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하) - 세상을 읽는 천 년의 기록
홍응명 지음, 양성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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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봄날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호탕하게 해주지만, 흰 구름과 맑은 바람, 꽃다운 난초와 향기로운 계수나무, 물과 하늘이 한 빛으로 천지가 맑고 밝아 사람의 몸과 마음을 함께 맑게 해주는 가을만 하겠는가.

 

春日氣象繁華(춘일기상번화) 令人心神駘蕩(영인심신태탕) 不若秋日雲白風淸(불약추일운백풍청) 蘭芳桂馥(난방계복) 水天一色(수천일색) 上下空明(상하공명) 使人神骨俱淸也(사인신골구청야)

 

 

높은 곳에 올라 가을날의 맑은 바람과 눈부신 햇살에 온 세상이 황금빛으로 변해 가는 것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이 탁 트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저 멀리 빼곡히 둘러싸인 산봉우리에 구름바다가 출렁거리고, 드넓은 바다의 물빛과 하늘의 푸른빛이 하나로 이어져 있고, 저녁노을 사이로 줄지어 날아가는 천둥오리를 보면 어찌 상쾌하고 유쾌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심신이 맑아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음력 9월 9일은 중국의 전통 명절인 중양절(重陽節)이다. 이 날이 되면 사람들은 높은 곳에 올라 가을 경치를 만끽하고 술을 마시며 국화를 감상한다. 중국인들의 전통사상 속에 9라는 숫자는 가장 큰 양수(陽數)이다.

 

그러므로 9월 9일은 가장 큰 양수가 두 번 중복되기 때문에 중양절이라 칭했다. 숫자 9(九)는 구(久, 오래다)자와 동음이다. 그래서 중양절은 오랠 '구'자의 의미를 차용하여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의미로 풀이되기 때문에 중국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날이다.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오른다는 것은 여유롭고 한가롭게 즐거움을 누리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다. 중양절은 하늘이 높고 공기가 상쾌한 가을 절기에 해당하므로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면 다양한 가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것은 옛 사람들에게 가장 큰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자고로 문인들은 산정상에 올라 새로운 풍경을 접하면 마음이 설레고 감정이 북받쳐 올라 시상을 떠올리곤 했다. 특히 가을날의 풍경은 더욱 신선해 이 계절을 노래한 수많은 명시가 탄생했다.

 

그 예로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가 지은 <9월 9일 억산동형제(九月九日憶山東兄弟)>라는 시가 있다.

 

“홀로 타향 땅에서 나그네 되어, 명절이 될 때마다 가족 생각이 배가 되네. 먼 곳의 형제들은 높은 곳에 올라, 두루 수유를 꽂으며 한 사람이 없는 것을 알겠구나.”

 

이 시에는 중양절을 맞아 높은 곳에 올라 가을 풍경을 바라보면서 가족과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심경이 잘 나타나 있다. ‘고(糕)‘와 ’고(高)’는 동음이다. 옛날에 높은 곳에 올라갈 수는 없지만 중양절의 액을 막으려는 사람들은 떡을 먹으며 한스러움을 달랬다. 중양절에 떡을 먹는 풍습은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더 발전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올라 높은 하늘에 떠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고,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가 아득히 멀어지는 가운데 해와 달의 정기를 가슴에 끌어안을 수 있으니, 자연스럽게 호방한 기백으로 그득하다. 인생의 참된 즐거움은 높은 곳에 올라야 알 수 있다.. p.20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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