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임현 작가의 '고두(叩頭)'는 존경하는 뜻으로 머리를 조아린다는 뜻이다. 동양문화와 유교적 색채가 물씬 풍긴다. 우리 사회에는 장유유서의 서열문화와 착한 콤플렉스가 만연하고 있다. 유교적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예의가 없다느니, 되바라진 사람이니 하면서 수군거린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고 자기만족의 삶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마음이 들지 않아도 상사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크게 잘못한 것이 없어도 사죄하면서 뉘우치는 모양새를 취해야 예의바르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된다. 진심에서 우러나지 않아도 사회의 관행이나 미덕이 그러하니,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라 암암리에 배우게 되는 것이다.

 

수백 년 간 누적되어 온 유교식 예절문화가 가끔은 불편할 때가 많다. 스스로 그 틀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쳐도 오래지 않아 양심의 가책을 느껴 '아 이러면 안되는구나! 하고 반성하게 된다. 어떤 때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모든 가식을 훌훌 털어 버리고 정말 나답게 살고 싶은 생각, 자아를 꼭 꼭 숨기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윤리의식이나 공중도덕에 얽매여 원하지도 않는 사과와 예의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도 보통 큰 스트레스가 아니다. 마음에서는 떳떳하고 올바른 행동이었다고 생각해도 타인의 평가는 외부의 형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예의와 도덕은 무시되고, 반대로 마음과는 다른 형식적인 예절과 도덕이 그 사람 평가의 잣대가 된다.

 

주인공 연주는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학생으로 소위 말하는 예의바른 학생이 아닌 문제가 많은 학생으로 남들에게 비춰진다. 학교를 마치고 동태탕 맛집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두고 온갖 낭설이 떠돈다. 술집에 나간다느니, 모텔에 들락거린다느니 하면서 얼굴 예쁜 연주를 가십거리로 삼는 선생님이 많다.  윤리선생으로 연주의 행동이 못마땅한 김선생은 연주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으려고 훈계하고 나무래도 사과하는 것은 연주가 아닌 부유한 친구였다. 죄책감을 느끼고 반성할 줄 아는 것도 우리가 생각하듯 부유하고 교육을 잘 받은 부유한 집안의 학생이라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사회적 편견을 발견하게 되었다.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연주는  본래 그런 환경에서 자랐으니 너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보는 것 같다. 그 사람이 되어 보지 않고는 누구도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없는데 우리는 이미 사회적인 윤리의식이나 도덕의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연주가 관심을 가져주는 선생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했을 때 선생님은 학생을 올바르게 선도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과 외롭고 힘든 여학생의 의지처가 되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이중적 잣대로 고민하게 된다. 결국 후자쪽으로 기울어 연주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그 죄책감과 선생이라는 신분의 멍에때문에 갈팡질팡하고 그 날의 행동을 후회하게 된다. 연주도 윤리선생님에게 짐이 되는게 싫어 오랫동안 학교에 나타나지 않는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교무실에 찾아와 선생님을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고백하고 임신한 사실도 알게된다. 주변에선 곱지 않은 시선으로 윤리선생을 바라보고 자기들끼리 수군되는데, 결국 김선생은 윤리선생으로 도리에 벗어난 행위와 죄책감이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김선생 자신은 결코 연주에게 성적 욕망을 풀기위해 한 행동이 아닌데 주변에선 그렇게 보니, 아무리 항변해도 소용이 없다.

 

