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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반 만에 남친이 생겼습니다
시모다 아사미 지음, 하지혜 옮김 / artePOP(아르테팝)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따끈따끈한 신간도서가 내게 왔다. 첫 남자친구와의 이별 후 6년 반 만에 찾아온 사랑에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미야타씨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어느날 거래처 직원으로부터 고백을 받은 미야타씨는 오랜만에 찾아온 사랑에 무척 설렌다. 연애는 그녀로 하여금 작은 일에도 기쁨을 느끼게 하고 문자 하나에도 행복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쇼핑을 하고 자신을 가꾸면서도 그녀는 귀찮아 하기보다는 즐거워 한다. 더는 다른 연인들의 낯 뜨거운 애정 행각을 봐도 눈살을 찌푸리거나 욕을 하지 않고 오히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바라본다.

 

그녀의 평범하고도 때로는 지루했던 일상은 남자친구로 인해 활기가 넘치고 시도때도 없이 그녀를 웃게 만든다. 하지만 연애의 달콤함도 잠시 그녀는 그가 익숙해질수록 바쁜 일상에 치여 때로는 그와의 만남이 귀찮아지기도 하고 그와의 사이에서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도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가 연애를 시작한 후 가장 힘든 것은 혼자였을 때보다 더 외로움을 느끼는 날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엄마와 친구의 문자만으로도 행복했던 생일날은 그의 늦은 연락으로 우울한 날이되고, 혼자 영화를 보고 맛난 음식을 사먹어도 행복하던 그녀가 문득문득 주변 연인들을 보면서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크리스마스와같은 특별한 날에도 혼자일 때는 주변 사람들과 그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냈음에도 연애 후에는 남자친구와 함께하지 못하는 것에 짜증나하고 그런 자신을 또 신물나 한다.

 

이렇듯 그녀는 연애로 달콤하면서도 행복해 하다가도 또 그로 인한 지나친 기대로 오는 섭섭함과 자꾸만 멋대로 구는 자신이 싫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툴툴되면서도 예쁜 밤하늘을 보면 혹은 남친에게 어울릴만한 옷을 보면서 어김없이 그를 떠올리며 어느 순간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 한다.


 

서른을 앞두고 있는 29살 여자의 연애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담고 있는 이 만화는 주인공이 나와 비슷한 또래였기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연애할때 더 외로워진다(p.53)던 에피소드는 매번 연애를 할 때 내가 느꼈던 것이기도 하고 이별의 이유가 되기도 했던거라 더 와닿았다. 외로운게 싫어 누군가를 만나고 사귀지만 막상 그 관계가 설렘에서 익숙함으로 바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더 강한 외로움. 이는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나는 늘 이런 외로움이 찾아오면 이별이라는 선택을 했는데, 다행히 미야타씨는 나와 같은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았다. 함께 있어 외롭기도 하지만 함께라 또 행복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플때 그래도 내옆에 누군가가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그녀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미야타씨가 친구에게 하던 말 중 20대 초반의 연애와 달리 지금 연애는 좀 더 어른스러울 줄 알았는데, 지금도 자신은 성장하지 못한 것 같다면서 그 시절이랑 비교했을 때 전혀 변한게 없고 여전히 바보같이 멋대로 기대하거나 질투하게 된다(p.104)며 넋두리를 하던 에피소드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갖게 되는 기대감과 함께 지난 사랑에서 했던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던 다짐은 늘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예전보다는 조금더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만남을 가져보겠다고 다짐하지만 또다시 서툴고 아이마냥 모든 일을 감정적으로 해결하고 만다. 나이를 먹으면 알아서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20대 끝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도 덜 자란 내 모습을 보면 나이를 먹는다고해서 알아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4컷 만화로 구성되어 있었고 분량도 그리 많지 않아 부담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세밀한 감정묘사라고 표현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결혼적령기인 여성이 연애를 통해 느끼게 되는 감정이나 생각들을 엿보고 공감할 수 있는 만화인 것 같다.

