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산장 살인 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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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작을 하면서도 항상 흥미진진한 소설을 선보이는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번에도 놀라운 작품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이 책은 일본에서 1990년 12월 하순 도쿠마 노벨스에서 출판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20여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소개된 것이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동안 세월의 흔적이나 고루함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물론 외부와 고립된 별장 안에서 벌어지는 밀실 살인이라는 점에서 세월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사건을 전개 시키는 작가의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촌스럽거나 진부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전혀 없다. 마치 깜깜한 극장 안에서 홀로 빛나는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독자의 시선을 온전히 빼앗아 버린다. 소설 속의 사건들 자체에만 몰입하게 만드는 고도의 흡입력을 자랑한다.

 

호숫가의 아름다운 별장으로 휴가를 온 8명의 사람들. 갑작스럽게 별장 안으로 들이닥친 2인조 은행 강도들에 의해 평화롭던 순간은 위험하고 급박하게 변해 버린다. 총으로 무장한 이들은 모두를 인질로 잡고 위협하기 시작하고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만다. 완벽한 밀실 상태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과연 은행 강도들로부터 무사히 풀려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벌어진 살인 사건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손님들과 이인조 강도 사이의 줄다리기가 숨막히게 전개되는 동시에 살인에 의한 공포와 긴장감이 더해진다. 서로가 힘을 모아도 이 감금 상태를 벗어날까 말까한 판국에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두 개의 사건이 아주 잘 맞물리면서도 복잡함없이 아주 간단명료하게 사건이 전개된다. 그러면서도 선하고 서로가 친밀해 보이던 이들에게 심리적 균열이 생기는 과정이 세밀하게 그려진다. 등장 인물들의 심리 변화에 주목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이 별장안에 인질로 잡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과연 과거 교통 사고로 사망한 도모미의 죽음에 얽인 진실은 무엇인가, 별장 안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동기와 그 진범은 누구인가, 그리고 은행 강도들로부터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어진다. 일단 빠져들기 시작하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그만큼 가독성이 훌륭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훌륭한 추리 소설이다. 짜릿한 반전도 대단하지만 결말이 깔끔해서 아쉬움이 전혀 남질 않는다. '아, 정말 책 한 권 신나게 잘 읽었다' 라는 느낌이 든달까?! 가가 형사 시리즈와 같이 히가시노의 본격 추리 소설이 그리웠던 나에게는 정말 단비같은 작품이었다.

 

SF풍의 작품이나 범죄 심리 소설, 사회파 소설 같은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작품들을 다소 실망스럽게 여기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통적인 느낌의 추리 소설 작품을 꾸준히 쓰는 작가들보다 훨씬 흥미로운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항상 다음에는 어떤 장르를 섞어서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증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전력질주로 달리듯 이 작품을 읽었음에도 벌써 그의 다음 작품이 만나고 싶다. 그는 언제나 팬들을 목마르게 만드는 작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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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보통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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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제목이 맘에 든다. 입으로 소란한 보통날이라고 반복해서 읇조려보면 묘하게 마음이 일렁인다. 보통날임에도 무언가 소소하지만 특별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설레임! 다른 이에겐 별거 없이 똑같이 흘러가는 어제와 같은 하루지만 나에게만은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런 일상 말이다. 언젠가부터 여느 사람들의 일상을 잃어버린 나에겐 특히나 가슴 저미게 다가오는 말이다. 뭐 다른 사람들이라고 유별난 일상을 보내겠냐만은, 내가 부러운 것은 그냥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 일 자체가 그렇다.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지 않다.- 퇴근해서 한 시간이라도 티비를 보거나 책을 읽고, 아침을 함께 먹을 가족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에겐 주말도, 여유도 전혀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정말 와닿았다. 소란한 보통날은 어떤 날인가, 이런 행복을 누리는 이들은 어떤 사람일까. 책 속에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독특하다면 독특하다할 그런 가족의 일상이 담겨 있었다. 어쩐지 고즈넉한 곳에 위치한 것 같은 아담한 이층 주택 안에는 아빠, 엄마, (애정결핍과 폭식증 증세를 가진) 다소 걱정스러운 둘째 언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직 상태인 나, 여고생 혹은 미망인 프라모델을 만드는 중학생 남동생, (곧 집으로 돌아오게 될) 시집 간 첫째언니가 살고 있다.이 보통의 가족에게는 버스에 탔을 때는 서로 남인 것처럼 행동하기, 누군가의 입학식에는 다같이 가족사진 찍기, 12월 첫째 토요일엔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기 등 재미난 룰들이 정해져 있다.

