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씹는 여행기
_박민우의 [일만시간의 남미]버금가는 굶주림과 함께_

나고야에서 미소우동을 먹어야 했다. 철학도 신념도 배고픔이란 본능 앞에서는 책 속의 문장일 뿐이다. [일만시간의 남미]가 유독 연상되는 이유는 여행자들은 늘 배고프기 때문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고 먹고 싶은 게 많아서 더 고프고 사먹을 돈이 넉넉치 않으니 더욱 배고픈 것이다. 그래서 박민우 작가는 늘 굶주린 일만시간의 남미여행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인가?

오후 두 시 즈음하여 수족관을 나서며 근처 우동집에서 끼니를 해결하자던 뭉뚱그린 계획 아닌 계획은 틀어졌다. 고속도로 진입전까지 식당같은 간판은 나타나지 않았다. 짐승같은 촉이 왔다. 장시간을 굶주릴 수 있겠구나! 편의점이라도 들러 주먹밥을 사자는 내 말에 남편은 고속도로 진입전에 골목을 한 바퀴 더 돌아 편의점을 찾았다. 배고픔에 나는 편의점 주먹밥을 쓸어담으려는 찰나 한국식 비빔밥 도시락이 보였다. 아이들 먹일 주먹밥 두 개를 더 집어들려는 순간에 남자는 내 뻗은 손을 접게 했다.
“이거, 다 먹을 수 있겠어?”
아무렴, 내 밥그릇 용량을 모르셔서 그러시나? 안 먹어서 못 먹나? 없어서 못먹지? 그러나 전날 히쯔마부시를 두고 벌어지던 미묘한 심리를 눈치 챈 나는 하릴없이 편의점의 주먹밥을 싹쓸이하려던 마음을 접어버렸다.

고속도로에 진입하면서 나고야의 대교를 건너고 있었고 저 멀리 수족관 근처에 있는 유원지의 대관람차가 아주 느리게 돌아가며 우리에게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가서 어짜노? 안타까워하는 엄마의 심정처럼 작별인사의 손을 흔들고 있었다. 드넓게 펼쳐진 바다의 모습도 콤비니 비빔밥앞에서는 식후경일뿐이었다. 물론 나의 비빔밥도 아이들의 식탐앞에서는 남의 밥일뿐이었다. 비즈니스 호텔의 조식이후 첫 끼니인지라 허기졌을 작은 아이가 삼키듯 먹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용기 바닥을 닥닥 긁고 나서야 작은 아이는 낮잠에 빠졌고 나는 후회에 빠졌다. 조식 때 나온 오니기리가 삼삼거리며 더 먹고 가지 왜그랬어? 핀잔을 주었다. 한 조각 더 먹을까 하다 커피나 한잔 더 마셔야지 하면 욕심을 버렸던 호텔의 오니기리. EBS 세계 아틀란타스에서 방송되었던 도쿄의 3대째 내려오는 료칸의 세계정상급 요리장인의 오반자이는 아니더라도 엇비슷한 교토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하리라는 기대감으로 플라스틱 용기의 바닥 긁는 소리를멈췄다. 대략 두 시간 정도를 달라자 교토의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배고픔 탓에 어디 갈까 고심하다 교토의 부엌이라 불리는 니시키 (錦市場)는 어떤지 슬며시 운을 띄웠다.
“지금쯤 거기 작파했을걸?”

그렇다. 시간은 벌써 오후 네 시 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교토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산산히 부숴지는 순간, EBS 방송에서 봤던 빅마마님의 유바(ゆば),쯔게모노(つけもの) 탐방은 결국 방송시청으로 끝나고 말 듯한 낙담. 대신 기온(祇園)거리를 걸어보기로 했다. 걷는 동안 전세계의 다양한 관광객과 부딪힐까 피해 걸어야 했고 곳곳에서 셔터터지는 소리들과 함께 한국어도 자주 들려왔다. 우리가 근거지로 살고 있는 곳에는 한국인은 우리가족이 유일할 정도로 외국인 거주가 드문곳이라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국제정세와 역사적 문제도 있어 그로인한 트러블을 겪고 싶지 않아 주민들의 예절에서 크게 반하고 싶지않아 늘 쉬쉬, 조용히 다니느라 신경을 곤두세워 살아야했다. 나고야에서도 한국인들은 서너 가족들만 스치고 온 끝이라 교토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 자연스레 목소리가 높아지게 됐다. 물론 배고픈 으르렁도 한몫했으려나? 음료수를 사마셔도 밥은 밥대로 들어갈 자리가 있는 법이다.

