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출생의 비밀에 얽힌 이야기다. 이미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닳고 닳듯이 쓰여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은 소재. 그래서 그닥 기대감이 없었다. 책을 덮고 난 지금도 이 책에 대한 실망감을 표하는 독자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결말이 몇 가지로 예상될 수 밖에 없는 소재, 걸작 서스펜스 드라마라고 쓰여진 띠지가 무색할 정도로 그 어떠한 충격적인 반전도, 치밀한 트릭도 없다. 사건의 발단이나 전개 자체가 우연에 기대어 있고 결말 부분으로 갈수록 급히 마무리 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뻔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능력 -책이 읽혀지는 속도에 몹시 놀랄 정도다.- 은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이 정도 필력을 가진 작가가 썼다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술한 구성이 아쉽다. 이제 진정 추리 소설이 맞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복선다운 복선도 없거니와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선 피의자의 편지 한 통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은 정말 맥빠지게 만든다. 이 책의 전후로 나온 최근작들도 읽기가 망설여질 정도다. 갈릴레오 시리즈, 가가형사 시리즈 등 많은 독자들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는 캐릭터를 구축하고 사회나 인간의 어두운 이면을 꼬집어 내 적절하게 표현할 줄 아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라는 철학적 난제를 출생 뿐만 아니라 재능과 행복의 연관 관계에 적용시킨 시도는 매우 신선했다. 우리는 늘 재능있는 동료를 부러워 하고 나의 재능 없음을 한탄하며 신이 나에게 주신 재능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며 산다. 재능이 있으면 내가 몸 담고 있는 분야에서 더 성공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나의 행복으로 직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책 속의 가쓰야는 말한다. 재능은 뻐꾸기알 같은 것이라고. 부모가 자식의 피에 본인이 모르게 떨어뜨린 그 알은 부모님의 것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식 본인의 것이라고 말이다. 그것을 받고 고마워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겐 너무나 간절한 재능이 누군가에겐 전혀 기껍지 않은 것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재능과 적성을 미치 점쳐보는 일이 마냥 행복한 일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일생 동안 자신의 재능이 무언지 끊임없이 탐구해 나가야하는 과정이 몹시 힘들고 지치는 일이지만 처음부터 갈 길이 정해져 있다면 그것이 태어날 때부터 사농공상의 계급이 정해져있는 것과 무엇이 별반 다를까. 그것은 기술의 이름 아래 인간의 또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고 한계를 규정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작가가 유전자 패턴을 이용하여 누군가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기술의 어두운 이면에 대해 주목한 사실은 놀랍다.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심도있게 다루었다면 그저 그런 추리 소설을 모방한 습작 같은 느낌은 덜 수 있지 않았을까. 재능과 흥미는 어떤 인간이든 피해갈 수 없는, 적어도 한 번 이상 가슴 속에 품게 되는 자아에 대한 물음표인만큼 더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유전적으로 새겨진 특출난 재능을 가진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겠지만 그들이 만약 재능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면? 그들의 흥미와 상관없는 일을 하도록 강요할 수 있을까? 너무 많은 선택지가 주어져서 고민이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좌절하는 우리들에겐 재능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재능이 있든 없든 그것을 꽃피울 수 있게 하는 것은 본인의 의지이다. 내가 좋아해야만 열심히 할 수 있고, 지쳐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으며 버틸 수 있다. 결국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규정지어지지 않았기때문에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당당하게 고를 수 있는 것 아닐까. 꿈이 있는 사람에게 행복의 요소는 잘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꿈을 향해 다가가는 그 과정 자체가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재능이 없다고 스스로 구박만 하지 말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장하다고 북돋아주는 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