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씹는 여행기
-[낯선땅에 홀리다], 김중혁의 [뭐라도 되겠지]

2011년 3월 11일을 잊을 수 없다. 현실에서 지옥은 어쩌면 그 말이었을까? 역사적 난제를 차치하고 이 지구상에서 인류가 겪는 참상이었기에 그랬다. 방관할 수 없는 문제였음에도 내 나라가 아니므로 내가 얼마나 무관심하게 잊고 살았는지 이 나라에 거처를 옮기고 나서야 깨달았다. 여행자의 신분이 아닌 거주자의 시선으로 장기간 숙려해야될 문제라고 자각하게 된 것은 까막눈에도 마트의 식자재 원산지표기를 해독한 날부터였다. 후쿠시마 산 오이. 이 곳에 있는동안 회피할 수 없는 문제이자 온 가족이 해결해야 할 문제였기에 방사능이라든지, 후쿠시마라든지 하는 단어들이 소비행동 내내 걸려 선택장애와 결정무력으로 이어졌다. 식재료의 원산지를 확인했고 그로인해 일본 각 현의 한자를 외우기 바빴다. 강박이 나를 옥죄고 가족들의 자유로운 음식섭취를 제한하자 일상의 중요한 욕구가 죄절되어갔다. 그것은 분명 한계가 있었고 개인이 극복해낼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개인으로서 탈출구는 이 나라를 떠나거나 그것으로부터 가장 멀리 도망치는 것외엔 달리 묘안이 없었다.
“남쪽으로 튀어!”

저들은 어떻게 이 상황을 버티고 있을까 궁금하여 오사카로부터 파견되어온 현지인들에게 넌즈시 물었더니 오사카는 괜찮다는 말을 할 뿐이었다. 물론 개인이 답을 낼 수 없는 문제를 들쑤셔 놓은 것같아 민밍한 마음에 식당근처 도로위를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지진난 듯 흔들리는 목조건물 이층에서 모듬회를 비롯한 다양한 일본요리를 실컷먹고 마셨다. 건물이 흔들릴 때마다 “揺れる!흔들린다. 怖くない무섭지않아.”
흔들리는 일이 외부요인이고 그걸 개인들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개인은 내부에서 낙관의 위안을 찾으려 한다. 분명 그것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아닌 전혀 엉뚱한 한마디 말이라도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위안. 그 위안을 좀 더 매력적이게 할 수 있는 것은 위트! 농담처럼 우리는 계속 유레루, 유레루, 유레루는 무섭지 않아!! 껄껄껄. 오사카는 괜찮아, 무섭지 않아! 나 또한 나는 내부에서 수만가지 괜찮은 이유들을 찾아야할 것이다. 그러나 여행 며칠 후 괜찮은 위안을 찾았다.

남쪽으로의 여행은 그런 이유로 야심찼건만 여행 둘째날부터 시작된 배고픔은 식도락에 대한 로망을 불사르고 원망의 그을음을 남겼다. 하지만 이제는 걱정따위 붙들어매고 먹는 일에 괜찮아져야할 이유 하나. 여행 내내 우리가 보아온 자연. 이곳에 우리가 있고 둘러보면 여러사람들이 여행을 즐기고 있고 여기는 아름답고 또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나무들이 2011년 이후로도 계속하여 새순을 달고 있고 어여쁜 꽃들이 저의 모습 그대로 피어있고 2011년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이 여전히 까르륵 웃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떠나지 못하고 백년이든 이백년이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밭을 갈고 모를 심고 배를 띄워 고기를 잡으며 오늘을 살고있다. 나만 유독 벌벌거리며 유난을 떠느라 지금, 여기를 놓치고 있구나.
이럴때는 어른들이 대대로 해 온 말이 진리라 믿어본다.
“야. 그냥 먹어. 그런 거 다 신경쓰느라 스트레스 받으면 그게 더 나쁘다.”