십몇년 전에 홀로 이 곳에 여행왔었던 남편 덕분에 청수사(清水でら)까지 걸어가 소원을 빌었다. 물론 소원은 맛있는 거 마니 먹고 싸우지 않고 오래오래 사는 것일수밖에 없었던 것은 오늘의 첫 끼니 후 일몰시간까지 밥다운 밥을 구경 못한 탓. 나두 신 앞에서까지 밥타령 안하고 싶었다. 밥타령 할 정도로 마르지도 못 먹고 살지도 않았다. 밥타령 그만해야 할 정도로 많이 먹고 살아 두둑하게 살도 찌어놨다. 허나 박민우 작가의 문장도 있지 않은가? 고생을 못해봐서 매사 시큰둥한 사람보다 부족과 결핍을 알아 매사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이 되겠다는...굶주림을 알았으니 밥의 소중함에 반응하여 끼니의 감사함을 깨닫게 된 것.....매사 여행하면 단연 식도락 여행이 으뜸이요, 호랑이가 아닌 이상, 유명인도 아니므로 먹는 게 남는 것뿐인 아줌마. 잘 먹고 잘 사는 소원을 빌자마자 서둘러 발걸음했다. 뉘엿뉘엿 해지는 시간,아름다운 교토에서 저녁을~근사하게 먹고 싶었지만 음, 역시 유명지의 비싼 물가! 마침 시기적절한 남자의 발언.
“회사사람이 그러는데 교토의 요리집은 수억을 싸들고 와도 처음오는 사람들은 안 받아준데.”

띵......무식하면 용감하고 정보가 없으면 당당해진다. 수억도 없이 배고픈 우리들이 갑자기 초라해졌다. 그냥 도시락이나 먹을까 옥신각신 네가 결정해로 서로 반목하다가 숙소로 향하면서 해결해보자며 다시 차에 올랐다. 두 끼를 가면서 해결하자고 했지만 결국 우리는 두 끼를 건너뛸 것같은 불갈함이 닥쳐오며 굶주린 짐승의 본능적인 신경질이 나올 것 같았다. 교토까지 와서 티격태격하고 싶지 않아 두시간 반을 침묵 속에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리고 기대했다. 편의점의 주먹밥 정도는 먹을 수 있겠지? 그리고 계속 그리워했다. 아침에 든든하게 혹은 넘치게 먹어두지 않은 호텔의 주먹밥. 몇 년 전 박민우작가의 [일만시간동안의 남미]를 읽으며 낄낄대던 나는 박민우가 처절하게 외쳐대던 기아와 아사 상태를 직접체험하게 되었다. 인간이 그런 혼돈의 상태에 빠지게 되면 어디까지 바닥을 파게 되고 얼마나 타인과 외부요인을 탓하게 되는지 여행지에서 굶주려본 자들은 알 것이다. 심지어 여행의 근간과 존재의 원인까지 탓하게 된다. 괜히 왔어? 그냥 집에 있을 걸, 그러니까 내가 편의점 주먹밥 더 산다고 했지? 내 말을 들었어야지, 교토에서 왜 밥 안사주는 거야? 도착해서 두고보자. 등등

