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덕에 한 십년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 되고, 여러 유형의 작가들의 만나게 되다보니, 그림책 작가들도 자신들이 선호하는 이미지들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한 작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작품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이미지를 고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모리스 센닥은 땅딸막한 사람(<괴물이 사는 나라>에서의 숏다리의 괴물도 포함해서)을, 바바라 쿠니는 한겨울 크리스마스라도 초원같은 산위를 풍광을, 데이빗 위즈너는 하늘에서의 자유로운 부유(floating이라고 해야하나, <시간상자>의 배경은 바다지만 바다에서의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도 그가 몇 권의 그림책에 담겨진 하늘에서의 floating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를 매 그림책마다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이미지들이다.
이미지는 작가가 작품 속에 그리고자 하는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작가의 독특한 화풍을 결정 짓는다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자신의 스타일을 갖는다는 것은 독자의 눈썰미를 무디게 하지만, 친근함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그림책 작가들 대부분 자신의 스타일이 완성되면, 후속 작품이 나오더라도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변화에 대한 욕망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림책 작가 자신이 이거다 싶은 자신의 그림 스타일이 완성되면, 매 작품마다 비슷한 구성과 형식을 보여주며 독자인 우리들은 그 낯익임에 어느 새 당연하다는 듯이 익숙해 버린다.
하지만 몰리 뱅, 그녀는 내가 알고 있던 그림책 작가들의 기존관행과는 다른, 변화무쌍의 기법의 도전적인 그림책 작가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미지나 스타일을 고집스레 고수한다기보다는 매 작품마다 다른 구성과 매체 그리고 형식을 선보이고 있다.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에서처럼 유화를 사용해 원색적이면서도 큼직한 화면을 구성하기도 하고, <종이학>에서는 종이 접기로 이미지를 형상화하기도 한다. <Dawn>은 화려한 색대신 수채화 기법으로 뿌연 파스텔 톤의 이미지가 전체적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매번 그녀의 다른 작품을 볼 때마다 그녀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중첩적인 이미지는 없는 것이, 그녀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지 않고 자유롭게 그림책을 다룰 수 있는 것이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그녀의 80년대 초반 작품인 글자 없는 그림책 <the grey lady and the strawberry snatcher>는 재미있는 구성의 그림책인데, 작가가 이 작품을 내 놨을 때, 비평가들은 너무나 우울하고 찌푸둥한 그림이라고 혹평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칼데콧 위원들은 이 작품의 미래 진가를 알아채고 명예상을 수상했고 현재 우리 딸은 이 작품이라면 환장을 한다. 아이들과 이 작품을 보면서(역시 글자 없는 그림책이라 엄마인 내가 곤혹스러운...) 이 그림책을 단편영화로 만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하고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만약에 이차원적인 그림책안에서 이런 재미있고 스피드한 구성이 나왔다면, 단편애니로 만들어졌을 때 감독은 어떤 식으로 뜯고 고치고 덧붙여서 3차원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낼까?
할머니가 딸기를 사 갔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할머니가 산 딸기를 강탈(?)해 가기 위하여 할머니 뒤를 쫒는데......
써클로 이루어져 전체적으로 동일한 한 장면으로 보여지지만 이 장면은 각각의 독립적인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할머니가 내리는 장면과 딸기 도둑이 할머니를 뒤쫒아 오는 장면, 버스 표지판을 잘 보면 각각의 장면은 바라보는 시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우리 아이들하고 얼마나 이 장면 보고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고심했던지.....아, 이런 발상은 정말이지 매력적.)
윗의 장면들은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스피드하고 역동적인 장면들. 끝의 두 장면은 화면 분할로 박스도 넣어보면 어떨까...박스가 들어가면 스피드한 화면구성이 떨어질려나.
몰리 뱅은 이차원적인 종이안에서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재미있는 구성과 발상. 스피드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들, 이 작품이 애니로 만들어진다면 더 많은 카메라 시점과 움직임, 확장된 공간 그리고 음악효과가 어울러져 더 멋진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물론 이 작품은 정지된 이미지가 연속적인 이미지로 전환되는 탄탄한 구성의 그림책이지만, 애니의 연속적인 역동적이고 스피드한 화면구성과 다양한 시점으로 그림책보다 더 재미난 구성의 작품으로 태어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디감독들이 애들 그림책도 좀 보고 그래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