도야마(富山)로 향한다. 후쿠이(福井)를 지나며 인적드문 부두에 닿아 마트에서 사온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생각한다.
“여행을 떠나서도 내리는 결론은 늘 똑같다. 그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다 똑같은데, 왜 나는 어쩌자고 여기까지 날이와서 이 똑같은 걸 구경하고 똑같은 결론을 내리는 걸까. 문제는, 다음에도 똑같은 유혹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래, 이번엔 뭔가 다를지 몰라.”김중혁-[낯선땅에 홀리다]
마을을 지나면 바다가 보이고 바다를 지나면 산이 나타난다. 익숙한 모습인데도 자세히 보려고 눈을 감지 않는다. 멀리서보면 비슷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다르다. 뭉뚱그리면 여행은 대개 거기서 거기지만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으면 특별한 여행이 되는 것이다. 거시적인 안목하에서 미시적인 아름다움을 찾는 일, 그런 태도가 삶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많은 것을 모르고서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좀 많은 것을 안다면 더 넓게 볼 수 있고 더 깊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떠나는 여행.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도로를 두어시간쯤 달렸을 때 가나자와(金沢) 이정표가 보인다. 인터넷검색에서 이름만 슬쩍보았던 가나자와. 급하게 이 곳을 검색해본다. 유네스코가 창설한 창조도시, 가나자와성, 21C미술관... 제 아무리 둘러볼 곳이 많다 하여도 비오는 날의 감성이 이 도시를 거쳐가도 좋겠다며 이끈다. 뭐라도 되겠지! 김중혁 작가의 책제목이다. 제목처럼 책 전체를 주관하는 것은 그의 자유로운 기질들.
“세상은 대략5억만개(너무적나?) 이상의 요소로 이뤄져 있으며 우리는 아주 작은 인간일뿐이다. 우리는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은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실패는 아주 작은 실패일 뿐이다. 스무살 때 그걸 알았더라면 좀 더 많은 실패를 해보았을 것이다. “

스무살보다 곱절은 늦었지만 그래도 스무살보다 더 많은 실패를 한다. 그럼에도 불행해지지 않는다. 너무나도 하찮은 미물이라 나의 실패는 작디작다. 실패를 두려워하니 않는 자라고 박박 우기고 싶지만 늙어서의 실패 가능성은 공포에 가깝다.
“내가 생각하기에 ‘재능’이란 (천재가 아닌 다음엔)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에 대한 배려없이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는 법을 배운 다음에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 버티다보면 재능도 생기고,뭐라도 되겠지.”김중혁 작가의 지나친 낙관주의에 묻어가본다. 여행에서의 실패는 삶의 경험이 되는 법! 뭐라도 건지겠지.이런 즉흥으로 가나자와에서 스탑.

가보고싶은 곳은 많고 물질과 시간은 한정적이니 기회비용을 생각하여 최선의 선택을 하고싶다. 결국 인생은 어떤 것을 포기하는가의 문제라던 김중혁작가의 말대로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으며 21C미술관에서 하차했다. 여행에서 실패의 확률을 낮추기 위해 많은 걸 준비할 필요없다. 오로지 단 하나, 여행자의 마인드!!개똥밭에 있어도 이곳이 최고다! 여길 마음만 단단히 챙긴다. 그런 여행이라면 대개는 성공적이다. 좋았다는 유의미한 기억이 살아가면서 문득문득 되새겨볼 수 있는 즐거운 추억이 되어줄테니까. 최악의 여행은 내가 있는 곳을 불평하며 후회와 원망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 좋은 곳에 왔고 이런 삶또한 좋아라! 삶을 좋아라 한 이들은 21C미술관에 더 많았다. 젊은 작가들의 아이디어 상품과 작품들. 그에 더해서 사람을 사랑한 작가, 에구치 전시회. 그외 가나자와의 많은 관광스폿은 포기하기로한다. 포기가 실패는 아니란 걸. 여행에서마저 포기는 지는 것이란 관념에 짓눌려 아득바득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다. 여행지에서의 과감한 포기는 다음의 기회를 꿈꾸는 아쉬움을 남겨주나니.

미술관 관람의 호사를 누리니 오후 다섯시가 다되어간다. 서둘러야한다. 꼭 가보고 싶은 곳에 해 지기전에 당도하고싶다. 인생샷을 찍어야한다. 스마트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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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씹는 여행기
-김영하[내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그리고 여행자의 무지-

“도시에 대한 무지, 그것이야말로 여행자가 가진 특권이다. 그것을 깨달은 후로는 나는 어느 도시에 가든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앎에 ‘갇혀’있다. 이런 깨달음을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도 적용해보면 어떨까? 갇힌 앎을 버리고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김영하-[여행자의 도쿄]

김영하 작가의 이 문단을 나는 이렇게 변형해본다. 어느 것에 대한 무지가 그 어느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형성해준다는 걸. 여행지에 대한 무지는 불안함과 두려움을 증폭시키기도 하지만 낯선 곳에 대한 자신만의 느낌과 기억을 더 강하게 할 수 있다는 말로.

남편은 약간은 자부심에 넘쳐 말했다.
“아마, 아마노하시다테에 온 한국인은 우리가 처음아닐까?”
그건 실로 무지였다. 동쪽의 시작점인 치온지(智恩寺) 절을 지나 3.5km를 달려 아나노하시다테의 북쪽인 카사마츠(笠松)공원에서 케이블 카를 타는 동안 고국의 여행자들을 서너팀 목격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이십대 정도의 한국 오빠들은, 모국어로 시끄럽게 떠들어며 모래사장에서 쉬고 있는 우리 아이들 뒤로 푸르게 펼쳐진 바다와 산의 모습을 찍기도 했었다. 오빠들의 모국어 소리를 듣고 열두살 아이가 하는 말.
“저 오빠들 쿄토에서도 봤었는데.”
“그럴리가!?”
“진짜야. 저 오빠 둘이 교토에서도 연한갈색 바지에 검정티 입은 모습을 청수사에서 내려오면서 본 거 기억한다고!”

