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내내 새끼들하고 있는 것이 지겨워 그저께 애들은 애아빠한테 잠깐 보라고, 물론 점심도 알아서 주라고 하고 시내에 나갔다왔다.

 

시내에 나간 주된 이유는 오프 서점에 들려 <10대들의 사생활>이라는 책을 훑어보고 싶어서였는데, 이 책을 보려고 한 이유가 이번 주 시사인에서 문정우씨가 쓴 <10대들의 사생활>이라는 리뷰, 그건 그 아이 잘못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맨 마지막에 쓴 문장에 대한 반감때문이었다. 그는 이 책의 리뷰를 쓰면서, 이번 대구중학교 왕따학생의 가해자들에게 마치 피해자인 양, 새해를 유치장에서 맞는 두 소년이 가엾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가엾다라는 맨 마지막 문장 읽으면서 할 말을 잃었다. 대구왕따 학생 가해자들이 가엾다니... 그 아이들에게 단순한 폭력이상의 고문을 당해 자살을 선택한 아이는 깡그리 무시하고, 새해 첫날 유치장에 갇혀 있는 가해자들이 가엾다니. 이 책 한권으로 괴물이 되어버린 10대들의 행동을 다 이해하는 척하면서, 감옥에 갇힌 가해자들을 그런식으로 정당화할 수 있단 말인가.

 

좀 짜증이 났다. 옥상에 올라가 고개를 떨구었을 그 아이를 생각하면, 난 절대로 가해자들에게 일말의 동정심이 들지 않는다. 문정우 기자의 리뷰에 따르면, 청소년 시기에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데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하는 대뇌의 전전두엽 피질이 미완성 상태이기에, 똑똑한 아이들이 종종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른다는 말을 인용하며, 대구 가해 학생들을 동정한다. 가해학생들의 저지른 행동이 뇌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 학생들이 피해학생에게 가한 고문이 단순히 뇌의 문제라고 단정하고 그 아이들 잘못이 아니라고 일축할 수 있을까!  최소한 15살이면 자신이 한 행동이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안다. 7,8살만 되도 아는 도덕적인 행동들, 거짓말 하지 말고 때리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행동들을 말이다. 아무리 뇌에 이상이 있다하더라도 폭력은 육체적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나이다.

 

그런데 가해학생들은 그런 기본적인 행동들을 넘어 피해학생에게 수치심을 주고 굴욕을 주고 고문에 가까운 폭력을 가했다. 단지 재미로. 이런 행동들을 10대들의 전전두엽의 미발달로 인한 것이라고 정당화 할 수 있을까. 그 나이에 과잉행동이 우선이긴 하지만, 제어력도 마찬가지로 조정되어 진다고 생각된다. 아닌가? 정말 아닌가?

 

법이 문제다. 그것도 소년법. 이제 슬슬 21세기에 맞춰 강력하게 개정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나라의 경우 청소년들이 어른처럼 책임질 행동을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강력하게  비행은 어느 정도 묵인되었다. 술을 마셨다고,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정상참작 되어진다면, 우리는 우리의 법을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지 않을까. 분명한 것은 대구왕따 가해학생들의 행동은 분명 정상적인 범위를 벗어났고, 비난 맞아야 마땅하고, 처벌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들애가 이번 해에 중학교를 들어가기 때문에, 왕따문제게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었다. 나는 더군다나 가해학생뿐만 아니라 부모까지도 연대책임을 져야한다는 입장이므로. 

