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알스버그는 그림책 작가중에서 지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몇 안되는 작가일 것이다. 물론 아이들이 어른과 같은 지적 즐거움을 느끼기엔 아이들의 나이가 좀 더 필요로 하고, 그림의 기괴함에 거부 반응을 보일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어른의 입장에서 알스버그의 그림책은 어른들이 충분히 지적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데 고개를 끄덕일 것이며 그의 그림책의 묘미는 이야기의 결론 혹은 결론에 다다르는 과정에서,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게 만드는 반전에 있다는 데 크게 부정할 것 같지는 않다.

 

정교하면서 약간은 기고함이 감도는 이 흑백의 그림책 또한 작가 특유의 재치 있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앨런은 헤스터 아줌마로부터 자신의 개 프린츠를 하루만 봐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개를 하루 돌봐주기로 한다. 앨런이 프리츠를 돌보는 도중에, 낮잠을 자고 잠자는 앨런을 깨운 프리츠는 산책을 가게 된다. 앨런과 프리츠는 산책 도중에, 은퇴한 마술사 압둘가사지의 집앞에서 멈추었고, 마술사 압둘가사지의 집에는 개는 절대로 들어와서는 안된다는 경고장을 읽게 된다. 앨런은 그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돌아가려는 찰나에, 개 프리츠는 마술사 압둘 가사지의 집으로 맹렬히 뛰어 들어가고 앨런은 그런 프리츠를 잡기 위해 같이 뛰어든다.

 

 

 

앨런은 프리츠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만 놓치고 마법사 압둘가사지와 만나게 된다. 그는 압둘가사지에게 개가 들어온 것에 대해 사과를 하지만, 압둘가사지는 이 집에 들어온 이상 개가 오리로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오리가 다시 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비법도 없고 단지 시간만이 해결해준다는 대답과 함께.

 

앨런은 오리가 변한 프리츠를 데리고 압둘가사지의 집을 나오는데, 오리가 된 프리츠가 갑자기 그의 품에서 날아올라 다른 곳으로 도망치고 오리로 변한 프리츠를 찾을 수 없어, 미안한 맘으로 헤스터 아줌마의 집으로 돌아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말한다. 미안해 하는 앨런에게 이 세상에는 마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위로하며 헤스터 아줌마는 앨런을 집으로 돌려보내다. 그리고 앨런이 집으로 돌아가자 마자 헤스터 아줌마는 앞마당에서 뛰노는 개 프리츠를 발견한다. 여기까지의 줄거리만으로 반전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하지만 독자는 그림책 맨 마지막 장면에서  헤스터 아줌마의 말 한마디와 프리츠 물고 온 소품 하나를 보고 그 동안의 이야기가 플래쉬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 게 된다. 혹시 앨런의 꿈이 아니였을까하는 의문과 함께.

 

그런데 나는 크리스 알스버그 그림책의 반전의 묘미를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 그림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그림책 통털어서 가장 멋진 장면이라고 생각하는, 앨런이 은퇴한 마술사 압둘가사지의 집으로 막 들어가려는 저 장면을 보면서, 힘든 혹은 고달픈 일상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얼핏 저 장면은 알둘 가사지의 집으로 앨런이 들어가는 장면일 뿐이다. 더 이상 그 어떤 부연설명이 필요한 장면은 아니겠지만, 나는 저 장면을 앨런이 소년에서 막 사춘기의 성장기로 접어드는 부분을 묘사해 놓은 은유로 해석하곤 한다. 혹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었을 때의 통과의례의 모습을 은유한 것이라고.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해 가기 위해서는 많은 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 과정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닐 것이다. 어른이 되는 과정을 거치는 길 혹은 통로는 저 그림에서처럼 길고 어두울 수 있으며, 옆길도 없는 저 길을 어떻해서든지 빠져 나와야 한다. 단지 분명한 것은 길의 끝에 작지만 환한 빛이 있다는 것이다. 그걸 희망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또 다른 통로로 들어갈 수 있는 시작일 수도 있겠지만, 깊은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오면 빛이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의 발걸음은 좀 더 희망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심리적 요인이든 사회적 요인이든 간에 굴곡이 없었다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 우리 주변에는 부딪히고 부대끼면서 고통 받고 상처 받으며 고민하면서 더 힘차게 딛고 일어서거나 주저 앉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거쳐가야 하는 저 인생의 어두운 터널.

 

선거 결과를 보면서 한순간 내가 깊은 터널 속에 갇혀 버린 것 같았다. 한웅큼의 욕이 입밖으로 터져 나오고 한동안 분노가 차 올랐는데, 갑자기 알스버그의 저 장면이 떠오르면서, 아, 그렇지, 세상이 언제 뭐 내가 원하는 식으로 빙글빙글 돌아 갈 수 있겠냐. 세상이 내 기분을 맞춰준 적이 몇 번이나 있다고 이런 일로 절망할 수 있겠냐는 오기가 불쑥  솟아 올랐다.

 

그리고는 내가 내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걸어갈 때 할 수 있는 일은 주저 앉지 않는 것 그리고 터널 너머에는 꼭 빛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버텨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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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4-13 03:52   좋아요 0 | URL
내가 좋은 꿈을 꾸면서
밝은 사랑으로 생각한다면
온누리는 내 아름다운 뜻대로
천천히 거듭나리라 느껴요.

이렇게
좋은 꿈, 밝은 사랑, 아름다운 뜻을
살가이 어우러지면서 '길 하나 바라기'를
하는 사람이 아직 많지 않을 뿐이지만요.

기억의집 2012-04-13 17:51   좋아요 0 | URL
네, 그래야겠지요.
세상사 왜 이리 힘든지 뜻대로 안되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뜻대로 되서 좋았을 것 같은데^^

마립간 2012-04-13 08:07   좋아요 0 | URL
제 서재에 댓글을 남겨주셨는데, 인사차 글을 남깁니다.

기억의집 2012-04-13 17:53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생각이 좀 별나서 다른 분께 덧글다는 게 조심스러운데,
거부감 없으셨다니 저로선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