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1일, 언제나 나의 구세주인 데이트친구 희망으로님을 꼬셔서 <깐깐한 독서본능>의 파란여우님의 강연회에 갔다왔다. 토요일 오후 5시, 아이들은 애아빠한테 부탁하고 간식은 물론 저녁셋팅까지 끝마치고 아주 가뿐한 맘과 발걸음으로 신촌으로 고고~ 신촌도 많이 변했더라. 애 키우냐고 어딜 싸돌아 다니지 못했더니만 신촌, 정말 오랜만에 와 봐도 청춘의 향연이 물씬 풍기는 장소더라는. 일찍 도착해서 커피 마시면서 희망으로님하고 사는 이야기 좀 나누다가 시간 돼서 강연장소로 향했다. 가면서 혹시 강연회에 많지 않으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도 내심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파란여우님의 강연회 전에  최재천교수님이 주관하는 다윈강연회를 다녀온적이 있었는데, 에구에구 나 포험 딱 14명밖에 없었다. 어찌나 내가 더 미안하던지. 강의 내용은 좋았지만 저녁밥을 지어야하는 나는 5시무렵에 일어나야 했는데 발걸음이 정말 안 떨어지더라. 나마저 가면 10명안팎. 강연 끝마무리도 중요하지만 새끼들 밥이 더 중요하므로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만 했던, 쓰디쓴 기억과 경험이 되살아나 주말에 많은 사람들이 왔을까, 게다가 날씨가 추워지던 때라 다윈 강연회처럼 사람이 없으면 어쩌지? 했던 걱정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기우. 강연회 장소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와 앉아 있었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 곳에 모였던 사람들의 화려한 스펙트럼이었다. 남녀 구분은 물론 연령대도 어림잡아 20~50대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강연회를 그렇게 찾아 다니지 못했고 게다가 낮강연회만 신청해서 내가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파란 여우님의 이번 강연회는 내가 경험했던 그 전 강연회장의 분위기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 전 강연회들같은 경우 젊은 처자들이 주를 이루었지 나이 드신 분들이 아예 없었다. 그런데 파란여우님 강연회는 젊은 처자들도 많았지만 한켠에는 나 같은 중년의 사람들이 많았다.. 그 날 그 장소에서 파란여우님의 인기를 한눈에 실감했다. 

알라딘 파워블러거의 인기 실체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아마 기존의 문단 작가도 이 정도의 연령대의 사람들을 끌어모으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여하튼 강연회 시간이 다가오고 파란여우님이 들어오셨다. 작지만 다부진 눈빛의 아우라(찌찌찍~~)를 가진 파란여우님,  

강연회는 두시간 정도 진행되었는데, 이 날 강연회에 대한 이야기는 파란여우님도 페이퍼로 올리셨다. 그게 그러니깐  여기 ------> http://blog.aladin.co.kr/bluefox/3271653 눌러 읽으면 대강 그 날 파란여우님께서 독자들하고 나눈 이야기가 나온다. 이 페이퍼에서는 주로 활자테스트와 현장체험이 독서의 진정한 길이라고 쓰셨지만, 이 날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가슴에 품었던 주제는, 파란여우님께서 들여주던 독서 프로젝트의 마지막 주제  나만의 쟝르를 찾고 개척하라,라는 말이었다. 파란여우님은 많은 쟝르의 책을 읽었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쟝르로 귀착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고전, 그래서 사기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난 그녀의 마지막 주제가 내 귀에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 실제 그 강의를 들으면서 그 분이 문학을 대하는 진정성, 그리고 독서에 대한 회의와 갈구를 동시에 느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더랬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방점을 찾아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방점은 나에게도 무척이나 유용한 것이었는데, 나 또한 책을 읽으면서 왜 읽어야하는지 그리고 책이 주는 유용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하고 갈구하였던 사람중 한명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용돌이는 단순히 책을 좋아한다는, 일차원적인 읽기의 즐거움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생기는 소용돌이었다. 실제 나는 많은 책을 읽었지만, 내가 어떤 쟝르에 끌리는지 그리고 그 분야에 내 독서인생을 걸아야하는지 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깐 이말은 내가 현재 자연과학책에 끌려 그 관련 책들을 읽고 있지만, 내가 내 독서인생을 이 분야에 걸어야할 마땅한 근거와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파란여우님의 마지막 주제야말로 내 독서 인생에서 결국에는 책에서 즐거움만이 아닌 뭔가를 얻어내고 추려내고 자르고 덧붙이고 해야만 하는 작업이구나. 쟝르를 찾는다는 것은 내가 나의 독서 인생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고 어쩜 나의 회의론을 끝낼 수 있는 방점이구나 싶었던 것이다. 정말 많은 책을 접하고 읽은 경험자의 우러나온 말이 아닐 수 없었다(파란여우님, 전 아마 평생 님의 이 말을 가지고 살 지도 몰라요!)

