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톰슨에 대한 최초 관심은 서남희씨가 열린어린이에 연재한 것을 한권의 책으로 묶어 단행본으로 낸  <그림책과 작가이야기>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콜린 톰슨에 대해 짧지만 알찼던 그에 대한 설명과 그림은 그림책 매니아인 나에게 어떤 스파크같은 불꽃이 튀었다. 이 겹겹히 쌓인 그림과 비범한 내용의 그림책을 꼭 구해보리라. 어찌어찌하여 이베이까지 뒤져 그의 그림책을 몇 권 건졌고 , 처음으로 구했던 작품이 바로 위의 <Looking for atlantis>라는 작품이다. 처음 이 작품을 편지함에서 꺼낼 때의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다. 결제를 다 하고 한 십일을 기다리다 받았는데, 그 십일간 책이 혹 도착하지 않을까 싶어 노심초사 했었다. 구하고 싶은 책을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찾다가 손에 넣었을 때의 그 감격이란.  

 

 

주인공의 할아버지는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며 바다에서 모험을 하며 일생을 보냈다.

 

소년이 10살이었을 때 할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임종을 맞이하고 소년에게 아트란티스를 찾아보라며 자신의 체스트(chest)를 유품으로 준다.  

 

소년은 할아버지의 유언에 할아버지의 체스트를 열어 할아버지가 남기고 간 유품을 뒤적인다. 그 안에는 금화, 굴비, 다이아몬드 같은 귀중품이 있었지만 색소폰 아래, 천달러 지폐 밑에 문이 하나 있는 것을 소년은 발견하지 못한다.

 


 

할아버지가 말한 아틀란티스를 찾기 위해 다락방을 뒤지는 소년, 이 장면은 이 그림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소년이 알 수 없는, 감지 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가 열려있는데. 

 여기저기 찾아보고... 







 

찾다가 못 찾고 실망해 계단아래 앉아 있는 소년의 모습.

 

낙담해 있는데 할아버지의 앵무새가 다치자 소년은 급히 지하실로 내려가 앵무새를 안고 있는다. 점차 더욱 더 어두워지고 소년은 눈을 뜨고, 눈을 감는다.  순간, 소년은 뭔가를 깨닫는다. 

 

집아래 서 있던 그 곳에 태양이 떠 오르며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여기가 바로 아틀란티스군요.   


작품마다 비슷비슷한 다층적인 그림을 보여주는 콜린 톰슨의 이 그림책은 1993년 작이다.  여타 다른 그림책 작가들의 친밀함이나 친근감 같은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컬트적인 분위기의 이 그림책은 현재 아마존에서는 절판으로 올라와 있다. 현재의 그림 스타일은 <플러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스푸키하면서 유머스럽고 익살스러운 친근한 모습으로 많이 변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현재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그가 왜 중년 시절에 그린 진지하면서도 내면적인 그림책을 다시 내지 않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의 그림책이 아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그림책은 아니다. 귀엽고 애교 많은 캐릭터도 익살스럽거나 개그스러운 내용은 없다. 하지만 어찌 세상을 귀엽고 이쁘고 익살스럽게만 볼 수 있을 수 있겠는가.

콜린 톰슨은 집에 집착하는 그림책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한다. 소년이 아틀란티스를 찾는장면마다 보여지는 것은 집안의 모습이다. 특히나 다락방에서 아틀란티스를 찾는 장면은 너무나 매혹적이다. 환상적이면서도 몽롱한. 그가 집을 집중적으로 그리는 이유는 뭘까? 그는 "집에는 끝없는 변화와 가능성이 열려 있고 ....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할수 있으니깐요(그림책과 작가이야기,p197)"라고 답한다.  

몇년전에 받아 보았을 때는 그저 멋진 그림에 감탄한 정도였는데, 요즘 다시 꺼내 읽으면서 다층적인 그림뿐만 아니라 이야기도 다층적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만 둔 작가에게 소년은 어떤 존재일까?  자신의 어린 시절의 분신일까? 아니면 주변의 사내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내면적인 고통을 아틀란티스에 비유한 것일까?  