연한 갈색 면바지에 검정 반팔 티를 입은 남자가 어디 한 명뿐이겠냐만은 교토 기온마치거리를 걷기 시작하면서 스치게 되는 한국사름들이 몇팀인지 세어보겠다며 경치를 감상하고 문문을 익히기보다는 한국사람 숫자 세기에 바빴던 아이는 13번째까지 한국 관광을 세기에 그만하고 다시 못 올 이 곳의 정취를 좀 누려보라며 다그쳣던 엊그제였으니 어느정도는 사실가능성이 농후했다. 음, 어떤 이의 블로그 혹은 어떤이의 기억 속에 ‘낯선 여행지서 두 번이나 지나친 사람들’이란 문장은 때로 낭만적인 필연성을 부여하며 이곳에 발길했던 동족을 가벼이 여기지 않게 한다.
심지어 일본인이 쓴 카사마츠(笠松) 한국어안내문에는 서로 사랑을 했던 한쌍의 신들에 관한 전설로부터 사랑의 파워를 이끌어내줄 파워엽서를 띄워보는 것이 어떻겠냐 적혀있으니 아마노하시다테에 발을 디뎠다 간 한국 사람들은 많았을거란 건 기정사실.

처음 와 본 곳에 최초의 한국 사람은 되지 못했어도 내 생애 최초로 싱글 리프트 체어를 탔다는 기록은 남길 수 있게되었다. 매번 느닷없이, 혹은 준비없이 생의 첫경험들을 하게 된다. 최초라는 설렘은 살아가면서 복기되고 복기될 때마다 의미를 얻게되어 ‘첫’이라는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대관람차도 그랬고 싱글리프트체어도 그랬다. 막상 타고나니 겁이났지만 멀리 소나무가 5000그루인가 8000그루인가가 심어있다고 논쟁이 되며 용의 모습을 닮았다는 해변길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인간사의 오만가지 감정들은 미물의 덧없이 지나갈 허물에 불과할 뿐이란 달관의 경지에 오른다.

“먹고살려면 뭘 하는 게 좋을까?라고 생각하는 게 우리라면 ‘내가 좋아하는 걸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고 생각하는 게 도쿄의 젊은이들 같다.”라던 김영하작가의 문장을 떠올린다. 늘 먹고 사는 일이 걱정이다. 먹고 살기 위해 벌어야 하고 모으는 것도 없이 쓰기 바쁜 일상의 되풀이. 떠나와서도 마찬가지이다. 남들도 다 하고 있을 문제들로 해방이 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고민들을 지연시키고 있을 뿐. 고민의 시기가 잠시 지연된다고해서 내 인생의 경주에서 완전히 뒤쳐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차피 삶이라는 장거리 주행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누구를 이기기 위해, 혹은 누구에게 지지 않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 것도 아니다.

잠시 먹고 살기 위해 버는 일 대신 내가 좋아하는 걸 생각해보려한다. 좋아하는 것을 알아내야 계속할 방법을 생각할 수 있으니까. 어쩌면 이 말은 여행자에게도 상통한다. 더 잘 먹고 살려면 뭘 하는게 나을지를 고민하기 위해 좋아하는 걸 계속하며 강구해보는 것은 어떨지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여행이지 않을까?
그러니 먹고 사는 문제는 결국 내가 더 좋아하는 것을 내일도, 계속하면서 생각해보기로 한다.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이 낯선 곳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번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여행지를 구석구석 자세히 느껴보기 위해 쿄탄고반도(京丹後半島)를 달렸다. 반도는 사랑이다. 한반도도 그렇고 태안반도도 그렇고 쿄탄도반도도 그렇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반도와 나와의 긴밀한 관계를 되새기다 보면 그 답을 얻을 수 있을까?

김영하 작가의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의 한 구절을 생각해낸다.

“맞아.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거야.”
“가이드북 보니까 이탈리아에 이런 속담이 있대. 사랑은 무엇이나 가능하게 한다. 돈은 모든 것을 이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죽음이 모든 것을 끝장낸다.”
“갑자기 뜬금없이 웬 속담?”
아내가 짐짓 딴지를 걸어왔다.
“그러니까 여행을 해야 된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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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씹는 여행기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 오직 여행할 권리만이-

“누구나 한번쯤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말해야만 할 때가 올 것이다. 요령은 간단하다. 지금은 호시절이고 모두 영웅호걸 절세가인이며 우리는 꽃보다 아름답게 만나게 됐다. 의심하지 말자”라며 [지지않는다는 말]을 했던 김연수 작가.

