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53세의 나이로 최동원투수(감독)가 타계했을 때, MBC 스포츠에서 발빠르게 그의 일생을 추모하는 영상 다큐멘타리를 방영했다. 그 추모 영상을 보면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최동원 투수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그리고 그 기억이 수치스러울 정도로 부끄러워 얼굴이 붉혀질 정도였다. 여느 때 같았으면, 그런 프로를 보면서 애아빠한테 이것저것 물었을 것을 묵묵히 보고만 있었다. 나는 잘 나가던 시절의 야구인 최동원만 알았지 반골기질의 최동원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나이에 야구를 그만두고 그는 가족오락관의 패널이나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부잡스럽게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고는, 당신 인생도 이런 오락 프로나 나와 떠들어 대고 이젠 막장이구나, 싶어 그를 가소롭게 여겼던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그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던 내가 최동원투수의 야구 복잡한 야구 인생을 보면서, 또 다른 이면의 모습을 가진 최동원투수에 대해 어찌나 그에게 미안하던지.

 

80년대 최동원은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었을 정도로 그의 야구 명성은 고등학교때부터 이어져서 대단했다. 150km/h의 강속구를 가진 그의 볼은 한국시리즈 4승을 기록하며 롯데 자이언츠를 그리고 부산을 들썩이게 만들면서 부산사람들에게 무쇠팔 최동원은 그들의 자부심이었을 정도니깐. 

 

연봉 1억원까지 받으며 잘 나가던 야구인으로서의 그의 경력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해태 타이거즈의 김대현 선수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당하고, 야구 선수들의 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부터였다.  "같이 운동하던 선수가 세상을 떠났지만 도울 길이 없었다. 연습생 선수들의 최저생계비나 선수들의 경조사비, 연금같은 최소한의 복지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선수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그 대안으로 야구선수들끼리 서로 도울 수 있는 노조를 만들려고 했다. 그게 바로 선수협이었다.

 

선수협 결성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21세기 지금도 노조라면 빨간불이 들어오는 시절인데 노태우정권시대에 야구 선수들의 노조결성이 어디 쉬었겠는가.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와 다른 구단주의 압박이 심했다. 게다가 메이저신문들(조중동과 삼방송사)까지 가세해 운동선수들의 노조 결성은 요즘 흔히 말하는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거리였다. 구단주들의 위협과 선수협을 반대하는 선수들의 반대에도 그는 굽히지 않고 결성하였다.

 

선수협 결성으로 그에게 돌아온 것은 롯데에서 삼성으로의 트레이드였다.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의 선수협 결성에 대한 보복이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프로야구시절까지 그는 부산 마운드를 떠나지 않았다. 말이 트레이드였지 삼성으로 쫒겨난 그는 삼성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었다. 삼성에 입단하고 몇 번의 마운드에 섰지만 그는 끝내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아니 부산을, 자이언츠를 버리고 싶지 않아) 않아 야구 인생을 접었다.

 

1991년 마운드를 떠난 그가 한 일은 민자당의 권력을 뿌리치고 민주당의 간판으로 부산 서구 광역의원으로 출마했지만, 뿌리 깊은 지역감정으로 패배했다. 아마 그가 민자당 공천으로 출마했다면 그는 당선되었을 자리일 것이다. 그 후 그는 야구와 관련된 일을 하려고 했지만, 선수협 결성으로 미운털이 박힌 그를 받아주던 구단은 아무 곳도 없었다.

 

야구와 평생을 하고 싶어했던 그에게는 그 시절이 고난이었을 것이다. 2000년대 중반인가, 그는 한화의 2군 코치가 되었고 그것도 선수협을 어느 정도 인정한 세월때문이었다. 야구 선수로서의 최동원에 대해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그가 잘 나가던 사회의 기득권자로서의 반골 기질은 알지 못했던 부분이다.

 

성공한 인생이었다. 그 누가봐도 부러울만큼.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노력 그 이상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기득권을 다 버리고 가진 자로서 없는 자들을 위해 싸웠고, 권력을 얻을 수 있었던 기회조차 버리고 정의로운 길을 가려고 했던 인생역정을 바라보면서, 거인이었지만, 한편으론 거인과 부단히 싸웠던 다윗이기도 하지 않았나 싶다. 비록 당시에는 패배했을지언정.

 

그는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돌아보았을까. 쉽게 살 수 있으면 쉽게 살 수 있었다. 떡 주무르면 주물를 수 있었던 물질적인 부와 환호하는 명성과 함께. 그런 그가 그런 것들을 버리고 자신보다 더 큰 거인들과 싸움을 선택했다. 그 때 왜 나는 그의 싸움이 외롭고 힘든 싸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기득권자이고 자신이 속한 세계에 더욱더 밀착하고 안주했으면 현재 최동원의 야구사의 위치는 더 공고했을텐데. 그의 안에 꿈틀대던 어떠한 열망이 그를 터널 속으로 몰아넣은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한국 야구사에서 그의 무쇠팔 야구 기록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그의 야구 이력과 함께 우리 야구사에도 존경할 만한 그리고 거인과 싸워 이긴 다윗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야구외 인생 또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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