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나는 나 스스로를 의심하는 데 익숙하여, 인생의 대부분을 그 의심의 심연에서 보낼 것이다. 스스로를 의아해하는 인간. 믿음이나 사랑이 도착할 수 없는 영혼의 플랫폼.

 

_빗방울에는 뒷면이 없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인생도 그렇다. 이 세계 역시.

 

_말하자면 인생은 이런 자세로 흘러가는 것이다. 너는 그걸 알고 있느냐, 그런 느낌이었다. 나이가 든다는 게 뭔지.

 

 

알고 보니 그동안 이장욱의 소설을 꽤 읽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다.

내가 읽었던, 그 소설의 작가가 그인 줄은.

이 책을 안 읽었으면 좋아할 작가, 한 사람 놓칠 뻔했다.

좋다. 이 작품, 표지도 문체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_우리는 거울로 눈을 맞추며 깔깔대고 웃었다. 이런 우리를 보고 어른들은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우스운 나이라고 말한다. 나는 어쩐지 그 말이,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 갈수록 인생이 우울해진다는 의미로 들린다.

 

_어른들은 지난 세대와 지금을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을 언제쯤 깨달을까. 과거를 미화하고, 지금 여기를 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정신이 이토록 빈곤하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_"지랄에 이유가 있냐."

 

_내 마음은 여러 사람들이 스쳐 지나며 꽂아 놓은 바늘로 가득하다. 그 수많은 상처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건, 내게 상처를 준 이들이 그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상처를 준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해서 생긴 것들이다.

 

_본디 선생님에 대한 평가란 '사랑해요'가 아니면 '좆같아요'의 극단적인 이분법이기 때문이다. 낮은 확률로 그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개성 없는 선생님들이 존재하는데, 그게 바로 우리 담임이다.

 

_미치겠다, 이게 대화야?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만 생각하고 어른들은 항상 우리를 과소평가한다. 재미있는 점은, 어른들은 늘 아이들의 문제가 별것 아니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도대체 뭐야.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뭐야!"

윤리 시간에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고 배웠다. 어느 인간도 방대한 우주를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티끌만 보고 우주를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피곤해졌다.

 

_우리는 열아홉이다. 젊다고 하기엔 어리고, 어리다고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 세상이 너무 어둡고 축축해서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말하기엔 누려 보지 못한 세상이 너무나 넓었고, 세상이 마냥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라고 여기기엔 너무 많은 것을 알아 버린 나이였다. 누가 뭐라든 우리는 열아홉이다. 어리석은 열아홉도, 철없는 열아홉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열아홉도 아닌 그냥 열아홉.

시리지만 상쾌한 밤공기에 나는 옷깃을 여미었다.

그래, 춥지 않다. 우리는 춥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쓰러졌을 때 아무도 없이 스스로를 일으켜야 하는 사람은 외롭다.
높은 곳에서 쓰러지는 사람, 깊은 곳에서 쓰러지는 사람, 먼 곳에서 쓰러지는 사람은 외롭다.
혼자 일어나야 한다. 아무도 없다.
외로운 사람들은 언제나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다다른 사람들이므로 결국 혼자 일어나야 한다.
스스로 눈을 뜨고 스스로 이마를 짚고 스스로 아직 멈추지 않은 심장의 박동을 확인해야 한다.
가장 늦게 지는 별을 바라보는 순간의 낙타처럼,
살아서 지워지지 않는 길을 건너가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남은 꼬리가 꿈틀대는 동안 도마뱀은 달아나지. 잘린 꼬리가 자라는 동안 도마뱀은 생식도 성장도 하지 않는다. 그이가 당신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고 아파하지 마시길. 당신이 그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동안 당신은 살아남은 거야. 꼬리 치는 당신도 아팠다고._ 꼬리 치는 당신도 아팠다고

 

: 연목구어를 실천하는 물고기가 있다. 망둥이는 나무에도 오르고 땅을 기어가기도 한다. 아가미 주머니에 물을 잔뜩 넣어서 물 밖에서 호흡을 하는 것. 때로는 슬픔이 슬픔 너머로 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지. _ 슬픔의 힘

 

: 파라과이의 사막에 사는 풍선개구리는 서둘러 싸놓은 똥처럼 생겼다. 포식자를 피하기 위한 위장술이다. 그러다 누가 시비를 걸면 벌떡 일어나 큰 입으로 비명을 지른다. 당신이 이미 버린 똥인데 뭐가 또 남아서 괴롭히느냐는 거지. 이들은 올챙이 때에는 같은 올챙이를, 개구리 때에는 동료 개구리를 잡아먹기도 하지. 버림받은 자들이 서로를 버림으로써, 하나라도 구원을 받으려는 거지. _ 버림받는다는 것.

 

: 어쨌든 장수말벌 지나간 곳에는 벌들의 시체가 쌓여 매트를 이룬다.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는 킬러지. 그래서 그런 광고가 생긴 건가? 장수돌침대는 별이 다섯 개. _ 별이 다섯 개

 

: 여우원숭이 시파카의 걸음걸이를 보셨는가? 두 팔과 다리를 벌리고 옆을 보면서 왼쪽으로 껑충, 오른쪽으로 껑충 뛰면서 이동한다. 마다가스카르 최고의 화제작. 좋은 일이 있는 건지 얼치기 쿵푸인지 알 수 없는 오두방정. 그렇게 삶이 날마다 축제였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에게 드리는 마지막 인사. _ 날마다 축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믿음이 너무 강하면 원래 내용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온다.

그 믿음들이 뒤엉켜 고집이 된다.

 

“여기서 평생 지낼 수는 없어요.” 어느 밤 내가 말했다. “우린 떠나야 해요.”
내가 그의 바람을 자르고 그의 가슴을 긁어 구멍을 판 모양이었다. 한동안 그는 숨을 쉬지 못했다. 이윽고 그가 나를 와락 당기더니 세게 밀었고, 나는 아기가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했다. 나는 아기를 지키기 위해 그를 힘껏 떼밀었고, 그의 눈빛에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떠날 수 없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그의 섬이었고, 나였으며, 그의 고양이들이었다. 그는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해 겨울 눈이 내리고, 바람이 우리 위로 눈을 수북이 쌓고, 눈이 우리를 감싸 꽁꽁 언 돌멩이들 속에 봉인할 때까지 나는 그와 함께 동굴에 머물렀다. 

 

시간이 지나면 사랑은 반들반들 닳아 늙으면 잘 알아채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는 사랑이 쪼그라들다 죽는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제 나는 채찍처럼 분연히 일어서는 사랑을 보았다. 

 

이 세상의 많은 일들은 이미 예전에 일어난 일들이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새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사람에게는 처음 일어나는 일이니까. 아버지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 그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