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에서 살아남기
-2018.09.04~2018.09.05.구시로-
비가 내리는 날의 카누 체험은 여행의 더없는 경험이었지만 컨디션은 악화되는 듯했다. 시라베츠의 캠핑장 예약을 취소하고 숙박업소를 검색하여 전화예약을 시도하기를 몇차례. 차 안에서 아이들은 지쳐가고 구글과 야후 검색에서 노출되는 숙박업소는 만실이었다. 결국 시라베츠로 향하는 중 온천목욕라도 하자며 온천이라는 태그로 검색 된 야마하나온천장. 운이 좋게도 8명을 한방에 쓸어담을 수 있는 방이 하나 있다고 한다. 이로써 신의 세 번째 수를 쓰게 된것인가? 발걸음하는 여행지 곳곳마다 한포인트씩의 웃음과 행운이 있던 우리는 우리들이 가진 여행운에 안도하며 구시로에 있는 야마하나 온천에 닿자마자 온천탕에 풍덩!
구시로 자체가 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남쪽으로는 바다를 내다보고 있으니 휘황찬란한 상업시설은 애초 기대하지 않았더랬다. 식사도 호텔내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외국인이라곤 우리 여덟명이 전부이고 몇몇은 조용조용한 현지인뿐인 식당에서 갈아입을 여벌의 옷을 세탁기에 모조리 넣어 돌려놓고 유타카를 입고 저녁식사를 즐긴다.
“캠핑카에서 먹던 식사도 나름 좋았지만 호텔의 정식도 훌륭하네요.”
지당하신 말씀은 귓등으로 넘기고 오로지 입만이 열일을 하고 있다. 남이 해 준 밥 먹는 일이 이리 감지덕지인 일인것을 내 어머니를 여읜 후 비로소 체감하였고 아이들의 엄마가 되서는 더욱 절절이 절감했으며 며칠간의 여행에서 다시금 깨닫고 있었던 중에 남이 해준 밥이니 입은 오로지 먹고 마시는 데만 쓴다. 사케도 더할 나위없이 좋고 푹신한 이부자리는 말해 무엇하리. 게다가 오늘밤은 비바람이 불고 있다. 태풍이 오사카까지 왔다는 소식은 낮에 본 뉴스에서였다.
아이들을 재우고 비바람 몰아치는 밖을 내다보며 맥주를 들이켠다. 날씨야 어떻든 마음과 몸은 안락하다.
“이런 날씨에 캠핑장을 포기하고 온천장을 찾은 건 신의 한 수죠?”
“호텔 검색에서 보이지 않더니 이런 좋은 데를 찾다니 대단해요.”
“온천이래서 전화할까말까 했는데...”
“오빠, 갈까 말까 할때는 가고, 할까 말까 할때는 하고, 줄까 말까 할 때는 주란 말이 있어.”
“오호~!”
“그나저나 구글에 노출되는 숙소 말고 괜찮은 숙박업소가 많을텐데 말야. 아무래도 광고계약이 된 숙박업소가 대부분 포털에 검색되니 직접 현지에 와서 겪지 않은 이상 우리는 포털검색에만 의지하게 될거고, 현지의 좋은 곳을 많이 놓치겠지?”
“앞으로 현지 숙박이나 식당을 이용할 때는 다른 방식으로 키워드를 입력하는 게 팁이네?”
간간이 텔레비전과 창문을 번갈아 바라보며 우리는 나름의 알쓸신잡 게스트가 되어본다.
때마침 텔레비전에서는 일본판 알쓸신잡이 방송되고 게스트로 후지야라 산야가 출연하고 있었다. [여행의 순간들]로 알게 된 작가.
“다와가 생각날 때마다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나라는 화살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몇 명의 심장을 관통했던 것인가?’”
관통하는 화살이 어느 이의 막힌 가슴을 뚫어 새로운 나날을 살아가는 발판을 마련해줄 수도 있었겠지만 때로 화살은 고통이 되어 한 인간의 영혼을 산산조각 냈었을지 모른단 섬뜩한 죄의식.
함께하는 여행에서 절대로 여행 동반자에게 그러한 관통하는 화살로 아픔이 되지 않으려 언행을 조심하고 조심했건만. 그건 내가 알지 못하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배려하고 내 감정을 급하게 내놓지 않는 일이다. 그런 생각의 끝에 피로가 무겁게 달려 눈꺼풀이 닫혔다.
다음날 호텔 조식은 예상외로 훌륭했다. 깊은 시골의 온천장은 별 몇 개짜리란 평점과 다닥다닥 밑에 달린 칭찬리뷰호텔 검색으로 예약한 호텔의 서비스뺨을 때리고 있었다. 친구가 정말 좋다 감탄을 할 때 난 한 발 앞서 일박을 더하자 의견을 냈다. 식사 후에 바로 프론트로 달려가 당일 예약을 하고 물었다.
