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블루칼라 여자 - 힘 좀 쓰는 언니들의 남초 직군 생존기
박정연 지음, 황지현 사진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여자는 여기에 있고, 여자는 어디에나 있다. 당신이 상상할 수 없는 곳에, 또는 당신이 상상한 모든 곳에. 편견에 안주하지 않은 늙은 여자들 덕분에 어린 여자들은 제 삶의 선택지를 또 한 칸 늘린다.
(장일호 기자 추천사)
-

이전에 인간극장에서 커다란 화물차를 운전하는 여성을 조명한 적이 있다. 지금도 이른바 '거친' 현장에서 근무하는 여성이 매우 드문데 그때는 더더욱 드물어서 방송은 당당한 그 분에게 '여장부'라는 말을 붙여주며 화물차 기사와 가족을 돌보는 엄마의 모습을 넘나드는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놀라운 한 걸음이긴 했지만) 그 분을 전문 기술을 가진 직업인이 아니라 여성으로 더욱 크게 인식했던 것 같다. 여자가 저렇게 큰 차를 운전해? 여자가 저렇게 힘든 일을 하다니. 여자가···.


목차부터 나는 나의 편견과 좁은 견문을 인식했다. 알음알음 목수나 화물 운전 등의 직종에서 근무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온 터라 나로서는 그 이상의 일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욱이 부끄러운 일이지만, 내가 미디어에서 보았던 '블루칼라 여성'은 젊은 분들이 많아 그런 분들이 많을 줄 알았다. 세상은 정말 내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화물 노동자부터 해서 플랜트 용접 노동자, 먹매김 노동자, 주택 수리 기사, 래미콘 운전 노동자, 철도차량정비원 등 직업명만 들어도 생소하고 낯선데다 경력도 긴 분이 많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얼마나 많은 선입견과 차별을 마주했을까. 한 명의 직업인이자 직장 동료로 인식되기 보다는 '여자'로 바라보며 남성들의 잠재적 아내이자 분위기 메이커로의 역할을 기대하는 현장의 분위기.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은 10명으로 그 직장이 각각 다름데도 그들을 바라보는 남성 동료들의 시선이 놀라우리만큼 유사하여 읽는 내내 입 안에 씁쓸함이 맴돌았다. 그렇기에 이 분들이 하는 이야기도 비슷했다. '나를 동료로 바라봐주었으면 한다'. 또렷하고 강한 눈빛으로 자신의 위치를 묵묵하게 지켜온 분들은 지금은 이전보다 나아졌다 말하지만 아마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은 한참 멀었을 것이다.


한동안 '멋진 언니'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나는 이 '멋진 언니'라는 말이 이상했었다. 자신의 위치에서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누군가는 멋진 언니이고 누군가는 아니란 건가. 그냥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을 멋지다 뭐다 이렇게 봐도 되는걸까. 사무직 언니들은 멋있다고 잘 언급되지 않지만 공구를 들고 커다란 자재를 운반하는 언니들은 멋있는 건가하고.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이건 진짜 '멋진 언니'라고만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여성임에도 남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서가 아니라, 여성들이 가지 않은 길을 먼저 나아가 뒤에 올 다른 여성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주고 편견 가장 앞에서 싸워주며 우리가 일할 수 있는 입지를 점차 넓혀준다는 점이. 그들의 걸음은 다른 여성들에게 용기가 된다.
여성은 어디에나 있으며 어디에서든 살아남을 수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야기는 오래 산다 - 30년 문학전문기자 생애 첫 비평에세이
최재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은 서평이란 무엇일까.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는 것은 좋아하지만 내가 좋은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는다. 글을 쓰다가 나의 문장에 확신이 사라질때, 선명했던 감상이 흐려질때면 다른 사람이 쓴 비평을 찾아 읽는다. 보통은 공감하거나 감탄을 하면서 읽어내려가지만 어떤 글은 막힌 둑이 터지듯 생각을 확장시켜주는 것들이 있다. 이런 글들이 바로 그런 글이 아닐까.

