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정서 - 임서시리즈 14
정주상 지음 / 이화문화출판사 / 200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왕희지의 예술을 탄생시킨 난정(蘭亭)은 현재 소흥(紹興)시내 서남 12.5Km에 있는 난저산(蘭渚山) 아래 자리하고 있다.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이 일대에 난을 심어 난정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동진 목제(穆帝. 345~361) 영화(永和)9년(353) 3월 초사흘 월주(越州) 회계군(會稽郡) 산음현(山陰縣) 서남 20리에 위치한 명승지 난정에는 왕희지의 주재 아래 그의 아들 현지(玄之), 환지(渙之), 휘지(徽之), 헌지(獻之) 등과 당시의 명사였던 손통(孫統), 손작(孫綽), 사안(謝安), 지둔(支遁) 등 42인(일설에는 43인)이 모여 수계사(修稧事)를 행하고 있었다.

 

마치 신라(新羅)의 경주(慶州) 포석정(鮑石亭)과 같이 곡수(曲水)를 만들어 술잔에 술을 가득 채우고 흘러가게 하여 술잔이 도달하면 그 앞에 앉은 사람이 지체 없이 술을 마시고 즉석에서 시를 짓는 모임이었다.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 석 잔을 마셔야 했다. 이 모임을 통하여 26명이 지은 주옥같은 37수의 시가 모아졌다. 이 모임의 주재자였던 왕희지는 이 시들을 모아서 편집하고, 이 모임을 통해 만난 여러 명사와 나눈 대화에서 느낀 감상을 적어 앞에 붙였으니, 이것이 그 유명한 <난정서(蘭亭序)>이다.  다음이 난정서의 전문(全文)이다.

 

영화9년 계축(癸丑) 늦은 봄 초승에 회계 산음의 난정에 모여 계사(禊事 : 부정을 씻기 위한 목욕재계의 행사 계제(禊祭)를 거행하는 일로 요사(妖邪)를 떨쳐버리는 제사)의 모꼬지(여러 사람이 놀이나 잔치 또는 그 밖에 다른 일로 모이는 일)를 행했다. 여러 어진 분이 왔고 젊은이와 어른이 다 한자리에 모였다. 이곳은 산이 높고 고개가 험하며 무성한 수풀과 긴 대가 들어찬 죽림(竹林)이 있는데, 또 맑은 냇물과 거센 잦은 여물물이 좌우를 비추며 띠처럼 둘러져 있다.

 

그 물을 끌어내어 술잔을 흘리는 구곡(九曲)의 유수(流水)를 만들었는데, 우리들은 차례대로 죽 벌려 앉았으니 비록 사(絲), 죽(竹)으로 만든 관현악기의 성대함은 없으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한 수의 시를 지어 읊으니 이 또한 마음속의 깊숙한 정서를 펼치기에 충분했다. 이날은 하늘이 활짝 개고 대기는 맑아서 온화한 봄바람이 화창하게 불었다. 하늘을 우러러 우주가 무한히 큼을 보고, 아래를 굽어 지상 만물의 무성한 자태를 살펴볼 수 있었다. 사방으로 눈을 돌려 바라보고 마음 가는 대로 생각을 달려 보니 그로써 보고 듣는 즐거움을 한껏 누릴만했다. 실로 즐거운 일이었다.

 

대저 사람이 서로 더불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내려다보며 세상을 살아감에, 어떤 사람은 평소 가슴 속에 축적했던 식견을 풀어내며 친구와 한 방에 마주 앉아 서로 얘기를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의탁하는 바를 따라 육체의 속박을 초월해서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 비록 나아감과 멈춤이 제각기 다르고, 고요히 지내고 시끄럽게 지냄이 같지 않으나, 사람은 저마다의 경우를 즐겨 잠시 자기 마음에 흡족한 때를 당해서서는 쾌연(快然)히 스스로 만족해서 바야흐로 노년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지낸다.

 

그러나 그 마음 가는 데가 어느덧 물리게 되고 감정도 세사(世事)를 따라 바뀌게 되는 날에는 거기 따라서 감개(感慨)함이 없지 않을 것이다. 지난 날에 즐기던 바가 고개를 숙였다 드는 동안에 묵은 자취가 되어버리면 더더욱 감정이 복받쳐 오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장수하거나 단명하거나 간에 마침내 그 생명도 다할 날이 있음에야 더욱 그렇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고인(古人)은 말했다. 살고 죽는 것 또한 인생의 중요한 일이라고. 그런 것을 생각하면 어찌 애통하지 않겠는가.

 

나는 옛사람이 감동을 일으킨 까닭을 살펴볼 적마다 그것이 한 문서를 맞추는 듯이 나의 생각함과 동일하니 지금까지 그 문장을 읽으면서 슬퍼하고 한탄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슬퍼하지 않도록 마음을 깨치지 못했다. 죽음과 삶이 동일하다는ㅡ장자의 ㅡ말이 진실이 아닌 허황된 주장이라는 것과 칠백 세나 살았던 팽조(彭祖. 요임금~주나라 초까지 살았다는 전설적인 인물)와 갓난아이 때 요절한 자의 나이가ㅡ영원에 비하면ㅡ하등의 차이가 없다고 하는 것은 망령된 주장임을 진실로 알 수 있다. 뒷사람이 지금의 우리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지금의 우리가 옛사람의 일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나 매양 한가지일 것이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런 까닭에 여기 모인 사람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열거하고 그 사람들이 지은 글을 한군데 모아보았다. 비록 나중에 세상이 달라지고 세사가 달라진다 하더라도 사람의 감회를 일으키는 소이(所以)는 일치할 것이니 뒤에 이 글을 보는 사람 또한 장차 이것에서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

 

325자로 된 이 <난정서>는 남조 사대부들의 사상을 잘 드러내는 문장으로 알려져 있다. 산수에 대한 사랑, 각자 하고 싶은 대로 몸을 맡겨 인생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정신, 영원한 것에 대한 사모, 유한한 인생의 덧없는 유전(流轉)에 대한 슬픔이 통절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문장보다 이 <난정서>의 필체는 고금(古今) 최고의 서법가인 왕희지가 득의(得意)한 작품으로 더 알려져 있다. 특히 그 가운데 나오는 20자의 지(之)는 각각 다른 풍채(風采)를 가지고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하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