그 날 두시간의 성실하고  빈틈없는 강의는 만족스러웠다(이건 빈말이 아닙니다. 제가 예전에 강의 들었던 소위 명문대인 서강대 땡땡땡 철학과 교수와 연세대 문학평론가인 땡땡땡 교수의 형편없고 수준 낮은 정말 개뼈다귀 수준의 강의에 비하면 준비많이 해 오신 파란여우님의 강의 명문대 교수 수준 이상이셨어요^^). 나의 독서 위치를 360도 회전해서 바라볼수 있게 하였고 나의 독서 인생을 재정립 할 수 있도록 도와 준 강의였다.  

끝나고 나오면서 파란여우님 아는 척 할까하다가 말았다. 강의실내에 친분이 있는 분이 계신 거 같아 다가가기가 뭐했고 희망으로님도 계셔서 희망님과 함께 건물을 나와 송년회겸 유부녀들의 오랜만의 주말 자유를 만끽하며 술 한잔 했다. 다 저물어가는 해에 마시는 술 한잔, 어찌나 달고 쭈우~~쭉 잘 넘어가던지. 9년을 시원하게 바이바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토요일 주말 저녁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덧: 그 날 저녁셋팅까지 다 하고 나와 홀가분하게 희망님하고 술한잔 마시고 나도 11경에 집에 들어갈거야 했더니 8시 30분경 집에서 애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압력밥솥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으니 밥 차려 달라고. 아 ! 진짜. 무시하고 버틸려다가 애들 생각에 지하철에 올라탔다. 으씨, 정말 생태찌게 셋팅도 다 놓고 왔더니만. 10시경에 집에 도착해 애들 밥 차려 주고 바가지 좀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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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0-02-10 11:00   좋아요 0 | URL
나만의 장르를 갖는다.....전 그게 소설과 역사인것 같은데요, 아직은 허전해요. 왜 읽는지, 읽고 나면 아직도 허한 기분이 들어요.

기억의집 2010-02-10 11:33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허한 기분이었는데 제가 자연과학쪽으로 턴했잖아요.
근데 뭐랄까, 제가 그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잘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찰나에 파란여우님 강의 들으면서 되든 안되든 내 인생의 독서 쟝르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한동안 안개에 갇혀 있었는데 강의 들으면서 쏴악 걷쳤지요.
만두님은 김연수 작품이 있잖아요^^

라로 2010-02-10 11:08   좋아요 0 | URL
흐흐흑 저도 저 강연회 가려고 몇번이나 신청을 했다 지웠다 했던지,,,,,ㅠㅠ
저는 저 만의 장르를 찾으려면 더 많은 독서를 해야 할듯,,,아직 햇병아리라,,,;;;;
그나저나 아니 기억의집님,,,생태찌게 셋팅을 했어도 밥못한다고 전화하심 자장면이나 피자라도 시켜 먹으리고 하시지!!!ㅎㅎㅎㅎ

기억의집 2010-02-10 11:39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전 혹 나비님이 오실까 찾았는데..안 오셨더라구요^^
저도 아직 햇병아리에요^^ 언제쯤 전문가 소리 들을 수 있을려나 싶어요.

그게요..나비님,저의 집 양반은 피자나 짜장면 김밥이 안 통해요. 온리 한식.특히나 저녁은 밥하고 찌개를 먹어야, 밥을 먹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어찌보면 무지 편하고(된장찌개만 해도 맛있게 먹거든요) 어찌보면 융통성은 개 갖다 주었나 보더라구요. 심지어 제가 심하게 체해서 드러누웠는데도 밥 달라고 하더라니깐요. 참..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희망으로 2010-02-10 22:36   좋아요 0 | URL
강연을 하셨던 파란여우님도 듣는 이들도 모두 진지했던 시간이 기억나네요. 한참 지났어도 이렇게 글을 올린 기억의집님, 짝짝짝 박수!!^^ 전 그날 두레박질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전에 비해 반도 못 읽고 있으니 참.../서재의 달인 엠블럼이 떡 하니 보이네요. 축하합니다.

기억의집 2010-02-11 15:59   좋아요 0 | URL
희망님, 딸 그 책 좋아하던가요. 전화 해야지 하면서 요즘 뭐가 그리 바쁜지. 지금도 아들 데리고 깁스 풀고 왔어요. 아, 정말 짜증나요. 내 진짜 아들놈 때문에. 이동네엔 왜 이렇게 정형외과도 없어요. 보통 기다리고 처치하고 뭐 하다보면 1시간 30분이에요. 오늘도 왕 짜증나서... 아침에 애들이 학교 갔다 일찍 들이닥쳐 밥 해주고 청소 후딱 해놓고 미리 가서 정형외과에 갔더니 그래도 사람이 많아 좀 전에 왔어요. 깁스 풀었는데도 아파다고 징징대서 더 열받고 있어요. 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엄마네도 갔다와야하는데... 오늘은 안 갈까봐요. 저녁밥이나 해야지.// 근데 제가 왜 서재의 달인인지 모르겠어요, 사실 제 서재에는 사람도 별로 안 찾아 오거든요. 요즘엔 좀 오긴 해도. //그 날 다시 한번 미안해요. 그건 그렇고 3월까지 어떻게 견뎌야할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