소년의 아틀란티스가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단지 이 그림책이 소년의 성장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하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긴 했다. 소년에서 어른으로 나아가는 과정,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 그가 성숙하고 완성된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곳.  내가 누구인지 내가 설 곳이 어디인지 몰라 방황하고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그런 사춘기의 한 과정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어린아이가 볼만한 책에 가깝다기 보다는 청소년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들에게 알맞은 책이 아닐까 싶다. 개인의 정체성 확립은 제대로 된 어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고 지나야 하는 과정이다. 다른 세계로(성인) 편입되어야 하는 통로이기도 하고. 아틀란티스는 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정신적, 심리적 고통을 내면화한 비유적 세계가 아닐까 싶다.     

사내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푸념일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갈수록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품 안의 자식이라고 아이가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조금씩 조금씩 변해간다. 우리 성장할 때와 달라서 요즘 아이들은 확실히 빠르다. 부모의 말에 되받아치기는 말할 것도 없고 순간적으로 반항적인 눈빛을 쏘대기도 한다. 아, 처음 애가 반항적인 눈빛을 보여줄 땐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무시하고 넘어가야지 했던 사항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그래, 네가 감히 나를 그런 식으로 쳐다봐. 한바탕 해볼테면 해보자라는 오기까지 발동했다. 아이와 한바탕 큰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웃기지도 않는 상황도 있었다. 우리 아이 나이 또래에 나나 남동생이나 엄마를 그런 식으로 몰아부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엄마를 그 어린 나이에도 연민의 눈으로 보았다. 월급도 제대로 갖다 주지 않은 아빠때문에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며 우리를 키운다는 것을 그 어린 나이에도 알고 있었기에. 반항은 커녕 절대적인 순종으로 그나마 맘 고생이 심한 엄마의 부침을 덜어주고 싶었다. 학교 다니면서 엄마에게 가장 미안했던 순간이 아침에 준비물 사야된다고 돈 달라고 해야할 때였으니 어린 나이에도 세상 물정 어느 정도는 알았던 셈. 하긴 뭐 우리 세대에 이런 일은 비일비재한 일이 아니었는지.  물질적 풍요가  한 아이의 성장에 가능한 인자일지 모르지만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도 한 아이의 고통적인 성장이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준비와  더 넓은 세상을 껴안기 위한 통과의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세상의 모든 사춘기 청소년들이 자신만의 아틀란티스를 꼭 찾기를. 세상 사는 게 뭐 그리 호락호락한 게 있겠니. 세상살이는 다 네 몫어치다.  

덧: 요즘 같아서는 능구렁이 10마리 데리고 사는 게 더 낫다 싶다. 도대체 말도 잘 안하고 입만 뽀루퉁하게 나와서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맘대로 질문하고 내 맘대로 답하고.. 

1. 당신은 몇년 차 하루키빠인가?  

한 18년차인 것 같다. 대학 초년 시절에 <상실의 시대>를 읽고 그를 처음 알았는데 지금 내 나이 마흔이니깐 20년이 채 못 되는 거 같다. 그 땐 읽을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한국문학을 많이 읽었던 때인데, 그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일본문학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우리 문학하고는 다른 신선하면서도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상실의 시대>가 히트치는 덕분에 그의 초기작들이 우리 나라에 거진 다 발간되었고, 그의 초기작이 나오는 족족 다 사다 읽을 정도로. 최신작은 물론이고.

2. 그는 당신에게 어떤 작가인가? 

