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얄팍한 잔머리로는 일년 6개월이 지나면 좀 더 나은 가격 아니 1000원, 2000원이라도 깍은 가격에 살 줄 알았다. 어차피 사놓고 금방 읽지도 않을 책, 내가 과학소설창작이 당장에 무슨 필요가 있겠나 싶어, 적어도 1년 반만 참으면 싼값에 이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오호~~ 하지만 그건 오만한 나만의 착각. 1년도 안돼 이 책은 여기저기 인터넷도서점에 품절로 뜨고 있고 한달이 넘은 상태에서도 품절은 쭈욱 계속 되고 있다. 불길한 생각이지만 절판쪽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 입장에서 살 사람은 다 샀을 것이라고 생각할테고 남은 몇명의 SF 팬들을 위해 다시 인쇄기를 돌리느니 그냥 절판쪽으로다....
한때 SF에 열을 올린 적이 있어 SF소설 나오는 쪽쪽이 사서 읽었는데. 사람 맘이라는 게 어디 언제나 뜨거운 전기장판 같으랴, 책에 있어선 바람난 여편네다 보니 자꾸 다른 쪽으로 한눈 파느냐고 근래엔 SF 쪽으로는 무슨 책이 나왔는지도 잘 모르고 지냈다. 작년에 황금가지에서 출간된 SF 소설들은 틈틈히 봐둔 게 있어 SF 소설들을 사긴 하지만 예전처럼 잘 읽지는 않는다는.


작년 오멜라스와황금가지에 이어 올해는 북스피어가 야심차게 내 놓고 있는 에소프레스 노벨라 전집 소식에 갑자기 미지근하던 SF 소설에 불이 확 당겨지는게,


젤라즈니의 <그림자잭>은 <판타스틱>에 연재된 소설이라 솔직히 사기 아까운 소설. 판타스틱이 제대로 간행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니. 이번엔 시공사에서 인수해서 2월까진 발행되고 있기는 한데, 제발 플리즈 시공사여~ 판타스틱을 부탁해!
여하튼 끝판을 읽기위해서라도 <그림자잭>을 사긴 사야하지만 일단 중고샵을 기다려보고, <집행인의 귀향>은 어제 가격보고 덥석 물었다. 이제 25,000원이 넘는 <드림마스터>만 사면 되는데.... 여행서를 중고샵에 방출하고 얻은 돈으로 저 책 사련다.
내가 읽은 젤라즈니는 미래 사회에 대한 어떤 유토피아적인 비젼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언젠가 이네파벨님이 SF 라는 게 결국은 헉슬리의 신세계에서의 다른 버젼이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나 또한 SF 작가들이 그려내는 미래 세상은 현실과 다른, 좀 더 나은 세상 혹은 진보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헉슬리의 신세계의 확장선상에서 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이제 21세기 누군가는 헉슬리의 패러다임위에 계속해서 패러다임을 건설했던 SF가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의 SF소설을 구출해야 할 것이다(이건 토마스의 쿤의 과학 패러다임을 빌려 SF의 소설에 대입한 것임).
젤라즈니는 여타의 SF 작가들과 달리 가독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하인라인만큼의 진보성을 그리고 필립 딕만큼의 SF적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의 이야기는 남성우월주의 정말이지 애교스러운, 혹은 용맹한 마초이즘을 기반으로(하인라인하고 다른 게 바로 이 점이다. 하인라인은 생긴 것은 꼭 마초의 마초처럼 생겼지만 그가 묘사하는 남자주인공들은 상당히 유연하다. 나약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권위적이거나 교조적이 아니다란 말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들이 드세다는 느낌을 받는다), 서부시대의 남성적인 마초를 좀 더 용맹스러운 그럼과 동시에 사랑스러운 우주적 마초로 탈바꿈 시켰다. 그러한 요소가 그의 소설을 읽고나서 거부감보다는 빙그레 웃음이 나올 수 있었던 매력 아닐까.
그래서 젤라즈니의 작품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반가움이 앞선다. 이번엔 또 어떤 유형의 마초를 만날지. SF 작가들 나름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우주적 인물 유형이 있어 나름 SF는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그게 하인라인처럼 진보성과 관련되어 있다면 선견지명이 있는 것이고. 현재의 인물유형이나 설정을 그대로 우주적으로 탈바꿈 한 것이라면 일반 소설과 다를 바 없는 것이겠지만.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지금은 아쉬운 것이 있다면 SF 소설 한참 탐닉했을 때, 아서 클라크와 아시모프의 작품들를 읽지 않는 것은 후회스럽다. 자연과학책을 읽다보면 많이 인용되는 SF소설가들이 바로 아시모프, 클라크와 더글라스 애덤스인데, 그들의 40,50년전의 SF 작품이 오늘 날에는 거의 예언서와 다름없고 그들은 예지자와 다름 없어 보인다. 아아, 그렇다고 젤라즈니나 하인라인 그리고 르귄에 쏟아부은 시간이 아깝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 작품에 또렷한 주관적이고 독자적인 상상력을 충분히 보여주었고 어쩌면 그들을 읽었기에 내가 자연과학책으로 서서히 인도해 해주었으니까. 그들이 아니었다면 어쩜 나는 자연과학책은 평생 읽지 않을 목록이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어느 지점에서는 SF 소설도 읽어주는 것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물론 이 쟝르는 호불호가 분명해서 강제로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점점 희귀현상을 보이는 쟝르가 SF 소설이다. 더 이상 눈에 띄게 활발하게 활동하는 SF 작가도 거의 없어, 20세기의 SF 작가들만 미래에 살아남아, 몇 몇의 SF 작가들의 망령이 21세기를 움직이지 않을까 싶다.
덧: 필립 딕의 소설은 그의 휘향찬란한 아이디어만 아니었다면 좀 실망스럽다. 필립 딕의 재평가는 그의 아이디어를 다시 쓰는 요즘 감독들에 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