그러는 사이, 그럼에도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고 별들이 반짝이는 교토부의 미야즈(宮津)의 밤 하늘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숙소 앞이 바로 바다라는 것도 모른채 숙소로 들어가버렸다. 남편 손에는 시골의 구멍가게서 밤아홉시가 다 되서 별 것이 남지않아 선택의 여지없이 사온 햄 몇 조각과 컵라면,맥주 두 캔이 들려있었다. 모두 피곤했고 컵라면에는 손이 가지 않았으며 다음날 아침식사는 스스로 해먹어야 하는 회사콘도의 숙소였으니 꼬박 하루를 굶게 될 것은 자명했다. 우아한 휴식과 먹거리 천국은 모든 여행자의 로망 아니던가? 로망은 허망의 대체어가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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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씹는 여행기
-[제돌이의 마지막 공연]의 읽으며 흘렸던 눈물이-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서두르지 않는 여행을 주제로 했기에 여정은 즉흥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느긋하게 준비하고 자동차 좌석에 앉았다.
“어디가서 뭐 할까?”
주도면밀한 여행자들이 우릴 봤다면 참으로 한심해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느긋하게 즐기기로 하지 않았던가? “가서 상황 봐가며” 사실 이 말은 “기분 내키는대로!”의 다른 말이었다.
나고야에서 숙박하는 건 어때라고 물어보며 잠깐 검색했던 나고야 여행.
“나고야(名古屋) 수족관은 일본 최대의 수준을 자랑한다.”라는 구글 자동번역 문장이 생각났다. 아이들을 위해서 수족관으로!

코엑스, 여의도 아쿠아리움 정도쯤 되려니 짐작하고 북관으로 들어서니 예상치못한 장면이 똬악~ 거대한 고래가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이! 아이들이 넋을 놓고 보고 있을 때 다른 쪽 수족관에서는 돌고래가 헤엄헤엄. 마침 열한시에 돌고래 쇼가 예정되어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가는 쪽으로 휩쓸리듯 쫓아갔다. 다른이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켜고 사진찍을 준비를 하기에 덩달아 준비. 돌고래 점프 정도는 찍어둬야지 않겠어? 돌고래를 만만하게 여기며 쇼의 시작을 기다리던 나는, 막상 공연이 시작되고 눈물을 찔끔 흘리고야 말았다. 그건 어류의 훈련이라기보다 돌고래님과 인간의 교감 예술이라고 표현할만했다. 조련사가 돌고래 등에 올라 쏜살처럼 물 위를 가르다 조련사가 수중으로 다이빙을 하자 돌고래는 물 속으로들어가 자신의 콧등으로 조련사의 발을 지지해주는 모습은 서로를 아끼며 함께 교감하는 이들의 아름다운 모습과 흡사했다.

아이들에게 읽혀주었던 동화책이 생각났다. 김산하-[제돌이의 마지막 공연]. 프리윌리 시리즈에서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난 것은 아마 그 동화책 때문일까? 수족관에 갇힌 삶보다 바다로 돌아가 태생의 삶을 바라던 제돌이가 펼친 마지막 공연.
“공연이 끝나고 제돌이와 헤어질 시간이 되었어요. “
책 속의 문장처럼 눈물이 났다. 찔끔.
수족관에 갇혀있든,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든, 어찌 되었든 돌고래님은 조련사와 멋지게 놀고 있다. 예술의 경지라할만큼 멋진 놀음! 설렌 여행을 시작했지만 여행도 삶인지라 남들이 다 하는 보편적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비싼 나고야수족관의 입장료, 어디든 주차할 때마다 발생되는 주차비, 한국보다 더 비싼 고속도록 통행료. 매끼 돈들여 사먹어야 되는 밥값 등등.
그럼에도 여행을 감행하는 것은 뜻하지 않은 순간의 깨달음 때문이다. 그 순간의 깨달음들이 나를 살아가게 하거나 버티게 하거나 견디게 하는 철학이 되기도 하니까.

