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앨리스 먼로를 좋아하게 된 것은 <위안>이라는 단편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다른 단편들도 <위안> 못지 않는 재미와 씁쓸한 아이러니 그리고 인생의 따스한 시선(특히나 표제작 단편 여주인공의 인생은 어찌나 읽으면서도 처량한지 그녀가 너무나 행복하게 되기를 기원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작가는 독자의 그런 기대를 망가뜨리지 않는다)이 담겨 있지만, 가장 인상적인 단편은 <위안>이었으며 그녀의 다른 단편들을 찾아 읽게 만든 원동력이 된 글이었다. 무신론자인 과학선생 루이스와 기독교 근본주의 학생들과의 대립 그리고 그로인한 불명예스러운 퇴직과 그 이후 그의 자살(그는 루게릭병에 걸려있었고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자신이 건사하지 못하자 자살을 선택한다).  

어떻게 보면 참 단순한 줄거리이고 종교성이 강한 나라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소재인데, 이야기의 핵심은 무신론자 루이스 이야기이지만 시선은 그녀의 아내 니나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내가 이 짧은 글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루이스의 장례식이었는데,  

"사람들이 무슨 추모회를 열자는 등 법석을 떨면 모조리 무시해야 해. 사탕발림 좋아하는 그 작자는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거야."라고 루이스는 당부했다. 그러니 어쨌든 니나는 폴의 제안을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좀 전에 한 행동은 너무 유치하고 과시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분노와 앙갚음은 루이스의 전공분야였다(204p)

결국 니나는 루이스의 유언대로 형식적인 장례조차 치루지 않는다. 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누구나 어떤 커뮤니티에 속하는 이상 커뮤니티가 만들어낸 거대한 세계관(특히나 관습이나 제도)을 부정하고 무시하고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일단 그 세계가 만들어낸 법칙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속 편하게 사는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다가 커뮤니티 세계관과 다른 세계관을 가졌다하더라도 그 커뮤니티 속에서 타협이니 이해니 하는 침발린 말로 대충 맞춰 끼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골리앗은 갑자기 무너뜨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먼로가 만들어낸 루이스같은 고집불통의 삶은 너무나 가혹하다. 혼자 치러야할 투쟁이 그토록 외롭도 처절하다면 난 기꺼이 다윗이 되는 것을 포기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루이스처럼 아이들에게 장례나 제사같은 것들을 절대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것이다. 죽어서까지 관습과 제도를 따를 필요가 없으니깐. 그러한 모든 것들이 거추장스럽다,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모든 사물은 심지어 인간조차 원자로 만들어졌다고 하지 않았던가. 원자로 태어나 원자로 다시 돌아가는데 뭘 그리 또 다른 형식이 필요하단 말인가. 영적인 삶은 나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우주이다.

먼로의 저 책<미움, 우정, 구애,사랑, 결혼>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그녀가 나이가 들어 쓴 단편이기 때문에 대체로 나이든 노인의 시선이 많고 글의 소재나 이야기의 분위기도 좋게 말하면 점잖고 약간 과장되게 말하면 할머니풍이다. 그래서 나 또한 젊은 나이는 아니기 때문에 그녀의 글에 공감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불현듯 그녀의 젊은 시절에 쓴 글은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떠 올랐다. 치기가 좀 있을까? 아니면 엉성하지만 발랄할까?  저 작품처럼 완벽할 순 없겠지! 싶었는데, 이번에 그녀의 첫단편집이 발간되었다. 책소개를 보면 온타리오의 고딕,하던데 사실 나는 그녀의 지난 작품에서 고딕적인 분위기는 느끼지 못했다. 내가 둔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먼로가 젊은 시절에는 고딕풍으로 글을 썼던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먼로의 단편들은 그녀가 쓴 나이를 짐작하게 해주지 않을련지.

저 <미움,우정,구애,사랑,결혼>도 표지가 이뻐 사서 읽은 것이었는데, 이번에도 표지는 이쁘게 잘 나왔다. 고혹스럽다,라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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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5-10 16:31   좋아요 0 | URL
오 보관함에 우겨넣기 ㅎ

2010-05-11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1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0-05-11 09:36   좋아요 0 | URL
흐흐 걱정하지 마세요^^ 저 읽을 책이 넘쳐나요!

2010-05-11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1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1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1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1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꽃핑키 2010-05-14 20:49   좋아요 0 | URL
어쩜~ 표지도 이렇게나 예쁜지 모르겠어요 ^_^*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제목도 너무 좋은거 같아요!
저두 위시에 담아두었는데.. 밀린책이 너무 많아서 ㅋ 이렇게 구경만; 자꾸 하고있어요..

기억의집 2010-05-15 23:56   좋아요 0 | URL
핑키님, 진짜 이쁘죠!
저도 사 놓고 읽지 않는 책이 산더미에요. 저걸 어쩌나~~~ 싶으면서도 신간 나오면 사고 싶어 안달을 해요. 이번에 미미여사의 얼간이도 나왔던데..지르고 싶어 죽겠어요^^

2010-05-15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5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6 10: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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