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1930년부터 1956년까이 여섯 편의 장편 소설을 '메리 웨스트매콧' 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소설 독자들을 혼동시키지 않기 위한 배려로, 50년 가까이 애거서의 뜻을 따라 이 비밀이 지켜졌다고 한다. 이  장편들은 여성의 고독, 사랑의 오만함과 잔인함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을 담고 있으며 첫 번째로 추간 된 '봄에 나는 없었다' 는 애거서의 숨은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소설은 중년의 여인 조앤 스쿠다모어가 자기기만적인 삶을 깨닫고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그녀는 비때문에 사막에 고립되어 -물론 시중을 들어주는 인도인이 고용된 숙소에 붙잡힌 것이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평소와 달리 느긋하게 쉴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은 오래 가지 못 하고 불현듯 그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의심들, 부정적인 기억들 때문에 이내 혼란스러워진다. 자상하고 변호인으로서 성공한 남편 로드니, 반듯하고 품위있게 자란 애이버릴, 토니, 바바라, 세 아이들과 함께 안정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누려왔다고 자신만만하게 살아온 그녀였다. 심지어 마을에 존재하는 천박하고 가난하고 품위 없는 여자들의 삶에 대해 비웃으며 자신의 삶에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왔다. 그녀가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최고의 것들을 자식에게 주기 위해 그녀 자신은 절약하며 살았고, 가정에의 헌신을 위해 그녀 자신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삶을 희생해온 것뿐이었다. 그것마저도 그녀는 자랑스러운 아내이자 부모였고, 올바른 가치를 실현한 고고한 여인의 삶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사막의 뜨거운 햇볕과 아무도 없는 적막감은 그녀의 신경을 불안하고 날카롭게 만들며 온간 의심과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기차 여행 중 만난 블란치, 고등학교 시절 교장 선생님, 가족들의 언행들에서 자신이 지워버렸던 진실들, 고통을 피하고자 쌓아올린 자신의 기억들이 전부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조앤은 강박성,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삶의 선택권을 박탈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살아갈 것을 강요한다. 가족들이 그에 대한 좌절감과 거부감을 아무리 표현해도 그.녀.만. 알아듣질 못한다. 다른 이의 생각에 전혀 관심이 없고 관심을 가진다 한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다른 이들의 행복한 삶을 질투하면서 자신의 기준에는 부합하지 않는 삶은 불쌍하고 불행한 것으로 단정지어 버린다. 그러한 방식으로 남들의 비루한 삶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우월감과 안도감을 느낀다. 모두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 덕분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정말 최악인 여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도 어느 정도 이러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SNS를 통해 다른 이들의 삶을 밀착적으로 관찰할 수 있으며 이는 자신의 삶과의 비교로 이어진다. 나와 남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나의 잣대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판단하며 가쉽거리 삼아 이야기 하기도 하고, 다른이들과의 감정적 유대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자신에게 어떠한 문제점이나 단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있.다.고는 하지만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것이 우리가 조앤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가 근원적으로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추잡한 마음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조앤이기 때문이다.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기억, 그와 함께 드러나는 진실들. 그녀가 분명히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해 가감히 지워버리고 다른 것으로 채워버린 상황들이 사실적으로 재구성 된다. 정말 상대방의 진심은 무엇이었는지, 그녀에게 해주었던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어떠한 의미였는지, 그녀 자신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비로소 진실들과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특정인의 기억에 대한 나열, 회상들이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책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독선과 기만으로 쌓아올린 그녀의 거짓된 인생이 극심한 자기 혐오와 함께 무너져 내리는 그 과정이 너무나 생생하고, 현실적이서 독자로 하여금 한 편의 연극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내가 문자로 쓰여진 글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리 속에서 조앤이라는 인물이 살아 움직이며 이야기 해주는, 그녀의 감정적인 혼란과 내적 갈등에 대해 듣고 있게 된다. 특별한 기승전결 없이 전개되는 것 같은 그녀의 내면 이야기가 독자들을 사로잡는 힘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춰왔던 부분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기에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위해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바람직해 보이는 페르소나를 내세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 사이의 괴리감을 느끼게 되고 혼란스러워진다. 물론 우리도 자기 보호 본능에 따라 덜 상처받는 방향으로 기억하고, 좀 더 관대하게 내 자신을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고요하고 적막한 밤, 혹은 홀로 남겨진 시간에 우리는 내가 알고 있는 나와 다른 사람에 비친 내가 과연 같은 사람인가, 나는 진정 어떠한 사람인가.. 와 같은 질문을 맞딱드리곤 한다.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보며 느끼는 혼란스러움과 자신의 본모습을 마주하며 느끼는 낯설고 아픈 경험은 우리의 경험과 닮아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내 자신의 모습을 만나게 될 때의 그 당혹스러움과 부정하고 싶은 마음. 두 가지 마음이 서로 공존하며 뒤엉켜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고통스러운 시간을 감내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소설이 더욱 현실적이고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결말 때문이다. 조앤은 사막이라는 낯선 곳에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고 진실을 마주한다.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변화를 다짐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을 만나자 마자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간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가사는 정말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진실을 알면서도 안전하게 느껴지는 테두리 안에서 결국 자기 기만을 택하고 마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를 들킨 것 같아 아찔하고 등꼴이 오싹해진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녀의 실체를 확인시키는 남편 로드니의 독백을 통해 그녀의 어떤 추리소설보다 섬뜩한 반전을 경험케 한다. 