한낱 어류의 쇼였을지언정 같은 말을 쓰면서도 소통하지 못하는 종보다 다른 종이면서 언어로 소통하지 못하는 생명체 간의 교감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들이 있었을지 가늠해보게끔 한 계기였다. 더불어 어디에 있든,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즐겁게 순간을 즐겨보는 것이 어떨까? 그것이 여행을 누리는 자들의 비법이려니.
공연이 끝나자 큰 아이는 말한다. “나도 돌고래 조련사가 되고싶다.” 여행의 감동이 아이의 꿈으로 설계되는 순간. 그거면 족하다. 비롯 꿈은 변하고 다른 미래를 살게될지언정 ‘꿈꾸는 순간’을 자주 경험한다는 것은 꿈꾸지 못하는 삶보다 낫지 않을까? 오기 싫었어도, 할 수없이 왔다하여도 이왕 온김에 즐겁게 여행, 그김에 꿈까지 꾸어보는 아이들.
자의로 태어난 살게 된 삶이 아니라 하여도 이 세상에 온김에 즐겁게 삶, 이왕이면 멋지게 놀아보는 인생,그래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 내친김에 감동적으로 꿈꾸는 미래!라면 삶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여 내친김에 박물관과 전망대까지! 그러는 동안 시간은 오후 두시가 되어간다. 어젯밤 잠깐 검색한 블로그에서 나고야는 미소우동도 맛있다는데 수족관 내에서 점심을 해결하려 수족관내 음식점을 검색하니 음식맛에 대한 품평이 전반적으로 낮았다. 수족관을 나가서 끼니를 해결하기로 했다. 그게 부부의 불화가될 줄 누가 알았던가?
일요일밤의 숙박은 쿄토(京都) 이네(伊根). 여기까지 온 김에가 나고야 수족관을 들르게 했고 이왕 가는김에가 쿄토를 경유하게 했다. 나고야에서 교토까지 세시간.쿄토시내에서 이네까지 또 세 시간. 서둘러야했다. 가는 중에 나고야 우동을 먹자는 계획은 즉흥적인 여행이었기에 틀어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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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씹는 여행기
-오쿠다히데오가 먹었다는 나고야의 히츠마부시는 아니더라도!-

“아타미나 시즈오카에서 하루 숙박할까?”
“나고야쯤은 어때?”
“그냥 금요일밤에 출발해 밤새 달려볼까?”
“......”
여러 의견들을 다 물리치고 결국 아이치현의 이츠노미야(一宮)에 숙박을 하기로 했다. 왜냐구? 그곳에 값싼 토요코인호텔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이유를 찾으려 하지만 결정적 계기는 한가지면 된다. 우리는 쿄토의 북쪽에 위치해있는 이네만(伊根)까지 가야했고 치바(千葉)현에서 자동차로 11시간을 달려야 갈 수 있는 거리라 쉬엄쉬엄하기로 했었다. 치바의 야치마타(八街)에서 후지요시다(富士吉田)를 경유해서 이츠노미야까지!
남들 다 가는 뻔한데 말고? 남들은 모르는 어떤곳!을 찾지만 결국 사람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발길이 향하는 것은 사회적 본능인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이츠노미야는 너무 엉뚱했다. 남편의 항거는 단호했다. 거기에 제일 싼 토요코인 비즈니스호텔이 있었다고!!
서툰 일본어이기도 하며 검색을 지양하는 나는 남자를 따를 수밖에.
생뚱맞은 곳에 왔지만 식사만큼은 남들 다 먹는 것으로!! 게다가 명물이면 더 좋지 않을까? 넌즈시 남자의 심산을 건드려본다.
“숙소에 가면 저녁 여덟시는 될텐데, 저녁은 먹고 들어가야지 않겠어?”
사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발길닿는대로, 마음가는대로’였다. 잠깐 발대고 오려고 몇시간을 검색하느라 가족들과 한마디도 못하고, 자동차안에 앉아 수시간을 보내다 발 닿자마자 되돌아오는 헛헛한 여행은 지양하자며 인터넷 검색은 최소한만 했었다. 어쨌든 일본 전국을 샅샅이 뒤져 다닐 수 없다면 우리가 당도하게 되는 곳에서 그곳의 정취를 제대로 느껴보자며 시작된 여정이었다.

그래서 더, 이츠노미야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도요타 공장이 있다는 것과 나고야 옆이라는 것외엔. 네시간여의 장거리 주행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그나마 미니미 알프스라 불리는 장대한 산맥의 정경을 옆에두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남부쪽으로 내려올수록 산맥은 평야가 되고 지평선너머로 해는 지고 있었다. 더 어두워지기전에 저녁을 해결해야했다.
“오쿠다히데오는 [오,수다]에서 나고야의 히츠마부시가 그렇게 맛있다고 했는데 여기는 나고야 근처니까 히츠마부시정도 먹어줘야지 않을까?”
“히츠마부시(ひつまぶし)?”
“세가지 방법으로 먹는 덮밥이래. 처음엔 장어의 본맛을 느끼고 두번째는 밥,고명과 함께, 마지막에는 오차쯔게(お茶漬け)로 장어맛을 즐기는거래”
“이츠노미야에서 히츠마부시?”

