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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언브로큰 - 전2권 - 모든 기적은 삶에 있다
로라 힐렌브랜드 지음, 신승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얼마 전에 신문기사를 통해 '미야비'라는 일본 록스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 <언브로큰>을 알게 되었다. 실존 인물인 루이스 잠페리니의 이야기를 그린 <언브로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제 만행을 다루고 있기도 한데, 그 중심에 있는 와타나베라는 인물을 그 일본 록스타가 연기해 일본 내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들리는 감독 안젤리나 졸리의 일본 입국금지와 일본 내 국수주의자들의 이 영화를 향한 맹비난까지 이 영화와 관련된 일본의 민감한 반응들이 들려왔다. 그래서 궁금했다. 평소에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을 접하면서 히틀러를 중심으로 한 나치를 비판하는 작품들은 많은데, 서양에서는 왜 일본의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작품들은 많지 않을까 궁금했던 터라 눈길이 갔다. 그러다 운 좋게도 때마침 영화 <언브로큰>의 원작 실화를 담은 소설이 출간되어 영화에 앞서 먼저 만나게 되었다.
총 2권인 이 소설은 1권에서는 주인공 루이스 잠페리니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천방지축 사고뭉치였던 그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최연소 나이로 미국 육상 대표 선수로 출전하게 되는 이야기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육군 항공대 항공병이 되어 참전하여 작전 중 비행기 추락사고로 실종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루이스 잠페리니는 어렸을 때부터 민족 분쟁으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몰매를 맞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눈물을 흘리거나 항복하지 않고 오히려 반항하면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을 지켜나간다. 그러다 육상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발견하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고 더는 반항아로서의 삶을 살지 않는다. 사고뭉치였던 루이스가 목표를 가지고 가슴에 분노 대신 희망과 열정을 품고 변해가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보다도 더 가슴 뛰고 나를 몰입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항공병으로 입대 후 작전 도중 비행기 사고로 추락하면서 망망대해에 루이스와 필립스, 맥 단 세 사람만이 살아남게 된 이야기였다.
다른 대원들은 모두 실종되고 루이스와 필립스, 맥 단 세 사람만 살아남아 구명정에 의존해서 태평양을 표류하던 이 이야기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그 시간을 보내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신음이 흘렀다. 배고픔과 목마름도 모자라 주위를 끝없이 맴도는 상어와 낮에는 뜨거운 햇볕과 밤에는 뼛속까지 시리는 추위를 견디며 구조되기만을 기다리던 그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마냥 기다려야만 했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싶어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던 루이스와 필립스의 모습에서 한결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만일 저런 상황이었다면 난 어땠을까 곰곰이 생각도 해보았다. 슬프게도 나 역시 맥처럼 희망을 잃고 넋을 놓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루이스와 필립스처럼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생존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지 못 했을 것 같다. 그래서 맥이 더 안타깝고 마음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견디지 못한 맥이 죽고, 표류 47일째만에 루이스와 필립스는 일본군에게 잡힌다. 그리고 남은 두 사람의 전쟁 포로 생활이 시작이 된다. 2권은 이 포로 생활을 담고 있다. '처형 섬'이라고 불리는 콰절런 환초의 수용소 생활을 시작으로 장장 850일 동안 루이스와 필립스는 전쟁 포로로 모진 폭행과 공포를 겪게 된다.
그리고 이 2권에서 일본 국수주의자들이 그토록 불편해하는 이야기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루이스와 와타나베의 만남도 여기서 이루어진다. 새라는 별명을 가졌던 와타나베를 비롯해 수많은 일본 군인들은 포로들을 학대하고 고문을 하며 그들의 존엄성을 짓밟으려고 하지만, 수많은 전쟁 포로들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존엄성을 지키며 그 시간을 버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폭언과 폭력 앞에서 그들은 수많은 동료들을 잃고 자신들의 목숨마저 늘 위협 당하는 속에서도 아픈 동료들을 챙긴다. 루이스 역시 때로는 도움을 받으며 또 때로는 주면서 그 시간을 견뎌낸다.
