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에서 살아남기
-2018.09.01~2018.09.02. 후라노-
나는 부자가 되지 못했다.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금수저도 아니요,아이들에게 물려줄 부를 축적하지도 못했다. 경제적 원조가 바탕이 되어 주지 못한 내 부모를 원망하지도 않지만 경제력이 아이들 자립에 든든한 밑바탕이 되는 현실을 살면서 알아왔기에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노라면 눈앞이 깜깜하다. 그럴때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미안하다.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고 이를 갈던 유년의 각오들은 청년이 되어서 현실 앞에서 무너지고 적어도 남들만큼은 살겠다는 다짐은 중년이 되어 나는 그저 나로 사는 것으로도 다행인 상황이 되었다.
부자가 아닌게 서글플 때는 아이들이 좀 더 쉽게 세상살이할 수 있는 재산을 물려주지 못할 때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세상살이에 중심축이 될 그 무엇의 힘. 생각하고 판단하고 버티는 힘! 경험을 물려주어야겠다. 재산은 살아가면서 만나는 여러이들과 나누고 싶어하지 않을 뿐더러 누구와도 절대 공유하려 들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에. 혼자 혹은 가족만이 누릴 혜택인 재산. 풍부한 경험은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할 뿐만아니라 나누면 나눌수록 여러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경험. 그리하여 부모는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힘이 될 삶의 축, 경험을 만들어주도록 하자!!
자식을 염두에 둔 각오는 부모를 움직이게 하는 힘! 시간만 되면 밖으로 나돌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에 새로운 것을 보면 집적대 보고픈 충동. 부모의 영향과 아이들 생애 첫습관덕분에 아이들은 집에 있는 걸 좀 쑤셔한다. 거대 집단병, 가족 역마살. 가족 역마살병은 전염병으로 번져, 죽마를 타고 놀지는 않았지만 ‘고우’인 친구네 가족을 홋카이도까지 날아 오도록 만들었다. 민폐가 될 것 같다며 주저하던 마음을 꺾어 버린 것은 아이들 있는 부모들의 로망, 캠핑카 여행이란 점 때문이었을리라.
한달 반에 걸친 카톡질로 서로의 의향을 확인하고 이해를 구하며 5박 6일의 홋카이도 여행 계획을 세워놓고 9월1일, 토요일 오후. 신치토세 공항에서 해후하였다. 남편은 그날 아침, 치바현에서 날아와 캠핑카를 픽업하여 삿포로로 우리를 데리러 왔었다. 타국에서 만나는 지인들은 더없이 반갑다. 훌라 춤이라든지, 꽃목걸이 거는 환대란지, 아님 뜨거운 포옹과 볼뽀뽀라도 해주어야 마땅했지만 캠핑용 칼과 냄비를 구매해야한다는 남편의 강력한 의사를 따라 마트를 전전하느라 공항에 미리 나가 기다리고 있겠다던 약속조차 어그러트리게 되었다. 그래도 양해 가능했던 것은 해후할 이들이 참 선한 이들이란 사실 때문이다.
선한 이들과의 캠핑카여행, 해후 첫날.
후라노 히노데 캠핑장을 향해 달린다. 두시간 반 정도의 주행시간이 두렵지 않은 것은 그간 쌓아놓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제끼면 훌쩍 갈 시간이기 때문이다. 허나 문제는 아이들의 허기였다. 간식거리보다 제대로 된 해후 첫날의 식사를 염두에 두었던 우리들. 숲길을 달릴 때 본 사슴들도 시원하게 뻗은 자작나무들도 허기앞에서는 무의미하다. 캄캄해진 시각에 캠핑장 체크인을 하고 우여곡절끝에 향토요리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선호하지 않는 식자재가 있다거나 기피해야할 음식이 있는 일원이 있다거나 하지 않아 무엇을 먹든 맛나고 달게 먹을 수 있어 여행 동반자로 적격인 이들이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는 최고의 쉐프와 레시피, 신선한 재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함께 먹는 자들의 행복한 마음이란 것을 누가 모를까? 앞으로 캠핑이 더즐거워지리란 예감이 들던 저녁식사.