최초의 전작작가이다. 그의 <상실의 시대>는 우리 세대의 있어서 폭풍같은 작품이었다. 그의 글쓰기는 쉬운 듯 가벼우면서 진지하였다. 그의 작품 속에는 가벼운과 무거움이라는 추가 균형있게 자리 잡고 있는 듯 하였다. 그래서 그런가. 일단 그의 작품은 어렵지 않다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서 그런지  출간 되면 즉시 구입해 읽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책장을 보니 책장 한 자리를 하루키의 책이 다 차지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책을 읽고 살아온 날이 꽤 되었지만 어떤 작가들은 처음엔 좋았다가 몇 작품 읽고 나가 떨어졌는데, 하루키만큼 20여년 동안 전작을 구비할 만큼 어필한 작가이고, 20여년 동안 관심을 갖고 있는 진행형의 작가는 하루키가 처음이다.  

3. 하루키의 작품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사실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권을 꼽으라고 한다면 <해변의 카프카>이다. 그리고 단편중에선 <렉싱턴의 유령>에 실렸던 <침묵>이란 작품이다. <침묵>에 등장한 오사와라는 인물이 혹시 하루키의 분신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짧지만 강렬한 캐릭터 묘사에 놀랐던 작품이다. 더불어 가장 실망한 작품을 꼽으라고 하면 <어둠의 저편>이리라~~  

4. 그의 책에서 풍기는 느낌이나 인상은?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재즈 느낌이 날 때가 있다. 경쾌한 느낌이 날 때도 있지만 한 낮에 내리쬐는 끈적한 나른함이라든가 나른한 오후의 한 줄기 시원한 바람같은. 담배연기 퍼지는 몽롱하면서 즐겁게 웃는 듯한.

5. 하루키가 듣는 음악을 좋아하는가? 

그의 작품 속에 녹아 든 재즈분위기는 좋아하지만 재즈는 그렇게 와 닿지 않는 음악쟝르이다. 그냥 그의 작품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재즈 분위기가 좋을 뿐이다. 단지 <상실의 시대 또는 노르웨이 숲>에서 틀어 준 존 레논의 <노르웨이 숲>은 존 레논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불러왔다. 80년대 초반에 음악을 들은 사람들에게 존 레논은 오노 요코와의 퍼포먼스가 강한 뮤지션이었지, 음악성이 뛰어난 뮤지션은 아니었다. 그의 <이매진>이라는 곡도 사실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서서히 명곡으로 자리 잡은 곡이다. 그 때 그의 대표작은 <이매진> 한곡이었다.  비틀즈는 폴 메카트니의 밴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카트니의 진취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음악성, 레코딩 기법등등  존 레논의 자리는 크지 않았는데, 하루키를 통해 처음 비틀즈 시대의 존 레논을 알게 되었다.  

6. 그의 에세이가 좋은가 ,소설이 좋은가? 

물론 그의 소설이다. 그의 글은 에세이든 소설이든 어느 분야에도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라는 음악에세이에서 그가 락스타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미국소설가 레이몬드 카바와 비교해가면서 쓴 에세이를 보더라도, 그는 남다른 시각과 접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난 브루스에 대한 쓴 글을 몇 편 읽었지만 그런 식으로 멋지게 쓴 작가는 처음이었다. 하루키옹, 나이를 괜시리 먹은 게 아니구려~~~   

소설은 단순히 이야기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곳에 농축된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캐릭터가 제 자리를 잡아 이야기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하루키의 캐릭터만큼 이야기를 멋지게 이끌어가는 인물들도 없다. 캐릭터가 풀어헤친 이야기를 따라 가며 읽는 재미, 그건 에세이만큼 강렬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7. 하루키의 최신작 1Q84에 대한 기대는? 

기대 된다! 기대 된다! 하늘에 솟아오르는 로켓만큼이나~ 

하루키의 이 작품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내가 11살 무렵 바카라의 <아이캔 부기>에 빠져 음악을 듣기 시작해 그 문화적 영역이 책과 영화까지 확대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데, 대중문화든 순수 문화든 간에 지난 30여년 동안 그 문화적 수명을 다 하며 거장이나 거물의 반열에 오른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생각나는 우리 시대의 거장을 들라하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정도. 이 십년전만 해도 그도 더티하리 시리즈로 유명세를 날렸지만 그냥 스타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용서받지 못한 자>라는 영화를 감독해 평론가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더니 상업적 헐리우드에서 점차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내며 20여년 사이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오홋, 놀라워라~~ 사실 이스트우드같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며 멋진 작품을 내는 그런 인물 거의 없다.