작가의 얘기처럼 우리 사회는 보이지 않는 인습이 너무도 많다. 그래서 솔직히 자기를 드러내놓고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이기주의자라는 소릴 들어도 솔직하게 살고 싶은 작가의 바람도 느낄 수 있었다.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예의와 도덕에 갇힌 삶이 결코 행복한 삶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에 봉사하고 남을 위해 사는 삶이 오히려 자신을 위하는 길이라는 위로가 오히려  불편하게 들리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와 손톱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스티븐 킹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흥미를 갖게 되네요. 이 책을 원본으로 ‘석조저택 살인사건‘ 영화로도 만들어 개봉한다니 기대가 됩니다. 보통 범죄소설은 밋밋하면 재미가 없는데, <이와 손톱>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서스펜스와 미스터리한 내용을 담고 있어 영화도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지식의 시작 1 -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 휴식을 위한 지식여행 1
허진모 지음 / 미래문화사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세계사는 선택 과목이었다. 대입학력고사에 지리, 세계사 등은 선택과목이라 세계사를 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국사도 제대로 배우기도 힘든데, 어찌 세계사를  공부하랴? 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은 때였다. 20점 만점에 20문제가 출제되었는데, 대부분 반타작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 동양사는 주워들은 게 있어서 좀 이해하며 공부할 수 있지만 서양사의 그리스문화, 헬레니즘 문화, 로마문화 등은 실로 방대하고 복잡해서 뭐가 뭔지 몇 번을 보아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서양사나, 동양사나 비슷하게 흘러온 것 같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지금까지 알려진 지구상에 태어난 가장 유명한 인물들은 거의 2500년 전후에 활약했다. 대륙이 서로 떨어져 있었고, 교통수단이나 운항수단이 발달했던 것도 아닌데, 하필이면 왜 그 시기의 인물들이 인류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항상 의문을 가지게 된다. 동양의 석가, 관자, 노자, 공자, 묵자, 맹자, 장자, 순자 같은 분과 서양의 탈레스, 데모크리토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델레스, 아르키메데스 등 동서양의 현자들이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활약한 것도 역사의 보이지 않는 공통점인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3년간을 세계사를 공부하며 보냈지만, 처음에는 참 재미없고 까다로운 과목이었다. 다행히 역사라는 과목에 관심이 좀 있어서 많이 배우기는 했지만 일반인이 공부하기엔 까다로운 과목이 아닐 수 없다. 동양을 대표하는 국가는 역시 중국이고, 시대는 한(漢)나라다. 중국의 상(은)나라, 주나라, 춘추전국시대, 진시황의 진나라는 혼란의 시대였다. 특히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있는 '춘추좌전'는 춘주시대 활약했던 각나라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책이다. 춘추시대에는 약 100여개가 넘는 대,소국 나라들이 서로의 존립을 위해 다퉜고, 1년에 평균 3회 이상의 전쟁을 치뤘다고 하니 한마디로 편안한 날이 없었다. 전국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전쟁이 끊일 날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동양문화의 기초를 다진 것은 한나라때이다. 전국칠웅의 치열한 패권다툼에서 진나라가 승리하여 최초로 전국시대를 통일하였지만, 만리장성의 축조와 전쟁으로 인한 분열, 엄격한 법률과 과도한 세금으로 3대 15년만에 망하고 말았다. 한(漢)은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문물정비를 통하여 비로소 중국문화를 대표하는 기틀을 마련한다.
 
서양의 문화의 기원은 지극히 잘 알려진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시작된다.  제우스, 아폴론, 아프로디테, 헤라클레스 등등 익히 우리가 들어왔고, 전설임에도 우리는 실존했던 인물처럼 익숙하게 알고 있다. 동, 서양 어떤 나라들도 대부분 신화를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도 삼황오제 신화가 있는데, 당시에는 서양 문명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  어떤 신을 통해 우리 부족이 선택된 민족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 같다. 우리 삼국시대 시조의 탄생설화도 있는만큼 오랜 옛날에는 정통성 확보를 위한 하나의 도구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스문화는 인류문화의 보고(寶庫)라 할만큼  다양한 문화가 존재했고, 문명의 수준도 높았다.
수천 년 전에 만든 조각품들이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고 완벽할 수 있을까 감탄을 금치못할 때가 많다. 꼭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형상을 그대로 재현한 것처럼 예술분야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로마문화도 한때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계의 중심이었고 원형극장(콜롯세움) 등 뛰어난 걸작을 많이 남겼다. 그런데, 2천여년(동,서로마 포함)을 이어올 정도로 그렇게 강성한 대국이 멸망한 것은 과도한 사치와 퇴폐문화, 오랜기간 국정혼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역사를 배우는 현대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조적인 말일수도 있겠지만, 세계사에서 우리 한국의 역사가 언급되는 것은 몇 줄 밖에 안된다. 그만큼 세계사는 방대하고, 다양하고 풍성하다. 배우려고 하면 평생을 배워도 부족할 것 같고, 그 범위를 가늠하기 힘들정도로 광범위하다. 그럼 그 어려운 세계사, 문명사, 전쟁사를 배우는 목적은 무엇일까?  좀 더 나은 현재, 미래를 살기 위해서다. 세계사를 통해 각국의 흥망성쇠를 배우면서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교훈을 얻고, 이런 위기땐 이렇게 해서 극복한 타국의 역사사례를 보면서 현재의 거울로 삼아야 하겠다.
 
