간결하고 단단하다. 하지만 그 단단함 속에서 작가의 절절한 진심이 배어 나와, 문장 하나하나가 읽는 이를 오래 붙잡는다.



도서를 읽고 나면, ‘부조리’라는 단어가 더 이상 추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뉴스 속 사건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상이고,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현실이며, 때론 우리 자신일 수 있다. 그리고 그 부조리 앞에서 총을 들 용기를 낸 태오의 선택은 독자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진며, 고통스러운 시대를 살아낸 한 인간의 기록이며, 동시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으로, 절망의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마지막 인간적인 눈빛과 눈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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