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윈이 중요한가 - 진화하는 창조론자들에 맞서는 다윈주의자들의 반격
마이클 셔머 지음, 류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틈틈히 한 챕터씩 읽다가 이번 주에 다시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처음엔 어렵게 읽히더니 두번째 읽었을 때는 작가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보였다. 작가는 완전한 다윈주의자로써, 창조론자들과 지적설계자들이 주장하는 논쟁들과, 종교를 과학으로 주장하는 것에 대해 요목조목 다윈주의자의 입장에서 반박하고 있다.

 

나는 스티브 굴드처럼 종교와 과학은 별개이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창조론이나 지적설계론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마이클 셔먼이 창조론 혹은 지적설계자들의 논쟁에 너무 신경을 곧두세운다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주장을 상대하지 않으면 될 것을 뭐하러 이런 글을 쓸까, 시간만 낭비한다 싶었는데, 저자에 따르면 미국내 창조론자 혹은 지적설계자들이 진화에 관련하여 법정소송을 하는 있는 건이 2006년 당시만 해도 31개주 78건이나 된다고 한다. 물론 그들이 창조론을 교육과정에 넣자고 홍보하고 싸우는 이면에는 다 돈과 관련되어 있다.  

 

한 때 열렬한 기독교 근본주의자였고 창조론자였던 셔먼이 다윈주의자로 변한 것은 그가 대학원 시절 기독교주의자로서 진화론에 대응하기 위해서 뭔가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 진화론 과목을 수강하고 나서부터였다. 그리고 그는 그 과목을 수강하면서 눈에 뭔가 한꺼풀이 벗겨지는 느낌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그 후 그 누구보다도 종교론자들과 싸우는 다윈주의 투사가 되었다.   

 

그가 이렇게 다윈주의자로서 종교와 싸우는 이유는, 과학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뛰어난 이야기, 곧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서사적 모험담이기 때문이다(269p), 라고 말하고 있는데,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고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타인의 종교의 자유를 존중한다. 믿음과 기도가 그들의 삶의 큰 위안이 된다면 뭔들 믿지 말라고 강요를 한단 말인가. 단지 나는 종교를 가졌다고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물음과 의심 그리고 호기심을 닫아 버리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나 종교인들이 신자들에게 성경만을 믿으라고 하는 것은 암흑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지구 역사는 6천년밖에 안 되었고 아담과 이브가 우리의 조상이라는.... 성경 교리의 세계만 집중한다면, 그 세계관은 너무 좁다. 하늘의 반짝이는 별이나 지상에 핀 꽃들과 동물들을 아, 아름답구나하는, 단순 겉보기에 한정되어 아름다운 시각으로 보면,  이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는 단순 무지한 암흑의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하늘의 별을 보고 저 별은 우리 지구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고 왜 별이 밝은지, 우리 지구가 속한우주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형성되었는지, 우주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 인간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세상에 대한 물음에 답은 과학적 오류에 오류를 거쳐 나오게 된다.

 

예를 들어 허블은 망원경을 통해 지구와 안드로메다은하와의 거리를 90만광년이라고 측정했지만,  그 거리가 오류라는 것을 바데에 의해 지적되었다. 바데의 관찰과 측정으로 지구와 안드로메다 은하의 거리는 200만 광년이라고 발표되었고, 바데의의 제자 샌디스에 의해 바데의 오류는 수정되었다. 밤하늘의 반쩍이는 별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면, 이런 지구와 우주의 측정값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지구와 우주의 측정값은 단순한 수치에 불과할지 몰라도, 이 측정으로 인해 우리 우주의 나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우주 나이가 100억년에서 200억년이라는 결과를 도출한것. 또한 우리가 우주의 나이를 알게 된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주의 나이를 알므로써, 우리의 우주가 빅뱅에서 시작되었고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시야가, 우리의 세계관이 광대해지기 시작하는 것은 신의 경계를 넘어서는 작업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리고 광대한 우주의 한 점일 수 있는 우리의 존재가치에 회의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물으므로써, 우리는 한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게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간에. 인간은 먹고 사는 것이 다는 아니니깐.

 

간혹 나는 우리 선조의 과학 유산에 대해 지지부지하다는 것에 실망을 금할 길이 없을 때가 있다.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할 때, 케플러가 목성을 발견할 때, 다윈이 진화론을 펼쳤을 때, 우리의 선조들은 밤하늘의 별을 보고 호기심 한번 갖지 않았고, 종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유교에서 금하는 것을 우리 선조는 너무 충실하게 따르지 않았던가. 죽은 선조를 위한 제사만 열심히 지내고. 오늘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고 오늘은 낼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종교를 믿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충분히 가질 수 있다. 빅뱅의 원시원자를 발견한 로메르토 신부처럼. 목사든 스님이든 그 어떤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진화를 설명하고 우주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어야한다. 종교는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성경책을 잠시 옆에 두고, 종교를 믿는 많은 이들에게 닫힌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좀 더 열린 세계로, 무지개를 푸는 광대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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