세계사 책은 시중에 수많이 나와 있지만, 알기 쉽고, 배우기 쉬운 책을 고르기란 쉽지 않다. 단편적인 세계 역사의 기록만 나열한 책도 있고, 중구난방 서술만 해놓아서 이해가 잘 안되는 책도 있다. 그래서 일반인의 수준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를 한 권에 두루 다룬 저자의 책은 독자들에게 교양 높은 세계사 지식을 제공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권으로 끝내는 신혼 인테리어 - 집 구하기부터 배치, 수납, 인테리어까지
카와카미 유키 지음 / 리스컴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풍수 인테리어'가 근래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듯이,  인테리어도 집 구조와 사는 사람의 성향에 잘 맞아야 좋은 집, 살고 싶은 집이 됩니다. 집은 잠만 자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이 일부 우리 사회에 자리잡고 있는데, 아파트 문화가 인구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요즘,  내부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져볼 때라 생각합니다. 늘상 똑같은 일상만 반복되는 생활 속에 가정의 소품이라도 조금씩 변화를 주다보면 삶에 숨통이 트일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잘 사는 부자가 아니라면 호화롭게 가구를 배치하거나 인테리어를 세련되게 하기에는 금전적인 부담이 많이 따를 것입니다. 소문에 서울의 강남이나 부산의 해운대 같은 고급 아파트에는 기존의 인테리어를 모두 무시하고 새로 돈을 들여서 자신의 성향에 맞게 고친다고 하는데, 비용이 억단위를 넘는다고 하니, 보통의 가정에서는 엄두를 못낼 일입니다. 그만큼 그런 비싼 집에 사는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독특한 인테리어를 갖추고 살고 싶겠지요.

 

평범한 아파트에서 보통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할 것입니다. 적은 돈으로 집안의 분위기를 확 바꾼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인테리어를 가치있게 단장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자신이 잘 아는 분야도 있지만, 잘 모르는 분야가 더 많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거나 책을 통해 정보를 얻는 것입니다. 저도 직접 20년 가까이 된 집을 사서 올 리모델링하면서 인테리어 조언까지 받았는데,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좋은 경험을 얻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가급적 일을 벌이지 않고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얘기가 잠깐 옆길로 빠졌지만, 사람이 한 집에서 오래 살다보면 인테리어를 다시 하고 싶은 충동에 빠져 듭니다. 처음에는 좋아 보였던 인테리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식상하고 평범해 보입니다. 남자는 특성상 대개 인테리어에 관심이 적은 편이지만 여성들은 평소에도 관심이 많아 인테리어 책을 탐독하면서(여성 주간지 같은) 인테리어 안목을 기릅니다. 그래서 집안 인테리어는 아내에게 많이 맡기지요. 그러나 여성들이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신혼때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육아까지 신경써야 하니 애가 생기면 자연히 다른 쪽에 관심이 적어지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인생에 단 한 번 뿐인 신혼생활, 누구든 예쁘게, 자신만의 캐릭터를 살려서 집단장을 하고 싶어 하지요. 그래서 달달한 신혼분위기가 느껴지도록 가급적 밝고 세련된 디자인을 선호합니다. 이 때는 정말로 부부의 인테리어 안목이 빛을 발할 때지요. 알콩달콩 이것은 이쪽으로 배치하고 요것은 저쪽으로 배치하자며 서로 의견을 조율합니다. 시중에 인테리어 책자가 많이 나와 있지만 결국은 자기가 본만큼 생각하는만큼 인테리어에 반영되므로, 부부가 선호하는 인테리어풍으로 꾸미게 됩니다. 

 

인테리어 고수(전문가)들의 많은 의견과 실물 사진을 참고하는 것이 더 세련되고 독특한 인테리어를 만드는 비법이라면 비법이겠습니다. 평소에는 좋은 집에 잘 된 인테리어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즘 옆집 사람과도 잘 모르는 아파트 문화에서 선뜻 자기집 구경을 시켜 주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아파트 모델하우스나 책을 통해 인테리어 산지식을 쌓을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신혼때는 특히 평생을 함께 할 부부간의 보금자리를 꾸미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인테리어 단장에 각별히 신경이 쓰일 것입니다.  '한 권으로 끝내는 신혼 인테리어'를 통해 오순도순 사랑이 묻어나는 분위기를 연출해 보는 것도 삶의 재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녀전 - 여성의 삶을 말하다 인문플러스 동양고전 100선
유향 지음, 김지선 옮김 / 동아일보사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라 상괴녀(傷槐女)는 홰나무를 훼손한 연()의 딸로, 이름은 정()이었다.