가족들은 수시로 티타임이나 식사 시간을 통해 대화를 나눈다. 모두가 모이진 않더라도 하나 둘 이상씩은 꼭 모여 매일 이야기를 나눈다. 나름의 대가족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행간에 느껴지는 대화 사이의 침묵 또한 그들에게는 자연스럽다. 어떤 말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편안함이 있달까?! 대부분이 신변잡기적이고 일상적인 대화로 이루어진 것 같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충만하다. 설령 가족 모두가 알고 있더라도 누군가의 고민이나 비밀은 본인이 먼저 말하기 전에는 모르는 척 해주고 말이다. 가족 간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사적 영역의 선을 정확하게 지키면서도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장난스럽게 잘 소통해 나가는 것이 부럽다. 부모님의 권위를 이용하여 절대 다그치거나 캐묻는 법이 없다.

이런 부분들이 다소 한국의 현실적인 가족상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일단 자식의 사생활 보호라는 것 자체가 생소할 뿐만아니라 가족 간의 대화의 단절, 소통의 부재 자체가 큰 문제다. 요새 부모님들 치고 자식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꼴을 차분히 지켜보실 분이 얼마나 계실까. 대학은 당연히 가야 하는 곳이고, 꿈과 상관없이 어떠한 일이든 -대기업이나 공무원이면 완전 좋고- 밥벌이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니 말이다. 딸의 갑작스런 이혼이라든가, 별스런 취미, 혹은 미혼모 문제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아직 우리 나라에서 가족 간에 이 정도의 관용과 이해는 불가능한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이 더 따스하게 다사오고,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미래의 롤모델로 삼고 싶다. 언제나 대화하고 싶은 열린 부모가 되고 싶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형제 자매를 많이 만들어 주고 싶다. 요새 같은 불황에 정말 꿈같은 이야기지만 ^_^;;

너무나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에 치이고 정신없게 살고있는 사람들에게는 꿈꾸는 듯한 편안함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고요한 밤 잠자기 직전 펼쳐들기 딱 좋은 책이다. 읽다가 중간에 잠이 들어 앞의 내용을 잊어도 괜찮다. 늘 새로운 마음으로 조용하게 흘러가는 일상에 아주 조금, 아주 조금 소란한 날이 생긴 것처럼 기분 좋게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어쩌면 읽던 책을 덥고 책 속의 '나' 처럼 밤산책을 나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밤의 적막과 아늑함을 온몸으로 느끼기 위하여.

문득 정말 별 것도 아닌 걸로도 한 권의 소설이 쓰여질 수도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적이면서도 안락한 그 느낌. 그 만큼 에쿠니 가오리의 필력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밤의 전철은 참 아름답다. 환하고 따뜻해 보인다. 플랫폼을 올려다보다가, 나는 황홀감에 젖는다. 분수에서 울리는 낮은 물소리, 역내 방송과 발차를 알리는 부드러운 벨 소리, 바람 소리,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소리. 나는 안심하고서, 그대로 잠들어버릴 것처럼 노곤해진다. 주머니에 두 손을 쑤셔 넣자, 껌 종이가 손가락에 닿았다. 12시 45분에 떠나는 마지막 전철을 보내고, 사람들의 흐름이 끊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일어섰다. 폐 안에 듬뿍 밤을 들이쉰 나는 기운이 넘친다. 산책을 하면 늘 그렇다. -p. 53


