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양자역학 - 아무도 모르지만 누구나 알아야 할
프랑크 베르스트라테.셀린 브뢰카에르트 지음, 최진영 옮김 / 동아엠앤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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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책좋사 를 통해 동아엠앤비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최소한의 양자역학>


양자역학을 ‘배우는’ 책이 아니다.
양자라는 거대한 서사가 처음 숨을 틔운 16세기부터
아인슈타인 응축이 탄생하고
양자 컴퓨터가 등장하는 순간까지
500년의 과학이 하나의 파도처럼 밀려온다.

스테빈의 계산, 갈릴레이의 실험, 뉴턴의 미적분
플랑크·아인슈타인·드 브로이
슈뢰딩거·하이젠베르크의 도약이
정말 하나의 선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증명하는 책.

양자역학이 추상이 아니라
세계가 움직이는 방식 자체라는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 책을 읽고 나서


양자의 역사는 서로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 남긴
생각의 자취가 겹쳐지며
하나의 흐름이 되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어딘가에서 물체를 떨어뜨리는 실험이 반복되고
그 실험이 다시 새로운 질문을 부르고
질문이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여는 동안
처음에 던져진 의문은 점점 더 낯선 방향으로 뻗어 간다.
그렇게 쌓인 시간 위에 새로운 문장 하나가 놓이면
그 문장은 지금까지 이어져 온 모든 탐구가 향하던 지점과
새로 생겨나는 지점이 만나는 자리처럼 보인다.
양자를 향한 여정이란
그런 교차의 순간들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흐름 속에는 늘 질문이 앞서 움직인다.
물체는 왜 그렇게 움직이는가
빛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입자는 어디에 있는가 같은 질문들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지만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어느새 수 세기 너머까지 이어지고
서로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의 계산과 문장이
보이지 않는 다리를 놓는다.
그 다리를 건너는 동안 과학은 한 시대의 경계를 넘고
다음 세대를 향해 다시 이어지고
그동안 아무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식이 조금씩 형태를 드러낸다.
보어가 빛의 성질을 다시 해석하고
드 브로이가 모든 입자에 파동의 움직임을 부여하고
슈뢰딩거가 그 움직임에 수학적 언어를 붙일 때까지
이 모든 과정은 각기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나의 목적을 향해 모여드는 장면처럼 다가온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 방대한 움직임이 어느 순간부터
인간의 직관을 벗어나는 방향으로 전진한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여러 상태에 머물러 있는 존재들
측정하기 전까지 확정되지 않는 값
서로 닿아 있지 않아도 얽혀 있는 관계들.
익숙한 세계의 규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이 모여
새로운 세계의 기초를 이루는 순간
양자는 더 이상 자연을 이해하는 방법만이 아니라
사고 그 자체를 새로 짜야 하는 과제가 된다.
이 지점에서 물리학은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전체를
새로 정비하도록 몰아붙인다.

스테빈이 계산을 고치고
갈릴레이가 실험을 정확히 기록하고
뉴턴이 미적분으로 움직임을 붙잡고
해밀턴이 사원수로 새로운 구조를 열어 놓는 동안
그들의 행위는 시대를 향해 소리치기보다
자신이 세운 원리를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태도에 가까웠다.
그들이 남긴 문장과 기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여기까지 왔으니, 다음은 너희가 이어라’라는 요청에 가까웠다.
뒤이어 등장한 과학자들도 그 요청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았고
서로 다른 시대의 기록들이 겹겹이 쌓여 오늘의 물리학이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양자 정보 과학은 새로운 재료를 손에 넣은 것처럼
다음 시대의 언어를 만들어 내고
큐비트와 얽힘은 계산과 소통의 방식을 다시 쓰게 하고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체의 등장은 물질의 경계를 새로 긋는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여전히 가장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미완의 영역 자체가 앞으로 이어질 문장의 초안처럼 보인다.

양자의 세계는 완성된 체계보다 열린 운동에 가깝다.
누군가가 남기고 간 생각의 조각들이 서로를 비추며
다음 시대의 구조를 만들어 가고
그 구조에 다시 새로운 질문이 더해지고
질문은 또 다른 계산을 불러오고
계산은 다시 새로운 해석의 바탕이 된다.
이 과정이 끝없이 반복되며 하나의 거대한 길을 만든다.
이 길의 어디쯤에 서 있든
지금 보고 있는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아직 적지 않은 영역은 설명되지 않았고
설명되지 않은 영역은 다시 새로운 질문을 낳고
그 질문들은 앞으로의 세대를 향해
더 넓은 문을 여는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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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외국계 취업 - 20년 차 수석 매니저가 알려주는 외국계 기업 취업 전략서
백원정 지음 / 슬로디미디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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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를 통해 슬로디미디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나의 첫 외국계 취업>