그의 여러 문장들이 미야즈( 宮津)의 하늘 위에 둥둥 떠다니는 늦은 오후. 리조트 내의 노천수영장을 즐기기로 했다. 고백하건데 나는 물에 대한 공포가 있다. 열 한살까지 집 앞 바다에서 개헤엄을 친 기억은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물은 공포의 대상이 되어 나의 수영에 대한 포부를 매번 억누르고 있었다. 두려움이 있음에도 수영에 도전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 두려움에 맞서기 위함일 것이었다. 일본에 와서 정기권을 발급받아 수영장을 다니고 있지만 독학의 한계로 인해 배영을 하려면 보드없이는 불가능했다.

인생이 우연의 연속이라는 말은 나의 경우도 그렇다. 아니라면
생존의 문제이기에 본능이 먼저 알아차리는 것인가? 그게 우연이든 본능적이든 수심1.1M 풀에서 튜브없이 누워 떴다. 입수 전에 물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일까? 내 몸은 수면에서 유유히 흘러다녔다. 두려울 것이 없는 물이 되는 순간, 접영도 가능할 것 같아 맹연습을 시도했다. 내게는 보이지 않는 내 접영 자세는 그저 환상적일 거라는 추측뿐. 폼이야 어떻든 튜브없이 뜨는 배영과 그 자신감으로 한 단계 더 업스레드 되고픈 의욕에 접영연습까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물론 다른 문제는 있다. 과연, 수심1.6M의 수영장에서도 배영을 할 수 있게 될 것인가? 자주 다니던 한국의 수영장 수심은 여기보다 깊었다. 그 고민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한다. 어쨌든 나는 여기에 있고 배영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아, 한가지 더 있구나! 어떤 수영자세든 호흡은 아직 불안정하다. 이건 아마도 호흡시 입을 벌리는 순간 수영장 물을 다 마시게 될 것같은 불안함때문일 것이다. 이 불안함도 뜻하지 않은, 어느날 갑자기 극복되는 우연이 찾아오길 바랄 뿐이다.

자기의 한계를 극복한 이들의 눈에 세상은 아름다워 보이는 걸까? 온갖 저녁의 빛을 머금고 있는 수평선은 바다로 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다. 이 곳에 긴 소나무 모래밭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일단, 걷기로 했다. 발걸음을 맞춰 걷는다. 오랜만에 내 발걸음이 느려진다. 누가 재촉하지 않았는데 일상은 우리를 서두르게 했다. 서두르는데도 그 서두룸이 나를 혼자 걷게 했다. 혼자서 걷고 있는 불안함에 더 조급해지게 됐고 그 조급함이 내 발걸음을 서툴게 했으니 종종 내 발에 걸려 내가 넘어졌다. 넘어지기는 누구나 한다. 넘어지고 무너졌을 때 다시 일어서 씩씩하게 걷는 사람은 드물다. 상황을 탓하고 나를 원망하다 삶을 부정한다. 그렇게 홀로 남아 외로워지기를 몇 번. 넘어졌다는 사실에 집착하기 보다 다시 일어나는 방법에 몰두하기로 했다. 일상을 지연시키고 낯선 곳에서 잠깐의 터전을 잡기로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급할 때는 잠시 멈춰서 호흡을 고른다. 넘어졌을 때는 털고 일어나 다시, 걷는다.

옆에 있는 이들과 속도를 같이 하여 느긋하게 걷는 중에 아마노하시다테(天橋,) 하늘로 연결되는 통로라 불릴만큼 일본의 3대 절경이라든지 하는 다리에 관한 안내문은 읽지 못했다. 다른 나라 문자 해독에 까막눈이라 하여도 내 눈 앞에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는지는 볼 수 있으니 그저 남아있는 빛에도 빛나는 소나무숲과 석양에 물들어 더욱 깊어지는 바다빛에 경탄을 아끼지 않는다. 3.6Km의 소나무 숲길을 더 앞에 남겨두고 돌아선다. 이른 아침부터 냉동박스에 갇혀있는 오징어들을 시식하고 싶다는 본능이 꿈틀대고 있었다. 본능의 해결 후 이어서 여행을 하기로한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말은 내게 되려 자기 자신이 되고 싶다는 말처럼 들린다. 한번이라도 그런 존재가 될 수있다면 내 인생도 완전히 바뀌어버릴 것이다.”-김연수, [여행할 권리]
살면서 다른 삶과 다른 사람을 꿈꿔보지 않은 이가 누구던가? 내가 아닌 타인을 상상하고 이 삶이 아닌 다른 삶을 가정해 보면서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찾아 발길하는 여행. 다른 것을 꿈꾼 여행의 결말은 매번 원래의 내 자리로 돌아 오는 일. 그 여행에서 우리는 좀 더 성숙하고, 더욱더 짙어진 내 모습을 얻게 된다. 되려 더 자기다워진 자신의 모습을 하고 도착하는 것이 여행. 나는 오늘도 더 나다운 내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우리에겐 여행할 권리만을 말했던 김연수 작가의 말이 적어도 오늘은 적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내일도 아마노하시다테(天橋)를 여행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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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씹는 여행기
-정혜윤[사생활의 천재들]처럼 맨손어업의 고수들-