때로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시간에 대해, 그동안에 생기는 일과 생기지 않는 일에 대해, 갈 장소와 가지 않을 장소에 대해 그리고 지금 있는 장소에 대해. 대개는 낮에 인생을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날씨가 좋은 낮. 싸늘한 부엌에서. 전철 안에서. 교실에서. 아빠를 따라간 탓에 혼자서만 심심한 책방에서. 그런 때, 내게 인생은 비스코에 그려진 오동통한 남자애의 발그레한 얼글처럼 미지의 세계이며 친근한 것이었다. 내 인생. 아빠 것도 엄마 것도 언니들 것도 아닌, 나만의 인생. -p.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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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니의 희귀본과 중고책 서점 - 어느 사이코패스의 사랑
캐럴라인 케프니스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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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노란색 표지 위에 파란 글씨로 쓰여진 무니의 희귀본과 중고책 서점. 책과 관련된 어떤 신비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궁금증이 생긴다. 책을 집어들고 표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따스한 추억담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 눈에 익숙한 해시태그- #어느 싸이코패스의 사랑- 를 보면서 어떤 내용일지 감을 잡는다. 주인공인 싸이코패스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현대 사회의 병폐인 sns를 이용하여 그에 대한 정보를 얻고 접근한 뒤 살해하는 내용이지 않을까 추리해 본다.

정답이다. 주인공 조는 심각한 스토커이며 싸이코패스다. 자기 멋대로 여자를 운명의 상대로 점찍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자 한다. 그녀가 사는 곳을 알아 내고, 그녀가 잃어버린 핸드폰을 정말 운.좋.게. 손에 넣어 이메일, 문자, sns계정을 전부 뒤져보며 그녀에 대한 정보를 얻어 간다. 그녀의 집에도 몰래 침입하여 은밀하게 감춰진 그녀의 모든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낀다. 정말 역겨운 변태 자식이다. 그런데 이게 왠 일?? 집착의 대상인 벡이 약쟁이 전 남친때문에 과음한 어느 날, 조는 운명적으로 지하철 선로 아래로 떨어진 그녀를 구해주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밀당을 반복하며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조는 본인이 운과 노력을 통해 벡을 잡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조가 벡의 어장 안으로 자연스럽게 뛰어든 것뿐이다. 그녀는 남자를 조련하는데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해야 상대에게 성적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지 매우 잘 아는 여자니까. 벡은 밀당 전문가이기 때문에 조를 사랑하는 척 하면서 끊임없이 조의 마음을 가지고 논다. 잡힐 듯 말듯 한 레이스를 지루하게 이어 나간다. 그래서 중간쯤 되면 책을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내가 대신 가서 벡을 총으로 쏘고 싶을 정도로 조보다 벡이 더 나쁜 인간처럼 보인다. 뼛 속까지 속물인데다가 타고난 거짓말쟁이에, 바람둥이다.

바로 이게 여느 싸이코패스를 다룬 소설과 다른 점이다. 두 사람이 서로 이어진다는 것, 그리고 상대 여자인 벡도 만만치 않은 정신증 환자라는 것! 그녀는 경계성, 자기애성 성격 장애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성적 충동을 조절하지 못 한다. 누구에게도 정착하지 못 하고 연인에게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끼지 못 하는 타입이다. 끊임없이 남자들에게 추파(?)를 던져 그들을 굴복시키는 게 이 여자의 연애 방식인 것이다. 심지어 이 여자의 주변 인물들도 정상이 아니다. 전 남친 밴지는 약물 중독에 머저리, 절친 피치는 강박증이나 망상 장애가 있고 여주인공 벡에게 사랑을 느낀다. 교묘한 방법으로 벡과 조의 사이를 방해하며 끊임없이 거짓 사건을 만들어 벡을 자신의 옆에 묶어두려고 한다. 그녀의 집착과 지배욕이 무섭게 느껴지지만 벡은 한사코 도움이 필요한 친구라고 주장하며 그녀와의 절친놀이를 계속한다. 물론 피치의 부유함과 집착이 좋아서 딱풀처럼 붙어 있는 거겠지만. 게다가 전담 심리치료사 닉키는 불행한 결혼 생활, 밴드의 실패, 석사 학위 소지자로서 느끼는 패배감, 자신감 결여, 우울증 등을 앓고 있다. 대체 누가 누구를 치료하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상대적으로 벡이 닉키보다 훨씬 똑똑하고 정신적으로 강인해 보인다.