외국계 취업을 ‘먼 나라 이야기’에서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있는 길’로 끌어오는 책이다.
막연한 불안 대신 손에 잡히는 전략을 들려주고
스펙보다 사고방식이 먼저라는 사실을
단번에 각인시킨다.
20년 현장에서 걸러낸 노하우로
이력서 한 줄, 면접 한 문장, 경험 하나를
어떻게 기회로 바꿀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한마디로 남들보다 잘나야 붙는 세계가 아니라
제대로 준비한 사람이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세계의 문을 여는 안내서다.
읽고 나면 ‘될까?’가 아니라
‘가볼까?’가 먼저 떠오른다.


📖 책을 읽고 나서


앞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마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모양을 바꾸고 있다.
커리어라는 이름의 길은
특별한 순간에 갑자기 열리는 문이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미세하게 움직이는 선택의 결합에 가깝다.
스펙이 쌓인다고 길이 생기지 않고
시간만 흘러간다고 기준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방향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경험을 어떤 순서로
어떤 언어로 꺼내 놓는지에서 드러난다.

경험이라는 조각들은 겉으로 보면 단단하지 않아 보인다.
인턴의 짧은 기록, 계약직에서 맡았던 업무
작은 프로젝트 하나.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움직임은 결코 작지 않다.
한 번 만든 변화, 직접 겪은 장애물
스스로 세운 기준 같은 것들이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길을 만든다.
사람들은 기간보다 결과를 먼저 읽고
타이틀보다 행동을 먼저 살핀다.
이름의 크기가 아니라 흐름을 만든 흔적이 중심을 잡는다.

언어의 벽도 마찬가지다.
영어 면접은 감탄을 유도하는 무대가 아니라
생각의 방향을 비추는 자리다.
완벽한 발음이나 화려한 문장보다
지금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가 더 강한 힘을 갖는다.
메시지가 명확하면 문장도 자신을 잃지 않고
긴장 속에서도 핵심은 제 길을 찾아 나간다.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중심을 차지하면
겉면의 흔들림은 어느새 주변으로 밀려난다.

직무를 해석하는 과정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다시 세우는 일과 이어진다.
과거의 장면이
현재의 선택을 정리해 주는 근거가 된다.
그때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 어떤 목표가 주어졌는지
무엇을 선택했고 어떤 변화가 따라왔는지
이 모든 조각이 지금 이 순간 새로운 해석을 얻는다.
그 해석이 레쥬메의 문장을 만들고
면접의 대답을 만들고 커리어의 좌표를 만든다.

새로운 무대를 향한 마음은 순간마다 탄력을 얻는다.
제출 버튼 앞에 선 손끝의 망설임
회의 중 단어 하나를 고르는 순간의 살짝 멈칫한 감각
이메일 문장을 다듬으며 스스로에게 묻는 한 줄의 질문.
이 모두가 앞으로 가려는 준비다.
준비가 끝나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 속에서 준비가 완성된다.
변화는 특정한 순간의 이벤트가 아니라
지금 이어지고 있는 흐름이다.

이 책은 그 흐름을 하나씩 꺼내 보여 준다.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의 경험을 다시 꺼내 해석할 수 있는 힘
작은 시도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시선
그리고 스스로 방향을 잡아 나가는 방식.
길은 바깥에서 정해지지 않는다.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다시 읽어 내려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계속 이어지는 질문이 다음 장을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을 덮는 지금도 길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누군가의 경험은 다시 배열되고
문장 하나는 또 다른 의미를 품고
작은 선택 하나는 다음 방향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특별한 용기나 완벽한 준비가 필요한 순간은 없다.
지금 마음 한쪽에서 움직이는 그 흐름이
앞으로 이어질 길 전체를 바꿀 수 있다.

‘완벽한 때를 기다리는 마음은 끝이 없다.’

이 문장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닫는 순간에도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앞으로 걸어갈 사람들을 향해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문 하나쯤은 스스로 열어 보라는 뜻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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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제화점 - 어른을 위한 동화
이경희 지음, 김보현 그림 / 북산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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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를 통해 북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칠성제화점>


오래된 제화점 한켠에서 시작된 작은 다짐이
세월을 건너
한 사람의 삶을 이끌어 가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가난한 소년의 마음, 사라진 엄마의 흔적
손에 밴 기술과 공방의 냄새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구두 한 켤레가 약속이 되고
희망이 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가죽을 자르고 꿰매는 손의 움직임처럼
사람의 상처와 그리움도 천천히 이어 붙여지는 이야기.
잃어버린 관계와 지나간 시간 속에서도
마음을 다시 세우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
부드럽게 보여주는 책이다.