34년 7개월. 내 나이보다 긴 세월을 한 곳에서 근무한 사람의 글. 한국 문학에 몸을 푹 담그고 숱한 사건들을 피부로 겪었으면서 그 격동의 문학사에서 한 발 물러나 제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궤적은 흔히 접할 수 있는 기록이 아니었다.

「난쏘공」의 조세희, 박완서, 황석영 등 익숙하지만 쉽게 언급하기 힘든 국내 (거물급)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거대한 한국 문학계까지 나무와 숲을 번갈아가며 조명하는 글은 참으로 솔직하기까지 하다. 기자의 글이어서 그럴까. 국내 표절 사건으로 본 '문학권력'부터 출판사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단편이 넘쳐나는 한국 문학계의 구조적 문제 등은 저자가 한 자리에서 오래 버티고 섰었기에 쓸 수 있는 글일 것이다. (물론 기자를 넘어 이런 글을 써서 이름을 걸고 공개하는 용기도 놀랍고 이 책을 출판한 한겨레출판도 대단함...)

「이야기는 오래 산다」. 이 말은 소설같은 문학에만 통용되는 말이 아니다. 저자의 서평 역시 그 문학들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 오래 살 것이고 고목같은 삶에서 나온 밀도 있는 글에 진득히 붙어있는 인문학적 통찰은 어느 시대에 읽더라도 분명한 가치를 전달할 것이다.
나의 지극히 사적이고 가벼운 기록들도 어쩌면 나보다 오래 살 것이다. 보통 책을 말하는 책을 읽으면 그 책을 읽어야겠다는 감상에서 끝난 적이 많았는데, 이 글은 그걸 넘어 어떠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진다. 저자의 꾸준함과 성실함을 모방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 아 이거 읽고 황석영 작가의 「손님」 읽고 싶어서 검색해봤다가 표지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뒤로 돌아옴... 믿기지가 않아서 장르를 다시 봄. 호러 소설이었나..

++ 사실 「난쏘공」의 문학적 가치는 알지만 마음 잡고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 워낙 교과서에서도 자주 접했고 수능 대비용으로 뜯어 분석한 것을 먼저 봐서 그런가 이미 읽은 책같다

+++ 「밤이 선생이다」를 읽고 한 눈에 반해 황현산 평론가의 책을 모았는데 작고하신 분의 글이라 다 읽어버리는 게 아까워서 책장에 고이 잠들어만 있다. 읽어야하는데 아깝다구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범죄사회 - 안전한 삶을 위해 알아야 할 범죄의 모든 것
정재민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한민국은 범죄로부터 안전한가.
매일같이 새로운 범죄 기사를 접하고 무차별 범죄가 늘고 있는 요즘, 경찰의 범인 검거율이 높고 절대적인 범죄량이 줄고있다 하여 쉽사리 불안감을 떨치기는 힘든 세상이 되었다. 무차별 범죄가 늘었다 함은 범죄의 절대량을 떠나 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늘어났다는 것이며, 나의 부주의와는 관계 없이 일상에서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게다가 범죄에 대한 처벌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점차 사법부와의 심리적 거리를 벌렸고 그 불신은 사회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넓어져 각박한 풍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회가 하나의 몸이라면 사회 문제들은 범죄라는 상처로 드러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르웨이에서는 범죄 추리소설의 인기가 높은데 그 이유는 범죄를 사회 수준의 척도로 삼아 이 사회가 이대로 좋은가 하는 질문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p.16)

「알쓸범잡」 출연으로 대중에게 익숙한 정재민 심의관(현재는 변호사)은 이 책을 통해 범죄로 볼 수 있는 한국 사회를 '판사'이자 입법 실무를 했던 사람의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다. 판사의 형량은 왜 낮은지, 교도소 환경에 대한 이야기와 범죄 예방 시스템 그리고 심의관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기에 쓸 수 있는 입법에 대한 고민.

