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3 : 학문이 끝나는 곳에 도가 있다 노자, 도덕경 시리즈 3
차경남 지음 / 글라이더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백성이 굶주리는 것은

위에서 세금을 많이 거두기 때문이요,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위에서 일을 벌이기 때문이며,

백성이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위에서 너무 잘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삶에 집착하지 않는 것,

이것이 삶을 지나치게 귀하게 여기는 것보다 현명하다.

  

民之飢, 以其上食稅之多, 民之難治, 以其上之有爲, 是以難治,

民之輕死, 以其上求生之厚, 是以輕死, 夫唯無以生爲者, 是賢於貴生.

    

 

노자는 고대사회의 수탈체계에 대해서 권력자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던지고 있다. ‘세금을 많이 거두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한 한문 원본은 ‘식세(食稅)‘이다. ’식(食)’자는 잘 알다시피 '먹을 식'자다. 그러므로 이를 직역하면 ‘세금을 너무 많이 받아먹기 때문이다.’란 의미이다. 표현이 적나라하다. 제왕된 자의 입장에서 이런 문장을 읽게 되면 얼마나 가슴이 뜨끔하겠는가. 세금은 나라를 살리라는 것이지 권력자가 먹으라는 것이 아니다.

    

그 다음 문장도 첫 문장 만큼이나 날카롭다. 다스리기 어려운 이유는 백성이 말을 안들어서가 아니라, 반대로 지배자들이 쓸데없이 이런저런 일을 벌이기 때문이라고 노자는 말하고 있다. 지배자들이 가만있어도 될 일을 괜히 왕궁을 건립한다느니, 새로 성벽을 쌓는다느니, 운하를 판다느니, 4대강 사업을 한다느니 하면서 국민을 괴롭히고 또 한편으로는 법령과 제도를 새롭게 정비한다느니, 국민의 기강을 세우고 새 정부의 면모를 일신한다느니,구정부의 잘못된 점을 뜯어 고치고 새롭게 개혁한다느니 등등 끊임없이 인위의 정치를 행하다 보니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고 결국 다스리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 지배자 계층들이 지나치게 자기들만 잘살려고 집착하며, 탐욕을 부려 재산을 긁어모으며, 사치와 방탕을 일삼고 호화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은 허탈과 좌절을 이기지 못해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특히 백성들이 죽음을 가볍게 여긴다는 이 문제는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심각한 문제점 중의 하나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가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벼랑 끝에서 목숨을 내던지고 있다. 그들의 죽음에 임금과 정승, 환관과 측근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인가?

  

이 장에서 노자는 백성들의 평온한 삶을 해치는 지배자들의 세 가지 악덕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이것은 법가는 물론이고 유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대범한 발언이다. 이런 점에서 노자는 유(柔)하고 부드럽기만 한 사람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노자를 잘못 이해하면 안 된다. 노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제자백가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위험하고 선동적인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의 사상 속에는 국가권력에 항거하는 저항정신이 들어있다. 이 점을 놓치면 노자 이해는 불완전해진다.

  

노자의 말을 다시 정리해보면 지배자들의 세 가지 악덕이란 첫째가 수탈, 둘째가 허세, 셋째가 탐욕이다. 그런데 노자의 말을 가만히 듣다보면 이 이야기들이 그저 고대 중국 춘추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돈이 아니라고 세금을 제멋대로 쓰는 자들, 자기가 책임지지 않는다고 이런저런 온갖 터무니없는 사업들을 벌이는 자들, 또 탐욕으로 재산을 모아 호화판 생활을 일삼는 자들ㅡ이들은 과연 대한민국을 이끄는 자들인가 망치는 자들인가?

 

  

귀생(貴生)

 

우리 인간은 누구나 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 우리 모두는 다 그럴 권리가 있다. 그러나 자기애(自己愛)가 너무 지나치게 되면 그것은 병이 되고 집착이 된다. 집착을 버리는 것 그것이 지혜롭게 사는 길이다. 노자가 지금 하는 말이 그것이다.

  

삶에 집착하지 않는 것,

이것이 삶을 지나치게 귀하게 여기는 것보다 현명하다.

  

우리의 병은 자기의 생(生)을 지나치게 귀하게 여기며, 자기의 실존(實存)을 지나치게 중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노자가 꺼리는 개년 중의 하나가 ‘귀생(貴生)’이란 개념이다. 귀생이란 자기의 생을 귀하게 여긴 나머지 결국 집착에 이른 상태를 말한다. 인간은 무엇보다 자기의 생을 사랑하고 아껴야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집착에 이르면 안 된다.

  

집착은 개인적으로는 모든 병의 근원이요, 사회적으로는 모든 악의 근원이다. 우리는 악착같이 살려고 덤벼들지만, 우리 인간이 보다 잘 살기 위해서는 도리어 삶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집착이 남아있는 한 우리는 생의 본래적인 기쁨과 평온을 누릴 수 없다. 자기의 생을 사랑하지만, 그러나 ‘귀생(貴生)’에까지 이르지는 마라. 귀생은 유위(有爲)이며 작위(作爲)이다. 결코 무위가 아니다. p.199~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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