📖 책을 읽고 나서


시간의 흐름은 사람의 마음을 아주 느린 곡선으로 데려간다.
시장의 소란 한복판을 지나던 작은 아이의 다짐이
먼 세월을 건너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그렇다.
멸치 몇 마리 앞에서 멈칫하던 감정
처음 듣는 음식의 이름이 불러온 설렘
돌아오지 않을 존재를 향해 남겨진 까만 흔적들.
그런 장면들이 재료처럼 쌓여
하나의 인생을 빚어 간다.

수많은 날이 흘러도
마음속 빈자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 순간엔 까닭 모를 허기가 들고
어느 날엔 말할 수 없는 서운함이 스며든다.
그 자리 위에서 순동이는 일터로 발길을 옮겼고
낡은 공방의 풍경 속에서
천천히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되었다.
손에 묻은 풀 냄새와 가죽의 감촉은 거칠었지만
그 속에는 삶을 견디는 법이 숨어 있었다.

작업대 위에서 반복되는 동작은
감정을 다듬는 리듬처럼 이어졌다.
사장님의 말은 꾸짖음도 칭찬도 아닌
한 사람을 앞으로 움직이게 하는 기운 같은 것이었고
공장장의 낡은 옷자락에서는
길게 쌓인 시간의 온기가 스며 있었다.
순동이의 마음은 그 속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가죽 조각들이 한 켤레로 완성될 때마다
감정의 모양도 함께 달라졌다.

뒤늦게 마주한 발본은
세월의 무게를 한 장의 종이에 품고 있었다.
그 종이를 가슴 가까이에 두는 순간
잃었다고 여겼던 감정들이 천천히 되살아났다.
오래 접어둔 그리움은 새로운 움직임을 부르고
오래 닫혀 있던 마음은 말없이 틈을 내기 시작했다.

시장의 소음, 짜장면의 향
공방의 먼지와 오래된 의자의 나무 결
스승과 제자 사이에 흐르던 시선까지.
서로 다른 장면들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한 사람의 시간을 만들었다.
그 시간 속에서는 잃은 마음도 다시 모양을 찾고
멀어진 감정도 어딘가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구두 한 켤레.
오래 걸어온 마음이 닿은 자리였다.
굳게 닫혔던 세계가 조금씩 열리고
묵은 감정이 바람을 따라 다시 움직였다.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에도
무언가가 멈춘 듯하지 않았다.
구두 한 켤레는 여전히 누군가의 발 아래서
다음 장면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위를 지나갈 삶들은 또 다른 모양으로 이어질 듯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걸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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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제화점 - 어른을 위한 동화
이경희 지음, 김보현 그림 / 북산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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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를 통해 북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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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제화점 한켠에서 시작된 작은 다짐이
세월을 건너
한 사람의 삶을 이끌어 가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가난한 소년의 마음, 사라진 엄마의 흔적
손에 밴 기술과 공방의 냄새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구두 한 켤레가 약속이 되고
희망이 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가죽을 자르고 꿰매는 손의 움직임처럼
사람의 상처와 그리움도 천천히 이어 붙여지는 이야기.
잃어버린 관계와 지나간 시간 속에서도
마음을 다시 세우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
부드럽게 보여주는 책이다.


📖 책을 읽고 나서


시간의 흐름은 사람의 마음을 아주 느린 곡선으로 데려간다.
시장의 소란 한복판을 지나던 작은 아이의 다짐이
먼 세월을 건너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그렇다.
멸치 몇 마리 앞에서 멈칫하던 감정
처음 듣는 음식의 이름이 불러온 설렘
돌아오지 않을 존재를 향해 남겨진 까만 흔적들.
그런 장면들이 재료처럼 쌓여
하나의 인생을 빚어 간다.

수많은 날이 흘러도
마음속 빈자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 순간엔 까닭 모를 허기가 들고
어느 날엔 말할 수 없는 서운함이 스며든다.
그 자리 위에서 순동이는 일터로 발길을 옮겼고
낡은 공방의 풍경 속에서
천천히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되었다.
손에 묻은 풀 냄새와 가죽의 감촉은 거칠었지만
그 속에는 삶을 견디는 법이 숨어 있었다.

작업대 위에서 반복되는 동작은
감정을 다듬는 리듬처럼 이어졌다.
사장님의 말은 꾸짖음도 칭찬도 아닌
한 사람을 앞으로 움직이게 하는 기운 같은 것이었고
공장장의 낡은 옷자락에서는
길게 쌓인 시간의 온기가 스며 있었다.
순동이의 마음은 그 속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가죽 조각들이 한 켤레로 완성될 때마다
감정의 모양도 함께 달라졌다.

