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에서 살아남기
-2018.08.31. 다시 또 오타루-

“색연필 30색을 가진 아이와 12색을 가진 아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12가지색상으로도 세상을 충분히 그려낼 수 있어. 하지만
30색상을 가진 아이를 부러워하다보면 내가 그리는 그림에 즐겁게 집중하지 못하게 된단다. 물론 30색을 갖고 있는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넓고 깊다면 30색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보다 풍부해질 수 있지. 그런 그림을 12가지색을 가진 아이가 접하게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단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데 긍정적인 작용을 하게 되는 거지. 그러니 지금, 당장 내가 가지지 못한 색연필이 많다고 상황을 불만과 불평으로 몰고 가기보다 많은 색상의 색연필을 가진 아이들이 이 세상과 세계를 보다 풍요롭게 그려주길 바라면서 내가 가진 열두색으로 지금을, 멋지게 표현하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하는 데 집중하는 게 어때?”

이 곳의 셈법으로 겨우 열 살인 아이에게 제법 어려울 수 있는 얘기를 한다. 영화 ‘우리들’을 여러번 보면서 눈물까지 짓던 아이였으니 아예 공감 못할 것 같지는 않았다. 공부도 여행도 사회활동도 그러한 자세로 임했으면 좋겠다 말하는 건 내 어릴 적에 미처 그런 개념이나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못해서 아쉬운 것을 아이가 대신했으면 좋겠고 내가 해봐서 후회하는 것들을 아이는 겪지 않길 바라지만 결국 아이는, 아이 스스로 살면서 경험해봐야 터득하게 되는 것을. 나도 살아봐서 알게 된 것이지 나면서부터 다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큰 아이를 가장 많이 훈계하는 요인 중 하나는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결하려하지 않는 자세이다. 그때마다 나는 잔소리처럼 말한다.
“네 인생 네가 살지, 엄마가 살아주냐? 엄마는 엄마 인생 살기도 바빠!”
이 아이가 그 어느날,
“엄마가 내 인생 사는 것도 아닌데 뭔 참견이야?”
되려 큰소리치는 날이 올 것 같아 미리미리 선방하는 것일까? 아이 스스로 주체적으로 살아내기를 바라는 소망에 아이는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을 긴 말을 하게 된다. 스스로 살아내는 삶이라? 그렇다면 어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까? 건강한 삶의 정신과 태도? 그건 어떻게 형성되는가? 아휴, 교육철학적 서론따윈 다 필요없다. 무식한 엄마는 그냥 무작정 문밖을 나가보기로 한다.

오타루 치코의 그랜드파크 호텔에서 그간 일본거주의 좁은 이불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누려봤다. 그렇다해도 애 둘은 결국 엄마품에서 잔다며 하나밖에 없는 내 품에 아이둘의 머리가 대결을 해대서 결국 별이 몇 개의 호텔이 무색한 잠자리였다. 잠자리가 좁다하여도, 내가 발 다딜 곳이 좁혀진다하여도 좁은 공간에서 복닥이며 내 가슴께로 파고드는 아이들에게 넒은 가슴과 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이끌고싶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시오?”
“튤슈사랑하는 일이 나의 일이오.”
튤슈사랑하는 일이 중요한 삶의 일이었던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의 어느 사람처럼 누군가 내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시오?”
“저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일을 합니다.”
“당신이 잘하는 일을 말하시오.”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만이 제가 오로지 잘해내야 하는 일이지요. 그외의 것들은 아이들을 사랑하기 위해 필요에 의한 일들이오. 사랑을 가르치는 것만이 제가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일입니다.”

큰아이는 유리공예 체험을 원했고 나는 바닷가를 즐기고 싶어서 오타루를 다시 찾았다. 제법 긴 오타루운하 산책에도 힘들다 투덜대지 않은 아이들을 옆에 세워 걷는데 큰아이가 말한다.
“엄마, 저 건물은 일층은 그리스 양식같이.”
“엄마는 건축법은 잘 모르지만 오타루 곳곳에 있는 근대적 건물들 대개는 은행이었어. 항구에 많은 물건을 싣고 온 상인들이나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파는 사람들이 많아 돈거래나 저금같은 일을 담당하던 은행들이 필요했고 서양의 건축양식을 받아들여 건물을 세운 걸거야. 지금은 상업시설이 되었지만 말야.”

오타루 운하 산책 후에 유리공예 체험관을 찾아 오르골을 구매하고유리장식품을 골라 꾸미는 체험을 했다. 삿포로 오도리 공원 근처의 그랜드호텔로 돌아가여 한다. 구글맵을 켜자 곧 전철이 출발예정이었다. 큰 아이에게 표 발매를 일임했다. 아이는 수월하게 표를 끊었다.순조로운 여행이라 생각했다. 미나미오타루에서 오타루치코까지 한 정거장. 큰 아이 손에 체험 후 구매한 유리공예 오르골 봉지가 들려있지 않았다.
“오! 마이 갓뜨~~~~”

놀람의 액션에 오타루가 들썩했지만 도미사토시도서관에서 휴대용 와이 파이를 잃어버려지만 다음날 무사히 찾았던 일례로 속내는 안심. 하지만 물건챙기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훈계를 하자 세 살 남자 아이가 제 누나를 위로한다.
“괜찬아. 누나, 괜찮을거야!”
엄마의 질책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동생의 괜찮다란 말이라던 큰아이는 미나미치코에서 다시 미나미오타루 역에서 내리자마자 역무원을 붙들고 샬라샬라. 와스레모노를 모떼키하고 드디어 삿포로역으로 향한다.

삿포로 그랜드 호텔은 오도리공원 가기전 삿포로 시계탑 근처다. 덕분에 동족 확인이 빈번한 곳이기도하다. 삿포로에서의 마지막
밤이라 홀로 삿포로 클래식 맥주에 취한다. 술이 맛있어 혼자서도 마시는가? 혼자서 즐거이 마실 수 있으니 술이 맛나는가? 달걀도 닭도 누가 먼저인지 중요치않다.부모가 있어 자식이 있고 자식이 있어 부모가 살아낼 수 있는 것과 같다. 아이들이 있어 즐겁고 내가 있어 아이들이 내게 의지한다. 내일엔 아버지란 존재가 당도할 것이고 죽마를 타고 놀지는 못했지만 고우인 친구의 가족이 한국에서 부터 날아와 신치토세에 도착할것이니, 아이들은 저희들과 놀아줄 이들이 늘어 더 즐거울 여행을 꿈꾸며 삿포로의 밤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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