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답답함과 두려움이 커진다. 대체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 정신증 환자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걸까. 누구나 위험하게 생각하는 싸이코패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평범한 얼굴의 탈을 쓴 사람들인 것 같다.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해서 누군가를 상처 입히진 않지만 본인의 이익을 위해, 혹은 정서적 안정과 만족감 -일시적으로라도- 을 위해 거짓말을 일삼고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위험하긴 매한가지다. 다른 이의 삶에 쥐도 새도 모르게 가볍게 들어와서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는 흥미가 떨어지면 유유히 다른 먹이를 찾아 떠나는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 우리가 영화나 책 속에서 연쇄살인범으로 만나는 싸이코패스의 비율은 실제로 굉장히 낮다고 한다면 조같은 인물과 마주하는 것보다 피치나 벤지, 벡같은 인물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지 못 하며 불운의 기운을 나눠주고 끊임없이 누군가의 인생을 좀 먹는 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실제 sns에 들어가 보면 우리는 마치 집단적인 -가면-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 같다. 게시물을 올리면 올릴수록 삶의 공허함은 더욱 커지며 sns 속 삶과 실제의 현실이 양분되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듯한 이중적 느낌도 든다. 내 삶을 더욱 화려하고 멋지게 보.이.게.끔 만들어주는 환상에 중독되어 끊임없이 # 뒤에 써 붙일 말들을 헤매고 다닌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실제로 책 속에서 벡이 핸드폰을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도 조는 그녀에 대한 개인 정보들을 충분히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트위터.. sns를 검색하면 누구나 계정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거기에 올려진 글이나 사진들을 통해, 그리고 태그로 연결된 지인들의 계정을 통해 개인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생활 패턴이나 자주 만나는 친구들에 대한 정보, 현재의 삶에서 고민하거나 집중하고 있는 부분들... 누구든 그 열린 정보를 열람할 수 있으며 조처럼 기회를 노리다가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sns를 통해 얻은 정보를 적절히 사용하면 두 사람에게 공통적인 관심사가 존재하며 우리는 잘 맞는 사람들이란 인상을 심어줄 수가 있다. 아주 섬뜩한 일이다. 심지어 트위터 계정을 통해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올림으로써 살인도 자살로 둔갑시킬 수 있다니, sns의 위험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처럼 작가는 현대 사회가 않고 있는 많은 병폐들을 싸이코패스의 눈을 통해 적나라 하게 보여준다. 정말 위험한 것은 연쇄 살인마가 아니라고, 내 일상에 숨어 있는 착한 가면을 쓴 지인들과 우리가 집착하고 있는 sns가 더 어마무시하다고 말해준다. 중간에 지루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여러모로 흡입력 있고 강렬한 소설이다. 특히 작가의 필력에 놀라게 되는 부분은 어느 새 나쁜 놈인 조에게 감정적으로 동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의 시선으로 세상과 벡을 바라 보게 되고, 나쁜 벡이 장난 그만치고 얼른 조의 마음을 좀 받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된다. 나쁜 놈을 응원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누구나 선한 본성과 악한 본성을 모두 지니고 있는 법이니까, 오히려 이렇게 분출함으로써 정화 작용이 되는게 아닌가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 무니의 후속작을 쓰고 있다는 작가의 차기작이 몹시나 기다려진다!!