“가맹점 리조트인가요?”
“야마하나(산꽃) 호텔은 일본에서 딱 한 곳이에요. 도쿄와 돗토리에 이름이 같은 호텔이 있는걸로 알고 있지만 가맹점이 아니에요.”
오직 하나, 란 말은 참 매력적이고 그래서 더 매달리게 만든다. 하나뿐이므로 지금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다. 오직 하나뿐이란 말에 이 호텔에 일박을 더한다는 자부심이 생겨버린 건 섣부르고 시시한 어린 감정만은 아니겠지?
허나 이 날의 예약이 우리에겐 다행 중 불행의 한 수가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아니, 다르게 생각하면 불행 중 다행일 수 있으려나? 계획대로의 일정이었다면 우리는 삿포로 가까운 곳으로 달려가 있어야 했다. 다르게 생각해보자. 구시로에 있었음이 더 안전할 수도 있었겠다. 복잡해진다. 신의 뜻을 알려하는 자는. 하늘의 뜻을, 어디에, 어떻게 있는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런 혼란 속에 미물인 인간은 드디어 이렇게 생각한다. 알 수 없는 하늘의 뜻의 흐름으로 살면서 일개 인간은 그저 나아갈 뿐이라고.
여행일정상 9월 5일은 구시로 습지에서 전동바이크를 타는 것이었다. 전동바이크야 드넓은 구시로습지에 지천으로 널린 줄 알고 예약따윈 생각조차 안했다가 낭패를 보았다. 이로써 계획상의 스케쥴 3번째가 무효로 끝나고 대체안으로 구시로 습지를 순환하는 기차를 타려고 토로역으로 갔다. 낭패는 낭패를 부르는가? 캠핑카의 주유량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주유소를 묻기위해 토로역 근처 경찰서로 내달렸다. 작은 마을의, 더 작은 경찰서에는 덩치가 큰 북해도경찰관 한명만 있었다. 마을에는 이 경찰관을 시도때도 구별없이 출동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없는지, 아니면 착한 천성덕인지 경찰관은 캠핑카 주유통도 흔들어보더니 20km 떨어진 주유소에는 못 갈거 같다며 경찰서에 비치된 휘발유 통을 가지고 나와 덜어주려 했다. 북해도 경찰관의 인심이 무안하게 캠핑카는 경유차. 우리보다 더 근심에 빠진 북해도경찰 토로지소의 경찰관.
“경찰차를 타고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사와 넣어보쥬~!”
참, 인심도 좋고 오지랖도 넓으신 북해도 경찰관님이시다!! 그 덕분에 남편은 북해도 경찰차에 탑승하는 영광을 누리고 말 안 들으면 경찰이 잡아간다는 부모들의 위협을 한귀로 들으며 자란 아이들은 실제로 경찰차에 실린 아빠를 보고 모두 눈물 바람.
“우리 아빠 경찰이 잡아가는거야? 으앙~”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은 죄로 잡혀갔다 오는 거야. 그러니까 주유소가 보이면 바로바로 주유를 해야한단다. 너희들도 자기 할 일을 제때제때 해야한다.”
남편이 경유를 사러 간 사이 남은 자들은 토로역에서 출발하는 구시로습지 순환열차를 타려고 했으나 태풍으로 운행중단이란 나풀거리는 공지만 보고 뒤돌아섰다.
어제 구시로로 오면서 주유할까 묻던 친우 남편분의 의사를 저버린 남편.
“구시로 가면 주유소 있겠죠? 그때 넣죠? 형님!”
형님 말을 안 들은 동생은 그렇게 한 시간 여를 경찰차에서 보내면 북해도 경찰관과 대화를 나눴단다.
“1인 경찰인 토로 마을에서 가족과 지내면 간간이 지인들이 방문해 한잔 즐기며 식사하고 있을 때 호출이 되면 지인들이랑 같이 출동도 한데.”
어쩌면 그 경찰관, 사람이 그리운 걸 수도 있겠다. 사람이 반가운 경찰관. 사람을 징글징글하다 여기고 인간성을 회의하는 경찰관이 아니라 사람을 반가이 맞이하고 외국인의 도움요청에도 기꺼이 출동해주는 경찰관이 많아졌으면 하는 것은 너무 동화적은 소망일까? 어쨌든, 작은 마을의 넓은 아량의 북해도 경찰관님, 오래오래 건강하세요!!북해도 경찰의 건강을 기원하며 구시로를 더 둘러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