동시대를 살면서 내가 젊었을 때 좋아했거나 주목했던 작가, 감독 또는 뮤지션이 거장의 반열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행복하다. 잠시 반짝하고 스쳐 지나가는 문화적 인물들이 세고 센  대중문화 영역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자신의 재능을 끊임없이 펼치는 작가(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의 인물들도)를 수 십년 동안 바라보며 그의 신작에 흥분하고 셀레고 기대한다는 것은 그가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 아닐까.  

그의 저력이 이번 신작에 아낌없이 펼쳐 졌다고 믿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아빠가 지난 목요일부터 연수라 오늘 일요일 늦은 시간에나 온다. 음하하핫, 유부남들은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완죤 천국같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애엄마한테 진정한 휴가란 바로 이런 것. 아이들하고 대강 밥 차려 먹고 대강 공부 봐주고...시간이 제법 남아 돈다. 남아 도는 시간, 책이나 읽을까하다가 좀처럼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유투브에서 음악 서핑하고 있다는. 나이 딱 마흔이 되니깐 이상하게 10대 시절에 남동생하고 함께 들었던 음악들이 마구마구 떠오른다. 영화도 그렇고. 언젠가 말했지만 난 재즈나 클래식보다 10대 시절에는 남동생하고 락을 들으면서 성장했다. 딱 메탈리카까지 듣고 클래식으로 전환했다는. 락음악은 다시 안 들을 줄 알았는데 요즘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락 음반 들으면서 10대 들은 음악들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역시 다시 들어도 좋구나라는 말밖에.

Layla

 

제프 벡과 지미 페이지가 한 무대에 섰다. 한 40대 정도로 보이는데 젊어서 그런지 역시 힘이 있다...(옛날 라이브라서 라이브 녹음은 젤로 후짐)

   

이 화면보면서 나이 든 연주자들의 모습이 보여 짠했다는. 저 나이에도 아직도 락을 좋아해 음악하고 같이 늙어가는구나.

    

일렉하고는 다른 맛이 나는 언플러그드

에릭옹, 원더풀~~ 원더~~풀,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 하리오.    

나중에 아들애나 보여주려고 유투브 영상보고 이거 질렀다.  노트북 오디오가 후져서 제대로 음이나 감상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만서도. 그냥 돈 더 주고 음반 살 걸하는 후회도 되고. 그래도 음반은 에릭옹의 모습을 볼 수 없잖아! 에릭 옹이 이렇게 멋질줄이야.  나 아무래도 나이 든 남자한테 끌리는 이유가 뭐야. 마돈나를 롤 모델로 삼아야 하는데, 흑, 이영애를 롤 모델로 삼다니. 

 슬슬 이제 청소나 해야것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제 나리님이 블레이드 러너에 나오는 룻거 하우어 이야기 해 갑자기 생각나 올리는 글인데, 혹시 윌리엄 프리드킨의 <광란자>라는 영화와 룻거 하우어의 <히쳐>라는 영화를 아세요? 지금으로부터 한 20년도 넘은 영화니깐 마흔 넘으신 분들은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다 보셨을지도 모르겠어요. 여하튼 제가 이 두 영화 보고 우리 시대의 연기파인 알 파치노와 룻거 아우어의 영화를 잘 찾지 않습니다. <광란자>란 영화가 대강 이런 내용입니다.동성애자만 연쇄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형사인 알 파치노가 범인을 잡기 위해 게이로 위장해서 게이클럽에 들어간다는 내용인데,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정말이지 묘합니다. 범인을 잡고 사건이 해결되었음에도 알 파치노가 게이클럽에 가서 춤을 추는데, 춤을 추다가 관객을 쳐다보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근데 문제는 알 파치노가 관객을 쳐다보는 그 눈빛을 전 도저히 잊을 수가 없더라구요. 알 파치노가 수사를 하면서 자신의 성정체를 찾아 동성애자가 되었는지 아니면 게이혐오로 자신도 연쇄살인을 저지르려고 하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관객을 쳐다보는 그 눈빛이 너무나 리얼 오싹해서, 알 파치노가 나온 다른 영화를 볼 때마다  그 장면이 오버랩되어 도저히 그 눈빛의 강렬함이 떨어지질 않더란 말이죠. 알 파치노가 순수한 역을 맡았을 때도 그 눈빛의 망령이 기억에 새록새록 살아난다는.  아직도 알 파치노하면 그의 <대부>가 아닌 저 <광란자>의 그 강렬한 눈빛이 생각날 정도니... 연기를 너무 잘해도 문제죠!