난이도는 정말 쉬운데 내용들을 읽어보면 「형법총론」의 느낌이 난다. 확실히 이건 총론이다. 범죄의 세가지 요건(구성요소, 위법성, 책임)이나 영장 발부 주체와 요건, 형사법정의 구조, 공소시효, 양형 등 정말 기본적인 이야기를 너무나도 쉽게 설명하고 있다.(이런 교수님을 진작 만났더라면 총론 점수 잘 받았다구요🥲)
조근조근 옆에서 말하는 듯한 문장도 그렇지만 이해를 돕는 가장 큰 이유는 톡톡 튀는 비유에 있다. '소머리곰탕으로 소머리를 재구성하기', '피자를 굽는 일과 피자 레시피를 만드는 일' 등 귀엽고 가벼운 비유들이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확실히 이해를 돕는다.

물론 이해한다 해서 전부 공감이 되고 납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판사의 양형이 약해지는 이유를 판사였던 저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이해해보려 쓴 부분이 있었다. 판사의 중간자적 입장이 원인이거나 일반인들은 최악의 순간만을 보지만 판사는 장기간 접하면서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보게 된다, 재판 중 감정적 요인이 작동한다던가 선례에 묶이는 경우가 있다 등의 이유가 있었다.
혹시 '웰컴투비디오' 사건을 기억하는가. 범죄에 관심이 없더라도 모를 수 없는 사건일 것이다. 그 범죄의 중함은 말할 것도 없고, 처벌의 한없는 가벼움과 미국에서 손정우의 범죄인 인도요청을 거절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분노가 들끓었던 사건이니 말이다. 저자 역시 알쓸범잡 때 이에 대해 판사의 입장을 이해해보려 말했다가 방송을 다시 보고 후회한 경험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판사의 양형이 약해지는 이유가 대개 감정적인 이유라면... 진짜 AI로 대체되어도 할 말 없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어떤 말을 해도 그 형량에 대해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며 (불가능할 것) 저자 역시 형량이 적다는 식으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그렇다 해도 확실히 법 종사자가 이렇게 솔직히 의견을 이야기하는 게 신선하고, 나와 일치하는 부분도 있어서 속이 시원했다.


「알쓸범잡」으로 일반인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들은 경험이 있기에 판사와 심의관을 넘어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해왔을 고민들에 대한 현재의 답이 솔직하게 담긴 책이자, 범죄로 보는 사회의 내면 그리고 시민의 입장에서도 같이 고민이 필요함을 생생히 전달하고 있는 책이었다.
「알쓸범잡」 팬이었다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뒤에 장항준 감독의 추천사가 있는데 "이렇게 말 잘하는 줄 알았으면, 방송 때 더 시킬걸" 이라고 쓰셨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양형이 피해자의 입장과 괴리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피해자가 법정에 등장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형사재판에서는 피해자를 피해자의 자격으로 부르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피고인이 자백하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에 대해서도 보통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가 나올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판사로서는 피해자를 만나보지도 않고, 피해자의 양형에 대한 입장을 들어보지도 않은 채 형량을 정하게 됩니다. (p.116)

■저는 지금이라도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법에 엄연히 사형제도가 있고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하는 데도 행정부가 이를 집행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정의에 반하고, 유족에게 근거 없이 고통을 주는 것이며, 사형에 찬성하는 국민 다수의 뜻에 반하고, 법과 재판의 권위를 전체적으로 손상시키며, 흉악범죄를 억제할 수 있는 중요한 효과를 놓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형 여부는 우리나라의 주권 사항이므로 다른 나라의 간섭을 받거나 눈치를 볼 일도 아닙니다. (p.16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전쟁 이후의 세계 - 다원 패권 시대, 한국의 선택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우크라이나 침략은 거시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종말을 의미했습니다. 군사화되고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경제활동의 주체로서의 “국가”가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앞으로 아마도 약 5~10년 동안 미 · 중 · 러 · 인도 등 여러 열강 사이에서는 전쟁과 갈등, 대립을 통한 “서열 정리”, 그리고 종속 지대(자원 지대 등)의 재분할 등이 대단히 폭력적인 방법으로 이뤄질 것입니다. (p.123)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벌써 2년이 지났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서방 국가들의 압박 속에 금방이라도 끝날 것 같았던 전쟁은 지금까지 흘러오고 있다. 전쟁은 미국이 내세우던 질서가 얼마나 허무한지, 말 뿐인 세계화가 어떻게 박살나는지 그 민낯을 샅샅히 들춰냈다. 한 마음일 줄 알았으나 러시아를 지원하는 국가도 있었으며, 우크라이나의 호소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국가도 적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궁금했다. 나름 혁명의 국가인 러시아(구소련)인들이 왜 푸틴의 독재에 아무 저항 못하는지, 심지어 그 높은 지지율은 어디서 나오는지. 러시아가 뭐가 아쉬워서 세계를 상대로 먼저 전쟁이란 칼을 빼들었는지.


