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물일기 -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존경해
진고로호 지음 / 어크로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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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더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간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설명으로 여러 가지가 제시되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새로운 경험의 감소다. 어릴 때는 대부분이 새롭게 하게 되는 일이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게 되고 이것은 머릿속에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경험은 개개의 기억으로 저장되지만, 나이가 들수록 별개의 경험이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되는 일이 많아지게 된다. 일상이 반복되며 덩어리화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냥 시간이 훅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화학적인 이유도 존재하는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뇌의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 분비가 감소하게 되고, 이는 새로운 자극에 대한 민감도를 감소시킨다. 이것은 기억의 강도를 약해지게 만들고,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결국 우리가 물리적인 시간을 길게 늘려서 살 수 없다면 마음 시간을 조절하는 방법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가더라도 새로운 것들을 자꾸 시도하고 무모해 보이는 도전일지라도 일단 하고 보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닐 텐데, 삶을 살아가면서 그 방법을 매우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꾸준히 실천해오고 있었다. 바로 미물일기를 쓰면서 말이다.

저자는 힘들 때도, 기쁠 때도, 무기력할 때도 언제나 자연으로 나가 걷고 또 걷는다. 그리고 자연의 내음을 한가득 들이키고 음미하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미물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본다. 우리는 반복되는 바쁜 일상을 살아간다는 이유로 무심히 지나치고 마는 것들을 애써 찾고, 지켜보며 기록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경험과 자극에 노출되게 되고 마음 시간이 점차 느려지게 된다. 무엇보다 변화무쌍한 자연의 얼굴을 마주하다 보면 똑같은 물리적인 시간 동안 시간의 변화를 더 잘 느끼게 되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물리학적은 연구 결과로 밝혀진 것으로 어린아이가 어른보다 시간이 천천히 간다고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저자가 관찰하는 대상을 미물이라 칭한다고 해서 그들을 하찮게 바라보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애정 어린 시선으로 관심 있게 지켜본다. 보통은 인간에 비하여 보잘것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미물이란 단어를 정의하지만, 거대한 자연의 품 안에서 우리 또한 미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저자는 자연으로부터 겸손해지는 법을 배운다. 특히 자연 속 일부로서의 나로 존재한다는 감각을 통해 자신이 점점 작아지고, 그만큼 자신을 괴롭게, 속상하게 하는 것도 또한 같이 작아지는 경험을 한다. 하여 지금의 생존에 집중하는 미물들을 통해 현재에만 집중하는 방법을 배운다. 저자는 미물을 관찰하고 자연을 만끽하며 하나씩 삶의 지혜를 깨우치고 건강한 삶의 방식을 체득해 나가는 것이다.

저자는 미물일기를 씀으로써 새로운 앎과 깨달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고, 그 누구보다 현재라고 주어진 그 시간을 풍요롭게 보내고 있었다. 살아가면서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별로 없음에도 나는 동등하게 주어진 시간마저 유의미하게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라도 과거에 대한 미련, 미래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현재에 머무를 수 있도록, 그리고 마음 시간을 늦출 수 있도록 저자처럼 미물일기를 써봐야겠다. 나의 첫 번째 타깃은 꿀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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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닮아가거나 사랑하겠지 - 김동영 산문집
김동영 지음 / 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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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닮아가거나 사랑하겠지’라는 제목을 듣자마자 이유 없이 마음이 끌렸다. 평소 사랑 이야기라면 일단 배제하고 보는 나인데, 이 책만큼은 궁금증이 일었다. 무심하게 툭 내뱉는 말속에 담긴 다정함과 우리라는 관계에 대한 믿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가 살아오면서 만나온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샛노란 표지의 책을 받아보았을 때, 책의 띠지에는 ‘내게 세상을 가르쳐준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적혀 있었다. 과연 그가 만나온 여성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그녀들은 그에게 삶의 어떤 부분을 알려줬을까 무척 궁금했다.