경공(景公)이 아끼는 홰나무가 있었는데, 사람을 시켜 나무를 지키게 했다. 또 나무에 현판을 달아 명을 내리길, “홰나무를 건드리면 형벌을 내리고, 홰나무를 훼손하면 사형에 처한다.”라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연이라는 사람이 술에 취해 홰나무를 훼손하고 말았다. 경공이 이를 듣고 말했다. “이 자가 처음으로 내 명을 어겼다.” 경공은 관리를 시켜 연을 잡아가두고 사형에 처하려고 했다. 그의 딸 정()이 두려워하며 재상 안자(晏子)의 대문 앞으로 찾아가 말했다.

   

제가 과분한 생각을 억누르지 못하고 아룁니다. 부디 저를 재상의 시녀로 거두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안자가 듣고 웃었다. “나에게 음탕한 마음이 있어 보이는 것인가? 어찌하여 이 늙은이가 사사로이 도망쳐 온 여인을 만나야 하는가? 아마도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보군.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라.“

   

정이 문 안으로 들어가자, 안자가 멀리서 바라보며 말했다.

이상하구나! 얼굴에 깊은 근심이 있구나.”

들어오게 해서 물어보니 정이 대답하였다.

   

제 아버님은 연이라는 분이신데, 다행히 성곽 안에 거주하게 되면서 공민(公民)이 되셨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음양이 조화롭지 못하고, 비바람이 제때 내리지 않으며, 오곡이 잘 여물지 않는 것을 보고, 명산과 신수(神水)에 제사를 지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제사를 올린 술을 드시고 술기운을 이기지 못해 왕의 명령을 가장 먼저 어기고 말았습니다.

 

이 지경에 이르도록 술에 취해 죄를 지은 것은 진실로 죽어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가 듣기로 현명한 왕은 나라를 다스릴 때 봉록을 줄이고 형벌을 가하지 않으며, 또 개인적인 원한으로 공법을 어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육축(六畜) 때문에 백성을 다치게 하지 않고, 잡초 때문에 곡물의 싹을 해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옛날 송나라 경공(景公) 때 큰 가뭄이 들어 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태복(太卜)을 불러 점을 치게 했더니 사람으로 제사를 지내야 한다.’라는 점괘가 나왔습니다. 경공은 이내 대청에서 내려와 북쪽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내가 비를 비는 이유는 내 백성을 위한 것이다. 지금 반드시 사람으로 제사를 지내야 한다면, 과인이 직접 그 일을 감당하겠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방으로 천 리까지 크게 비가 내렸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천리(天理)를 따르고 백성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왕께서는 홰나무를 심어놓고, 훼손하면 죽이겠다는 명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저의 아버지를 죽여 저를 고아로 만들려 하십니다. 저는 왕께서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어기고 현명한 왕의 도리를 잃으실까 봐 걱정이 됩니다. 이웃나라에서 이를 들으면, 모두 왕께서 나무나 사랑하고 백성은 천시한다고 비난할 것인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안자가 말을 듣고 놀라며 자못 깨달은 바가 있었다. 다음 날 조회에 나가서 경공에게 말했다.

   

제가 듣기로 백성의 재산과 힘을 다 뺏는 것을 포()하 하고, 좋아하는 물건을 아껴서 엄한 명령으로 위세를 부리는 것을 역()이라 하며, 형벌을 부당하게 내리면 적()이라 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나라에 큰 재앙을 불러옵니다. 지금 왕께서는 백성의 재산과 힘을 다 빼앗아 좋은 음식을 먹고, 종고(鐘鼓)의 음악을 들으며, 궁실의 경관을 화려하게 꾸미십니다. 이는 가장 큰 폭정입니다. 좋아하는 물건을 아껴서 엄한 명령으로 위세를 부리니, 이는 명백히 백성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홰나무를 건드리면 형벌을 내리고, 훼손하면 사형에 처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납니다. 심히 백성을 해치는 일입니다.”

   

경공이 말했다.

과인이 그대의 명을 삼가 받아들이겠소.”

안자가 조정에서 나오자 경공은 즉시 명령을 내려 홰나무를 지키는 일을 그만두게 하고, 걸어놓은 팻말을 뽑아냈다. 홰나무를 훼손하면 형벌을 내리는 법도 폐지했고, 홰나무를 훼손한 죄인을 풀어 주었다.

   

군자가 말했다.

상괴녀는 말로써 어려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시경>그렇게 하려고 궁리를 도모하면, 정말로 그렇게 될 것이네.” 라고 했으니 이를 이르는 말이다.  p.223~2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