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사 1 철학적인 추리 소설

재수사 1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8월

추리 소설 덕후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추리 소설을 좋아해서 궁금한 것은 꼭 찾아서 읽어보는 편이다. 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믿고 보는 취향 저격의 작가들도 있고. 그렇게 하나둘 읽어 가다 보면 추리 소설에도 굉장히 다양한 결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중에서 내 취향이 무엇인지 점점 또렷해진다. 범인이 누구인가 혹은 어떻게 완전 범죄에 도전하는가와 같이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왜’에 집중하는 소설이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를 제외하고, 도대체 어떤 악의를 품어야 보통 사람으로 하여금 살인을 저지르게 만드는 것인지 궁금하다.

소설은 소설일 뿐, 허구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간혹 뉴스에서 들려주는 실제 살인 사건이 더 비현실적이고 드라마틱하게 느껴질 때도 많으니까. 오히려 탄탄하게 잘 쓰인 소설 한 편이 더 현실적이고 논리적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어쩌다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납득은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장강명 작가님의 신작 ‘재수사’는 읽는 내내 호기심을 몹시 자극했다. 실제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형태였고, 도대체 ‘왜’를 시작으로 정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문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그냥 중간은 대충 훑고 얼른 2권으로 넘어가 끝을 먼저 보고 나면 개운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일단 이 소설은 약 20여 년 전의 미제 사건을 재수사하는 형사팀의 이야기와 범인의 독백이 번갈아 가면서 보여준다. 그런데 이 범인의 독백이 상당히 흥미롭다. 범인이 누구인지도 궁금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 궁금하게 만든다. 그는 범행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하진 않는다. 살인 전과 후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으며,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뒤 어떻게 수사에 혼선을 주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만 등장할 뿐이다. 적어도 1권에선 그렇다. 되려 살인과 관련하여 윤리와 도덕, 사회를 지탱하는 법과 규범에 대한 자기 생각을 펼치는 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살인을 합리화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하고, 기존의 형사사법 시스템을 뒤엎을 궁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계몽주의로부터 출발하여 지금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사회의 근간을 이루기까지 등장했던 많은 사상들의 문제점과 한계를 꼬집고 비웃는다. 결국 그는 철학적 사고를 통해 어떤 이론, 혹은 새로운 사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 같다. 어떤 거창한 말을 갖다 붙여도 그는 다시 한번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명분을 찾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그가 완성할 새로운 사상이 몹시 궁금하다. 과연 살인이 허용될 수 있으면서 논리적으로 완전무결한 그런 사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과연 그는 또 다른 살인을 저질렀을까. 만약 그렇다면 첫 번째 살인과 두 번째 살인의 이유는 무엇일까. 도예도프스키의 작품 속 인물들을 이해하게 되면 그 역시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얼른 재수사 2권을 빨리 읽고 싶다. 물론 형사들이 멋지게 이놈을 잡았을지, 어떤 과정을 통해 법의 심판을 받게 했을지도 몹시 궁금하고!! 어쨌든 정의가 승리하는 결말이기를 소망하면서 1권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