“자기 고통이나 행복, 배신, 서글픔을 확대하고 그곳이 주저앉긴 쉬워도 바로 그곳에서 출발해서 자신을 확장시켜나가기는 너무나 어려워, 고통을 통한 확장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 축소되는 경우가 더 많을거야.” 정혜윤 작가의 [사생활의 천재들] 문장이다. 카모메 5호에서 카모메에게 새우깡을 던져주는 횟수보다 저들 입에 넣기 바쁘게 먹어삼키던 아이들은 긴 공복에 신경질을 부렸고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티격태격하고 있으니 좁은 차안에서 나또한 애들에게 화딱거리고 있었다. 그 모든 짜증은 확대되었고 가족은 공복으로 인해 대자연의 경관에 겸허를 다짐하던 좀 전의 모습은 새까맣게 잊고 그저 인생사에 아웅다웅 복닥거리는 축소된 인간으로 전락하고야 말았다.

“일단 눈에 가장 먼저 띄이는 식당으로 들어가자.”
그러는 사이 남자는 언덕을 오르고 있었고 민가와는 멀어지고 있었다.
“민가와 관광객이 있는 곳으로 가야 식당이 있지 않을까.”
결국 차를 돌려 해안가 마을로 들어서는 초입에 お食事処가 보였다. 그러나 주차를 하려던 남자 왈.
“다른데로 가볼까?”
머뭇거림에는 다 이유가 있는 양반이다. 겸양을 가장하여 자신의 불호를 호로 바꾸려는 습관, 본인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관용을 위장하여 상대방에게 자신이 선호하는 메뉴를 종용하는 남자. 돌아서야했던 식당은 어류 음식점이었으니 아침부터 회를 먹고 싶지 않았다고 한참이 지난 후 실토한 남편. 그곳에서 발길을 돌리자 식당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바엔 차라리 구멍가게 컵라면이라도 먹자며 나는 유람선 선착장 가게에 들어갔지만 컵라면 세 개를 다 먹을 수 있겠냐며 남편 왈왈. 매사 반기를 들어보이는 저이의 의도가 의심스러웠지만 그나마 컵라면도 우동 하나, 소바 두 개. 선택의 여지없이 뜨거운 물을 받아 선착장의 돌의자에 앉아 우동을 먹으려는 순간.,아이들마저 소바는 싫다고 우동 먹겠다며 나의 우동을 뺏기 위해 쟁투를 벌이는데..... 차마 더는 그렇게 앉아, 다들 먹기 싫어하는 소바를 먹을 수 없어 차로 돌아와 앉았다. 첫 젓가락질도 못하고 엉망이 된 기분에 컵라면은 음식쓰레기가 되어 바려졌다.

아직 덜배고픈 것이다. 넷이서 아무 말도 없이 숙소로 돌아왔다. 엄마, 아빠의 심리전에 아이들은 풀이 죽어 있었다. 오전의 그토록 아름답던 바닷마을은 순식간에 폭파되고 컵라면 메뉴도 별로 없는 심각한 오지가 되어 있었으며 여행의 신념 어쩌던 나는 별반 다르지 않은 신경질적인 인간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본인이 선호하지 않는 오징어를 새벽댓바람부터 사서 회로 먹겠다는 내 식사메뉴가 별루였단거야? 심사가 꼬이니 과거마저 부정하고 있다. 너무 나갔다. 결국 어디에, 어떻게 있든 내 마음의 방향이 중요하다. 한갓 밥으로 이러는 내가 싫지만 아이들도 징징대면 나는 허물어지고야 만다. 잘 먹지 못해도 잘 놀아야 한다.

