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년 전 오키니아와 놀러갔을 때, 제일 먼저 들린 곳이 오키나와의 명동이라 불리우는 냐하였고 그 다음 방문한 곳이 바로 태평양전쟁전사기념관이었다. 이 기념관의 위치가 태평양 바다와 접해 있고 그 날 날씨가 구름 한점 없이 파래, 기념관을 설명하는 가이드의 말을 대충 흘려 듣고는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를 더 가까이 보기 위해 기념관 울타리로 향했었다. 가이드의 말은 안중에도 없었다. 아, 이렇게 이쁜 파란 하늘이라니....맘이 한껏 설렜다. 가이드는 우리 가족이 이 기념관의 역사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기념관 주변을 둘러보라고, 몇 분 후에 어디에서 만나자고 하곤 자리를 떴다.

 

나는 가족들과도 떨어져 기념관의 풍경을 둘러보다가, 태평양전사자들이 묻힌 묘비가 늘어서 있는 곳까지 오게 되었다. 용산전쟁기념관의 6.25 전사자명이 새겨진 커다란 메모리얼 비석을 떠 올리며, 묘비를 들려다 보는데, 순간 콧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일렬도 늘어선 묘비에 씌여진 이름 밑에는 21살, 22살 내 나이의 반도 안 되는 청년들이 덩그런히 거기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왜 그렇게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너무나 어린 나이에 죽음을 당해 그 땅위에 묻혀 있는 젊은 그들을 생각하니, 순간 눈물이 나왔다( 나햐에서 이들에게 바칠 꽃이라도 살걸!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돌아오기만을 가족은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을까? 수십년 후 태평양의 한 섬에서 젊은 나이에 죽음을 당한 그들을 위한 위령비가 세워졌다고 통보받을 때 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누구를 위해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여기 이 자리에 묻혀야 했나? 

 

그리고 결국 많은 내 안의 질문끝에, 나는 왜 이런 역사적 사실을 몰랐지? 아까 가이드분이 수만명의 한국청년들이 태평양전쟁 이 곳에서 죽음을 당하고 묻혔다고 했는데...도대체 나는 우리 나라 역사의 무엇을 배운거지? 왜 우리 역사가 아닌 외부에서 이런 사실을 알았을까?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태평양에서 죽어 묻혀있는데, 왜 나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드라마에서 잠깐 보고 말았을까?? 이 정도 대규모의 전사라면 후세들에게 전달해줘야하는 게 역사적 의무 아닌가?  이 드 넓은 땅에 셀 수 없을 정도의 작은 묘비가 세워져 있는데, 왜 이들의 죽음은 역사책 한 귀퉁이조차 서술되지 않았던 것일까? 삶의 반도 펴 보지도 못하고 개죽음당한 이 젊은청년들의 죽음이 왜 잊혀져야하고 기억되지 않는지? 아니 왜 역사의 빈페이지로 남아있어야하지! 왜 우리의 역사가들은 이 시대를 조명하지 않는가?

 

답은 안다. 한일협정과 친일 기득권 세력과 역사가들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숨기고 왜곡하고 덮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2.  역사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덮여있는 역사를 걷어내고 용기있게 맞서야 한다. 권력을 가진 자만이 역사 앞에 나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강간당한 역사를 다시 끄집어내 일본의 만행을 세계적으로 환기시킨 아이리스 장을 본보기로 삼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  아이리스 장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한테 들은 난징대학살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하여 신념과 열정을 바쳐  <역사는 힘 있는 자가 쓰는가>라는 작품을 쓰고 그 작품으로 목숨까지 잃었다.  

아이리스 장은 뉴저지주 프린스턴에서 태어나 일리노이 주 샴페인- 어바나에서 자랐다.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난징에서 일본인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들으면서 자랐다. 그녀는 이 거대한 범죄가 잊혀진 역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서 <The rape of Nanking>을 썼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의 수도인 난징에서 자행된 일본군의 잔학행위를 폭로한 이 책은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장은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다큐멘터리 작가로 입지를 굳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난징 희생자들을 위해 싸우는 행동주의자이자 미국내 중국 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부각된다.

 

이 책은 1937년 난징에서 일어난 대학살과 만행의 참상을 생생히 되살려, 영어로 씌여진 난징대학살에 대한 훌륭한 첫번재 보고서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일본학자들과 일본의 우익세력은 아이리스 장의 책은 사실 왜곡과 날조라고 반박하며 아이리스 장에게 전화와 메일, 시위 등의 방법으로 협박하였고 일본에서 한 출판사가 번역 출판하려고 하자 대규모 규탄 집회가 개최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시체가 캘리포니아 외곽 로스 산또스 고속도로에서 발견되었다. 책이 출간되고 나서부터 일본 우익 단체의 집요한 협박으로 그녀는 우울증 증세를 보였고 그로인해 인해 그녀 나이 36살, 2004년에 총을 쏴 자살한다.