#무늬의희귀본과중고책서점 #케럴라인 케프니스 지음 #좀다르고섹시한 #싸이코패스와정신증환자들 #성격장애를가진지인은누구?? #후속작이빨리보고싶어

하지만 좋아하는 건 소유해야 하는 거야. 단순한 사실이지. -p.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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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아홉,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서진 지음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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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대 간 갈등은 그 어느 시절보다 심화되어 있는 것 같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진 않았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구세대와 많은 스펙을 갖췄음에도 기회 조차 얻기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신세대의 입장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본인들의 경험담을 늘어놓으며 신세대들의 능력 부족으로 단정짓는 것도, 현 세태를 만든 구세대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는 것도 다 각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논리이다. 하지만 안정된 직장과 가정을 가지는 것을 한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만드는 기성 세대의 입장은 현 새대의 반감을 극대화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삶의 양식을 결정하는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일 뿐 그것이 개인의 성실성과 책임감을 판단하는 잣대로 작용한다는 것이 매우 불합리적으로 보인다. 게다가 직장을 얻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어느 세월에 결혼하고 아기까지 낳아서 잘 키워볼 생각을 하겠는가.

안정으로 가는 정해진 단계와 길을 따라 걸으며 본인의 나이에 걸맞는 사회적 위치에 도달할 것을 강요하는 요새 같은 풍토에서 보자면 이 책은 실패자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박사과정을 마치지 못 하고 중퇴, 토익 점수를 위해 떠난 어학연수도 아닌 도피성- 단순히 2년간 캘리포니아로 쉬러 갔다고- 미국행, 돌아와서 얻은 직장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디잡지 편집장, 최종적인 직업은 빈둥대는 글쟁이이자 소설가. 이것만 봐도 이 시대의 아웃사이더이자 루저 같아 보인다.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 한 채 매일 글을 끄적거리며 인생을 소요하는 것이 한심해 보일 수도 있다. 책을 읽기 전부터 예술가의 탈을 쓴 베짱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그를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다 읽어본 결과 성공적인 위치에 도달해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 적어도 내가 만나본- 행복해 보이고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이 묻어난다. 그럴싸 해보이게 가식적으로 쓰여진 느낌도 전혀 없다. 뽐내기 위함이 아닌 아주 담담하고 진솔하게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 한다. 누군가의 소중한 일기장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것 같다. 소설가의 길을 걸으면서 굶어 죽지도 않고, 원할 때 몇 달씩 여행도 다니고, 피아노도 치면서. 비록 남들이 원치 않는 옥탑방에서 살고 있을지라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음악도 만들고 글도 쓰면서 지내면 남부러울 게 있을까. 나와는 다른 그의 삶이 부럽고 내가 하고 싶었던 그 일은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보게 된다. 비록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일을 때려 치우고 자유인이 될만큼 나는 용기가 충만하진 않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배워 보고 그것을 일상의 낙이자 재미로 만든다면 평범한 내 삶에도 행복이 깃들 것 같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나,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되면 그 순간 재미가 반감된다고. 나도 글을 써보고 싶고 음악을 해보고 싶지만 그것은 취미 생활로 남겨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불안과 초조가 팽배해 있는 답답한 현실에서 이 책은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느낌이다. 조금은 마음 먹은대로, 하고 싶은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자라난다. 어쨋든 최소한 굶어죽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문득 안정과 맞바꾸어 버린 자유의 달콤함이 그리워진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남들이 말하는 평평한 길이 아닌 울퉁불퉁한 길이 될지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걷는다면 나에게만 보이는 그런 보물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살면 보통의 워너비처럼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집과 차를 소유한 채 살기란 어렵지만 말이다. 자유의 대가로 그 쯤은 감수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에겐 분명 힘이 되어줄 것이다.

단, 이 분의 글쓰기 실력을 과소평가 해서는 안 된다. 그에게는 부단한 노력이 있어 왔기에 지금의 삶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뿅 하고 소설가가 된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게 오랜 시간 꾸준히 노력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일기 쓰던 시절에도 일기의 말미에 소설을 연재했고, 대학 시절 아침마다 글을 썼다고 한다. 공모전이나 작가로서의 삶을 기대하며 쓴 것이 아니었다. 그냥 소설이 좋고, 글 쓰는 일이 좋아 습관적으로 해왔던 것이다. 그 와중에 단편소설이 입상도 하고, 본인이 읽고 싶은 소설을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것 같다. 역시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은 없다는 것, 그리고 꾸준함과 노력 없이 되는 일도 없다는 것! 그것을 간과하진 말아야 겠다.