책 속에는 어찌 보면 평범하고 어찌 보면 너무나 특별한 여성들이 가득했다. 의외의 인물인 암컷 반려견부터 옛 여자친구, 상사를 포함한 직장 동료들, 여행지에서 만난 여성들이 등장했다. 그녀들과 관련된 한 편, 한 편의 이야기가 너무나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했다.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 놓은 책도 아닌데 한 장, 한 장 빠르게 읽고 넘기기가 어려웠다. 긴 여운이 남거나 생각에 잠기는 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다가도 그녀들이 건네는 위로에 마음이 뭉클해지고, 그녀들이 기꺼이 알려주는 삶의 지혜를 감사히 받아들였다. 나 역시 저자와 마찬가지로 그녀들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2가지였다. 눈앞이 침침한 할머니께서 손가락의 감각만으로 생선 살을 발라주시던 이야기와 후쿠시마 마을에 남겨진 동물들을 구조해 함께 살아가는 메구미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이것이야말로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 가장 순수한 사랑의 모습이 아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그분들처럼 내 안에 사랑이 가득하고,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나누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부끄럽게도 그렇진 않다. 다만 그분들을 닮아가려는 노력만큼은 해나갈 수 있을 듯하다.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물론 책 속에는 여자를 함부로 화나게 만들면 안 된다는 진심 어린 충고를 담은 이야기도 등장한다. 웃어야 할지, 찡그려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바로 그의 외도에 대한 복수로 온 집안에 김치 테러를 한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였다. 맛있다고만 생각했던 김치가 그토록 위력적인 복수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 김치 하나면 빨간 얼룩 외에도 좀체 사라지지 않는 시큼한 냄새를 집안 가득 남길 수 있고, 각종 가전제품을 망가뜨릴 수 있다. 나 역시 언젠가 치미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응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이 방법을 써봐야겠다. 아마 쉽게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뭐랄까. 저자의 모든 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 이전에 읽었던 몇 권의 에세이에 비해 덜 우울하고, 덜 무거운 느낌이다. 나는 오히려 그 점이 좋았다. 예전에는 저자가 글에 담아 내는 우울과 슬픔, 무기력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지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는 마음의 병을 호소하는 생선 작가님이지만, 조금은 안정된 마음으로 잘 지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훌륭한 여성들로부터 세상을 배우고 살아간다면, 저자는 삶에서 주어지는 많은 장애물들을 슬기롭게 넘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랄까. 저자의 모든 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 이전에 읽었던 몇 권의 에세이에 비해 덜 우울하고, 덜 무거운 느낌이다. 나는 오히려 그 점이 좋았다. 예전에는 저자가 글에 담아내는 우울과 슬픔, 무기력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지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는 마음의 병을 호소하는 생선 작가님이지만, 조금은 안정된 마음으로 잘 지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안심되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훌륭한 여성들로부터 세상을 배우고 살아간다면, 저자는 삶에서 주어지는 많은 장애물을 슬기롭게 넘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그녀들 덕분에 더운 열기에 다 녹아내린 듯 끈적거리고 흐느적거리는 마음에 뽀송뽀송하고 향긋한 파우더가 뿌려진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 세상을 가르쳐준 여성들에 대해 하나씩 떠올려 보게 된다. 나도 그녀들을 닮아가고 사랑하고 싶다, 오랫동안. 더불어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그토록 멋진 여성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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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의 일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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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열린 결말을 싫어한다. 이 곳만 보고 허겁지겁 달려왔는데 끝이 없다니 그것만큼 허무한 일이 있을까? 그럼에도 이 소설은 열린 결말로 인한 맥빠짐 보다는 섬뜩함에 몸서리 치게 된다. 마지막까지 정말 긴장의 끈을 놓지 못 하게 하는 작품이다. 특히 여성 독자들은 책을 읽는 내내 서늘함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게 될 것이다. 작금의 새태에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왜 그러한 결말을 그렸을까 의도가 궁금하다. 여러모로 흥미진진한 소재와 쫀뜩쫀뜩한 전개가 인생적인 책이었다. 여성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ㅅ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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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터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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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와 스토리 전개 모두 흥미진진하다. 특히 야구 팬들에게는 더 짜릿함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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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없는 남자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하윤숙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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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H. 곁에 있으면 기억상실증 환자의 미소가 천진난만하고 진심어린 것으로 느껴지기보다 오히려 절박하고 애처롭게 다가온다. 그의미소는 물에 빠진 사람이 어떻게 구조될지, 무엇이 자신을 구조해줄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누구라도 자신을 구원해주기를 간절히 원하는 미소다.
그는 내 안에서 무언가를 보고 있어. 구원의 희망을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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