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남자 - 마음글방 15
이석호 옮김 / 세계사 / 199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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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 빈 배가 한쪽에서 와서 부딪쳐 엎어져도 꺼리는 마음은 가지나 반드시 원망하는 낯빛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그 배 안에 있으면 한 번은 저리 비키라고 하고 한 번은 이쪽으로 붙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재삼 소리쳐도 응하지 않으면 반드시 추한 소리를 지르며 그 뒤를 쫓아간다. 먼젓번에는 노하지 않다가 지금은 성을 내는 것은 먼젓번에는 빈 배였으나 지금은 사람이 탔기 때문이다. 사람이 능히 자신을 허하게 하고 세상에 노닐면 누가 이를 욕하겠는가. 도(道)를 버리고 지(智)에 맡기는 자는 위태롭고, 술수를 버리고 재능을 사용하는 자는 반드시 고생한다.

 

욕심이 많기 때문에 망하는 자는 있어도 욕심이 없기 때문에 위태로운 자는 없다. 다스리고자 하기 때문에 어지럽히는 자는 있어도 상도(常道)를 지키기 때문에 잃는 자는 없다. 그러므로 지(智)는 근심을 없애지 못하고 우(愚)는 안녕(安寧)을 잃는 데 이르지 않는다. 분수를 지키고 그 이치에 따라 잃어도 근심하지 않고 얻어도 근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공도 자기가 한 것이 아니요, 득달(得達)도 자기가 구한 것이 아니다. 들어오는 것은 받아들이나 나아가서 취하지 아니하고, 나가는 것은 주나 나아가서 주지는 않는다. 봄이 되면 태어나고 가을이 되면 죽는데, 태어나는 것을 덕으로 여기지 않고 죽어가는 것을 원망하지 않으면 도에 가깝다.

 

성인(聖人)은 비난받을 만한 행동은 하지 않으나 타인이 자기를 비난한다 해도 그를 미워하지 않고, 칭찬할 만한 덕을 닦지만 남이 자기를 칭찬해 줄 것을 바라지 않는다. 화(禍)가 닥쳐오지 못하게 하지는 못하나 자기는 화를 당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으며, 복(福)이 반드시 오도록 하지 못하나 자기는 복을 물리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화가 닥쳐와도 자기가 오라고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곤궁하지만 근심하지 아니하며, 복이 와도 자기가 오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통달(通達)해도 자랑하지 않는다. 화복이 닥쳐오는 것은 자기에게 달린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가롭게 살면서 즐기고 무위(無爲)하면서 다스린다.

 

성인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만 지키고 아직 얻지 못한 것을 구하지는 않는다. 없는 것을 구하면 있는 것이 도망간다. 그 가지고 있는 것을 다스리면 바라는 것이 이른다. 그러므로 용병(用兵)을 하는 자는 먼저 패하지 않도록 적을 이길 기회를 기다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먼저 빼앗기지 않도록 해놓고 적에게서 빼앗아 올 때를 기다린다.

 

정치는 반드시 난(亂)을 일으키지 않는 것도 아닌데 정치만 일삼으면 위태롭고, 행동에는 틀림이 없는 것도 아닌데 급히 명예만 구하면 반드시 깎여진다. 복은 화가 없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이(利)는 잃지 않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다. 행동을 물질에 비유하면, 손해를 보지 않으면 이익을 보고, 이루지 못하면 실패하며, 이롭지 못하면 해로우므로 모두 위험한 것이다. P.348~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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