캠핑장으러 돌아와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재래식 화장실을 쓰던 유년. 밤이 되면 화장실 가기가 너무나 큰 고역이었다. 엄마가 부스럭거리면 밖으로 나가길 기다렸다가 잽싸게 볼 일을 보고 엄마 오줌이 똥덩이에 떨어지던 소리를 들으면 올려다보면 밤하늘의 별들은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잊을 수 없는 장면. 그런 밤하늘을 후라노 히노데에서 재회하게 된다. ‘쏟아진다.’ 란 표현이 적격인 별빛을 바라보면 삿포로 클래식을 즐긴다. 친구가 스마트폰 어플로 별자리 이름을 알려준다.
여행은 많은 것을 낯설게 하는 법. 오리온자리의 모양에 문득 놀랐다. 초코파이 회사의 로고 때문인지 오리온자리마저도 생소하게 느껴지던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사이 잔디에는 이슬이 흠뻑 내려앉고 조용히 느린 걸음이지만 두 눈만은 예리하게 번뜩이는 여우가 다가오고 있었다. 말린 연어포의 비릿맛 때문인가? 처음 실화로 보게 된 여우마저도 새롭게 느껴지는 후라노의 밤.
“선택받은 사람이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춤을 추는 사람이 선택받는 것”이란 문장에 밑줄을 그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백야행] 한구절이다. 선택받는 사람이 삶을 누리는 게 아니오, 기꺼이 살아가는 사람이 생의 기회를 선택받는 것이란 맥락으로 음미하던 문장을 이렇게 써먹어본다.
“다 갖춘 자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하는 자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내일의 여정 또한 선택받는 것들로 가득하리란 부푼 기대를 안고 삿포로 클래식 캔에 남은 맥주를 털어넣고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후라노까지 와서 라벤더 농장을 포기하고 여행 일정의 첫체험으로 열기구를 순위에 올려놨었다. 아소비야란 레져회사에서 운영하는 열기구 체험은 하루 두번, 일출과 일몰에 맞춰 각각 두시간씩 실시한다고 했었다. 내 구글 조사에 따르면! 남편이 예약차 전화한 바에 따르면 새벽 5시에 첫 비행이 있다고 했다. 그러겠거니... 어쨌든 일찍 가야하니까 간밤 자정이 넘어 취침해 다들 피곤한 상태에서 새벽 4시반에 기상하여 열기구 체험장으로 달렸다. 아소비야 사무실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너무 이른 시간인가? 남편이 전화통화를 시도하는 사이, 아침을 해결하려고 편의점에 들렀다.
“언능 오라는데?”
“아침 먹고 가도 되겠지.”
편의점 주먹밥과 도시락으로 끼니를 두 가족, 8명이 캠핑카에서 해결했다. 그래봐야 겨우 30-40분. 아소비야 사무실에 다시 돌아간 시간은 6시 40분 정도? 아무도 없다. 다시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체험 시간이 끝났다한다. 체험장소 또한 그곳이 아니라 한다. 허허허허....탈. 허기보다 더 무서운 허허허허....망함. 이쯤되면 남편과 댓거리를 해야할 시점이다.
“체험시간이 6시부터 7시까지 였잖아. 왜 5시부터래? 피곤하게 일찍 일어나 왔는데.....”
“네비게이션으로 장소 똑바로 찾았어야지!”
실은 네비의
목적지 설정은 내가 했었다. 부글거리는 분노의 댓거리를 자제할 수 밖에 없었다. 두 가족의 첫 여행일정부터 삐걱거리게 되면 남은 날은 뻔하다.
기대에 부푼 아이들이 어이상실하고 있을 때에도 친구부부는 너그러이 그러려니!! 다음 여행지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나를 달랬다.
“목적달성을 위한 여행에 집착하게 되면 과정을 못 보게 된다. 여행이 즐거운 것은 경로를 벗어나 예정한 장소가 아닌 곳에 당도하게 되도 그곳 또한 낯설고 새로운 곳이 되며, 그것을 즐기는 자가 진정한 여행자가 되는 것이다.”
또한 어이없는 실수에 대해 친구에게 변을 하고 싶었지만 미안하단 말을 남용하지 않았다.
‘설명하지 마라. 친구라면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 것이고 적이라면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같이 있는 이가 친구이니 다행이라 여기며 비에이의 사계채 언덕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