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삶 사이에서 - 김종길 시론집 Ⅴ
김종길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설날 아침에

 

                  김종길(1926~)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민족 고유의 명절 설날이 임박했다. 한때 음력설이 폐지되고 양력설을 쇠던 때가 있었다. 수백 년을 이어오던 설 문화의 명맥이 끊어진 날, 우리 설의 전통과 향수도 사라졌다. 일본이 조선의 문화를 단절하기 위해 양력설을 쇠게 했다고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엔 항상 설날엔 차례를 지내고 온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앉아 덕담을 주고받던 문화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었다.

 

이제 명절의 의미도 많이 퇴색되고, 예전만큼 바리바리 선물을 싣고 시골의 부모님을 뵈러 귀성길을 떠나는 문화도 줄었지만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가 남아있다. 객지를 떠난 자식이 고향집을 찾던 날, 반가움에 버선발로 뛰쳐나와 자식들을 맞이하던 어머님의 그 푸근한 정서가 지금도 그립다. 설날에 고향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또 얼마나 반가운가? 예전에 설날은 가족과 보내고, 다음날은 친구들과 모처럼의 회포를 푸는 여유도 있었지만 일상에 쫓겨서 그런지 아쉬움만 남기고 요즘은 설날에 모두 고향을 떠난다

 

김종길 시인의 설날 아침에는 설날을 대표하는 시다. 매년 설날 즈음에 이 시를 읽어보면 한 해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묵은해를 보내는 허전함을 이 시로 달래고, 나이 듦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 시에서 영감과 지표를 얻는다. 각박한 세상에 따스함과 희망을 전해주고, 삶의 겸허함을 일깨우는 시, 설날이 되면 이 시를 떠올리는 이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골향기 2016-02-07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을미년(乙未年)이 저물고 병신년(丙申年)이 밝아옵니다. 60갑자 중 ‘병신년(丙申年)’은 좋지 않은 어감때문에 간지로 새해를 찬양하기가 좀 거북스럽습니다만^^ 지난날을 회고해 보아도 이 해에는 큰 재난이나 역사적 사건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가오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시는 일 만사형통하는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시골향기 2016-02-09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하지만, 시험공부 때문에 두어달 글쓰기가 늦어질 것 같습니다. 틈틈이 올리겠으니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