소원을 이루는 나만의 비밀이 있다. 핵심은 비밀 유지와 반복이다. 남에게 소원을 이야기해버리면 그 바람은 공기 중에 희석되어버린다. 어떤 사람은 내 소원을 비웃기도 하고 헛된 것이라고 쉽게 말하기도 한다. 기가 꺾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남에게 말하지 않는다. (......) 다만 매일 밤 그것을 이루는 상상을 해야 한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1년이고...... 이룰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 바람이 이루어진다. -p. 17~18


우리는 실패를 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실패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실패의 조각들은 녹지 않고 몸에 차곡차곡 쌓이고 결국 그것들이 나를 만든다. 실패한 일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 무용담처럼 떠벌릴 필요도 없다. 다만 실패든 성공이든 또 다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것. 그러니 실패의 기억은 그냥 쓴 웃음으로 넘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것. -p. 26

누구는 취직해서 돈을 벌고 있고 누구는 벌써 결혼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학생인 채로 방바닥에 누워있다. 여기서 휴학이라고 해버리면 학생도 뭣도 아니게 되는데,그러면 딱히 갈 곳도 없다. 불러주는 곳은 더더욱 없다. 누구는 계속 자기 소속,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나는 계속 벗어나려고만 한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바퀴에서 툭, 혼자 떨어져 나왔다. 어른이 되었다기보다는 혼자가 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홀가분하고 하고 어쩐지 쓸쓸하기도 했다. -p. 31~33

어떤 장래희망이든 자기가 진정 좋아해서 시작한다면, 꾸준히 한다면, 우리가 걱정하는 일들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세상의 기준에서 안전하다는 길도 따지고 보면 전혀 안전하지 않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재능도 없고, 하기도 싫은 일을 안전하다는 이유로 하는 것이다. -p. 46

늘 하고 싶던 것은, 어느 순간 마법처럼 그걸 해볼 기회가 생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삶의 구멍이다. 조금만 손을 대도 뿅 하고 뚫어지는 구멍. 그게 많아야 숨을 쉴 수 있다. 그러면 마법은 그 구멍들 사이로 슬며시 들어오기 마련이다. -p. 80~81

오늘 고른 숙소가 매번 최고의 숙소가 될 수 없듯이 내가 쓰는 글이 매번 명작이 될 수는 없을 테니까. 숙소를 찾은 것도 찾을수록 노하우가 생기듯 글쓰기에도 실제 노하우가 더 중요한 것이다. 살아가는 방식도 비슷한 것 같다. 미리 내일을 걱정하기보다는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 고로 쓸데없는 걱정은 오늘부터 반품하고 싶다. 그것도 착불로. -p. 108

`소설을 어떻게 쓸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은 소설을 쓰기 싫다고 하는 말과 똑같다.` 소설가 모리 히로시가 한 말을 칠판에 적었다. (......) 소설을 쓰고 싶으면 어떻게든 쓰면 된다. 한글만 알면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다. 작곡하고 싶으면 그냥하면 된다. 악보를 읽을 수 없어도 화성학을 몰라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인생을 살고 싶으면 그냥 살면 된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시도하고, 실패하고, 그걸 토대로 배우고 다시 시도하면 되는 것이다. -p. 144

사람들이 미친 짓이라고 혀를 찰 때, 묵묵히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끝까지 하는 사람이 결국엔 성공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부럽다. -p.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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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독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이 사는 한, 거기에는 반드시 독이 스며든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들이 바로 독이기 때문에. -p. 526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주제는 '독' 에 관한 이야기이다. 살인에 쓰이는 독, 인간이 마음에 품은 독, 자연이- 특히 땅- 품은 독, 이렇게 세 가지의 독이 주요한 골자를 이룬다. 언뜻 보면 한 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시 미미여사답게 이러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볍게 증명한다. 추리소설이 특유의 긴장감이나 범인과의 숨막히는 두뇌싸움 같은 것은 없다. 그저 '스기무라' 라는 사람의 일생 중 어느 한 부분을 잘라 그 안을 편안하게 들여다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만큼 이 주인공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독에 관련된 일들이 자연스럽게 연계되어 있다. 산만하다는 느낌없이 조직적이고 개연성 있게 전개된다.


