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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사회 - 안전한 삶을 위해 알아야 할 범죄의 모든 것
정재민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평점 :
대한민국은 범죄로부터 안전한가.
매일같이 새로운 범죄 기사를 접하고 무차별 범죄가 늘고 있는 요즘, 경찰의 범인 검거율이 높고 절대적인 범죄량이 줄고있다 하여 쉽사리 불안감을 떨치기는 힘든 세상이 되었다. 무차별 범죄가 늘었다 함은 범죄의 절대량을 떠나 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늘어났다는 것이며, 나의 부주의와는 관계 없이 일상에서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게다가 범죄에 대한 처벌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점차 사법부와의 심리적 거리를 벌렸고 그 불신은 사회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넓어져 각박한 풍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회가 하나의 몸이라면 사회 문제들은 범죄라는 상처로 드러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르웨이에서는 범죄 추리소설의 인기가 높은데 그 이유는 범죄를 사회 수준의 척도로 삼아 이 사회가 이대로 좋은가 하는 질문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p.16)
「알쓸범잡」 출연으로 대중에게 익숙한 정재민 심의관(현재는 변호사)은 이 책을 통해 범죄로 볼 수 있는 한국 사회를 '판사'이자 입법 실무를 했던 사람의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다. 판사의 형량은 왜 낮은지, 교도소 환경에 대한 이야기와 범죄 예방 시스템 그리고 심의관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기에 쓸 수 있는 입법에 대한 고민.
난이도는 정말 쉬운데 내용들을 읽어보면 「형법총론」의 느낌이 난다. 확실히 이건 총론이다. 범죄의 세가지 요건(구성요소, 위법성, 책임)이나 영장 발부 주체와 요건, 형사법정의 구조, 공소시효, 양형 등 정말 기본적인 이야기를 너무나도 쉽게 설명하고 있다.(이런 교수님을 진작 만났더라면 총론 점수 잘 받았다구요🥲)
조근조근 옆에서 말하는 듯한 문장도 그렇지만 이해를 돕는 가장 큰 이유는 톡톡 튀는 비유에 있다. '소머리곰탕으로 소머리를 재구성하기', '피자를 굽는 일과 피자 레시피를 만드는 일' 등 귀엽고 가벼운 비유들이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확실히 이해를 돕는다.
물론 이해한다 해서 전부 공감이 되고 납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판사의 양형이 약해지는 이유를 판사였던 저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이해해보려 쓴 부분이 있었다. 판사의 중간자적 입장이 원인이거나 일반인들은 최악의 순간만을 보지만 판사는 장기간 접하면서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보게 된다, 재판 중 감정적 요인이 작동한다던가 선례에 묶이는 경우가 있다 등의 이유가 있었다.
혹시 '웰컴투비디오' 사건을 기억하는가. 범죄에 관심이 없더라도 모를 수 없는 사건일 것이다. 그 범죄의 중함은 말할 것도 없고, 처벌의 한없는 가벼움과 미국에서 손정우의 범죄인 인도요청을 거절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분노가 들끓었던 사건이니 말이다. 저자 역시 알쓸범잡 때 이에 대해 판사의 입장을 이해해보려 말했다가 방송을 다시 보고 후회한 경험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판사의 양형이 약해지는 이유가 대개 감정적인 이유라면... 진짜 AI로 대체되어도 할 말 없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어떤 말을 해도 그 형량에 대해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며 (불가능할 것) 저자 역시 형량이 적다는 식으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그렇다 해도 확실히 법 종사자가 이렇게 솔직히 의견을 이야기하는 게 신선하고, 나와 일치하는 부분도 있어서 속이 시원했다.
「알쓸범잡」으로 일반인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들은 경험이 있기에 판사와 심의관을 넘어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해왔을 고민들에 대한 현재의 답이 솔직하게 담긴 책이자, 범죄로 보는 사회의 내면 그리고 시민의 입장에서도 같이 고민이 필요함을 생생히 전달하고 있는 책이었다.
「알쓸범잡」 팬이었다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뒤에 장항준 감독의 추천사가 있는데 "이렇게 말 잘하는 줄 알았으면, 방송 때 더 시킬걸" 이라고 쓰셨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양형이 피해자의 입장과 괴리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피해자가 법정에 등장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형사재판에서는 피해자를 피해자의 자격으로 부르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피고인이 자백하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에 대해서도 보통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가 나올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판사로서는 피해자를 만나보지도 않고, 피해자의 양형에 대한 입장을 들어보지도 않은 채 형량을 정하게 됩니다. (p.116)
■저는 지금이라도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법에 엄연히 사형제도가 있고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하는 데도 행정부가 이를 집행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정의에 반하고, 유족에게 근거 없이 고통을 주는 것이며, 사형에 찬성하는 국민 다수의 뜻에 반하고, 법과 재판의 권위를 전체적으로 손상시키며, 흉악범죄를 억제할 수 있는 중요한 효과를 놓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형 여부는 우리나라의 주권 사항이므로 다른 나라의 간섭을 받거나 눈치를 볼 일도 아닙니다. (p.16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