 

당신은 외톨이고 앞으로도 죽 그럴거야. 하지만 부디 당신이 그 사실을 모르길 바라. - p.2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만 분의 1의 우연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쓰모토 세이초는 '세이초 월드'라고 불리울 만큼 40년 동안에 쓴 장편이 100편, 중단편 등을 포함한 편수로는 거의 1000편, 단행본으로는 700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을 써낸 작가이다. 많이 썼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양이며 끊임없는 자기공부와 불굴의 정신력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며 추리소설에서 논픽션까지 다양한 창작 세계를 무한히 확장해 왔다. 그는 오늘날 일본 미스터리 소설 작가들의 문학적 뿌리이자 영원한 스승으로 존경받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이다.

 

이 소설 역시 트릭이나 범죄 자체에 매달리기보다는 범죄의 사회적 동기를 드러내서 인간성의 문제를 파고든다. 특히 이 소설이 1980년대에 쓰여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뛰어 넘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개인이 자기 표현을 위해서 하는 행동을 사회는 어느 선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

'우리 사회는 개인이 자기 표현을 위해 공동체에 해를 끼지는 행동을 제지할 논리를 가질 수 없는 것인가?'

 

이러한 문제는 야마가 교스케라는 인물을 통해 제기 된다. 아마추어 보도 카메라맨인 그는 도메이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6중 추돌사고를 찍어 A 신문사에서 주최한 아마추어 보도 사진 공모전에 응모한다. 바로 이 사진이 연간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격돌' 이다. 사고 당시 맨 앞에서 달리던 대형 탑차 트럭이 커브를 도는 지점에서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전복되고, 뒤이어 따라오던 3대의 차들이 충돌하여 화재를 일으켰으며, 다른 한 차는 이러한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맞은편 차선으로 뛰어들어 마주오는 차와 충돌하여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사람들이 중상을 입게 되었다. 야마가 교스케는 멀리서 이 장면을 바라보고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을 포착하여 무심결에 셔터를 누른다. 그 결과 야마가 교스케는 교통 사고의 끔직함을 박력있게 담아내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섬뜩함에 몸서리를 치게 만드는 작품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사진 한 장은 예상 밖의 반향을 불러 일으킨다. 사고가 난 시점에서 구호 활동을 하지 않고,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는 비판이 일어난 것이다. 특히 사진이 프로 카메라맨이 아닌 아마추어에 의해 찍혀진 사진이라는 점, 상금과 함께 주어지는 연간 최고상이라는 영예가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 이기심과 방관주의적 태도를 조장한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된다. 물론 이에 반하여, 이 순간은 10만분의 1의 확률로 포착된 것으로 이 우연성 덕분에 박력 넘치는 사진을 얻을 수 있었으며 이것이 운전자들의 경계심을 다잡게 해준다는 의견과 극찬 또한 제기된다. 이 과정 중 경찰이 전복된 탑차 전방에서 이상한 점을 찾지 못하고, 사고로 처리하면서 논쟁 또한 사그라든다.