마음의 방향을 바꾸려 바닷가를 걸었다. 아이둘이 뒤따라왔다. 엄마가 폭발할까 조심조심 간격을 두고 남매가 손잡고 따라오는 장면을 보고는 더욱 그랬다. 넓게 펼쳐지지 않은 자갈밭에는 고운 모래밭이 있었다. 아이들과 모래놀이도 하고 자갈로 그림도 그리며 놀았다. 밥 따위 몇 끼 좀 굶으면 어때? 아이들과 신나게 놀 수 있는 걸. 마음이 추스려지자 바닷물에 발이라도 담글까 하는데 별안간 혜안의 순간. 바닷물에 잠겨 작은 파도들이 찰랑대는 바위표면에 담치가 보였다. 혹시나 싶어 맨손으로 따보니 까만 껍질을 오므리는 담치들.담치들 옆에는 대수룩 고동도 있다. 어릴 적 서해안 앞바다에서 흔해빠지도록 나서 삶아 빼어 된장찌개 끓이거나 간장에 졸여 일년내내 반찬이 된 대수룩. 그나마 태안반도에서도 요즘은 채취량이 현저하게 줄어든 대수룩.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담치와 고동을 보여주려 아이들을 불러모으니 저희들도 잡겠다며 바닷물에 발을 담근다. 쿄토바다까지 왔으면 맨손어업 정도는 즐겨줘야 레포츠와 휴식이 콜라보된 퓨전 트래블이 되지 않겠냐며 남들 다 하는 뻔한 거 말고 남들은 못해 본 어려운 것 해보라고 아이들에게 입수를 허하니 신발이며 옷이며 바닷물에 젖어 으슬으슬할텐데도 신기하게 맨손재취를 즐긴다. 조개껍질에 긁혀 손가락에 상처가 나 피가 흘러나와도 신난 아이들. 정글탐험, 오지체험만큼 다이내믹한 레포츠는 아닐진데 저토록 담치와 대수룩 재취에 열을 올리는 것은 오직 ‘먹을 수 있는 것’이란 엄마의 확언때문만은 아니였겠지? 기승전 먹을 것! 담치는 먹을 수 있다. 대수룩도 먹는 것이다. 오늘 저녁에는 먹을 수 있다. 는 생존욕구! 하늘을 뚫을 것같은 아이들의 기세에도 오후 두 시를 넘은 하늘은 흐려지고 있었다.

숙소 앞의 신선어류 식당에서 갓 식사를 마치고 나온 현지인 가족 두어팀이 한국말로 큰소리 치며 바닷물에서 첨벙대는 우리들이 궁금한지 어슬렁거리는 척 구경하고 있었다. 당신들이 알아듣지 못한 한국말은 이것이었다.
“엄마, 이거 먹을 수 있지?”
“그럼, 대수룩이 얼마나 맛있는데!”
“우와, 많이많이 잡아야지.”
놀이였으면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생존이 되는 순간 가열차질 수 밖에 없다. 먹고 살아야하는 문제가 될 때 대개의 인간은 즐기는 태도를 잃게 된다. 놀이로 시작해 생존으로 귀결하고 있는 아이들은 타국에서의 맨손재취어업을 가열차게 즐기는 고수라고나 할까?

귀기울여 듣고 마음에 담아 살아가면서 되새기고픈 문장들이 많아서 밑줄을 숱하게 그으며 읽었던 정혜윤 작가의 [사생활의 천재들]들을 곱씹어본다.
-사생활이란 카프카의 말을 다시 빌리자면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일상,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인생을 말한다. 이들은 그런 사생활에서 천재다. 사생활을 보여주는 데서 천재가 아니라 사생활을 살아내는 데서 천재들이다. 그들은 진부하고 시시하지않게 살려고 애쓰는 데서 천재다. 그들은 자기 삶에 던져진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으로 존재한다. 그들은 자기 삶의 문제에 직면하여 그것을 푸는데, 그것에서 보편성을 보는 것에 있어 천재적이다. 그들은 삶의 태도에서 천재다.-

본인들이 당면해있는 문제를 알고 있고 그에따른 노동을 놀이로 승화할 줄 알며 그것을 즐기면서 더불어 배고픔인 원초적 욕구의 해결과 고차원적으로는 공동체의 화합을 도모하고 있으니 분명 천재가 될 소지가 다분한 사생활의 고수들. 아이들의 일상은 아이들의 유일한 인생이므로 그들의 인생에 있어 다분히 천재적인 아이들로 인해 여행은, 그리고 일상은 애쓰는 인생이 되어야한다. 애를 쓰다보면 노력이 되고 노력은 우리들을 삶의 즐기며 살아가는 이로 변모시킬 터이니 이 아니 즐거울소냐!
하늘이 흐려지자 바닷물도 차가워지고 손수건에도 아이들의 놀이의 결과물이 가득한 어획량을 보이고 있으니 슬슬 숙소로 가서 가스불을 지피고 싶어졌다. 시간은 오후 세 시가 훌쩍 넘었고 숙소에 홀로 있을 남자의 근황이 궁금해지기듀 하였다. 이만하면 됐어. 우리들의 유일한 여행.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인생. 사생활의 고수 두 명을 앞세워 씩씩하게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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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씹는 여행기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처럼 이네 방랑-