 

더는 사랑 따윈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p.132)는 연애 전 미야타씨처럼 요즘 나도 그런 생각이 들때가 문득 있어 마지막 장면은 부러운 마음에 남겨본다. 미야타씨의 연애가 결혼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8년동안 사귄 남자친구에게서 더는 설렘을 느끼지 못해 이별을 고한 미야타씨 친구처럼 이별로 끝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순간 열심히 사랑하고 있는 그녀가 부럽다. 부디 이 사랑의 끝이 해피엔딩이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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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은의 스피치 시크릿 21 - 낭독으로 연습하는 말하기책
우지은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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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센텀시티에 있는 교보문고에 갔다가 오랜만에 사고 싶은 책을 만났다. 전직 아나운서가 쓴 스피치 관련 책이었는데, 평소 말하는게 두려운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손길이 갔던 책이었다. 원래도 혀가 짧아 발음이 부정확했던 난, 몇 해 전 치아교정을 하면서 발음이 더욱 나빠졌고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도 말하는게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있었다. 발음 교정을 위해 그리고 발표 공포증도 없앨 겸 스피치 학원을 알아보기도 했는데 솔직히 학원비가 너무 비싸 선뜻 갈 수 없었다. 그러다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스피치 관련 책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책 구성도 마음에 들어 조만간 구입하려고 했는데, 우연치 않게 그 책이 이번에 내게 왔다. 현재 W스피치커뮤니케이션 대표인 전직 아나운서 출신 우지은 대표가 쓴 <우지은의 스피치 시크릿 21>이 그것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21가지 말하기 비법을 담고 있는 이 책은 21일 동안 직접 '낭독'을 하면서 훈련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작심삼일을 7번만 하면 21일 후 탄탄한 스피치 기본기를 다질 수 있다(p.11)는 저자의 말처럼 책도 스피치 기초 단계부터 기본 단계, 그리고 발전 단계와 완성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혼자서도 스피치 기초를 다지는데 무리가 없어 보였다. 간단한 이론 다음에 실전에서 적용할 수 있는 해당 스킬을 알려주고 직접 훈련할 수 있도록 스피치 예문 등을 싣고 있어서 지루하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았던 것 같다. 거기에다가 W스피치커뮤니케이션 홈페이지(www.wspeech.co.kr)에 들어가면 직접 저자가 낭독을 한 무료 mp3 파일과 강의 형식으로 올린 트레이닝 동영상도 있어서 혼자 공부할 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어떤 책은 너무 이론 중심이라 읽기에도 따분하고 연습을 하기에도 다소 어렵게 느껴져 손이 잘 안 갔는데, 이 책은 적당한 이론 소개에 독자들로 하여금 직접 훈련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정말 마음에 들었다. 단순히 이렇게 하라는 식의 지시가 아니라 제시문을 직접 소개해주면서 말하는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던 점이 이 책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비록 내가 원했던 발음 교정 훈련은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아 아쉽기는 했지만 스피치 전반에 대해 익히고 배울 수 있는 책이라 읽는 동안 유익했다. 저자가 제시했던 것처럼 하루 한 챕터씩 21일 동안 훈련을 하다 보면 한결 나아진 스피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비록 이번에는 급한 마음에 후다닥 책을 읽고 말았지만, 이번에 이 책과 함께 훈련하기 위해 산 발음 연습 도구와 함께 연습을 하다 보면 더 이상 말하는 게 두렵지 않고 자신 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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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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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2번이나 암 진단을 받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도 20대에 암 진단을 받는 사람이. 이번에 읽은 <비포 아이 고>는 스물세 살에 진단받았던 유방암이 재발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스물일곱의 데이지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녀는 힘겨운 수술과 방사선 치료로 유방암을 이겨내지만 결국 암은 다시 재발하여 그녀의 온몸에 퍼진 상태로 발견이 된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고작 4개월, 길어야 6개월이라는 시간만이 남게 되는데, 그녀는 그 시간 동안 자신이 떠난 후 혼자 남게 될 남편을 위해 남편의 아내가 되어 줄 새로운 여자를 찾아주기로 결심한다.


