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하) - 세상을 읽는 천 년의 기록
홍응명 지음, 양성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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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복숭아꽃과 배꽃은 비록 곱지만 어찌 푸른 송백의 곧고 곧음만 하랴. 배와 살구가 비록 달지만 노란 유자와 푸른 귤의 맑은 향기만 하랴. 참으로 옳은 말이다. 너무 고와 빨리 지는 것보다 담백하여 오래가는 것이 좋고 일찍 빼어난 것보다 늦게 이루는 것이 한결 낫다.

 

桃李雖艶 何如松蒼柏翠之堅貞?

梨杏雖甘 何如橙黃橘綠之馨列?

信乎 濃夭不及淡久 早秀不如晩成也.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대중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면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만일 자신의 재능만 믿고 오만하게 행동한다면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아 쉽게 자멸할 수 있다. 복숭아꽃과 배꽃이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늘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의 강인한 의지와 끈기는 따라갈 수 없다. 배와 살구가 달고 맛있기는 하지만 귤과 도라지의 그윽한 향기는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채근담>에서는 너무 고와 빨리 지는 것보다 담백하여 오래가는 것이 좋고, 일찍 빼어남을 자랑하기보다 늦게 이루는 것이 한결 낫다.”고 말한다. 이 말은 어린 나이에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반드시 거울로 삼아야 할 명언이다. 이하(李賀.790~816)는 자신의 재능만 믿고 오만하게 행동하여 결국 외로운 천재가 되고 말았으니, 그의 이야기는 경계로 삼을 만하다.

 

당나라(618~907) 시인 이하는 자가 장길長吉이고, 복주福州 사람이다. 그는 당나라 정왕鄭王의 후손으로 몰락한 왕실 집안에서 태어나 봉예랑奉禮郞이라는 말단 관리직에 있었다. 더욱이 평생 뜻을 이루지 못한채 스물일곱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이하는 뛰어난 시를 지어 한유(韓愈. 768~824)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시인으로 성공한 원진(元稹. 779~831)은 명경과明經科에 장원급제하여 관리가 되었지만 변함없이 시를 즐겼다.

 

어느 날 원진은 진심으로 이하와 친구가 되길 바라면서 그를 찾아갔다. 그러나 이하는 원진의 명패를 보고도 그를 안으로 들이지 않았고 하인을 시켜 대신 말을 전하게 했다.

명경과에 급제했는데, 왜 나를 보자고 하는가?”

원진은 기분이 몹시 상하여 화를 내며 돌아갔다. 이하가 요절한 후 당나라 예부禮部 시랑侍郞 이반李潘이 이하의 시를 엮어 시집을 편찬했다. 시집이 완성되자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이하의 사촌동생을 불러 자신이 엮은 시집을 대신 이하의 가족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고, 사촌동생은 흔쾌히 응낙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하의 사촌동생은 어린 시절 이하가 오만하고 무례하게 대했던 것에 원한이 맺혀 그 시집을 불태워버렸다. 그래서 지금 전해지고 있는 작품은 매우 적다. 이것은 모두 그의 오만방자한 행동과 괴팍한 성격 탓이다.

 

이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어린 나이에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반드시 무례한 행동을 삼가고, 좀 더 성실하고 진실한 마음을 키워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래야만 그의 재능이 빛을 발하여 앞날이 비단처럼 아름다워질 것이다. p.10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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