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의 선물
김소연 옮김, 다니구치 지로 그림, 우쓰미 류이치로 글 / 샘터사 / 2005년 7월
절판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편은 <느티나무의 선물>이다. 이 한장의 그림만으로도 이 책이 만족스러웠다. 흑백이지만, 나무의 푸르름과 나무 사이로 비추는 햇살을 내 멋대로 색칠하고 상상한다. 머리 속에서 색연필로 색칠한 나무의 푸름과 햇살은 지면 저 너머까지 확장된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 좋은 책이지만, 다른 책들에 치여 들춰보지 않고 쌓여 있었다. 그러다 오늘 우연히 들춰보다, <재회>라는 단편을 다시 읽었다. 예전에 읽었을 때도 인상 깊었지만, 오늘 다시 읽으니 가슴이 찡하다. 도쿄에 사는 이와사키씨는 유명한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자신의 경력이 어느 정도 인정 받자 지방도시의 대형호텔에서 의뢰가 들어왔고, 그 의뢰건 때문에 그 지방에 머물려 신문을 보다가, 23년 전 이혼한 아내를 신문속에 실린 사진에서 발견한다. 젊은 시절 일찍 결혼한 그는 업무와 그에 접근하는 여자들때문에 성실한 결혼 생활을 유지 하지 못하자, 이에 화가 난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자 젊은 혈기로 이혼을 한다. 이혼 후 그는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 아들 둘을 낳고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 그런 그가 업무차 들린 한 호텔에서 신문을 읽다 자신이 젊은 시절 결혼했던 여자와 성장한 딸이 전시회를 개최한다는 기사를 읽게 된다. 그 딸은 아버지의 피를 물려 받아 화단에 주목받는 유망한 화가로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내 딸이 이 도시에 있다."

그는 도쿄로 돌아갈 비행 시간을 취소하고 딸의 전시회를 방문하기로 맘 먹고 화랑을 방문해 딸의 그림을 둘러본다. 그림을 보는 동안, 그의 전처가 그의 등뒤로 스쳐 지나간다(아마 그의 부인은 세월이 흘러 외모가 변했어도 그가 전남편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란 생각이 든다).

그는 전시회를 둘러보고 자신의 딸이 그린 그림 한점을 산다. 그러자 그의 딸이 자신의 그림을 사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였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긴장한 딸 앞에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전시회를 떠나는 그에게 아내와 딸은 그를 바라보며 인사를 하는데, 그는 화랑을 나오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빰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이 장면을 보면 독자인 나 또한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자신이 딸에게 아버지란 말 한마디 못하고, 타인에 불과하다는 것때문에
)

화랑을 나와 길모퉁이를 돌다 다시 한번 돌아보는 순간 그는 자신의 아내를 발견한다. 그의 아내는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그 또한 "저 편의 아내"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아마도 자신의 딸을 잘 키워 주었다는 감사의 인사였을 것이다. 젊은 시절의 객기로 자신이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철없던 맘이 나이 들어 자성의 고개숙임이므로.

나는 이혼에 관대한 편이다. 그래서 자식 때문에 이혼할 수 없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이가 안 좋은 부모를 두느니 차라리 한부모라도 자식의 버팀목이 되주는 게 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단편을 읽으면, 한 지인이 떠 오른다. 그녀는 이혼 가정이었는데, 결혼전 이혼한 부모님 사이를 오가다가 결혼했을 때는 아버지와 인연을 끊었다. 그리고 자신의 친모와 왕래하며 아이들에게도 두 명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아닌 한명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인식시켰다. 아이들은 여전히 지금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엄마의 생부인줄 알고 있다. 14년 동안, 별탈 없이 살고 있다. 언젠가 한번 나는 그녀에게 친부 한번 만나 보라고 권유했다. 핏줄이 너 하나인데, 안스럽지 않냐고? 손주가 커가는 모습 보고 싶을 텐데... 한번만이라도 뵙는 게 어떠냐고 말이다. 시누이인 그녀는 나중에요, 애들 다 커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만나보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 후 더 이상 말하지 않지만, 이 단편을 읽으면서 올케의 아버지가 나이가 들수록 딸을 그리워하는 그녀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내 딸이 이 도시에 있다는 말이 가슴이 와 닿는 건 가까운 지인이 그런 상황이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혼으로 생부와 타인의 삶을 사는 그녀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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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으로 2013-02-25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가 행복한 모습을 보여야 아이도 행복하다지만 그렇다고 이혼을 마냥 찬성하지도 않아요. 나중에 이룬 가족 관계가 복잡해지는 것도 있구요....
이 책 예전에도 포스팅 해 주신적 있으시죠. 그때는 맨 위의 그림에 대한 것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잘 지내시죠^^