결국 구글 도움을 받아야했다. 다 필요없고 너무 비싸다. 맛집도 몇 개 검색도 안될뿐더러 그닥 좋아하지 않는 요리였다. 장어하면 아산인주라고 하던데 인주가 시댁인 나는 결혼해서 십이년동안 장어는 딱 두 번 먹었다. 스테미너음식이라지만 장어가 음식이 되기전의 생물일 때 그 형상이 과연 뱀과 흡사하여 손이가지 않았던 것이다. 오쿠다히데오의 과찬을 읽지 않았다면 관심도 없었을 장어덮밥. 몇 주전 나리타 길거리 축제에서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있기에 들여다보았더니 장어구이집이었다. 음식점의 쉐프장인쯤 되는 남자 두엇이 음식점 앞에서 장어껍질을 벗겨내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장어를 꼬치에 꽂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비싸고 좋은 음식일지언정 나와는 상관없는 음식이라며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났던 기억을 애써 억누르며 허기를 채우기 위해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으로 향했다.

“무얼 먹을까?”
전 인류의 궁극의 질문이자 영원한 숙제! 무얼 먹을까? 나는 나의 기호와 별개로 오직 남편을 위해 장어덮밥을 주문했다. 즉,남자를 위해 내 인생의 세번째 장어요리를 1인분 주문. 나는 회정식을 먹을 심산이었다. 그런데 이남자, 내가 장어를 먹고싶어하는 줄 알았는지 내 앞에 히츠마부시를 밀어놓는다. 괜히 3100엔이나 하는 장어덮밥을 시켰나 내 마음이 남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남자는 정작 튀김과 절임류 몇 가지만 젓가락질할 뿐이었다. 내가 스테미너에 환장한 여자처럼 보일까 싶으니 갑자기 욱하고 뭔가가 올라왔다. 남자 입에 억지로 장어를 밀어 넣어주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시큰둥하게 받아 먹을 뿐이다. 어차피 쓸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먹어둬야하지 않겠느냐며 몇 조각 억지로 먹이는데 아이들이 더 맛있다며 입맛을 다신다. “어른먼저!” 괜히 가부장적인 엄마처럼 굴었다. 실은 나만 비싸고 영양가좋은 음식에 탐닉하는 여자로 보일 것 같아 남편 들으라고 한말이었다. 이 남자, 좀 맛있게 먹어주면 안되나? 순전히 검색이 구찮아 가장 눈에 띄었던 식당으로 들어온 것인데, 좀 더 검색을 해볼걸 그랬나?

이런저런 생각에 내 심산만 삐뚤어지고 있을 때, 많지 않았던, 구글검색에서 별을 세 개나 받았던 식당의 주인은 3인분만 시켜 1인에서 제외된 작은아이의 먹성에 놀라며 오렌지주스와 공기밥과 아이스크림을 서비스라며 연신 가져다 주고 있었다. 이 식당, 왜 이렇게 인심이 후하지? 히츠마부시맛보다는 좀체 일본에서는 찾아 보기 드문 한국식당에서와 같은 덤서비스에 더욱 놀랄뿐이었다. 심드렁했던 이 식당의 맛은 배고픔의 연속이었던 여행에서 가장 오이시한 식사가 될 줄 누가 알았던가? 과연, 시장이 최고의 반찬이라는 진리를 문장으로 만들어낸 선인들이게 경의를 표한다.

