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안식처, 빠이 - [Pai]: 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노동효 지음 / 나무발전소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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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행책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다니며 책을 쓰는 사람들의 삶을 질투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여행이라고 떠나본 게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니까. 여행자의 마음이 잘 와닿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여행을 하면서 쓰여진 글들이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느껴져서 현실에 파묻힌 나에게는 다소 오글거리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한 해 틈나는대로 사모은 여행책이 20권은 된다. 잘 펼쳐보지도 않을 거면서 현실 도피, 대리 만족을 위해 사들인 것들. 금전적으로는 충분히 떠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발목이 꽉. 잡혀버린 지금에 대한 불만을 가득 담아 전투적으로 구입, 또 구입!

사진이라도 보자는 마음에 집어들은, 순전히 '짜이' 랑 어감이 비슷해서 고른 빠이 여행기. 오래 전 홍대 거리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산들로 둘러쌓인 유토빠이. 이름만 들어도 사랑과 평화가 흘러 넘치는 느낌이다. 빠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마을을 사랑하고 아끼는지 잘 알 수 있다. 책 곳곳에 실린 빠이의 모습은 아름답고 여유가 느껴졌다. 히피들과 예술가들의 혼이 느껴지는 아기자기한 작품들과 자유로운 가운이 가득한 거리의 모습들은 늘 급한 내 마음도 느긋하게 만들어주는 듯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빠이를 찾아온 여행객들, 빠이의 거주자들과의 인터뷰였다.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면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나." 라고 대답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돈, 명예, 지위와 같은 상대적인 가치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길을 걸어온 그 자체, 그리고 현재 누리고 있는 소소한 삶의 모든 것에 대한 만족감과 행복감이었다. 사람들마다 추구하는 것과 가치관이 다르지만 어떤 상태이든 가장 중요한 건 현재 자신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믿음인 것 같다. 그것이 만족감과 행복감의 척도라고 생각하는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특히 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놓치고 살아온 것 같다. "나" 에 대한 신뢰와 자긍심이 충분하지 않으면 어떤 것들을 쌓아 올려도 그것은 비누방울 같을 것이다. 빛나보이는 것은 찰나, 이내 사라지고 허무해지고 마는 것.

우리의 삶에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들. 시간이 없다고 외치는 나, 그 와중에 무수히 만들어 내는 위시 리스트들. 참으로 부끄러워진다.

여행은 자기 자신에게로 떠나는 것이며, 또한 그 여행은 많은 타인들을 통과하며 이루어진다. -사막별 여행자, 무사 아그 앗시리그.

이 말을 되새기며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다시금 고민하게 된다. 여행을 추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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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아이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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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의 마지막 날을 이 책과 함께 하게 되었다. 에쿠니 가오리와 나라니 일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조합이다. -일본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불륜을 다룬 연애(?) 소설도 싫다- 하지만 최근 그녀의 결혼 생활에 대한 에세이를 읽은 후 급속도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때마침 그녀의 에세이가 신간으로 발매되어 어찌나 즐겁던지.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와 비슷한 시기에 엮인 것 같지만 8년 동안 썼던 에세이를 정리한 것이라고 하니 실제로는 1990년대 초반에 썼던 글들인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도 다니기 전에 에쿠니씨는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것들을 보았구나 라고 생각하니 새삼 신기했다.