뒤늦게 마주한 발본은
세월의 무게를 한 장의 종이에 품고 있었다.
그 종이를 가슴 가까이에 두는 순간
잃었다고 여겼던 감정들이 천천히 되살아났다.
오래 접어둔 그리움은 새로운 움직임을 부르고
오래 닫혀 있던 마음은 말없이 틈을 내기 시작했다.

시장의 소음, 짜장면의 향
공방의 먼지와 오래된 의자의 나무 결
스승과 제자 사이에 흐르던 시선까지.
서로 다른 장면들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한 사람의 시간을 만들었다.
그 시간 속에서는 잃은 마음도 다시 모양을 찾고
멀어진 감정도 어딘가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구두 한 켤레.
오래 걸어온 마음이 닿은 자리였다.
굳게 닫혔던 세계가 조금씩 열리고
묵은 감정이 바람을 따라 다시 움직였다.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에도
무언가가 멈춘 듯하지 않았다.
구두 한 켤레는 여전히 누군가의 발 아래서
다음 장면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위를 지나갈 삶들은 또 다른 모양으로 이어질 듯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걸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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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 - 23년간 법의 최전선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려온 판사 출신 변호사의 기록
정재민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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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포레스트북스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


판사였고 변호사로 살아온 한 사람이
사무실과 경찰서와 구치소, 법정을 오가며
만난 순간들을 담아낸 책이다.
사건보다 사람을 먼저 바라본 시선이 담겨 있어
차갑게만 보이던 공간들이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의심이 당연해진 시대라도
믿음이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는 메시지가
서두르지 않은 어조로 스며 있다.
법조인의 기록이면서도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말을 건네는 책이다.


📖 책을 읽고 나서


사람들이 모여 앉는 공간에는
언제나 불안과 기대가 함께 놓인다.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억울함과 체념이 섞인 목소리가 흔들리고
경찰서에서는 복잡한 절차가
한 사람의 인생을 거칠게 흔들어 놓는다.
구치소 좁은 방 안에서는 끝없이 이어지는 설명이
문턱을 넘기지 못한 채 맴돌고
법정에서는 판사와 검사와 변호사가
서로를 향해 굳은 표정을 맞대며 다음 장면을 만들어 간다.

어느 자리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완전히 믿지 못한다.
판사는 피고인의 말을 의심하고
검사는 판사를 답답하게 여기고
변호사는 법정 전체를 의문 속에 올려놓는다.
서로를 향한 이 경계는 숨길 수도 드러낼 수도 없어
한 사건의 바닥에 가라앉은 채 흔들리는 공기를 만들곤 한다.

수사기관은 때때로 일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싶어 하고
합의라는 말은 지나치게 자주 입에 오른다.
그 과정에서 정의라는 이름은 흔들리고
밝아야 할 앞길이 희미해지는 순간도 이어진다.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한 절차가 정작 피해자를 밀어내고
책임을 물어야 할 사람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일이 반복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끝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한다.
자신을 변호해 줄지 모른다는 작은 바람 하나에 의지하여
변호사 면회실에서 긴 설명을 쏟아내고
가족들은 전화기 너머에서
사소한 요구까지 확인하며 하루를 견딘다.
그들의 불안은 말로 다 옮길 수 없을 만큼 진동하고
그 진동은 설명되지 않은 채 다음 장면으로 이어진다.

사기 사건이 흔해지고
서로를 의심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진 시대라 해도
사람들 안쪽에는 여전히 기대가 남아 있다.
믿을 수 없다는 말이 입술에 먼저 닿을 때조차
믿고 싶은 마음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 마음 때문에 상처가 생기고
그 상처 때문에 다시 되돌아보기도 하지만
사람을 향해 조금씩 움직이는 힘은 여전히 남는다.

한 권의 책을 채운 많은 장면들은
모두 같은 질문을 향해 흘러간다.
지키기 위해 세운 의심이 어느 순간 삶을 좁히고
바라보고 싶어 한 믿음은 또 다른 위험을 부른다.
그럼에도 사람에게 마음을 건네는 일은
언제나 희미한 빛을 품고 있다.

책이 다다른 끝자리에는 어떤 규범도 놓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표정, 혼란, 방황, 바람, 두려움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다.
그 흐름은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어디쯤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아주 낮은 목소리로 흘려 보낼 뿐이다.

그렇게 마지막 페이지는 닫히고
남겨진 문장들만 서로에게 닿을
새로운 방향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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