 

하지만 이 사건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음을 감지한 피해자 유족 중 한 명인 누마이 쇼헤이는 사건 현장을 둘러보다가 사진이 촬영된 지점에서 몇가지 단서를 발견한다. 쇼헤이는 단서들을 통하여 교통 사고가 계획적으로 발생되도록 누군가가 트릭을 썼음을 알게 되고, 사진을 찍은 야마가 교스케를 의심하게 된다. 그는 정체를 숨기고 범행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야마가에게 접근하고 야마가 역시 누마이가 유족임을 의심하게 되면서 추적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캐내려 한다. 두 사람 사이의 이 '격돌' 이 소설의 백미인 듯 싶다. 서로가 쫓고 쫓기며 진실 공방을 펼치기 위해 각자의 패를 준비하는 모습이 흥미진진하다. 특히 야마가가 우연이라는 돌멩이가 난데없이 날아든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누마이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할 때가 참 아이러니하다. 10만 분의 일의 우연을 만난 그임에도 불구하고 누마이가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접근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낄 때 이것이 우연의 일치인가 아닌가로 우연에 의혹을 품는 모습은 심리적 긴장감을 더한다. 어둠과 적막감에 휩쌓인 대략 15미터 높이의 크레인 위에서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답변은 차분하지만 긴박감을 느끼게 만든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 대다수는 스마트폰과 같은 최첨단 기기를 이용하여 언제, 어디서나 각종 사고와 재난의 현장을 찍어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저널리스트, 보도 카메라맨이 아닌 일반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기회만 되면 '보도'를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이것은 모두가 공명심과 영예욕의 욕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미야베 여사의 말을 밀리자면 쉽게 '자기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어 누구나 균등하게 선택을 강요당하게 된다.

 

'양자택일을 해야할 경우 보도와 인명 중에 당신은 어느 쪽을 우선하겠는가?'

 

이 질문에 답을 하기란 쉽지 않다. 막상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인명을 구조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보다 방관하며 "어떡해~"를 외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현실 아닌가. 그 와중에 좀 더 자기 표현의 욕구가 강한 자가 동영상이나 사진 촬영을 통해 정보 전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뛰어난 자기 표현이 얼마나 위력적인 것인지 그 가치는 사회를 통해 시시각각 증명되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에게도 일어나기를 갈망할 수 밖에 없다. 누군가를 비난하기 이전에 자신의 욕구 역시 그와 닿아있지 않은지 먼저 살펴봐야할 일이다. 오히려 다분히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이 사회에서 그러한 기회를 만들어 유명세를 얻으려는 사람이 없음에 감사해야할지도 모른다. 또한 나서지 않고 지켜보는 자들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자 어느 쪽도 양심을 잃어버린 비정한 인간, 이기적인 인간으로 몰아 극단적인 비난을 하긴 어렵다. 그저 양측 모두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채 자리에 머물러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약한 인간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그러한 방관자적 입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제 이 명제는 저널리스트만의 난제가 아니다. 보도냐, 인명이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한민국 표류기
허지웅 지음 / 수다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허지웅. 필름 2.0을 통해 그의 이름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이렇게 대단한 입담의 소유자인지 몰랐다. -그 동안 라디오 고정 프로도 있었다는데 전혀 몰랐다.. - 마녀사냥과 썰전에서 그가 말할 때마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으로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 그가 2009년에 이미 책을 썼었다.

 

첫 장부터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는 20대를 고시원과 반지하 전셋방을 전전하며 보냈고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한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독립을 이룬 사람이었다. 대학생 시절 그의 하루는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가득차 있었고 사회인이 되어서도 이러한 패턴은 변하지 않은듯 했다. 일을 그리 했는데 재산이라 봤자 전세금 2000만 원에 통장 잔고가 전부라는 그의 자조적인 이야기를 통해 그의 삶은 여유와는 거리가 멀었고 흔히들 말하는 고생에 가까웠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에세이를 고생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은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20대로 살아 왔고 시작부터 어리석고 반복적으로 어리석고 꾸준하게도 어리석었던 그 10년 동안 때때로 즐겁고 대게 혼란스러웠다고 서술한다.