 

한번 훑어보고 살 셈이었는데, 결국은 읽지 못했다. 지은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런 책을 썼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폭력을 뇌의 문제일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책임 회피이다. 반디앤 루니스도 영풍문고에서도 비치 서적없이 비닐로 꽁꽁 싸여 있었다. 나와 이 책의 인연은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싶었다. 광화문 교보까지는, 영풍과 반디를 돌아다니는 것만해도 허리가 아파 거기까지는 가지 못하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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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윈이 중요한가 - 진화하는 창조론자들에 맞서는 다윈주의자들의 반격
마이클 셔머 지음, 류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틈틈히 한 챕터씩 읽다가 이번 주에 다시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처음엔 어렵게 읽히더니 두번째 읽었을 때는 작가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보였다. 작가는 완전한 다윈주의자로써, 창조론자들과 지적설계자들이 주장하는 논쟁들과, 종교를 과학으로 주장하는 것에 대해 요목조목 다윈주의자의 입장에서 반박하고 있다.

 

나는 스티브 굴드처럼 종교와 과학은 별개이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창조론이나 지적설계론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마이클 셔먼이 창조론 혹은 지적설계자들의 논쟁에 너무 신경을 곧두세운다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주장을 상대하지 않으면 될 것을 뭐하러 이런 글을 쓸까, 시간만 낭비한다 싶었는데, 저자에 따르면 미국내 창조론자 혹은 지적설계자들이 진화에 관련하여 법정소송을 하는 있는 건이 2006년 당시만 해도 31개주 78건이나 된다고 한다. 물론 그들이 창조론을 교육과정에 넣자고 홍보하고 싸우는 이면에는 다 돈과 관련되어 있다.  

 

한 때 열렬한 기독교 근본주의자였고 창조론자였던 셔먼이 다윈주의자로 변한 것은 그가 대학원 시절 기독교주의자로서 진화론에 대응하기 위해서 뭔가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 진화론 과목을 수강하고 나서부터였다. 그리고 그는 그 과목을 수강하면서 눈에 뭔가 한꺼풀이 벗겨지는 느낌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그 후 그 누구보다도 종교론자들과 싸우는 다윈주의 투사가 되었다.   

 

그가 이렇게 다윈주의자로서 종교와 싸우는 이유는, 과학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뛰어난 이야기, 곧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서사적 모험담이기 때문이다(269p), 라고 말하고 있는데,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고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타인의 종교의 자유를 존중한다. 믿음과 기도가 그들의 삶의 큰 위안이 된다면 뭔들 믿지 말라고 강요를 한단 말인가. 단지 나는 종교를 가졌다고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물음과 의심 그리고 호기심을 닫아 버리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나 종교인들이 신자들에게 성경만을 믿으라고 하는 것은 암흑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지구 역사는 6천년밖에 안 되었고 아담과 이브가 우리의 조상이라는.... 성경 교리의 세계만 집중한다면, 그 세계관은 너무 좁다. 하늘의 반짝이는 별이나 지상에 핀 꽃들과 동물들을 아, 아름답구나하는, 단순 겉보기에 한정되어 아름다운 시각으로 보면,  이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는 단순 무지한 암흑의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하늘의 별을 보고 저 별은 우리 지구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고 왜 별이 밝은지, 우리 지구가 속한우주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형성되었는지, 우주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 인간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세상에 대한 물음에 답은 과학적 오류에 오류를 거쳐 나오게 된다.

 

예를 들어 허블은 망원경을 통해 지구와 안드로메다은하와의 거리를 90만광년이라고 측정했지만,  그 거리가 오류라는 것을 바데에 의해 지적되었다. 바데의 관찰과 측정으로 지구와 안드로메다 은하의 거리는 200만 광년이라고 발표되었고, 바데의의 제자 샌디스에 의해 바데의 오류는 수정되었다. 밤하늘의 반쩍이는 별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면, 이런 지구와 우주의 측정값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지구와 우주의 측정값은 단순한 수치에 불과할지 몰라도, 이 측정으로 인해 우리 우주의 나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우주 나이가 100억년에서 200억년이라는 결과를 도출한것. 또한 우리가 우주의 나이를 알게 된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주의 나이를 알므로써, 우리의 우주가 빅뱅에서 시작되었고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시야가, 우리의 세계관이 광대해지기 시작하는 것은 신의 경계를 넘어서는 작업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리고 광대한 우주의 한 점일 수 있는 우리의 존재가치에 회의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물으므로써, 우리는 한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게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간에. 인간은 먹고 사는 것이 다는 아니니깐.