우리는 몰랐다. 이날의 식사가 일주일 여행의 처음이자 마지막 성찬이 될 줄은...... 음식하면 남도쪽 맛이 제일이라는데 일본도 그렇지 않을까싶어 대식가의 식도락여행을 고대했던 우리는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4인이 2인분 패스트음식으로 대체하고 저녁은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에서 나고야도 아닌 이곳에서 히츠마부시를 즐기고 있었다. 낼은 나고야의 미소우동을 먹고 쿄토에서는 맛집을 찾아다니며 남도음식탐방을 하며 배부르다를 외칠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식당을 나서는데 허기져서 들어서느라 몰랐던 입구 앞에는 남북정상회담을 대문짝만하게 찍어낸 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의 식사와 기사가 어쩐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남자와 나란 여자는 어느날 저렇게 두 손 맞잡고 화해해야할 날이 찾아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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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공쟝쟝 > 동족혐오, 장강명 [5년만에 신혼여행]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글과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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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씹는 여행기
- 정이현 소설의 [밤의 대관람차]대신 내인생의 첫 대관람차-

간밤에 잠을 설친 게 문제였다. 골든위크 시작 첫째날 도로정체를 예상하긴 했지만 도쿄 근교를 지나는 고속도로에서는 여행시작의 설렘따위는 집어던진지 오래 졸음과 지루함이 몰아닥쳐왔고 아이들은 아우성대기 시작했다.
‘서두르지 않는 여행, 즐기는 여행’이란 나름의 모토를 세우고 빡센 계획 자체는 없이 발길 닿는대로, 들르는 곳에서 한량놀이를 해보자던 다짐은 온데간데 없이 어서빨리, 어디든 도착해서 푹 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성급해지고 볕마저 강해서 네명이 탄 차 안은 후끈 달아올라 조금의 날선 말들에 화끈거리며 댓거리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여행 첫날부터 짜증을 낼 수 없어 수다마저 꾹꾹 참는 중에 오전 열한시즈음 푸르른 나무들이 무성한 숲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숲은 산이 되고 산들은 산맥이 되니 멀리서 대관람차와 롤로코스터가 손짓을 하고 있었다. 대자연앞에서 인간은 겸허해지니 겸허해야한다는 문장만이 내 머릿속을 강하게 헤엄치게 해야했다.

그러는 동안, 드디어 야마나시현 후지요시다(山梨県富士吉田)!하이큐랜드 입구 앞에서 대자연의 경탄보다 더 강도높은 경탄인지 공포인지 모를 탄성이 침을 꿀꺽 삼키게 했다. 기네스북에 오른 롤러코스터를 보자 간담이 서늘해졌다. 놀이공원 타령을 하던 큰 아이는 千葉의 マサ목장의 놀이기구를 시시해하더니 하이큐랜드의 어트랙션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아이들을 놀이기구에 태우고 유유자적 산책이나 하겠다는 꼼수는 산산이 무너졌다. 어떻게든 시간은 가겠지. 우리는 그저 3 종 놀이기구 탑승권을 구입했으니 이 공포도 끝이 있을 것이다!! 그 위안으로 네 살 아이의 욕구부터 채워야해서 토마스기차를 먼저 타기로 했다. 골든위크라 놀이기구 대기가 시간을 넘어설 거라 예상했지만 토마스기차빼고는 그런대로 줄이 짧았다. 물론 놀이기구의 탑승시간도 무척 빨라서 놀아볼까 할 때쯤 끝나있었다. 무엇이든 절정의 순간에 내려와야 하는 법인가?
마지막 탑승권을 남겨놓고 온 가족이 값지게 써야겠다며 고심하던 끝에 느닷없이 남편이 대관람차를 가리켰다. 고백하건데 놀이기구 자유이용권을 극구 거부했던 것은 비싼 가격도 있었지만 놀이기구를 극도로 무서워하는 마음이 더 큰 요인이었다. 수능을 끝내고 갔던 애버랜드에서도 tea cup만 타고 장미도, 튤립도 피지 않은 정원에서 꽃구경이 아닌 흩날리던 눈발 구경을 하고 돌아온 뒤, 내 인생의 놀이기구는 없으리라 운명을 점쳤던 나였는데...
그래서인지 큰 아이또한 유난히 겁이 많다. 모계 유전자 때문일리라. 하지만 절대 엄마탓은 안하고 아이가 겁쟁이라고 놀리는 엄마와 자신의 운명의 유전자에 항거하며 놀이기구를 타보고 싶다고 큰소리치는 큰아이. 그걸 알면서 한번 던져본 남편.