다만 쫀득쫀득한 느낌의 스릴 넘치는 소설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실망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이 사람의 일상은 너무나 평범하고 평화롭다. 심지어 가끔 장인어른과의 대화나 집에 관한 묘사를 제외하면 재벌가의 막내딸과 결혼했다는 -일명 땡잡았다!!- 느낌마저 들지 않는다. 그냥 지나치게 행복에 겨운 평범한 샐러리맨의 삶 그 자체랄까.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고, 느릿하게 흘러가는 직장 생활, 매사에 사려깊고 배려넘치는 성격까지.. 오히려 특징이 너무 없다보니 되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인물이다. 회사와 가정에 찌들지 않은데다가 욕심이나 야망도 없고, 온화하고 선하기까지한 성품을 지녔으니. 스기무라에 대한 외양 묘사는 전혀 나오질 않는데 어쩐지 반듯한 훈남 느낌으로 생겼을 것 같다. 지나칠 정도로 이 사람의 인생에 흠잡을 점이 없다. 오히려 너무 평온한 그의 삶이 이질감을 불러 일으키고 질투가 나기도 한다. 이런 사람 옆에 있다 보면 아둥바둥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나같은 사람은 얼마나 초라해 보일지.. 성격이라도 안 좋으면 위안이라도 삼겠는데 그도 아니니 성질도 못 부리고 여러모로 답답한 지인이 될 것 같다. 한이 많고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이 옆에 있다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 이 사람을 향한 독이 스며들어 언제 어떻게 발산해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본인은 자각을 못 하지만 이 사람 주변에 '독' 과 관련된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인 '스기무라' 는 탐정도 아니거니와 하물며 저널리스트도 아니기 때문에 사건 해결에 접근해 가는 방식이 흥미진진하진 않다. 우연과 인연들 덕분에 정보를 모으고 그의 감이나 상상력(?) 덕분에 조금씩 진실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범인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박진감 같은 것은 없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관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그만큼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심리나 삶을 대하는 자세가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학교에서, 혹은 회사에서, 동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그대로 책 속의 인물로 변모해 있다. 그래서 책을 손에서 놓기가 쉽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범인의 정체가 궁금해서 그러한 것은 아니다. 그것보단 독을 품었던 사람들의 결말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독은 어떠한 모습으로 해소되었을까, 만약 그 독이 해소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떠한 마음으로 다시 제 삶으로 돌아갔을까? 더불어 좋.은.사.람.으로만 보이는 스기무라 역시 독을 품고 있을진대, 과연 그것이 무엇일지 더 분명하게 알고 싶어진다. 이 또한 세상에 찌든 나와 그 사이의 기시감때문에 솟아난 질투이자 또 다른 독일지도 모른다.


책을 덮으며 나는 어떠한 사람의 모습인지, 나는 어떠한 독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 진지하게 반추해보게 된다. 내가 품고 있는 독의 이름이 궁금하다.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막연한 공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다루어야 그 독이 나 자신에게, 혹은 타인에게 더 이상 뿜어나오지 않게 고민해볼 수 있을테니까.

어차피 남을 자기 마음먹은 대로 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니까. 그렇다: 우리는 그런 인간을 가리켜 `권력자` 라고 부른다. -p. 306



이렇게 복잡하고 번거로운 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도 없이, 때로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거나 함께 사는 사람을 기쁘게 하거나, 적어도 새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 제대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훌룡하죠. (......) 그렇게 살 수 있다면 훌륭한 사람이죠. `보통` 이란 요즘 세상에선 `살기 힘들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와 동의어입니다. -p. 396

불행이란 대개의 경우 그런 거죠. 이쪽을 바로 세우려 들면 저쪽이 기울어지는 식으로 서로 엇갈려 있죠. 마치 헝클어져 풀리지 않는 실처럼. -p. 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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