포로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어쩌면 이 소설에서 묘사된 부분은 실제 모습의 1/100도 채 안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 속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했고, 잔인했으며 눈물짓게 만들었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신이 정말 존재하는지 수없이 되물으며 읽어나갔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며 희망을 안고 살아가던 루이스와 그 친구들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많았던 그 포로수용소에서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던 이러한 사고방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끝날 것 같지 않던 포로 생활은 일본의 항복과 함께 끝이 난다. 그들은 가족들의 품으로 각자 돌아가 다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소설은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루이스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간다. 전쟁 포로수용소에서 생존의 희망을 품으며 겨우겨우 살아왔던 그들은 전쟁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생각지도 못한 불행을 겪게 된다. 해피엔딩일 거라 생각했던 그들의 삶은 포로수용소에서 겪었던 육체적, 정신적 학대로 인해 술 없이는 살 수 없고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해 수많은 문제들을 야기하며 포로수용소에서의 기억에 사로잡혀 고통을 겪게 된다. 루이스 역시 밤마다 꿈속을 찾아오는 와타나베와 지난날 수용소에서의 기억들로 망가진다. 결국은 와타나베를 살해할 계획까지 세운다. 하지만, 아내를 따라간 전도 집회를 통해 신을 다시 믿게 되면서 신앙의 힘으로 자신을 불태우던 복수심과 증오심을 씻어내고 진정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소설은 나이가 들어서도 달리기를 하며 활기찬 인생을 사는 루이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끝이 난다.
솔직히 2권에서는 포로수용소에서의 학대보다 종전 이후의 그들의 삶이 더 나를 울렸던 것 같다. 모진 고문과 구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며 긍정적으로 살았던 그들이 종전 이후 오히려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더 큰 고통을 겪는 것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 고통을 겪어보지 못했지만, 그 아픔이 나에게도 전달되는 듯해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루이스가 폭주하기 시작했을 때, 와타나베를 죽이겠다고 다짐했을 때, 살인이 옳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루이스가 이해가 되었다. 그 심정이 오죽할까 싶어서 말이다.
종교가 없다 보니 신앙심으로 이러한 고난을 견디어 낸 루이스가 솔직히 온전히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용서가 되는지... 하지만 그가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니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은 든다. 와타나베가 자신의 죗값을 달게 받은 것 같지 않아 너무 속상하고 억울하지만, 분명 그도 사는 동안 괴로웠을 거라고 믿고 싶다.
처음에는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의 시각이 아닌 서양의 시각으로 서양인이 겪었던 일본의 만행을 어떻게 그렸을지 궁금해 읽기 시작했는데,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단순히 일본만을 비난하고 끝낼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 가져오는 비극에 대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상황에 따라 얼마나 악랄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인류가 평화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잘못은 그때 바로잡지 못하면 안 된다는 사실도 일깨워 주었던 것 같다. 종전 이후 독일과 달리 일본은 전범들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제적 이해관계로 와타나베처럼 끝까지 붙잡히지 않은 전범들은 처벌조차 받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전범들이 감형이 되어 후에는 떵떵거리며 잘 살았다.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은 일본은 이제 지난날 자신들의 과오를 숨기고 전범들을 옹호하며 역사를 왜곡하며 슬그머니 다시 전쟁 국가로서의 지위를 되찾으려고 한다. 그때 제대로 처벌이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소설 <언브로큰>은 전쟁의 무서움과 인간의 잔인성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평화를 지켜 나가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비극 속에서도 기적은 있고, 그 기적은 희망을 놓지 않았을 때 일어난다는 메시지를 루이스와 루이스 친구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니 재구성 한 이 소설은 루이스 잠페리니를 통해 인간에게 한계란 없음을,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지 보여주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심장이 뜨거워지는 소설을 읽은 것 같다. 오랜만에 내 주변을 둘러보고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루이스처럼 나도 내 삶을 사랑하며 내 안에 무한한 가능성을 믿으며 이 세상을 즐겁게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포로수용소에서 루이스 친구였던 해리스 중령도 잊지 말아야 겠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전쟁에도 참여했던 그를, 결국 한국전쟁에서 실종되어버린 그를 잊지 말아야 겠다.
루이스 잠페리니를 알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