이번엔 룻거 아우어, 아마 <블레이드 러너>를 먼저 보고 룻거 하우어의 연기에 뭉클 감탄해 하며 빌렸던 비디오였을 거예요. 저 <힛쳐>라는 영화를. 이 영화는 한적한 고속도로에서 무임승차하는 히치하이커의 연쇄살인을 다룬 영화인데 룻거 하우어가 히치하이커 연쇄살인범 역을 맡았지요. 이 영화 정말 무서운 장면 하나도 나오지 않는데 심리적으로 굉장히 무서웠던 영화였어요. 특히나 룻거 하우어가 잡혔을 때의 그 눈빛, 공포스러울 정도였거든요. 오죽하면 며칠 동안 잠에서 깨어나면 어둠 속에서 그 눈빛이 생각나  새벽에 화장실 가기가 두려웠다우. 평소 무서움도 많이 타는 사람이 그런 영화를 봤으니....솔직히 이 <히쳐>비하면 <13일의 금요일>이나 <프라이데이 나잇> 같은 영화는 넌 뭐니? 니가 공포영화니? 라고 묻고 싶을 정도라니깐요. 니네들, 히쳐나 봤니? 좀 보고 벤치마킹이나 해라... 뭐 이런 생각이 든답니다.

보통의 연기력 같고는 관객이 이런 느낌을 받지도 않을 거예요. 도대체 두 연기자 모두 얼마나 캐릭터에 대한 분석과 연구가 철저했으면 관객이 그런 느낌을 들게할까요? 드니로도 눈빛 연기 잘하지만 저 두 사람만큼 못 했던 거 같아요. 물론 개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라 다른 분들은 그랬었나하고 의문을 던지실지도 모르겠네요. 혹 이 두 영화 보실 수 있으면 찾아 보세요. 예전에는 동네 비디오 가게에 저런 재밌고 알찬 영화 널렸는데, 요즘은 비디오가게 가면 잘 만들어진 b급 영화 보기가 힘들더라구요. 블록버스터 영화만 들여 놓더라구요. 가만 생각하면 블록버스터가 썩 괜찮은 스토리 라인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볼 만한 것도 아니라니깐요. 사실 요즘 영화보면 예전의 b급 영화보다 못한 스토리 라인 쎄고 쎘던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B급 영화까지 챙겨보던 20대 시절과 달리 한 십년간 애 키우면서 영화와는 담 쌓고 살았다. 지난 10년간 본 영화를 대라고 하면 아이들하고 같이 본 애니메이션 정도. 그러다 둘째가 학교 들어가면서 아침 시간이 뻥 뚫려 한 두편의 영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영화 보러 다니면서 안 사실이지만 조조가 그렇게 싼 줄이야. 아침 일찍 서두르면 영화 한편 값이 단 돈 4천원(와아~~ 싸다,싸!)  영화 상영 되기 전에 기다리면서 홀짝홀짝 마시는 커피값이 더 비싸다는.

블러거들의 영화 소개를 보고 <걸어도 걸어도>라는 영화를 알았다. 가만히 보니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 감독의 예전 영화 <원더풀 라이프>을 인상적으로 본 터라, 영화의 재미를 떠나 혼자서라도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보러 간 날 역시 커피값이 더 들었다.

