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의 소품이라고 불릴 수 있는 작품이다. 읽어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품도 아니고 이야기도 뭐 그렇게 특별한 것은 없다. 하지만 단편들마다 재미는 있다. 시간떼우기용으로는 그만이라는 말.
<팔월의 눈>, 이 단편소설은 눈여겨볼 만하다. 일본의 2.26사태를 다룬 장편소설<가모우 저택 사건>의 워밍업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모우 저택사건>을 읽고 그 사태가 뭘 의미하는지 그리고 일본역사에서 어떤식의 대우를 받고 있는지 잘 몰랐는데, 이 단편을 통해 미야베 미유키가 2.26사태를 다른 시각으로 보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깐 일본의 정통주의 역사에서 본 것이 아니고 비주류역사에서, 반란군의 눈으로 2.26사태를 다시 해석했다는 말이다.
할아버지들이 한 행동은 옳은 일이었나요?
수화기너머에서 웃음 소리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웃고 있는 것이리라.
"교과서에는 옳지 않다고 씌어 있을텐데."
"........"
"중대장님은 사형을 당했고 우리도 헌병에 끌려갔다.쫒겨날까봐 얼마나 떨었는지.그거 말고는 먹고 살 것이 없었거든."
"그럼..무서우셨어요?"
"그럼 무서웠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무서웠어. 가쓰이치는 아닌 것 같았지만.그 친구는 머리가 나쁜 게 슬프다고 했어. 누구 말이 진실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건 자기 머리가 나쁘기 때문일 것라더군. 네 할아버지는 성실한 사람이었거든(154p)."
<지나간 일>
나는 게으른 독서가였지만 책을 구입하는 건 좋아했다. 그래서 내가 찾는 책들 가운데에는 열심히 읽어봤자 일반들인들은 이래도 저래도 이해하지 못할 전문서적이거나, 그 정반대인 아이들 동화책이 섞여 있기도 했다. 아니, 나는 오히려 그런 종류의 책들을 즐겨 모은다(163p)
나는 미미여사의 이런 문장이 좋다. 솔직하면서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문장 말이다. 개인적으로 그림책과 동화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문장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독서이력의 광범위한 진정성을 어느 정도 보았다면 좀 오버인가. 나에게 그림책과 동화책은 경계를 허물고 쟝르를 뛰어 넘는 카테고리에 속한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다 큰 지금도, 여전히 좋은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보면 눈이 뒤집히고 숨이 팔딱거려 수집하게 된다. 멋진 그림책을 만났을 때의 그 기쁨이란, 정말이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예전에 아이들이 핑계였는데, 요즘은 단지 내가 좋아한다는 구실하에서 즐겨 모은다. 나에게 그림책과 동화책은 말 그대로 전체연령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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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 책들을 읽었다가 참, 답답하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자기가 속한 세계에서 보고 재고 자르고 그래서 고급스러운 재단의 글이긴 하지만, 이상하게 공감할 수 없었다. 자신의 세계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공감스펙트럼이 넓다가 보다는 오히려 지식인의 자폐성을 보는 것처럼 씁쓸한의 감정에 휘말렸었다. 물론 내가 사는 처지가 그들에 비하면 형편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팍팍한 생활비, 월급을 쪼개도 쪼개서 사는 책과 음반들, 카피엽서에 만족하는 명화그림들 같은. 지지리 궁상에 가까운 생활자로서는 그들의 부유로운 세계는 멀게 만 느껴졌고, 그래서 그들의 세계가 로망이기보다는 그들만의 고급스러운 세계에서 멀찍감치 떨어져서 보게 되었다. 토해내고 싶은 글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미유베 미유키나 온다리쿠 같은 일본 작가들의 다작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저 단편집을 읽으면서 어쩌면 저런 무작위로 쏟아내는 소품같은 단편집들이 캐릭터를 형상화할 때 필요한 공감스펙트럼을 넓히긴 위한 글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일본 작가들의 캐릭터에 대한 공감 스펙트럼이 넓긴 하다.
카쿠다 미쯔오의 <대안의 그녀>를 읽었을 때가 새삼 떠 오른다. 그녀가 묘사한 가정주부의 정체성, 시모와의 갈등이나 애한테서 자유롭고 싶어지는 이중적인 심리를 너무나 잘 묘사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어쩜 내 얘기하고 똑같잖아, 혹 작가가 체험한 이야기를 쓴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해 봤는데, 작가의 경험이야기라기보다는 작가가 부단히 캐릭터와 자신과의 거리감을 줄이려고 노력했고 그 노력은 여러 단편들에서 등장 인물의 감정적인 접근을 많이 함으로써 캐릭터에 대한 공감스펙트럼을 넓힌 결과라고 보고 싶다. 대체로 다작의 일본 작가들은 단편들을 통해 장편의 캐릭터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계속해서 되든말든 이야기를 써 냄으로써 자신의 이야기感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어떤 경우에는 장편에서 훌륭하게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그리고 캐릭터는 캐릭터대로 단편보다 월등히 더 나은 것으로 소화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시야를 넓히면 제대로된 글이나 캐릭터가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