이틀간의 여행은 사실 긴 장거리 여행의 주막격즈음 되었다. 여행을 계획하며 도착점으로 삼았던 곳은 단 두 곳. 이유는 단순했다. 남편 회사 콘도를 상당히 저렴하게 이용할수 있는 것. 숙박일정 또한 콘도 예약이 비어있을 경우에 한했기에 첫번째 목적지는 일요일부터 사흘간의 쿄토부의 미야즈(宮津),목요일부터 이틀간의 군마현의 구싸스(草津), 서두르지 않기로 했으니 빼곡한 일정도 없고 느긋하기로 했으니 뭔가를 얻어내야 한다는 압박도 없었다. 대비되지 않은 즉흥은 감상을 깊게 하지만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정유정 작가의 [히말라야 환상방항]이 멋진이유이기도 하다. 대책있는 방랑은 환상적인 여행이지만 충동적인 여행은 현실적 방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우린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야했지만 여행에서마저 대안을 세우느라 지치고 싶지 않았다. 정유정작가의 문장을 떠올린다.
“인생과 싸우는 대신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난 여행준비로 곯머리를 앓는대신 여행을 즐기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 목소리 높인다. 여기가 히말라야 오지도 아니니 뭔 큰일이 나겠어? 여행은 환상방황으로 일단 첫발을 내딛기만 하면된다.

하지만 우리에겐 내일이 있었다. 일찍 일어나 마트에 가 신선한 식재료로 따끈한 아침식사를 즐길 내일. 아침 일곱시즈음 정신이 났다. 한쪽 벽면을 채운 유리창문으로 볕이 환하게 쏟아져서라기보다 아마 아침밥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눈을 뜨니 그야말로 눈 앞에는 온통 잔잔한 바다.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이토록 멋진 곳을 아무 준비도 못하고 내쳐 달려왔다니 남자에게도 바다에게도 교토에게도 살짝 미안했지만 뜻밖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교토부 바다. 해변길을 달리며 아침식사를 생각하기로 했다. 여행 셋째날까지 이런 식이다. 일단 가서 생각해보자! 모심기로 한창인 논 옆, 바로 바다가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그래, 이런 풍경이 펼쳐있다면 지금은 그저 감상에 빠지면 된다. 생계 대비는 그 다음 문제여도 된다. 라며 바닷가를 달리면서 나는 연신 감탄과 함께 “차 세워! 인생샷 건져야돼.” 주행중인 차를 갑자기 멈춘 것만도 대여섯번. 교토에 이런 멋진 바다가 있다는 것은 생애 처음. 좋네,좋아를 연신 불러대니 못 먹어도 고고!

좋네,좋아는 긍정의 에너지가 된 것일까? 달리다보니 한국의 어판장 비슷한 곳을 목격했다. 나는 또.대한의 모 항공사 갑질은 저리가라할 “차 세워”
역시나 아침 수산 시장이 작파하는 중이였다. 도매로 유통될 생선들이 분류되고 늦게 들어온 어선의 생선과 떨이로 남겨져 팔딱 거리는 참치나 오징어들. 인터넷 판매문구처럼 “ 이건 꼭 사야돼”
눈을 희번들거리며 군침을 흘리는 나의 기운과는 영 딴판인 갑오징어 두 마리를 골라 담는데 오징어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오징어 요리를 선호하지 않는 남편이 그간 굷게 된 게 저의 탓이라서 사죄하는 양 기운이 엄청 세어 보이는 다리 굵기가 엄지손가락만한 오징어도 한 마리 더 담아 계산했다. 3500엔이면 이만한 해산물치고저렴한 값이라며 입맛을 다시면 고고씽. 내가 좋아하는 것만 사서 먹나 살짝 눈치를 살폈지만 아이들도 좋아하니까 저녁에는 푸짐한 식사를 할 수 있겠다며 기승전 아침밥은 뭐 먹지?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바닷가의 풍경을 감상했다.

그 때 멀리 해안선에 자리잡은 이네후나야(伊根の舟屋)! 미야즈시에 대한 정보는 없었지만 이네에 대해서는 살짝 검색을 해두었었다. 알면 보이나니, 검색을 하고 멋진 품평을 읽었으니 단번에 알아본 이네의 풍경. 그래서 다들 최고의 여행지를 찾고 실패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맛집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이겠지. 생애 한번의 여행이라면 당연히 그래야할 것이다. 철저하게 알아보고 단단히 준비하여 실패와 후회의 가능성을 최대한 낮추기! 해서 검색의 방법을 쓰다보면 나란 인간은 넘쳐나는 정보들과 추천에 선택장애를 겪게 된다. 그리고 싸잡아 매도한다. 다 돈 들여야 누릴 수 있는 선택지들뿐이야. 그 과정이 길어지면 초반의 의욕과 의지는 사그라들고 막가파 선택으로 마무리하기를 여러번. 그 과정에 소요된 인터넷 검색시간이 아깝다. 그래서 차선으로 마련 된 ‘ 어딜가든 여유롭게, 무얼 선택하든 즐겁게’ 여행은 실패와 후회의 가능성을 낮추고 최고의 결정으로 행복함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에 있든, 어떻게 있든 잘 있기 위해 애썼을 때 더 고생의 의미가 더해져 더 값져지는 법이라며 나름 개취저격(개인취향저격) 여행론을 펼쳤다. 그러기까지 주로 내 인생의 여행 동반자가 되어야했던 남자와 수도없이 티격태격해야했지만 늦게나마 그 신조에 동의를 해준 동반자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번 여행을 더없이 좋아라, 좋아라 해야한다.

