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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나를 멈추게 한다면
장성남 지음 / 클래식북스(클북) / 2022년 7월
평점 :
🌟 이 책은 클북 @slower_as_slow_as_possible 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기억이 나를 멈추게 한다면> - 기억을 꺼내 쓰는 용기, 나를 돌보는 연습
📌 책 소개
어린 시절의 기억은 대개 흐릿하거나 어렴풋하다.
그러나 어떤 기억은 또렷하게 남아 있어, 삶의 한복판에서 걸음을 멈추게 하기도 한다.
멈춘 그 자리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저자는 자기 안에 잠들어 있던 어린 아이를 깨운다.
억눌렸던 감정, 버거웠던 관계, 말하지 못했던 기억들이 종이에 하나씩 내려앉는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글쓰기.
그 과정에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조우한다.
어린 시절 기억쓰기는 단지 과거 회상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을 현재로 데려오는 일이며, 해묵은 감정을 안전하게 다루는 연습이고, 더는 과거에 붙들리지 않도록 자신을 풀어주는 실천이다.
글을 쓰며 눈물 흘리고, 눈물 속에서 위로를 얻으며, 저자는 오랜 시간 자신을 가두던 감정의 무게를 덜어낸다.
기억을 다시 쓰는 일은 곧, 삶을 다시 써 내려가는 일이다.
💬서평
💡기억은 멈춘 시간 속에 있다
사람은 왜 갑자기 무너질까.
뚝 하고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일상이 꺾이는 그 순간, 사실은 예고돼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저자는 그런 순간마다 자신 안의 어린 시절을 찾는다.
잊은 줄 알았던 기억이 그 자리에 여전히 있었다.
가난, 수치심, 분노, 고독 같은 단어들이 그 기억에 달라붙어 있었다.
거기엔 위로받지 못한 감정들이 살아 있었다.
저자는 그 기억들을 애써 꺼내어 적는다.
그냥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작고 어린 나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 쓴다.
이 글은 마치 셀프 인터뷰처럼 자기 내면을 끈질기게 파고든다.
그 기억을 말로 옮기는 순간, 억눌려 있던 감정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억이 나를 멈추게 했다면, 글쓰기는 다시 걸어가게 만든다.
💡나를 용서하는 연습
분명히 사소한 일이었는데 마음을 덜컥 다쳐버리는 순간이 있다.
반복적으로 나를 채찍질하고, 실수 하나에도 과하게 자책하는 나.
그 뿌리를 따라 내려가보면 늘 익숙한 장면과 마주한다.
어린 시절 누구에게도 꺼내놓지 못했던 부끄러운 기억, 설명하지 못한 감정들.
저자는 그 기억을 써 내려가면서 묻는다.
왜 나는 늘 나를 미워했을까? 누구에게 칭찬받아야 겨우 살아있다고 느꼈을까?
그 질문들에 대해 화려한 결론을 내리진 않는다.
다만 글을 쓰며 나를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쓰는 과정은 곧 해석의 과정이기도 하다.
무작정 울기만 했던 기억이 단어로 붙잡히고, 흐릿하던 감정에 이름이 붙여진다.
나를 용서한다는 건 그 기억을 무시하거나 덮는 일이 아니다.
끝까지 함께 들여다보고, 마침내 그 손을 놓아주는 일이다.
💡나를 위한 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저자는 쉰 살에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난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다시 밟고, 담 너머로 수치심을 날려보낸다.
그 장면을 읽는 동안, 글이란 게 결국 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SNS에 올릴 글, 누군가의 칭찬을 얻기 위한 글은 아니다.
어린 시절의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 오래도록 숨겨온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글이란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아도 살아 있는 행위다. 오히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순간, 그 글은 힘을 잃는다.
저자가 보여주는 ‘기억쓰기’ 는 단단하고 묵직하다.
아무리 사소한 장면이어도, 거기에 내 감정이 실려 있다면 중요한 기록이 된다.
그래서 한 줄 한 줄 써나갈수록 저자는 가벼워지고 단단해진다.
기억은 흐르지 않으면 썩는다.
멈춰 있던 기억이 써 내려가며 비로소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다시 시작하기 위한 의식
기억을 쓰는 일은 마치 하나의 의식 같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고요하게 열리는 의식.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치르는 제사처럼.
저자는 오래도록 외면해온 기억을 하나씩 불러내고, 그 기억 속 ‘어린 나’ 에게 말을 건넨다.
“너는 잘못한 게 없어. 이제 나랑 같이 가자.”
쓰는 동안 흘린 눈물은 울음을 위한 눈물이 아니다.
저자는 자신을 꺼내기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자신을 꺼내온 다음엔 닦아준다.
어린 시절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악수하는 장면이 반복된다.
글을 다 쓰고 나면, 그 글은 나의 새로운 출발선이 되어 있다.
글쓰기는 더 이상 붙잡히지 않겠다는 결심의 표현이다.
기억을 다시 썼다는 건, 이제 그 기억이 나를 붙잡지 못하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떠나보내고, 남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