영화는 무난했다. 영화홍보를 위해 큼직하게 쓴 엄마의 비밀이라는 카피가 낯뜨거울 정도로, 이야기의 흐름상 엄마의 커다란 비밀 따윈 없었다. 어느 집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큰 아들 준페이의 기일이 되어 모인 가족의 하루를 묘사한 일반 가족 드라마였고 정지된 듯한 화면의 싱그런 여름 풍경 속에 녹아든 적막감이 이상하게 정겨운 영화였다. 

큰 아들 기일에 모인 둘째 아들 료타는 아들 하나가 있는 유카리와 함께 고향집을 방문한다. 먼저 와 있는 누나 식구들과 밥을 먹으면서도 그는 부모와 다정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떨떠름한 가족 상봉. 본가에서 보내는 그날 하루가 그에게 가시방석이었지만 그를 지켜보는 관객인 나도 가시방석이었다. 부자간의 어색한 관계가 낯설어서만은 아니었다. 나 또한 아버지와 다정다감한 사이는 못 되었으니깐.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도 그랬다. 나는 부녀지간의 다정함보다는 도리에 더 무게를 두었다. 문득 걸어도 걸어도 닿을 수 없는 곳은 부모의 맘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타인의 맘 속 깊은 곳을 우리는 애초부터 닿을 수 없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고 부모 자식간에도 타인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하는. 부모 자식간의 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 개인 개인의 인생살이를 말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나 또한 로탸처럼 부녀간의 관계설정이 저렇지 않았을까. 같은 핏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삶에 고집을 부리며, 서로 시건방지다거나 권위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이 영화의 결말처럼 살면서 서로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화해없이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영화의 결말에 가족의 넉살좋은 화해따윈 없었다. 우리의 삶처럼.

저 위에 유투브에서 업어 온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라는 노래는 아내 몰래 바람 핀 남편이 불륜녀의 집에서 저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역근처의 레코드점(?)에서 아내가 산 음반의 노래였다. 아내가 자신이 바람 핀 것을 모를 것이라는 알았던 남편이 아내의 추억담에 잠시 당황한 모습, 그리고 흘러나왔던 음악이었을 것이다. 블루라이트~요코하마라는 노래는 경쾌했고 내 뒤에 앉아 계셨던 두 할머니중의 한 분이 저 노래를 끝까지 따라 불렀다. 몇 사람 되지 않았던 텅빈 극장에서 울려퍼졌던 할머니의 엥카는 그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서 묘한 울림을 동반했다. 귀찮다거나 불쾌한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저 노래가 무슨 노래이길래 나이 지긋한, 적어도 60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할머니가 저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을까. 저 노래가 당대의 히트곡이었나. 할머니는 소녀 시절이나 젊은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나? 아니면 일본인?  영화가 끝나고 그 할머니 두 분하고 같이 극장밖을 나왔는데 두 분은 분명 우리 나라말로 주고 받았다. 순간이었다. 할머니들과 말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할머니, 잠깐만요! 저하고 잠깐 얘기 하실 수 있으세요. 잠깐이면 되는데 저한테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으세요?  그들을 붙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영화를 왜 보러 왔는지... 그 노래를 어떻게 아는지. 할머니들은 영화를 평소 좋아하셔서 이렇게 두 분이 같이 다니시는지. 그리고 책 또한 좋아하세요? 등등.

하지만 끝내 말을 건네지 못했다. 화장실까지 할머니를 따라 들어가기도 하고 졸졸 그 분들의 뒤를 쫓아 다녔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평범한 모습의 할머니들이었는데도. 내가 직업적인 인터뷰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아줌마의 명함으로는 그 두 분을 잡을 수 있을만한 명분이 없었다. 마침내 말걸기를 포기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지하철로 향했다. 아쉬움이 집에 와서도 남았다. 내 용기와 주변머리 없음에.... 어쩜 이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텅빈 극장에서  울려퍼진 블루라이트~~~ 요코하마와 함께 기억되어 질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