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 을유세계사상고전
순자 지음, 김학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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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몸을 닦는 법(修身)

 

천리마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지만 둔한 말도 열배의 노력과 시간을 들이면 준마를 따라잡을 수 있다. 하지만 한없는 목표를 추구하고 끝없는 길을 달려가려 하는가? 그러면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끊어지도록 애써도 평생토록 미치지 못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목표가 되는 곳이 있다면 천 리가 비록 멀다고는 하더라도, 혹은 늦기도 하고 혹은 빠르기도 하며, 혹은 앞서기도 하고 혹은 뒤지기도 하겠지만, 어찌 그곳에 도달하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 길을 가는 사람이 한없는 목표를 추구하며 끝없는 길을 달려가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가려는 곳이 있는가를 알지 못하는가?

 

굳은 것과 흰 것의 차이, 크게 같은 것과 조금 같은 것은 다르다는 이치, 두터움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논한 궤변도 한 가지 견해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군자가 그런 것을 논하지 않는 이유는 학문의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기괴하고 거창한 행동은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군자가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은 학문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문은 완성을 기다리는 것이라 하는 것이다. 목표가 있어 내가 이룩하는 것을 기다리기 때문에 나는 그곳으로 가는 것이니, 혹은 늦기도 하고 혹은 빠르기도 하며, 혹은 앞서기도 하고 혹은 뒤지기도 하지만, 어찌 그곳에 함께 도달하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쉬지 않고 반걸음씩 걸으면 절름발이 자라라 하더라도 천리를 갈 수 있다. 흙을 쌓는 일을 중지하지 않는다면 높은 언덕이나 산을 만들 수 있다. 물의 근원을 막고 물길을 달리 낸다면 장강(長江)이나 황하(黃河)도 말라붙게 된다.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갔다 하면, 여섯 마리의 준마가 수레를 끈다 해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다.

 

사람들의 재주와 성질이 어찌 절름발이 자라와 여섯 마리 준마의 발처럼 차이가 크게 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절름발이 자라는 목적지에 도착하고, 여섯 마리 준마는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한쪽은 실행하고 다른 한쪽은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갈 길이 비록 가깝다 하더라도 가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다. 일이 비록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하지 않으면 이룩되지 않는다. 그의 생활에 한가한 날이 많은 사람은 남보다 뛰어날 수가 없다. p.76~78.

 

 

영예와 치욕(榮辱)

 

사람들의 성정은 음식은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으려 하고, 옷은 무늬를 수놓은 비단 옷을 입으려 하고, 길을 가는 데는 수레와 말을 타고자 하고, 또 모아놓은 재산과 저축이 풍부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 만족할 줄 모르는 것도 바로 사람들의 성정이다.

 

지금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 닭과 개와 돼지를 많이 기르고 또 소와 양까지 기르고 있는데도 식사를 할 때는 감히 술과 고기를 먹고 마시지 못하고, 돈이 남아나고 창고가 가득 차 있는데도 의복은 감히 비단 옷을 입지 못하며, 귀중한 것들을 상자와 장롱에 쌓아 두고 있으면서도 길을 갈 때에는 감히 수레나 말을 타고 다니지 못한다. 그것은 어째서인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앞날을 생각해서 계속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쓰는 것을 절약하고 욕심을 억누르며 걷어 들이고 모아 놓음으로써 자기의 생활을 이어가려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앞날을 잘 생각하는 것이니 어찌 매우 훌륭한 일이 아니겠는가?

 

지금 구차하게 살아가고 있는 얕은 지혜를 지닌 무리들은 이런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사치스럽게 먹으며 앞날은 생각하지 않아, 갑자기 쪼들려 궁핍해지는 것이다. 그들이 추위와 굶주림을 면치 못하고 동냥 그릇과 쪽박을 차고 빌어먹다가, 결국 도랑 속에 처박힌 시체가 되고 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물며 옛 임금의 도와 어짐과 의로움의 법도와 시경, 서경과 예의와 음악의 근본에 대해서야 생각할 겨를이나 있겠는가?

 

그러한 것은 진실로 천하를 크게 걱정하고 생각해 마련해 놓은 것이다. 천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뒷날을 생각하고 만세토록 그들을 보호해 주려는 것이다. 그 도는 흐름이 장대하고, 그 쌓인 효과는 두터우며, 그 공적은 성대하고 원대하다. 정통하고 잘 수양된 군자가 아니라면 거기에 대해서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짧은 두레박줄로는 깊은 샘의 물을 길을 수가 없고, 지혜가 모자라는 사람은 성인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시경, 서경과 예의와 음악의 근본에 대해서는 원래 일반 사람들로서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근본에 대해 하나를 알았으면 다시 둘을 알도록 힘써야 하고, 그 근본에 대해 공부하였다면 오래도록 계속해야 하며, 그 근본을 넓혀 널리 통용되게 하여야 하고, 그 근본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안락해져야 하며, 그 근본을 따라서 되풀이해 살핌으로써 더욱 좋아져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 것을 바탕으로 감정을 다스리면 유익해지고, 그렇게 됨으로써 명성이 드러나면 영화로워지며, 그렇게 됨으로써 사람들과 어울리면 조화를 이루게 되고, 그렇게 됨으로써 홀로 지내게 되더라도 스스로 만족하게 된다. 뜻을 즐기는 사람이란 바로 이런 사람이 아니겠는가? p.13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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