 

이 책은 난징에 남아 있는 수십만 개의 주인 모를 무덤에 바치는 묘비명(316p)이다. 난징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을 폭로한 이 책은,  사진기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찍은 사진들과 기사와 살아 남은 자의 증언과 그 곳에서 중국인들을 일본군으로부터 지켜주기 위한 외국체류자들의 일기와 편지등을 토대로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참수된 중국군 포로들의 머리가 나란히 있는 사진, 포로의 목이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 입술 사이로 담배꽁초가 물려진 중국군의 목이 철조망에 올려져 있는 사진, 의자에 묶여 반복적으로 강간당한 소녀의 사진, 강간당하고 수족을 절단 당한 사진등과 그것도 모자라 무카이 토시아키와 노다 타메시 소위의 100인 목 베기 시합등 너무나 끔찍하고 잠혹한 사진과 기사 그리고 체류 외국인이 쓴 글은 역사적 진실을 한 치의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일본군의 난징침략으로 죽은 사람은 영국군의 드레스덴 공습과 이에 뒤이은 화재폭풍으로 인한 사상자 수 (당시에는 22만 5천명의 사상자가 국제적으로 인정되었지만 최근에사망 6만명, 부상 3만명이라는 좀 더 객관적인 수치가 제시 되고 있다) 보다 많았다고 한다. 사실 난징대학살로 죽은 희생자 수는 최소 26만명에서 최대 35만명으로 추산되며, 죽은 시체를 처리하기 위하여 일본군은 구덩이를 파 시체를 쌓아놓거나 불에 태우거나 아무데나 버려 곳곳이 시체들로 가득 찼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불행한 역사적 사실과 직면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 책은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다.

 

3. 중부정부와 우리 나라 정부의 역사적 사실을 대하는 행동은 다르다. 중국정부는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만들고, 난징대학살 때 일본의 만행을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려고 애썼으며 결국 2015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4, 우리 정부의 한일역사는 그 많은 젊은들이 죽었던 태평양 전쟁은 한일협정으로 더 이상 일본에게 뭔가를 요구하지 못한 채 박정희가 오키나와 전사기념관에 위령탑을 세운 것이 전부고, 2015년 중국의 난징대학살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을 때 우리는 위안부 합의를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하였다.

 

5. 중국은 난징대학살이 역사적으로 잊혀지고 있을 때 아이리시 장이 집요하게 난징대학살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1997년 <난징대학살>이란 책을 출간했고, 일본 우익의 살해위협을 받으며 결국 2004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우리는 일본우익을 대변하며  박유하란 교수가 위안부는 자발적이었다라는 책을 내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이런 사람이 우리 지식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고 자신의 견해는 학문적 자유라고 주장하는, 이런 지식인을 가진 대한민국이 창피하고 부끄럽다.

 

덧: 예전에 쓴 리뷰에서 자기표절했고, 박유하의 학문의 견해를 검찰이 기소하는 것에 대해선 반대합니다만, 그녀의 역사적 시선이 학문적 자유라기 보다는 왜곡에 가깝다라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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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3-26 10:08   좋아요 0 | URL
읽고 반성했습니다 저도. ㅜㅜ
역사를 들추는 것이 역사가 또는 문학가의 일이라면 그것을 읽어내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은 읽는이들의 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왜 읽는지 읽어야히는지를 또 다르게 생각해봅니다.
좋은 주말되세요~

기억의집 2016-03-26 10:26   좋아요 1 | URL
대한민국 돌아가는 게 답답하죠! 요즘은 가슴에 돌덩어리 달고 사는 느낌이에요. 우리나라가 왜 이리 친일역사관들이 판을 치고 지식인들은 그걸 학문적 자유라고 옹호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슬프네요.

초딩 2016-03-26 10:56   좋아요 0 | URL
전범국인 일본과 독일의 차이점을 들었습니다. 물론 맞는 말도 다 그렇지도 않겠지만,
독일은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고 사과하지만
일본은 오히려 자국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죄를 미화하거나 물타기한다고요.
그래서 그것이 독일에 비해 일본은 문학적으로 한계를 경제적으로도 한계를 가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ㅜㅜ 한국은 그 비겁하고 졸열한 일본의 기질을 가지고 있으니, 일본에 비해 선진도 아니면서 못된것만 따라하니 낭패 인것 같습니다.
개인이든 단체든 국가든, 잘 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역사와 같은 장치를 통해 돌이켜 반성하고 다시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노력해야하는 것 같습니다.

서니데이 2016-03-30 17:18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기억의집 2016-03-31 09:52   좋아요 0 | URL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