번역 덕분인지도 모르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나이는 마치 30대 중반의 여성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마치 옆집 언니가 조근조근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느낌. 덧붙이자면 좀 많이 특이한 예술가 언니. 느릿느릿하지만 분명하게 전달되는 그녀의 이야기는 읽기 쉬워서 좋다. 머리가 복잡해서 글들이 활자로만 느껴질 때, 자연스럽게 집어들게 된다. 그녀의 문장에는 어떤 특정한 감각 -촉각, 후각, 미각, 시각, 청각 등- 의 요소를 공감각적으로 잘 버무려서 입체적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큰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청아하고 짤막한 문체임에도 불구하고 함축적으로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것 같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 말은 올해 내가 가장 많이 느꼈던 답답함을 한 방에 해소해준 말이다. 사회 생활이든, 내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든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위축되고 자신감을 가질 수가 없었다. 스스로가 경험적으로, 인성적으로, 지식적으로 너무나 부족한 느낌. 자꾸만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고 더 나.은. 더 많.이. 알고 있는 내가 되기 위해 채찍질 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녀는 모르는 것이 많다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새롭게 알아가는 것들이 많을수록 더 삶을 즐겁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모르고 있던 삶의 다양한 부분들을 알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경이로움, 신비감 등. 어린 아이들이 왕성한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을 더 재밌고 흥미롭게 산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내가 어른이니까 아는 게 많다는 착각 속에 얼마나 재미없는 하루하루 라고 생각하며 지루해하는지.. 추천할만한 일은 아니지만 실수를 통해 몰랐던 것을 배워나갈 땐 정작 지루할 틈은 없었다. 세상사 행과 불행은 정말 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인가보다. 손바닥을 뒤집어 반대편을 보면 완전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녀의 독서일기에 관련된 부분이다. 너무 흥미진진하게 느껴저서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몇 권 있는데 우리 나라엔 없는 것 같다. 번역이 안 되었거나, 아예 검색이 안 되거나. 우리 나라와 일본의 책 시장이 다소 다르구나 하는 생각에 신기했다. 글로벌 시대에 안 되는게 아직 많다. 원서로 라도 읽어보면 좋겠지만 영문학 서적만 있는 것은 아니므로 포기. 문득 몇 개 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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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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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문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

이 문장 하나가 토니 개인의 기억과 진실의 문제에 대한 가장 정확한 해답이자 복선일 것입니다. 책을 끝까지 읽고 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지.. 2부의 마지막 장을 읽고서야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특히 원서로 읽지 못하는 슬픔이.. 크게 와닿아요. 주인공과 주변인들 사이의 대화, 주인공의 독백.. 그 원문이 지닌 의미가 궁금해진달까요.

소설 '누구' 를 읽었을 때와 유사한 섬뜩함이 느껴집니다. 저 자신을 들킨 것 같은 느낌 때문이예요. 제가 살아온 날이 길진 않지만 그간의 기억들이 얼마나 조작되어 있을까 -자기보호 본능에 따라 적절히 감해지는- 그리고 그러한 착각들은 얼마나 자기 보호를 위해 쓰여왔을까 문득 궁금해 지더군요. 갑자기 나이를 먹고 제가 생각해온 저보다 더 추악하고 악랄한 모습을 -잊고있던, 혹은 지워낸 기억들로부터- 알게 된다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망각이라는 게 왜 인간에게 축복인지 책을 통해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와 함께 그러한 조작된 기억 혹은 망각이 누군가에겐 행복을, 누군가에겐 평생의 상처, 불행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도요.

과거의 기억 속에 '나' 를 위해 좋지 못한 기억, 이미지로 남은 사람들에게 문득 미안해집니다. 제가 잊어버린 잘못도 그만큼 많을텐데 말이죠. 좀 더 자기중심적이지 않게 살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할 것 같아요. 기억조차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 인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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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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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우리 나라에서 인기있는 작가 중 하나. 그녀의 소설은 최근에 읽은 잡동사니 외에 몇 가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불륜이 등장한다는 점은 꽤 편치 않다. 그녀의 소설을 전부다 읽어보진 못 했으므로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불륜을 자주 다루는 작가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았다. 그래서 굉장히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채 연애만을 고수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한 에세이를 썼다는 사실은 놀랄 노자다!! - 책이 쓰여진 시점이 이미 96년이므로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녀가 결혼을 했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세상 어느 남자가 불륜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데 독보적인 능력을 지닌 글쟁이여자와 용감하게 결혼할 수 있을까 =_= -나는 이럴 때보면 정말 보수적인 사람이다..- 그녀가 평생 한 사람하고 살 마음으로 결혼했을 것 같진 않지만.. 결혼 서약이라니 아이러니라고 생각했다.