 

문득 나의 20대는 어떠했는가 떠올려 보게 된다. 나 역시 학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경제적으로 늘 쪼들려 주변 친구들보다 누리지도, 경혐해보지도 못했다. 나는 그것을 고생이라 생각했고, 부끄럽게 생각해왔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힘들었고, 누군가 나의 처지를 보고 동정할까 무서웠다. 아직도 20대는 나에게 고통스런 기억들로 가득찬,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기일 뿐인데.. 어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땀내 나는 현실의 연장선이자 약간의 살 냄새가 더해진 삶의 풍경이다. 스스로의 지리멸렬했던 정신상태, 피해의식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소박한 삶의 참된 가치를 체득한 그는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두 다리로 험난한 길을 걸어왔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 거짓이나 가식없이, 자신의 진실된 삶의 경험들을 통해 누구보다 적확하게 자신의 인생과 가치관을 이야기할 수 있나보다. 인생의 7막 7장도 없고 상위 5%가 될 수 있는 성공의 키워드를 알려줄 수 있는 노하우도 없지만 가까스로 삶의 방향성을 찾기까지의 이야기를 이토록 쿨하고 시크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책을 읽다보면 그가 옆에서 말하고 있다는 착각까지 든다. 그의 문장은 그의 어투와 꼭 닮아 있다. 저속하고 과격한 표현, 그가 즐겨쓰는 어휘들까지.  그리고 마녀사냥에서 가끔 그가 이야기하는 그의 일화들이 책에 등장하여 반갑기도 하다.

 

책은 총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은 사람들의 나라는 그의 20대의 일상을 다룬 장이고, 큰 사람들의 나라는 그의 정치적 견해가 담긴 장이다. 나는 정치적인 식견이 부족한 사람이므로 두 번째 장에 대해서는 논할 말이 없다. 다만 시민들의 정치 참여와 투표권의 올바른 행사에 관련한 그의 주장들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보수 또는 진보의 정치 가치관이 아닌 실제 계급 정체성, 즉 주머니 사정을 좇아 투표하는 태도다. 자기 주머니 사정을 진심으로 배려하고 연민하는, 실욕적인 투표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자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시작점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는 영화 평론가로서의 허지웅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장이다.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영화에 대한 개인의 생각과 감상평을 실시간으로 알아볼 수 있다. 별점이나 평점을 통해 좋은 영화, 혹은 재밌는 영화를 판단한다. 그래서 영화 평론가들의 비평이 더 필요하지 않나 싶다. 일반 대중들에게 외면받았지만 훌륭한, 이해하기 힘든 영화에 대한 비평을 찾아봄으로써 우리가 놓쳤던 감독의 의식을 가늠해볼 수 있다. 또한 이렇게 생성된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많은 예술 영화들이 만들어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허지웅의 비평은 간결하면서 분명하고, 이해하기 쉽게 전달된다. 전문적인 견해와 대중의 이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잘 잡아내는 훌륭한 비평가라고 생각한다. 그의 방송 출연도 반갑지만 영화 평론을 더욱 자주 읽게 되길 바란다.

 

아주 정직하고 온전한 본인이 가진 힘으로 살고 싶은, 삶의 관성을 거스를 줄 아는 그의 삶의 태도가 무척 마음에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크 플레이스
길리언 플린 지음, 유수아 옮김 / 푸른숲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나를 찾아줘의 그 박진감 넘치는 전개,독특한 구성, 실제로 살아 숨쉬는 듯 입체적인 주인공들, 끝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완벽한 엔딩까지.. 그녀의 책은 탄탄하고 흥미로웠다. 기대감에 힘입어 구매한 두 번째 책 다크 플레이스. 실제로는 나를 찾아줘 보다 먼저 쓰여진 책이다. 그래서인지 책의 구성은 비슷한 편이다. 현재의 시각에서 쓰여진 리비의 이야기, 과거의 시각에서 쓰여진 패티와 벤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면서 서술된다. 이러한 기묘한 시공간의 조합은 독자로 하여금 복선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주며 집중력을 높여주는 그녀의 특별한 장치이다. 이러한 세 사람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아빠 러너, 언니 둘 미셸과 데비, 벤의 여자친구 디온드라와 크리시, 벤과 디온드라와 어울려 다니는 트레이,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라일 등 다양하다.