소설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데이지가 다시 걸린 암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하는지 그녀의 감정선을 따라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녀가 자신의 남편을 위해 생각해낸 다소 엉뚱한 '남편의 아내 찾기 프로젝트'를 역시 그녀의 감정선에 따라 어떻게 실천하는지 보여준다.


그녀는 그토록 열심히, 꼼꼼히 자신의 남편 잭에게 어울리는 여자를 찾아 나서던 처음과 달리 막상 잭이 자신이 적격이라고 생각한 여자와 친밀한 모습을 보이자 질투에 휩싸인다. 그 질투는 그녀의 뇌종양으로 생긴 건망증과 함께 그녀의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그녀와 그의 사이에 오해를 키워 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든다. 소설 후반부에는 이 질투와 오해로 인한 두 사람의 서먹함이 주로 다루어지다 보니 읽는 동안 너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그게 아닌데, 데이지와 잭은 왜 서로 대화를 하지 않는지, 왜 애써 그 상황을 무마하고 넘어가버리기만 하는지 솔직히 읽는 동안 얼마 남지 않은 데이지의 시간 때문에 둘의 그러한 행동들이 다소 짜증나기도 했다. 하지만,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던가. 데이지와 잭의 감정골은 데이지의 뇌종양 수술 전후로 극에 달하지만 수술 이후 둘은 모든 오해를 풀고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남은 시간 온전히 두 사람을 위해 보낸다. 늘 무덤덤하고 무뚝뚝해 보였던 잭은 두 사람의 사이가 잠시 서먹했던 그 순간에도 데이지를 위해 정원을 가꾸고 데이지를 대신해 창문 틈에 코크를 사다 끼우는 등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하면서 데이지를 향한 사랑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질투에 눈이 멀어 이를 몰랐던 데이지는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닫고는 더는 잭을 위해 자신이 떠난 후 잭의 옆자리를 채워줄 새로운 아내를 찾는 일을 하지 않는다. 대신 남은 시간 동안 더 많이 잭과 사랑하며 주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




결국 데이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떠나지만 잭과 케일리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데이지가 어디에 있든 그녀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존재로 남는다. 그녀는 비록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았던 이가 아니었나 싶다.


그녀의 다소 엉뚱하고 이해하기 힘든 '남편의 아내 찾기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했지만 그래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난 왜 데이지가 그런 엉뚱한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혼자 남을 잭이 안타깝고 걱정되어서라는 것을 알지만 나라면 그 시간을 잭과 더 사랑하며 보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잭을 믿지 못해 그런 생각을 했나 싶어 잭을 대신해 괜히 내가 데이지에게 화가 나기도 했기에 그녀의 그 야심 차게 시작했던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는 정말 기뻤다.


죽음을 앞둔 여자의 이야기치고는 분위기가 그리 어둡지 않아 읽는 동안 데이지가 정말 죽을 병에 걸렸나 싶을 때가 있었다. 이는 데이지의 그 엉뚱한 프로젝트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데이지의 사랑법이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기는 했지만 분명 그녀의 사랑은 눈물겹고 희생적이며 아름다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그런 사랑을 받은 잭이, 그리고 잭의 사랑을 받은 데이지가 무척이나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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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측 죄인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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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교수님이 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다. 그때 난 정의를 실천하며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지켜주는 것이라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랬더니 그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러면 법은 지켜야 하는 것이냐, 라는 다소 내게는 엉뚱하게 들리는 질문을 다시 하셨다. 역시 난 주저 없이 그렇다, 라고 대답을 했고 교수님은 내게 아직 어리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는 본인이 살아보니 법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것이더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이용을 누구를 위하여,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더라는 말씀과 함께. 그때는 그 말을 듣고 반감이 들었다. 법을 가르치시는 분이 아무리 사적인 자리라 해도 저런 말을 해도 되나 싶으면서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그 교수님께 조금 실망도 했다. 그때까지의 내게는 법과 '준수'라는 말은 어울려도 법과 '이용'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법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완벽하지 않고, 약자들을 마냥 지켜주기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씩 깨달으면서 그때 그 교수님의 말씀이 문득문득 생각이 나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정의란 무엇인가로 시작하여 정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써 법은 완벽한가로 이어지는 이 추상적이고도 난해한 질문들에 답을 찾기 위해 책을 뒤져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검색도 해보지만 역시 이 질문들에 대한 딱 떨어지는 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쉽게 외칠 수 있던 그 정의가 세상을 조금씩 알게 되고,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어려워진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무거운 짐처럼 느껴져 때로는 외면한 채 지내기도 한다.