오늘도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생각해 보면 다른 풍경이기에 멋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가 지니고 있는 다른 풍경에 끌리는 것이다.
그때까지 혼자서 쌓아올린 풍경에.


그녀의 책은 생각보다 담백하고 진솔한 어조로 씌어졌다. 그녀 특유의 짧고 간결한 문체, 청아한 어조는 그녀의 이야기에더욱 쉽게 빠져들게 해준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어쩔 줄 모르게 만드는 그 담백함. -대신에 어떤 책이든 읽고 나면 줄거리나 작가가 의도한 바가 뭐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냥 불륜?! 의 정당화 정도??- 본인의 이야기라 더욱 차분하게, 한 편으로는 몽환적(?)으로 다가왔다. 일상과 전혀 동떨어진 것들 사이의 연결, 작가의 상상력이 느껴지는 극적인 묘사들. 과거의 기억과 현재, 감정과 일상생활을 넘나들면서 다소 정신없게 느껴지지만 기묘하게 환상적이고, 옆에서 귓가에 속삭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작가의 후기 뒷편에 지인(?)의 글이 있는데 에쿠니 가오리의 실제 신혼 생활인지, 논픽션이 가미된 글인지 모르겠다는 부분이 있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이야기라고 생각해도, 실제 이야기라고 생각해도.. 음 그 사이 중간 어디쯤인 것 같은 느낌?! 실제로 그녀는 이야기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나보다. 그 지인이 늘 그녀와의 이야기 끝에 오늘도 당했다 라는 생각을 하는 걸 보면.. 하하 대단하다. 막연하게 드는 생각이지만 그녀의 모습은 잡동사니에서 읽은 여주인공의 느낌과 흡사하다.. 남편을 대하는 모습이나 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들이.. 어쩐지 그녀를 형상화하여 만든게 아닌가 싶다. 독립적이면서도 서로에게 꼭 붙어 있는 모습이 책 속의 부부와 비슷하기도 하고.. 하하 그래서 이 책이 논픽션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_=;; 어쨌든 몹시 매력적인 글들이다. 문득 결혼이 강하게 하고 싶다.. 그 끝은 알 수 없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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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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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언 플린... 정말 하... 대단한 작가인 것 같아요.. 오분 전에 이 책을 끝까지 읽었는데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질 않네요.. 진짜 책 읽기를 멈추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어떤건지 알 것 같아요. 처음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읽었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는데.. 제 생각엔 이 책이 좀 더 여운이 길게 가는 것 같아요.

일단 열린 결말이라고 해야하나, 석연치 않다고 해야하나.. 끝까지 소름 돋는 마무리였어요. 정말 이 책을 누군가와 이야기 하고 싶은 강렬한 기분!! 줄거리 자체는 단조로워요. 결혼 기념일 5주년에 사라진 아내, 가장 유력한 용의자 남편. 책은 아내의 일기와 남편의 현재 시점으로 번갈아가며 쓰여져있는데요.. 처음에는 이것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5~6년 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다보니 초반이 좀 지루한 감이 있어요. 그리고 너무 흔하디 흔한 출발이다보니 기대감도 그닥 없고요. 뭐 대단한 반전이 튀어 나오나보자 라는 심보로 보게 되는 것도 영화나 소설이나 스릴러가 넘쳐나는 요새같은 때엔 아마 어쩔 수 없는 마음이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뻔한 소재로 극도의 긴장감을 끌어낼 수 있다니 대단하네요.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고 뒷 이야기가 몹시 궁금해집니다!

스포일을 할 수는 없으므로.. 줄거리에 대해서는 더 논하지 않겠습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그리고 등장 인물들의 성장 배경에 따른 성격이나 심리 묘사가 치밀하게 잘 되어 있어서 사실적이고 입체적으로 느껴집니다. 영화로 만들어도 재밌을 것 같아요. 그녀의 소설 나머지도 얼른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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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탱이 2017-01-07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을 먼더 봐버려서 결말을 이미 아는데 그래도 재밌을까요ㅠㅠ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