기억의집 2013-02-25 23:52   좋아요 0 | URL
흐흐 희망님, 그럼요. 잘 지내죠. ㅋㅋ 희망님 올 이월은 못 만나고 어영부영이네요. 저 피부 레이저 했어요. 그래서 더 만나자는 말 못 했어요. 큭큭. 지난 수욜에 가서 했네요. 저 소원이 피부 레이저 한번 해 보는 건데 이번에 이벤트한다는 멜 받고 했어요~ 지금 얼굴이 딱지로 덮혀 있다는~ 나중에 딱지 떼어지면 울 한번 봐요. 근데 나 내일 이 얼굴로 엄마 차 태우고 시골로 내려간다는 거~ 삼월엔 날짜 잡을께요.

이혼 가족이 복잡하죠. 그래서 올케가 그렇게 독하게 아버지랑 끊더라구요. 첨 결혼 할 당시에는 뭘 천륜인데 그러나 싶었는데, 세월이 가니 울 올케가 잘한 결정 같아요. 덕분에 이집 저집 안 가고 편하긴 해요. 저희도 조카들한테 입 다물고 있구요~

2013-02-25 2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25 2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13-02-28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검색하니라 간만에 알라딘 들어와서
책은 안보고 여기 저기 서재 마실 다니고 있네요.^^
잘 지내시죠?

서재 이미지 사진 확대해서 보고
이 아침에 혼자 막 웃고 가네요.ㅋ
따듯한 봄이 시작되면 님의 얼굴은 더 화사해지겠군요?^^


기억의집 2013-03-01 21:13   좋아요 0 | URL
책나무님~ 반가워요. 왜 이리 뜸했어요. 아주 알라딘 떠난 줄 알았어요. 지난 번에 전화통화하고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알라딘에서 수다 떨고 싶어요~

저 대문이미지 친구의 카스에서 가져 온 것인데, 기발나죠. 벽에 갈라진 틈의 라인을 보고 누가 저런 생각이나 하겠어요. 발상과 적절한 배치가 끝내줘요. 부러워요. 저런 능력~

ㅋ~ 레이저는 더 있어야한다는데요. 저는 나이 드니 기미가 서서히 생기더라구요. 모르고 지나치면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어느 순간 딱 눈에 꽂히기 시작하니 기미가 꼴베기 싫어졌어요. 계속 신경쓰이고...결과가 좋았으면 해요.


scott 2013-03-01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분의 열네살과 고독한 미식가를 읽었는데 그림이 사실적이여서 감동의 깊이가 배가 되는것 같아요.
삶의 이면을 차분하게 펼쳐나가서 만회 그이상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살더라도 행복할수 없다면 헤어질수 밖에 없겠죠.
기억의 집님의 사고는 열려 있으셔서 속이 후련해져요.

대문사진 클릭해서 보고 깜놀했어요.
스파이더맨 ㅎㅎ

기억의집 2013-03-01 21:19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작가의 느티나무의 선물과 개를 기른다는 것을 읽고 너무 괜찮아서 꾸준히 관심 있어하는 작가인데, 느티나무의 선물이 두고두고 기억이 남아요. 단편이 다 좋아요. 특히나 예전엔 스쳐지났던 재회라는 작품을 읽어보니 남다르네요. 제가 저 작품을 삼십대 후반에 읽었나 그래요. 그리고 나서 올해 사십 중반에 다시 읽었는데, 재회 읽으면서 나의 결혼생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결혼생활, 이혼, 불화 이런 결혼하고 겪는 일들이 주마등처럼 휙휙 스쳐지나가더라구요. 특히나 재회는 울 올케 생각나서....지난 번에 읽었을때는 올케의 그런 삶을 선택한 것이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나이 들수록 올케 아버님이 안스럽네요. 그분도 재혼하셨지만 자식이 없으시거든요. 딸이 올케 하나인데, 타인으로 사니 이래저래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고~

사고가 열려 있기 보다 좀 괴팍하고 괴상하죠. 저는 이 생각 저 생각 많이 하는데 좀 괴팍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