얼마나 내가 러시아를 몰랐는지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충격의 연속이었다. 넓은 땅의 존재감과 세계사의 흐름에서 러시아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역량을 너무 부풀려서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도 경제적 규모가 큰 줄 알았고, 여전히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인줄 알았다. 그렇기에 전쟁을 일으킨 원인이 그저 푸틴의 제국주의적 야욕에만 있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는 내내 러시아의 경제적 규모와 그 산업 구조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번듯한 IT 기업 하나 없고 수출 경쟁력도 떨어지는 '후진적 열강'. 그 상황 속에서 아직도 그들에게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다는 것 역시 눈에 띄었다. 복잡한 정세와 러시아 국내 상황 속에서 꽤나 많은 계산 속에 이루어진 전쟁임을 알 수 있었다. 

(*저자의 설명은 설명일 뿐,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한 긍정이나 수용이 아님)

 

■ 1950년대 이후에는 국가에 어느 정도의 ‘여력’이 생겨 소련의 인민들은 비록 다당제 선거에서 원하는 정당의 후보를 찍을 권리는 없어도 아파트를 무료로 배정받는 것은 물론이고 별장을 지을 땅과 텃밭까지 무료로 제공받을 권리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쉽게 말해 정치적 권리의 결핍이 사회적 권리의 풍요로 “보상”되는 식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무언의 “사회적 계약”에는 물론 대중들의 탈정치화 등과 같은 많은 문제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러시아 등지에서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가 지속되는 현상은 그와 같은 “보상”의 매력을 증명해줍니다. (p.62)

 

익숙하지는 않지만 완전히 새롭게 알게 된 세계 정세라 끝까지 흥미를 놓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특히 3, 4부는 한국 이야기도 나오니 더더욱. 러시아의 전쟁과 거기에서만 그치지 않고 기후 · 젠더 문제 등 전체적으로 퇴보하고 있는 세계, 미국도 사실상 보호주의로 정책을 돌려 탈세계화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현재 한국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한국인으로서 알기 힘든 이야기와 언론에서 절대 알려주지 않는 정보들을 가득 담고 있다. (ex. 푸틴과 박정희의 차이(p.204, 푸틴에게는 '김대중'이 없다), 파편화되는 세계, 윤석열 정부의 실패는 시작됐다(p.283))


■ 이처럼 각국의 대외적인 다변화, 관계의 다면화, 다각의 실리 추구가 대세인 요즘의 세계에서, 윤석열 정부의 미국에 대한 "충성 어린" 태도는 장기적으로 커다란 비극의 서곡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p.286)


귀화한 구 소련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러시아와 세계 정세는 이 책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이 될 것이고, 제3자에 가까운 위치에서 한국의 상황을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한창 올림픽하는데 속보로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을 했다고 뜬게. 진짜 당시에는 푸틴 머리에 소주 꽂은 줄 알았음. NO WAR 이라는 반전 메시지를 들었던 우크라이나 선수가 결국 총을 들고 참전했다는 것도 너무 슬펐고...


