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부자 - 살아있는 조선의 상도를 만난다, 개정판 조선을 움직인 위대한 인물들 3
이준구.강호성 엮음 / 스타북스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조선의 부자에 나오는 11명의 부자들 중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지만 대부분 조선시대인만큼   남자들이 대부분이다. 여성들의 활동이 제약이 많았고, 그들의 사회적 활동이 제약이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이야기다. 저자가 의도적으로 부자들 중에서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만 골라서 선정을 한 지는 모르겠지만 십중팔구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격언처럼 초년에 아주 힘들게 산전수전을 다 겪고 자수성가하여 노년에는 학교를 세우는데, 혹은 독립자금을 대는데, 가난을 구제하는데 거금을 쾌척했다.

 

누구나 온갖 고난을 당하며 번 돈은 쉽게 내놓기가 망설여지고, 악착같이 돈을 더 벌 궁리를 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부의 배포에 맞게 의로운 일에 조금도 망설임 없이 거금을 내놓았다.

 

주로 18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살았던 인물들인데, 완전한 자본주의 체제가 형성되지는 않아도 초기 상업주의 형태가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에 그들은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지 몸소 체험하며 그 방법을 체득했다.

 

지금으로 보면 돈이 될 물건을 매점매석하여 이윤을 많이 남기는 좋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많이 벌었지만, 작금의 현실도 재벌들의 돈벌이를 보면 독점에 의한 이윤추구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잘 아는 거상으로 18세기 '임상옥'을 들 수 있는데, 그의 이야기는 수십 년 전 TV에서도 방영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조선후기 인삼은 특히 중국 상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매년 가격이 오르다 보니 상인들이 단합하여 인삼불매운동을 펼쳤다.

 

보통 수천리를 운반해 가서 중국 현지에서 사지 않으면 싸게라도 파는 게 상인의 심리인데, 역시 배포가 큰 임상옥이는 중국 상인들의 불매동맹을 눈치채고 가져간 인삼을 한 곳에 모아놓고 불을 질러 버렸다. 사색이 된 중국상인이 달려와 제지하며 몇 배의 가격을 더 줄테니 팔라고 간청하는 바람에 불을 끄고 평소보다 훨씬 비싸게 팔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일설에서는 그게 인삼이 아니라 도라지라는 말도 있지만, 상대의 허를 찌르는 교묘한 방법을 행동으로 옮긴 임상옥의 배포는 알아줄 만하다.

 

그러나 그는 노년에 두 형제가 자기보다 일찍 죽고 자식도 일찍 죽는 바람에 쓸쓸한 노년을 보냈고 누가 재산을 물려받았는지 모르는 채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 가고 있다.

 

거상들의 돈을 버는 방법에는 매점매석이 태반이었지만, 혹 어떤 이는 구한말 왕실과 인맥과 친분을 통하여 중국교역권을 따내 엄청난 이윤을 남기기도 하고, 일부 거부들은 한일합방 후 일본의 비호아래 독점사업권을 따내 거부가 된 이도 있다. 사람이 사는 형태는 천차만별이고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친일을 해서 억만장자가 된 이도 있지만 조선의 부자를 소개하는 주제에 맞게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거부들을 소개한다.

 

또한 젊은 청상과부로 일찍 남편을 잃고 삯바느질, 남의 허드렛일 등 온갖 궂은 일을 해서 돈을 모아 종잣돈을 만들고 그것을 불려 사업에 투자하여 큰 돈을 번이도 있었는데, 자신이 못배운 게 한이 되어 교육사업에 거금을 쾌척했다. 더 원대한 목적으로 일제 강점기 국권회복을 위해 교육에 아낌없이 돈을 내놓았다. 국민이 몽매한 의식에서 깨어나고, 일제치하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교육에 달렸다는 일념으로 학교를 세우는데 평생 번 돈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이런 훌륭한 선각자가 있었기에 암흑기를 이겨내고 독립을 챙취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일부는 일제의 혜택으로 돈을 번 만큼 태평양전쟁이 벌어진 시기에 거금을 내어 일본의 비위를 맞추고 자신의 사업기반을 더욱 탄탄히 하려는 친일파도 있었다. 금광개발이 한창이던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엄청난 금맥을 발견하여 일거에 조선 최고의 부자가 된 '최창학'은 독립자금을 내놓으라는 독립투사의 청을 거절했다가 목숨을 잃을 뻔도 했다. 20세기 초반 세계 최고급차 한 대가 천오백원 정도하던 시기에 하루 2천원의 거금을 벌어들인 최창학은 많은 사람들의 표적이 되었다.

 

옛말에 '가난하면 시장통에 살아도 찾아오는 이가 없고, 부자는 산속에 살아도 찾는 이가 넘쳐난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사는 세상 인정(人情)의 부침(浮沈)이 야단스럽다. 전국의 부자로 명성이 나면 '수십 억의 로또 당첨자'들 처럼 온갖 개인이나 단체에서 기부하라고 전화가 오고 애걸복걸을 한다고 하는데, 예전의 거부들 또한 그랬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그들의 목숨은 항상 위태로웠다. 인덕을 베푼 자는 사방에 소문이 나서 죽어서도 명예로운 이름을 남기기도 했지만,  때로는 귀찮은 모기떼처럼 나날이 찾아드는 빈객(貧客)들을 맞이하느라 골치께나 아프기도 했다. 장사밑천을 좀 대달라고, 노름판에서 전 재산을 날렸다거나 관청에서 돈을 횡령하고 들켜 죽음에 직면했다고, 죽음을 무릅쓰고 찾아오는 이들을 맞을 때 냉정하게 거절하면 자신의 목숨조차 위태로울 것 같아 거금을 내어 주거나, 돈을 벌만한 배포나 자질을 한 눈에 알아보고 미련없이 자금을 대주어 원금에 이자까지 넉넉히 받았다는 미담도 수없이 소개된다.

 

거상(巨商)은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사람들과는 뭐가 달라도 다른 점이 있다. 모험을 하지 않으면 그저 평범하게 살게된다. 또한 큰 부자는 하늘이 내고, 작은 부자는 부지런함에 달렸다는 옛말도 있지만 거상들은 대개 배포가 크고 모험심이 강했다. 그리고 성공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강해 모진 고난을 거뜬히 견뎌냈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요즘 세상도 당시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러나 조선시대만큼 서민이 일확천금을 모을 확률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돈이 될만한 사업은 대기업들이 장악해서 돈을 끌어모으다시피 하고 있으니 자본금이 없는 일개 서민이 어찌 그런 꿈을 꿀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미지의 분야에 뛰어드는 용기와 배포와 세상의 흐름을 꿰뚫는 안목, 근검절약 정신 등 조선의 거부들에게서 배울점도 많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