오빠인 벤을 살인자로 지목하고 되는대로 살아온 여자 리비. 그녀는 가족이 몰살당한 날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다. 그 날의 끔찍한 기억을 묻어둔 채 진실에 접근하는 것을 거부하다가 돈벌이를 위해 봉인된 기억들을 끄집어 낸다. 그녀를 사건에 다시 다가가게 만든 장본인은 미스테리한 사건들을 다루는 킬클럽 회장인 라일. 그는 벤의 무죄를 입증하려고 하는 조직의 일원이며 아빠인 러너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대략 책에 등장하는 용의자는 넷이다. 
첫 번째는 그 날의 비밀을 간직한 채 감옥에 수감된 오빠 벤. 본인은 죄값을 치르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가 정말 가족을 몰살한 장본인인지 석연치 않다. 그는 내재된 폭력성을 가지고 있으며 디온드라, 트레이와 어울려 다니며 음주를 하고 대마초를 한다. 가난한 엄마와 시끄러운 여동생, 책임감 없는 아빠에 대한 분노로 가득차 있고 패티의 시각에서는 그가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앓고 있는 것 같은 점들이 몇 가지 보여진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디온드라와 트레이다. 이들은 전혀 성실함과는 무관한 학생들로 벤에게 나쁜 짓을 하게끔 유도한다. 심지어 벤과 달리 부유하게 자란 디온드라는 그의 처지를 더 비참하게 느끼게 만든다. 그녀와 대비되어 자신을 가난하고 존재감 없는 아이로 인식하면서 엄마와 가족들에 대한 불만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가족에게 관심과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탓에 디온드라 역시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보이며 고양이 성기를 잘라 벤의 사물함에 넣어 놓는 등 괴이한 행동을 일삼는다. 트레이는 노골적으로 겁 많고 가난한 벤을 놀림거리, 웃음거리로 만든다. 벤은 항상 그의 눈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으며 그에게 강해보이고자 불량한 짓들을 일삼는다. 트레이는 악마를 숭배하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며 거칠고 공격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네 번째는 아빠 러너이다. 그는 도박쟁이에다가 빚을 지고 있으며 언제나 돈이 필요해 패티를 찾아온다. 아빠로서 어떠한 책임감도 느끼지 않으며 가족을 가난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은 장본인이다. 벤에게 남성성을 자극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마초적인 남성이며 트레이, 디온드라와도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심리가 탁월하게 그려져 있으며 각자가 자라온 환경에 의한 트라우마나 그것이 고착되어 형성된 성격 장애 등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인물들은 살아 움직이며 나의 청소년기에도 충분히 고민했던 문제들, 주변에서 볼 수 있었던 친구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캐릭터들이 친숙하게 -하루 아침에 가족이 몰살되었다는 사실만 빼면- 느껴지기도 한다. 등장 인물 모두가 그 날에 연결되어 있으며 비밀스럽고 의심스러운 부분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 누가 범인인지, 과연 그 날의 진실은 무엇인지..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게 된다. 

이런 면에선 나를 찾아줘 만큼 혹은 그 이상 박진감 넘친다. 나를 찾아줘가 남녀 주인공에 한정되어 있는 반면, 다크플레이스는 정말 그럴싸한 용의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결론은 다소 약한 것 같다.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이 초중반의 극적인 미스테리함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 하고 급히 끝맺은 느낌이다. 동기 역시 다소 약하고 단조롭지 않았나 싶다. 리비가 오빠를 지목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나 반사회적 성격장애로 보여지는 벤에 대한 설명이나 결말이 충분하지 않다. 앞의 미스테리한 요소들이 독자로 하여금 의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넣어둔 장치들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다. 정말 끝맺음을 위한 결말인 듯 하여 씁쓸하다. 