++ 책 내에 ''나 "" 같은 따옴표 사용이 너무 잦다. 강조하고 싶은 단어나 특이한 단어에 표시해둔 것 같았는데, 너무 잦으니까 오히려 가독성이 떨어졌음. 처음부터 끝까지 밑줄로만 가득한 참고서를 보는 느낌이었다. 정작 무엇이 중요한 단어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는 이야기.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8기 자격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판사란 무엇이며, 판결이란 무엇인가
손호영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사실 판사와 그가 한 판결은 그 자체로 정당한 것이 아니다. 이를 받아들이는 당사자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를 신뢰할 때 비로소 판사와 판결에 정당성이 생기고, 그에 힘이 실린다. 따라서 AI 판사를 도입할지 말지를 결정짓는 것은 ‘AI 기술의 발전 수준’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의 판단을 신뢰할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사람 판사인가, 아니면 AI 판사인가. (p. 11)



판사는 멀고 판결문은 어렵다. 장황하고 어려운 단어도 많고 일반적으로 접하는 문장도 아닐 뿐더러, 좋은 글로 보이지도 않는다. 수동 표현과 어법에 맞지 않는 애매한 문장들이 가득한 글을 읽다보면 이게 국문이 맞는지 머릿속에 물음표만 뜬다. 이를 통해 접하는 판사의 이미지도 좋을리가 없었다. 물론 좋은 책을 내고 방송에도 가끔 나오는 친근한 판사들이 있었지만 대다수는 기사를 통해 납득할 수 없는 판결과 같이 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의문이었다. 재판은 법조인이 하지만 실제로 이를 적용받는건 일반인인데 이렇게나 거리가 멀어도 될까.



■나는 “판사의 말이 곧 법이다”라는 말을 오히려 거꾸로 새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법이 곧 판사의 말이다.” 판사는 사건에 적용될 법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그 법이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풀어 설명하는 것을 그 역할로 할 뿐이다. 판사가 하는 일은 ‘법’에 근거하며, 따라서 ‘법’을 벗어날 수 없다. (p.20)



10년간 판사로 재직해온 저자는 얼음정수기 사건, 땅콩 회항, 구미 아이 바꿔치기, 모다모다 샴푸 등 유명한 판례를 들어 이 문장들의 속을 들춰준다. 아직 현직에 있다보니 비판적인 분석보다는 자연스레 판사의 입장에서 그 나름의 고민과 이유를 설명해주는데 이런 시각은 처음 접해보는 거라 신선하고 즐거웠다. 물론 사건을 길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에세이의 성격이 강한데도 사건을 길게 이야기함으로서 사견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을 주의해 당사자나 재판부 한 쪽의 편을 들어 다른 입장을 상처주지 않게끔 조심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 책은 미완의 책이다. 고민들은 현재도 새로이 쌓여가고 있으며 어떤 질문들에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이다. 그 고민만큼 더 바른 판결이 나오고 그것이 좋은 사회적 파급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또한 사려 깊은 글 속에 담긴 재판부의 속살들은 멀리에 있던 판사와 법을 개인의 곁으로 가까이 끌어들인다. 기사로 접한 판결들과 나의 시각차는 절대 좁힐 수 없어 보였지만, 기사로 나오지 않은 더욱 많은 판결에 '차가운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갖고(p.199)'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 너무 좋았던 '황금들녘 판결'. 생전 처음보는 스타일의 판결문인데, 사건과 함께 읽으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판결문도 공문서라 품위를 지켜야 한다지만, 서정적이라 하여 품위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이해할 수 없는 비문으로 가득한 판결문보다는 이게 마음에 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판결문이 때로는 무엇보다 사건 당사자를 납득시킬 강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 "가을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일고, 집집마다 감나무엔 빨간 감이 익어간다. 가을걷이에 나선 농부의 입가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바라보는 아낙의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 달라고 요구하는 원고의 소장에서는 찬바람이 일고, 엄동설한에 길가에 나앉을 노인을 상상하는 이들의 눈가엔 물기가 맺힌다. 우리 모두는 차가운 머리만을 가진 사회보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 원하기 때문에 법의 해석과 집행도 차가운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갖고 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이 사건에서 따뜻한 가슴만이 피고들의 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도 그들의 편에 함께 서 있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이다." (p.199)



 

* 출판사로부터 도서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