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하다. 웅장하고 장엄한 어조로 역사를 말하지 않는다. 젊은 나이에 동남아시아로 끌려가 그 곳에서 죽음을 당했거나, 혹은 일본군 전범으로 고초를 당한 후 살아 남은 젊은 영혼을 추적한 역사의 증언기록치고는 감정을 후리치는 감상적인 면모는 보이지 않는다.
우쓰미 아이코와 무라이 요시노리 부부는 태평양 전쟁시 한국인 군무원들이 겪었던 역사적 진실을 찾기 위하여 당시 발행된 신문 기록과 통계 그리고 전쟁을 체험한 증언자들의 기억을 수집하고 기록했다.
처음 이 책이 발간한 된것은 1980년이었다. 그 후 32년이 지난 2012년 다시 발간되었다. 사람에게도 우연한 만남이 있듯이, 책도 마찬가지다. 오키나와 여행시 태평양 전쟁때 죽은 한국 청년들을 위한 위령탑을 방문한 후, 태평양 전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다. 태평양 전쟁이 우리의 역사와 매듭이 묶여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태평양 전쟁 당시 적도에서 묻힌 사람이 만명이었다는 사실을, 그 곳에서 가이드에게 처음 들었고 천명도 아닌 만명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더랬다. 젊은 나이에 머나먼 이국땅에서 사라져 간 사람들. 그리고 미래의 후손들에게조차 잊혀진 참혹한 역사와 사람들. 특히나 그 곳에서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위령비를 보고 난 터라 태평양 전쟁에 관심을 가졌고 우연찮히 프레시안북에서 날아 들어온 기사에서 접한 책이 바로 <적도에 묻히다>라는 이 책이었다.
한국의 후손들에게조차 잊혀진 역사를, 그리고 그 잊혀지고 숨겨진 역사적 진실을 찾기 위하여 우쓰이 아이코와 무라이 요시노리라는 일본인 역사학자 부부는 말레이시아와 한국을 오가며 당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존자를 찾아 증언을 들으며 당시의 기록과 맞춰가며 그 때의 상황을 한권의 책으로 펴낸 것이다. 그 당시 과거의 사실을 추적하고 증거자료들을 들이대는 글이 너무나 무미건조해서, 글이 재밌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단, 일본인 부부가 썼지만 그들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담담하게 쓴 글 속에서 이들 부부의 노고가, 역사의 진실을 찾아 돌아다니는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어느 정도는 추측해 볼 수 있었다. 분명 이들 부부의 역사관은 일본국적을 가진 그들 나라에서 보면 배반이었을 것이고 배신이었을 것이다. 전범 국가로서 2차 세계대전동안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은폐하고 역사적 사실조차 날조하는, 일본의 현재 역사관과 대척점에서 서 있는 사람들이다. 무엇이 역사적 진실이고 사실인지 구별하고 역사적 판단을 정확하게 내리기 위해서 작가 부부가 끊임없이 역사의 증언가들을 찾아 기록했다. 이들 부부의 역사적 사실과 진실은추구는 일본의 역사에 침을 뱉는 행위였기에, 역사의 길 위에서 진실을 찾아 돌아다니는 동안 그들은 분명 일본 기업이나 단체로부터 경제적 원조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인도네시아, 한국에서 역사의 증언가들을 만날때 허름한 여관을 전전하고(물론 70년대 기록이기에 경제 발전이 안 된 점을 감안하더라도) 빠듯한 여비로 인해 풍족하고 여유로운 취재는 아니었던 듯 싶다. 역사적 진실을 찾으려는 사명감과 그들의 이러한 노력을 헛되지 않게 도와주었던 일본편집자나 정보제공자가 없었더라면, 인도네시아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착취당하고 전번으로 잡혀 사형을 당했는지, 혹은 인도네시아 독립을 위해 싸웠는지 그대로 과거의 시간으로 묻혔을 것이다.
자신들의 나라의 역사적 업적을 내세우기보다 역사적 진실을 찾기 위하여 역사의 길위에 섰던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론 독재자 아버지를 정당화하고 옹호하는 아버지의 무덤에 침을 뱉어서야 되겠느냐는 우리 나라 대통령 후보자의 발언은 가소롭기 그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