읽는 동안은 정말 재미 -그래도 최근에 읽은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보다는 결말이 덜 허무하다.- 있었고, 이러한 전작을 바탕으로 더 나은 나를 찾아줘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믿으며.. 그녀의 차기작을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출생의 비밀에 얽힌 이야기다. 이미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닳고 닳듯이 쓰여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은 소재. 그래서 그닥 기대감이 없었다. 책을 덮고 난 지금도 이 책에 대한 실망감을 표하는 독자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결말이 몇 가지로 예상될 수 밖에 없는 소재, 걸작 서스펜스 드라마라고 쓰여진 띠지가 무색할 정도로 그 어떠한 충격적인 반전도, 치밀한 트릭도 없다. 사건의 발단이나 전개 자체가 우연에 기대어 있고 결말 부분으로 갈수록 급히 마무리 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뻔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능력 -책이 읽혀지는 속도에 몹시 놀랄 정도다.- 은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이 정도 필력을 가진 작가가 썼다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술한 구성이 아쉽다. 이제 진정 추리 소설이 맞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복선다운 복선도 없거니와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선 피의자의 편지 한 통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은 정말 맥빠지게 만든다. 이 책의 전후로 나온 최근작들도 읽기가 망설여질 정도다. 갈릴레오 시리즈, 가가형사 시리즈 등 많은 독자들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는 캐릭터를 구축하고 사회나 인간의 어두운 이면을 꼬집어 내 적절하게 표현할 줄 아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라는 철학적 난제를 출생 뿐만 아니라 재능과 행복의 연관 관계에 적용시킨 시도는 매우 신선했다. 우리는 늘 재능있는 동료를 부러워 하고 나의 재능 없음을 한탄하며 신이 나에게 주신 재능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며 산다. 재능이 있으면 내가 몸 담고 있는 분야에서 더 성공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나의 행복으로 직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책 속의 가쓰야는 말한다. 재능은 뻐꾸기알 같은 것이라고. 부모가 자식의 피에 본인이 모르게 떨어뜨린 그 알은 부모님의 것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식 본인의 것이라고 말이다. 그것을 받고 고마워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겐 너무나 간절한 재능이 누군가에겐 전혀 기껍지 않은 것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재능과 적성을 미치 점쳐보는 일이 마냥 행복한 일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일생 동안 자신의 재능이 무언지 끊임없이 탐구해 나가야하는 과정이 몹시 힘들고 지치는 일이지만 처음부터 갈 길이 정해져 있다면 그것이 태어날 때부터 사농공상의 계급이 정해져있는 것과 무엇이 별반 다를까. 그것은 기술의 이름 아래 인간의 또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고 한계를 규정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작가가 유전자 패턴을 이용하여 누군가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기술의 어두운 이면에 대해 주목한 사실은 놀랍다.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심도있게 다루었다면 그저 그런 추리 소설을 모방한 습작 같은 느낌은 덜 수 있지 않았을까. 재능과 흥미는 어떤 인간이든 피해갈 수 없는, 적어도 한 번 이상 가슴 속에 품게 되는 자아에 대한 물음표인만큼 더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유전적으로 새겨진 특출난 재능을 가진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겠지만 그들이 만약 재능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면? 그들의 흥미와 상관없는 일을 하도록 강요할 수 있을까? 너무 많은 선택지가 주어져서 고민이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좌절하는 우리들에겐 재능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재능이 있든 없든 그것을 꽃피울 수 있게 하는 것은 본인의 의지이다. 내가 좋아해야만 열심히 할 수 있고, 지쳐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으며 버틸 수 있다. 결국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규정지어지지 않았기때문에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당당하게 고를 수 있는 것 아닐까. 꿈이 있는 사람에게 행복의 요소는 잘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꿈을 향해 다가가는 그 과정 자체가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재능이 없다고 스스로 구박만 하지 말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장하다고 북돋아주는 내가 되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