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제화점 - 어른을 위한 동화
이경희 지음, 김보현 그림 / 북산 / 202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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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를 통해 북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칠성제화점>


오래된 제화점 한켠에서 시작된 작은 다짐이
세월을 건너
한 사람의 삶을 이끌어 가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가난한 소년의 마음, 사라진 엄마의 흔적
손에 밴 기술과 공방의 냄새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구두 한 켤레가 약속이 되고
희망이 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가죽을 자르고 꿰매는 손의 움직임처럼
사람의 상처와 그리움도 천천히 이어 붙여지는 이야기.
잃어버린 관계와 지나간 시간 속에서도
마음을 다시 세우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
부드럽게 보여주는 책이다.


📖 책을 읽고 나서


시간의 흐름은 사람의 마음을 아주 느린 곡선으로 데려간다.
시장의 소란 한복판을 지나던 작은 아이의 다짐이
먼 세월을 건너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그렇다.
멸치 몇 마리 앞에서 멈칫하던 감정
처음 듣는 음식의 이름이 불러온 설렘
돌아오지 않을 존재를 향해 남겨진 까만 흔적들.
그런 장면들이 재료처럼 쌓여
하나의 인생을 빚어 간다.

수많은 날이 흘러도
마음속 빈자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 순간엔 까닭 모를 허기가 들고
어느 날엔 말할 수 없는 서운함이 스며든다.
그 자리 위에서 순동이는 일터로 발길을 옮겼고
낡은 공방의 풍경 속에서
천천히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되었다.
손에 묻은 풀 냄새와 가죽의 감촉은 거칠었지만
그 속에는 삶을 견디는 법이 숨어 있었다.

작업대 위에서 반복되는 동작은
감정을 다듬는 리듬처럼 이어졌다.
사장님의 말은 꾸짖음도 칭찬도 아닌
한 사람을 앞으로 움직이게 하는 기운 같은 것이었고
공장장의 낡은 옷자락에서는
길게 쌓인 시간의 온기가 스며 있었다.
순동이의 마음은 그 속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가죽 조각들이 한 켤레로 완성될 때마다
감정의 모양도 함께 달라졌다.

뒤늦게 마주한 발본은
세월의 무게를 한 장의 종이에 품고 있었다.
그 종이를 가슴 가까이에 두는 순간
잃었다고 여겼던 감정들이 천천히 되살아났다.
오래 접어둔 그리움은 새로운 움직임을 부르고
오래 닫혀 있던 마음은 말없이 틈을 내기 시작했다.

시장의 소음, 짜장면의 향
공방의 먼지와 오래된 의자의 나무 결
스승과 제자 사이에 흐르던 시선까지.
서로 다른 장면들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한 사람의 시간을 만들었다.
그 시간 속에서는 잃은 마음도 다시 모양을 찾고
멀어진 감정도 어딘가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구두 한 켤레.
오래 걸어온 마음이 닿은 자리였다.
굳게 닫혔던 세계가 조금씩 열리고
묵은 감정이 바람을 따라 다시 움직였다.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에도
무언가가 멈춘 듯하지 않았다.
구두 한 켤레는 여전히 누군가의 발 아래서
다음 장면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위를 지나갈 삶들은 또 다른 모양으로 이어질 듯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걸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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