 

간혹 나는 우리 선조의 과학 유산에 대해 지지부지하다는 것에 실망을 금할 길이 없을 때가 있다.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할 때, 케플러가 목성을 발견할 때, 다윈이 진화론을 펼쳤을 때, 우리의 선조들은 밤하늘의 별을 보고 호기심 한번 갖지 않았고, 종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유교에서 금하는 것을 우리 선조는 너무 충실하게 따르지 않았던가. 죽은 선조를 위한 제사만 열심히 지내고. 오늘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고 오늘은 낼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종교를 믿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충분히 가질 수 있다. 빅뱅의 원시원자를 발견한 로메르토 신부처럼. 목사든 스님이든 그 어떤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진화를 설명하고 우주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어야한다. 종교는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성경책을 잠시 옆에 두고, 종교를 믿는 많은 이들에게 닫힌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좀 더 열린 세계로, 무지개를 푸는 광대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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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53세의 나이로 최동원투수(감독)가 타계했을 때, MBC 스포츠에서 발빠르게 그의 일생을 추모하는 영상 다큐멘타리를 방영했다. 그 추모 영상을 보면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최동원 투수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그리고 그 기억이 수치스러울 정도로 부끄러워 얼굴이 붉혀질 정도였다. 여느 때 같았으면, 그런 프로를 보면서 애아빠한테 이것저것 물었을 것을 묵묵히 보고만 있었다. 나는 잘 나가던 시절의 야구인 최동원만 알았지 반골기질의 최동원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나이에 야구를 그만두고 그는 가족오락관의 패널이나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부잡스럽게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고는, 당신 인생도 이런 오락 프로나 나와 떠들어 대고 이젠 막장이구나, 싶어 그를 가소롭게 여겼던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그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던 내가 최동원투수의 야구 복잡한 야구 인생을 보면서, 또 다른 이면의 모습을 가진 최동원투수에 대해 어찌나 그에게 미안하던지.

 

80년대 최동원은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었을 정도로 그의 야구 명성은 고등학교때부터 이어져서 대단했다. 150km/h의 강속구를 가진 그의 볼은 한국시리즈 4승을 기록하며 롯데 자이언츠를 그리고 부산을 들썩이게 만들면서 부산사람들에게 무쇠팔 최동원은 그들의 자부심이었을 정도니깐. 

 

연봉 1억원까지 받으며 잘 나가던 야구인으로서의 그의 경력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해태 타이거즈의 김대현 선수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당하고, 야구 선수들의 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부터였다.  "같이 운동하던 선수가 세상을 떠났지만 도울 길이 없었다. 연습생 선수들의 최저생계비나 선수들의 경조사비, 연금같은 최소한의 복지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선수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그 대안으로 야구선수들끼리 서로 도울 수 있는 노조를 만들려고 했다. 그게 바로 선수협이었다.

 

선수협 결성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21세기 지금도 노조라면 빨간불이 들어오는 시절인데 노태우정권시대에 야구 선수들의 노조결성이 어디 쉬었겠는가.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와 다른 구단주의 압박이 심했다. 게다가 메이저신문들(조중동과 삼방송사)까지 가세해 운동선수들의 노조 결성은 요즘 흔히 말하는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거리였다. 구단주들의 위협과 선수협을 반대하는 선수들의 반대에도 그는 굽히지 않고 결성하였다.

 

선수협 결성으로 그에게 돌아온 것은 롯데에서 삼성으로의 트레이드였다.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의 선수협 결성에 대한 보복이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프로야구시절까지 그는 부산 마운드를 떠나지 않았다. 말이 트레이드였지 삼성으로 쫒겨난 그는 삼성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었다. 삼성에 입단하고 몇 번의 마운드에 섰지만 그는 끝내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아니 부산을, 자이언츠를 버리고 싶지 않아) 않아 야구 인생을 접었다.