“샥샥과 나 사이에, 바위와 나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줄은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갈 것이고 천천히 소멸해가루것이다. 샥샥은 샥샥의 속도로, 나는 나의 속도로, 바위는 바위의 속도로.마흔번째 생일 아침, 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떠올리며 비로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정이현의 [상냥한 폭력의 시대]의 이 구절을 일상을 살며 종종 읊어댄다. 샥샥이는 어쩐지 샤샤샥, 빠른 것들이다. 흘러가는 시간, 지나치는 사람들과 너무 일찍 시든 것들. 바위는 어쩌면 느릿하고 굳걷한 것에 대해 짐작케한다. 몇백년을 살아왔지만 매해 봄 새순을 돋는 나무, 오래오래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이라든지 부모에게서 와서 내 자식에게까지 이어지는 혈액들. 그 중에서도 나는 나만의 속도로 살아간다. 어느날 소멸하게 될 것임에도 오늘은, 오늘의 나의 속도.

남편의 그냥 던져본 말에 이번엔 나도 좀 타볼까 했던 마음이 든 건 정이현의 [밤의 대관람차]소설제목 때문도 있었겠다.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건만 어느 날 문득, 일어난다. 어떤 일들이. 여타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던 대관람차라면 내 인생도 한번쯤은 타봐야하지 않을까? 십이년전 요코하마의 대관람차도 그냥 지나친 나란 사람이 왠지 인생의 중요한 관례를 치르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딸아이가 선천적 유전자와 싸워 이기길 바라는 심정과 더불어서 후들거리는 다리를 질질끓어 대관람차에 올랐다. 2주전マサ목장의 스카이워크를 타려고 올라 안전벨트를 매고나서 무서워 울며불며 “데끼나이” 외치며 네 살 아이의 기대를 저버려야했던 설욕을 딛기 위해서라도 관람차에 올라야했다.

내 인생의 첫 대관람차!!! 밤에 안타서 다행이다.
내 발 밑에 공간이 생기고 있다. 지표면으로부터 몸이 뜨고 있다. 발끝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가까이 눈쌓인 후지산이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어트랙션들이 가까이 보이고 공포의 비명들이 가깝게 느껴진다. 신경을 다른데로돌려야한다.
“후지산은 해발고도가 얼마일까?”
약 3700m, 백두산보다 높고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8000m 를 넘어서는 히말라야보다 낮다. 설산은 멋지고 후지산이 예쁘다며 열광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내겐 먼 남의 이야기일뿐이다. 가까워진 후지산을 보며 감탄을 자아내기엔 내 심장이 너무너무 작다. 어서 내 발이 지표면에 안착하길 바라면서 딸 아이에게는 반대의 핀잔을 주고 있다.
“뭐가 무섭다고 그래?”

내 발이 땅에 닿는 순간은 결국 오는구나. 발 딛고 설 땅이 있는 이지구가 고맙게 느껴졌다. 더불어 높이 떠서도 바라볼 아름다운 산을 만든 신에게도 감사하다. 이 지구와 자연을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인간이 만든 공포때문인가? 발이 땅에 닿자마자 우리는 다음 여행지를 향해 떠나야한다. 愛県(아이치현. 이츠노미야 一宮) 대략 네 시간을 고속도로에 있어야한다. 대관람차보다 더 아찔한 네 시간의 주행이 될 것이다! 어떤이들은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른다지만 이츠노미야에 가보고싶은 산이 있어서가 아니라 긴 여정의 중간지점인 숙소가 그곳에 있기에 달려간다. 후지산이여,일본 중부를 꿰뚫어 이어지면서 아름다운 절경을 보여다오! 그렇지 않으면 네 시간을 어찌 버틴단 말인가? 시간은, 오후 세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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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2018-05-11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데미안님, 후지산 전경이 정말 멋지네요. 그림같아요. 잘 보고 갑니다 :)

데미안 2018-05-11 10:57   좋아요 1 | URL
아른다운 광경을 감상하기에는 대관람차의 공포가 더 컸지만, 지나고 들춰보니 아름답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