한동안 그랬다. 당장 내 눈 앞에 현실이 우선이고 그런 고민을 한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애써 외면하면서 지냈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굳이 그런 생각을 해봐야 뭐하나, 라는 나의 열등감도 작용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외면하고 지냈던 그 질문들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 책을 만났다. 일본 연애 소설은 좋아하지 않지만 일본 추리 소설은 좋아하다 보니 읽게 된 <검찰 측 죄인>이 그것이다.


 

 


미스터리물이지만 '누가 범인인가'는 그다지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소설이었다. 보통 추리, 미스터리물은 누가 범인인가가 중요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등장인물 한 명 한 명 의심케하면서 읽어나가게 만드는데, 이 소설은 진범이 누구인가 보다 과연 주요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정당했는가, 각자가 외치는 수많은 정의 중 어느 것이 진짜 정의라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23년 전 발생한 여중생 살해 사건과 23년 후 발생한 70대 노부부 살해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가 된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건에는 공통된 용의자가 한 명이 있다. 23년 전 여중생 살해 사건에서 마지막까지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마쓰쿠라라는 자가 70대 노부부 살해 사건에서도 용의자 목록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70대 노부부 살해 사건 직후 여중생 살해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이후 마쓰쿠라를 취조하면서 경찰과 검찰은 23년 전 여중생 살해 사건의 진범이 마쓰쿠라라는 자백을 받아내지만 마쓰쿠라는 70대 노부부 살해 사건은 자신이 하지 않았노라 주장한다. 공소시효가 만료되자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는 마쓰쿠라를 보면서 경찰과 검찰은 마쓰쿠라가 이번 사건에서도 진범일 것이라 생각하고 수사를 진행한다. 오직 마쓰쿠라에 초점을 맞춰서. 그리고 여기서 두 검사의 가치관이 충돌한다. 공소시효 만료로 더 이상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 마쓰쿠라를 다른 죄를 뒤집어씌워서라도 처벌을 받게 하고자 하는 베테랑 검사 모가미와 악인이더라도 그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만 처벌을 해야 한다는 새내기 검사 오키노. 좋은 스승과 제자였던 둘은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서로가 지향하는 정의 실현을 위해 갈라서게 된다. 그리고 각자 자신들의 방식으로 정의의 검을 들고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결국 승부는 오키노의 승리로 끝난다. 하지만 오키노는 웃지 못한다. 오히려 모가미가 있는 도쿄 구치소를 바라보며 오열하고 만다. 그리고 소설은 거기서 끝이 난다. 승리자인 오키노의 오열이 보여주듯 소설은 통쾌, 상쾌와는 거리가 먼 찜찜함을 남기고는 끝나버린다. 정의를 외치며 결국 법질서를 해치고 살인까지 저지른 모가미. 분명 그의 정의는 과한 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키노처럼 나 역시 그가 안타깝고 또 그의 정의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마쓰쿠라는 자유인이 되었고, 검찰과 경찰로 인해 누명을 쓴 불쌍한 사람이 되어 여론의 동정심을 얻는다. 그리고 급기야 자신이 자백했던 23년 전 여중생 살해 사건도 경찰과 검찰의 강압에 의해 진술했노라 번복하기에 이른다. 선량한 사람을 도왔다로 일을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유명 인권 변호사의 남은 인생을 위해 그렇게 하라는 조언을 받아들여 말이다.