 

1991년 마운드를 떠난 그가 한 일은 민자당의 권력을 뿌리치고 민주당의 간판으로 부산 서구 광역의원으로 출마했지만, 뿌리 깊은 지역감정으로 패배했다. 아마 그가 민자당 공천으로 출마했다면 그는 당선되었을 자리일 것이다. 그 후 그는 야구와 관련된 일을 하려고 했지만, 선수협 결성으로 미운털이 박힌 그를 받아주던 구단은 아무 곳도 없었다.

 

야구와 평생을 하고 싶어했던 그에게는 그 시절이 고난이었을 것이다. 2000년대 중반인가, 그는 한화의 2군 코치가 되었고 그것도 선수협을 어느 정도 인정한 세월때문이었다. 야구 선수로서의 최동원에 대해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그가 잘 나가던 사회의 기득권자로서의 반골 기질은 알지 못했던 부분이다.

 

성공한 인생이었다. 그 누가봐도 부러울만큼.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노력 그 이상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기득권을 다 버리고 가진 자로서 없는 자들을 위해 싸웠고, 권력을 얻을 수 있었던 기회조차 버리고 정의로운 길을 가려고 했던 인생역정을 바라보면서, 거인이었지만, 한편으론 거인과 부단히 싸웠던 다윗이기도 하지 않았나 싶다. 비록 당시에는 패배했을지언정.

 

그는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돌아보았을까. 쉽게 살 수 있으면 쉽게 살 수 있었다. 떡 주무르면 주물를 수 있었던 물질적인 부와 환호하는 명성과 함께. 그런 그가 그런 것들을 버리고 자신보다 더 큰 거인들과 싸움을 선택했다. 그 때 왜 나는 그의 싸움이 외롭고 힘든 싸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기득권자이고 자신이 속한 세계에 더욱더 밀착하고 안주했으면 현재 최동원의 야구사의 위치는 더 공고했을텐데. 그의 안에 꿈틀대던 어떠한 열망이 그를 터널 속으로 몰아넣은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한국 야구사에서 그의 무쇠팔 야구 기록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그의 야구 이력과 함께 우리 야구사에도 존경할 만한 그리고 거인과 싸워 이긴 다윗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야구외 인생 또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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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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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게만 지지고 또 지지고 자고 나면 또 지지고.... 읽다가 도중에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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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 이야기
가브리엘 뱅상 지음 / 별천지(열린책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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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깍이 그러니깐 40대 후반(혹은 중반)의 나이로 그림책 작가로 데뷔한 가브리엘 뱅상의 정확한 데뷔 나이를 검색하다가 그녀의 죽음을 추모한 추모글 중 가벼운 선으로 강렬한 감정을 그려냈다,라는 문구를 보고 아, 나만 뱅상의 그림을 보고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게 있다면, 가벼운 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뿐. 나는 그녀가 그려내는 단순하고 투박한 그림을 보고, 라인 하나만 가지고 이렇게 깊은 슬픔을 배어낼 수 있는 그림을그려낼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색채의 화려함도 없고,
멋진 공간 배열도 없는,
단지 떠돌이 개와 길과 허공만이 존재하는 이 그림책에서 가브리엘 뱅상은 그녀는 라인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표출한다.

라인은 자신을 버리고 간 주인의 차를 쫒는 긴박함을,

묵묵함을,

짙은 슬픔을,

그리움을,

외로움을,

설레임 혹은 들뜸을,
(소년이 개에게 다가오는 이 장면을 가브리엘 뱅상은 세컷으로 나누어 그리는데, 독자인 나도 빨리 소년과 개가 빨리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들뜬 기분이 든다)

그리고 잔잔한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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