남들이 못 가본 데를 가서도 아니고 그저 우리가 같이 있어서 좋아, 남들이 부러워할만해서도 아니고 내가 느끼기에 이토록 아름다워 좋아, 좋아라 말할 수 있는 이곳에, 지금 있을 수 있어 좋아. 그러니 어떻든 모두 좋을 수 밖에. 좋다라고 각인이 된 여행이야말로 여행의 참맛. 물론 여행이 아니어도 좋아. 어디라도 좋은 곳이 되려면 내가 있는 곳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내 삶의 의미가 되듯. 좋아라 노래를 흥얼거리며 2005년 중요 전통보존구역으로 지정되어 현재 200채가 선박주차장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선실을 가진 후네야마을에 가닿기 전에 유람선과 선착장이 먼저 나타났다. 작은 아이덕분에 여러가지 탈 것들에 흥미를 가지게 된 우리 식구는 결국 카모메 5호에 올라탔다. 차 트렁크에는 좀 전에 산 오징어가 팔딱거리고 있을테고 아침도 거르고 시간은 오전 열한시가 가까워지고 있는데 예의 새우깡 한봉지를 사 들고서. 나로 말할 것같으면 내 입에 넣기 바쁜 과자를 갈매기에게 신나게 집어던져 줄 관용은 없다. 여직 살아오면서 갈매기나 비둘기에게 나의 먹을것을 먹이로 내어준 적이 없다. 진짜 내가 먹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배고픈 딸과 아이들. 남들은 열심히 갈매기와 갈매기를 잡으러 온 독수리에게 꽥꽥 소리를 질러대며 새우깡을 던져주는 쇼 시작전부터 지들 입에 새우깡을 털어넣었다. 심지어 한봉자 다 먹고 또 한봉지를 사들고 먹어댄다. 갈매기들이 얻어먹는 새우깡이 부러울 따름 입맛만 다시면서 이네후나야를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내 인생. 여기는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지 모른다. 여행이 아닌 그 어디에 내가 있다 하여도 오늘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은 늘, 생애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처음이라 최대로 설레고 마지막이라 최고로 소중하다. 하여 찰칵찰칵. 앞에서도 뒤에서도, 옆에서도 찰칵찰칵. 여기라서 좋고 오늘이라 좋고 어딜 보아도 좋고 어떻게 보아도 좋다. 유람시간 25분은 쏜살이다. 카모메 5호에서 내려 우린 또 그런다.
“ 이제 밥 먹어야지?”
“가다보면 밥집 나오겠지,”
식당은 두어군데 있었다. 주차장이 없었다. 현금도 없었다.(일본의 시골은 거의 대개가 현금사용) 현금인출기도 보이지 않았다. 또 무작정 가보기로 한다. 그러다보니 이네후나야 마을 진입. 바다 위에 지은 집이라지만 물결이 잔잔하여 집들도 모두 조용하다. 대문 앞에 나와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 두어분을 제외하곤 마을에서는 큰소리가 나지 않았다. 되려 철없는 우리 애들만 꽥꽥. 마을을 소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옛생활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살아내는 일은 여러가지 생각해 볼 주제들이 있다. 그들이 살아온 오랜 시간 속 이야기들, 말해지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나는 가장 궁금하다. 집집마다 어떤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것 같고 또 이야기들을 섣불리 꺼내 달라고 재촉하고 싶지 않다. 그저 걸으면서 느껴본다. 분위기를 짐작하는 일 외엔 쉽게 평하지 않는 것만이 외지인의 예의이다. 그래서 옛모습을 간직한 거리를 걸어보려하는 것이다. 사실 전 날의 쿄토는 오랜 이야기의 정서를 만끽하기에는 외지인들의 엇갈리는 발들을 피하기에 분주했었다. 그러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은 외지인인 나의 발자국이 민망할정도로 조용했고 또 외부의 것이 손타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곳에서는 뒷걸음치는 고양이 발자국처럼 떠나와야 할 것 같아서 머뭇머뭇 차의 머리를 돌렸다. 이쯤되면 또 당장의 끼니를 자각하게된다. 정오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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