누구의 정의가 옳다, 그르다 얘기할 수 없을 것 같다. 여전히 난 모가미의 정의도, 오키노의 정의도 모두 어느 정도 일부 옳다고 생각한다. 만일 내 주변 사람이 여중생 유키와 같이 살해를 당해 죽었고, 그 진범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음에도 공소시효 만료로 더 이상 죄를 물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면 나 역시 모가미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법률이라는 검을 든 검사라는 직분에서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오키노의 말도 일리가 있으니 말이다.


이번에도 역시 정의에 대한 답을 찾지 못 했다. 그저 나라는 사람은 줏대 없이 머리는 오키노를 따르고 감정은 모가미를 따른다는 것을 확인만 한 것 같다. 그리고 공소시효는 수많은 이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없어져야 하는 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마음이 많이 무거워지는 소설이다.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졌지만 한 명은 제대로 법의 심판을 받지 못하고 죽었고, 한 명은 유유히 법망을 피해 자유인이 되었다. 공소시효와 정의, 그리고 법이라는 검에 대해서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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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시 나의 책 - 손글씨로 만드는 나의 첫 시집
박준.송승언.오은.유희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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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조금 특별한 책이 내게 왔다. 직접 시를 쓰면서 읽는 시집, <너의 시 나의 책>이 그것이다. 좋아하는 시인이 정해져있고, 시집으로 한 시인의 시를 읽는 것보다 인터넷 검색으로 시구가 좋은 시들을 찾아 읽는 것을 더 선호하던 나였기에 그동안 시집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이번 시집이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내게는 처음이나 다름없는 시집이었고, 단순히 읽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손으로 쓰면서 읽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나의 '첫 시집'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펼쳤을 때 제일 먼저 만났던 오은 시인의 글은 이 시집에 더 큰 흥미를 느끼게 했다. 시 한 편을 백지 위에 옮겨 적는 일을 일상에 균열을 내는 일, 틈을 벌리는 일이라 말하며 시를 옮겨 적는 동안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던 그의 말은 이 시집이 가지고 있는 힘을 새삼 깨닫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시 한 편을 읽어내려가면서, 마음에 들었던 시들을 한구절씩 써내려가면서 그의 말처럼 오랜만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워낙 악필이다보니 마음에 드는 시들이 많았음에도 모두 쓰지를 못 했다. 쓰다보면 나도 모르게 내 글씨에 신경을 쓰느라 몇 번이나 썼다 지웠다를 하다보니 시간도 많이 들고 시에도 온전히 집중하지를 못해 정말 마음에 드는 시 몇 편만을 골라 써보았다.


 


'오늘'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60편의 시를 담고 있는 이 시집은 때로는 달콤한 떨림을 또 때로는 쓸쓸한 외로움을 또 때로는 잔혹한 자기 반성을 또 때로는 씁쓸한 현실을 노래하고 있다. 어떤 시 앞에서는 지나간 어느 시간이 생각이 나서 멈추기도 하고 어떤 시 앞에서는 나를 위로하는 어느 시구에 붙들리기도 하면서 4명의 시인들이 엮은 시들을 하나하나 읽고 써보았다.


 

 


독특하게도 이 시집은 단순히 시를 옮겨 적는 것을 넘어 직접 독자들이 빈칸을 채워야 완성되는 시들도 있었는데, 어떤 시는 정말 밤 늦은 시간 감수성이 충만할 때 쓰면 좋은 시들도 있었고 또 어떤 시는 마음 편하게 아무것나 적어 넣어도 완성되는 시들도 있어서 재미있기도 했다.

정말 말그대로 나의 오늘 이야기로 채워지는 시집이라 더 의미있고, 단순히 시집을 읽는다가 아니라 함께 시집을 만들어 간다는 느낌이 들어 새로웠다. 


 


아쉽게도 나의 시적 감상능력이 많이 모자라 모든 시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어떤 시는 몇 번을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아 포기하기도 했지만 몇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고 계속 읽게 되던 시들도 있었기에 나의 첫 시집 읽기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비록 소화시키지 못한 시들은 다음에 다시 읽었을 때 그 의미를 알게 될 수도 있으니 너무 실망하지 말아야 겠다. 


마지막으로 손글씨로 만드는 나의 첫 시집, <너의 시 나의 책>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들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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