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 어디서엔가 도킨스는, 모든 인간은 개별적인 DNA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에게 받은 유전자 50%와 무작위적 조합 50%가 저마다 다른 개별적인 특성을 만들어진다고 말이다. 즉 이 말은 같은 피를 나누었다뿐이지 부모와 형제 모두 다 제각기 다른 DNA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나와 언니 그리고 남동생은 같은 피를 나누어 어느 정도는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 말의 예를 책으로 간략하게 들자면,
나 : 안 읽어도 무조건 사고 본다. 쌓아놓고 있고 읽어주길만을 기다라고 있는 책이 수 백권이 방치되고 있는 것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책탐에 눈이 휘집혀 구미가 당기는 책들은 장바구니에 넣고 클릭한 다음, 저녁에 실물을 받아보아야 직성이 풀린다.
언니 : 난 도서관에서 빌려다볼래, 도서관이 있는데 뭐 하러 책을 사서 읽어, 돈 낭비지! 난 애들도 도서관에서 책 빌려서 읽게 할거야!
남동생 : 누나, 난 책만 읽으면 졸리더라! 근데 괜찮은 책 있어? 한 권만 빌려줘봐(그리고는 요코하마 히데오의 <루팡의 소식> 빌려가놓곤 일년동안 읽지 않아 회수해 왔다) ! 지난 10년간 단 한권의 책도 읽은 적이 없다.
참고로, 친정 엄마 : 야, 그 많은 책 사서 뭐할래? 책 좀 그만 사! 다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뭐하러 돈 주고 사니, 차라리 옷을 사 입어라! 그리고는 드라마만 본다.
한 집안에서도 같은 피를 나눈 형제들와 같은 피를 물려 받은 친정엄마의 책을 대하는 태도(아니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책의 취향도 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가 이렇게 끔찍하게 다를 수 있다는 예를 드는 이유는, 이번 이용훈 판사에 쏟아진 댓글중 전라도 놈이라서..라는 지역 감정 운운하는 댓글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해서다.
뭘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수 틀리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툭하면 내뱉은 말이 있다. 전라도 어쩌고 저쩌고... 나는 왜 전라도 사람들이 타깃이 되었는지 정확하게 잘 모르겠지만(박정희 가 만들어낸 지역감정이 그의 유산이지만), 한 개인을 전라도라든지 경상도라든지 지역적 특성에 묶여 둘라면, 지역적 특성을 기반으로 한 수 많은 자료와 정확한 수치의 통계 자료가 나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지역에 범죄율이 높다거나 어느 지역에 이혼율이 많다거나 어느 지역에 유독 선행이 베풀어 진다거나.
그런데 우리 나라에 언제 그런 자료와 통계를 낸 적이 있나? 우리 나라에 그런 자료 내었다는 기사나 리포트 지금까지 들은 바가 없다. 어느 지역에서든지 바람 피는 인간 있고 사기 치는 인간 있고 아내 때리는 인간 있고 남 못 살게 구는 인간들 있다. 경상도나 전라도를 떠나서 어느 지역에나 있는 개개인적인 특성을 왜 지역, 집단화로 몰아가는 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지역 감정은 정치계략의 일종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한 정치인들의 정치적인 계략인데, 어느 사이엔가 지역 감정은 우리들을 분열시키고 있다. 과연 우리는 한 지역사람들을 한 카테고리에 묶어 공통점을 추려내고 특성화를 지킬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지역화 시킬 수 있을 정도로 정보력이 뛰어난 사람들인가. 얼어죽을 놈의 무슨 정보력!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런 정보력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을 정도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애시당초 정치인들의 지역감정 운운에 넘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몇 몇의 능구렁이 같은 사기꾼 정치인들의 화술에 넘어가 그러면 그런가보다하고 수 십년간 철썩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걸. 그것도 대를 물려가며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그런 편견과 오만으로 똘똘 뭉친건지. 지역감정이 통제를 위한 가장 편안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지 묻고 싶다.
미야베 미유키의 <외딴집>은 작가가 의도했던 안 했던 간에 권력자가 무지몽매한 국민을 어떤 식으로 통제할 수 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미미는 신을 통해 국민의 사고를 억압하고 통제할 수 있는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그 때는 정보나 지식을 함부로 가질 수 없는 사회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한 12세기인 오늘 날, 정보는 순식간에 퍼지고 누구나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세계가 되었다. 도킨스의 말대로 WWW에서 찾지 못할 정보는 없어 보인다. 그런 정보유통의 사회에서 정치인들의 놀음에 놀아라는 게, 그리고 지역감정을 자기식대로 편리하게 써 먹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놀아나는 게 말이 되냔 말이다. 갑갑하고 답답한 일이다.
난 지역감정 운운하는, 편견과 오만으로 가득 찬 사람들 볼 때마다 자신의 둥그런 원 속에 갇혀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어린아이들은 원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위아래 오른쪽왼쪽 어딜 봐도 원 밖에 보이지 않는 단순함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다가 아이들은 성장하며서 자신의 원 속에서 비판적인 시각인 앵글을 만들며 면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제 원의 세계에서 빠져 나와 자신이 만든 다양한 면을 통해 외부 세계를 내다 보는 것이다. 그것이 성장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어른들은 자신의 면도 제대로 못 만들어낸 편견과 단순함으로 가득 찬 원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판을 친다. 갑갑하고 답답하다. 자신이 원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타인에게까지 원속에 살기를 강요하다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것이다. 제발 한 개인을 지역화 집단화 하지 말라는 것이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전라도 운운이야말로 자신의 천박성을 야만스럽게 드러내는 저질스러운 인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