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2 : 문 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 노자, 도덕경 시리즈 2
차경남 지음 / 글라이더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완전한 것은 모자란 듯하나

그 쓰임에는 다함이 없고,

가득 찬 것은 비어있는 듯하나

그 쓰임에는 막힘이 없다.

    

아주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

아주 오묘한 것은 서툰 것 같으며,

아주 뛰어난 웅변은 더듬는 것 같다.

   

몸을 움직이면 추위를 이길 수 있고

고요히 있으면 더위를 이길 수 있으니

맑고 고요해야만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다.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

(대성약결, 기용불폐, 대영약충, 기용불궁)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대직약굴, 대교약졸, 대변약눌)

躁勝寒, 靜勝熱, 淸靜爲天下正.

(조승한, 정승열, 청정위천하정)

   

 

현대사회는 워낙에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하루하루가 바쁘게 흘러가기 때문에 이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마다 최대한의 유위(有爲)와 작위(作爲)를 행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인간의 운명이고, 현대인의 운명이다. 그러다보니 능동성이 중요한 것이 되고, 수동성은 나쁜 것이 된다. 이런 삶의 방식을 지닌 채로 삼사십 년을 살고나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잘못된 능동성의 개념만이 꽉 들어차고 정말로 중요한 수동성의 개념은 다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능동성과 수동성에 관한 이 현대적 개념은 근본에서부터 잘못된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좋은 아이디어나 착상, 영감이나 직관 같은 것이 떠오르는 순간은 능동적인 상태가 아니라 수동적 상태이다. 이것을 착각하면 안 된다. 위대한 영감의 순간은 텅 빈 허()의 상태에서 찾아오는 것이지, 잡다한 생각으로 꽉 차있는 마음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능동성의 관념을 버려라. 얄팍한 자기 계발서들이 떠들어대는 능동성의 개념을 깨끗이 잊어버려라. 그런 경쟁을 위한 능동성 따위는 결국 그대의 심신을 지치게 하고, 그대의 창의성을 갉아 먹는다.

   

불필요한 일체의 작위를 버리고 그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라. 큰 수동성을 익히고 천지자연의 도에 몸을 맡겨라. 무위(無爲)란 큰 수동성의 다른 이름이다. 무위란 열림이며, 텅 빔이며, 맡김이며, 따름이다. 무위 안에는 어떤 의도나 계산이 없다. 무위는 자기를 비우는 것이며, 우주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가득 채우는 것이 자기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가득 채우는 것은 오히려 자기를 질식시키는 것이다. 진정으로 자기를 완성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비워야 한다. 텅 비워 마음에 여백을 만들고, 빈 공간을 만들어라. 그 빈 공간 안에서 섬광처럼 번쩍이는 영감이 나오는 것이다. 결코 잡동사니가 꽉 차 있는 방에서는 영감이나 착상이 나올 수 없다. 거기에는 분란과 충돌, 스트레스와 분노만이 가득할 뿐이다. 그러므로 너무 과도하게 완전을 추구하지 마라. 조금 비워두어라. 그래야 사람이 숨을 쉴 수 있다. 너무 가득 채우려 하지 마라. 여백을 좀 남겨두어라. 그래야 다음에 한 번 더 써먹을 수 있다.

    

완전한 것은 모자란 듯하나 (大成若缺)

그 쓰임에는 다함이 없고, (其用不弊)

가득 찬 것은 비어있는 듯하나 (大盈若沖)

그 쓰임에는 막힘이 없다. (其用不窮)

    

무위는 꽉 찬 것이 아니다. 꽉 찬 것은 유위이다. 무위는 오히려 어딘가 모자란 듯하고 비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아무리 퍼내어 써도 그 쓰임에는 다함이 없다.

   

대직약굴 (大直若屈 : 아주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

대교약졸 (大巧若拙 : 아주 오묘한 것은 서툰 것 같으며)

대변약눌 (大辯若訥 : 아주 뛰어난 웅변은 더듬는 것 같다.)

   

인생의 원숙한 지혜가 역설적 논리 속에 담겨 은은히 빛나고 있다. 천하의 명문장이 아닐 수 없다. 이것들은 시 중의 시요, 철학 중의 철학이다! 이런 명문장은 해설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노자에게 실례되는 일이다. 다만 가슴으로 읽고 마음속으로 음미할 따름이다. 직과 곡, 교와 졸, 웅변과 눌변 등 완전히 상반된 개념들이 더 이상 대립하지 못하고 녹아내려 노자 안에서 하나가 되어 있다. 이것이 무위의 모습이다. 너무 교묘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것이 있으면 자연은 그것을 품에 안아 둥그렇게 만들고, 부드럽게 만든다.

   

몸을 움직이면 추위를 이길 수 있고

고요히 있으면 더위를 이길 수 있으니

맑고 고요해야만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세상에는 추위가 있고 더위가 있다. 추위는 몸을 바삐 움직임으로써 이길 수 있고, 더위는 고요히 가만있음으로써 이길 수 있다. , 반대의 힘으로써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러면 천하는 어떠한가? 천하는 항상 시끄럽고 소란스럽다. 그러므로 맑고 고요함으로써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맑고 고요함을 지니지 못한 자는 세상의 혼란을 가라앉힐 수가 없다. P.227~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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