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 기자·PD·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글쓰기의 모든 것
김창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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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고도의 지적 성취를 요구한다. 그것은 글쓰기가 지니는 종합적이면서도 총체적인 특성 때문이다. 글쓰기는 사고력과 읽기 능력을 전제로 한다. (p.25)


코로나가 한창 심했던 시절 아예 재택근무로 바뀌고 사람들과의 모든 소통을 메신저로 했었을 때가 있었다. 각종 업무 지시를 글로 받고 내렸어야 했고, 그때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것이 글쓰기의 중요성이었다. 

유창한 언변을 가졌다고 글을 다 잘 쓰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다시금 되물을 때가 많았고, 업무가 애매하게 전달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크로스체크 할 때도 다반사였다. 

(문장력 말고도 맞춤법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건 예삿일이었는데 그때마다 이미지가 와장창 깨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좌물쇠'...)


 


그런 글을 자주 보다 보면 나도 엉망으로 이해 안 되는 글을 보내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메신저도 보내기 전에 한 번 더 살펴보고 정말 중요할 때는 맞춤법 검사기도 돌려봤다. 혼자 보는 일기나 이런 기록 같으면 그냥 쓰면서 '크으 내 문장에 취한다' 하면서 뚱땅뚱땅 쓰는데 그런 얼렁뚱땅 의식의 흐름을 상사한테 펼쳐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므로 글을 쓰는 능력은 죽기 전까지 삶에 있어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문장력을 위해서는 세 가지 정도를 갖추면 된다. 우선 비문(非文)을 쓰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쓰는 것이다. 마지막은 문장을 짧고 간소하게 쓰는 것이다. 세 가지는 서로 연관돼있다. 군더더기가 없어야 짧아지고 비문이 줄어든다. (p.63)


글은 막힘없이 잘 읽힌다. 지금까지 읽은 책 중 가장 매끄럽게 잘 읽혔던 책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유시민, 생각의길) 이었는데, 그만큼 잘 읽힌다. 그 책에서도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단문으로 일단 내지르'(84)라고 하는데 이 책에서도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쓰기를 권한다. 두 권 모두 그런 문장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토록 읽기 쉬운 것이 아닐까. 심지어 예시조차 쉽고 재밌다. 


특히 부록으로 역대 한터 온라인 백일장 논술·작문 당선작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게 진짜 재밌다.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doorstepping)'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같이 현 정치 사회 문제뿐만 아니라,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할 때 카카오톡 문자로 해도 된다는 주장에 대해 찬반 의견을 밝히고 그 이유를 논하라> 같이 눈을 떼기가 힘든 주제도 나오고 작문 분야에서는 <'갓생' '삼귀다' '오히려 좋아' '식집사' 단어들을 포함하는 작문을 작성하라는데 이야 한터 백일장 진짜 재밌는 곳이었네... 구경 갔다가 우수작까지 읽고 옴.


-미쳤음. 짱쎔


 

표지에는 '기자·PD·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글쓰기'라고 쓰여있지만,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이나 메신저를 달고 사는 많은 현대인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영상 매체가 가득한 시대에 글 자체는 고루하고 비효율적이고 심지어 쓸모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매일 문장을 쓰고 주고받으며 살고 있고, 좋은 글은 빠르고 정확하게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 경제적 도구이기도 하다. 글쓰기 노동을 하는 관련업 종사자가 아니라도 본인의 문장에 대해 고민해 본 경험이 있다면 이 책에서 충분히 유용한 정보를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 사실 글쓰기 관련 책을 읽으면 기록을 남길 때 더 조심스럽다. 평소엔 '아잇 몰라 그냥 갈겨' 하면서 쓰고 다시 잘 보지도 않을 문장을 두 번 세 번 읽게 되어버령...


읽으면서 생각을 벼리는 버릇을 들이려면 슬로 리딩 slow reading을 해야 한다. 속독법이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내 생각에 대부분의 속독법은 속임수에 가깝다. 속독이 가능한 경우는 해당 내용과 주제를 너무 잘 알 경우로 국한된다. 독서는 결국 저자와 독자의 대화다. 독서를 하면서 저자의 얘기에 일방적으로 빠지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저자의 주장이나 생각을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펴지 못한다. 저자에게 계속 물어야 좋은 독서다. 물어볼 시간을 확보하려면 천천히 읽어야 한다. (p.44)


짧고 간소한 문장을 쓰려면 명사와 동사 위주로 써야 한다. 명사와 동사는 실체가 있는 품사다. 명사와 동사 위주로 쓴 문장에는 힘이 있다. (p.65)


문장력이 좋아서 글이 매끄럽게 전개된다면 작문에 상당한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다. 문학 작품을 많이 읽어서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들은 그 능력을 적절히 활용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이런 능력들이 없어도 충분히 잘 쓸 수 있다. 꾸준히 갈고닦으면 꽤 괜찮은 수준의 작문을 쓰게 된다. (p.227)


작문을 쓸 때 개인의 경험 속에 나타난 인간의 보편적 특징을 잘 잡아내면 통찰력 높은 글을 쓸 수 있다. 이때 무조건 솔직하게 자기 경험을 토해놓는다고 해서 좋은 글이 되는 건 아니다. 대신 글을 읽는 사람들과 공유할 요소를 최대한 늘려야 고백적인 글이나 경험을 쓰는 작문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공유할 요소를 늘리려면 개별적 존재 속에 녹아 있는 보편성을 찾아서 또 다른 개별자인 타인에게 전달해야 한다. (p.247)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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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계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 지음, 임도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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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상처가 폭발할 때 비유는 필요 없다.' 라는 김혜순 시인의 추천사. 정확히 그대로의 작품이다.

13개의 단편 전부 한꺼풀의 포장지조차 없는 날 것이며 냄새가 나고 대담하다. 소설이 아니라 어떤 아이의 삶을 그려낸 다큐와 같기도 하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막히고 타인의 간섭을 배제하는 공간, 신성시되며 지극히 사적으로 여겨지므로 누구도 들여다 볼 생각조차 안 했던 그 공간 속의 비릿한 폭력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단편 내내 대체로 성적 폭력이 잔혹하다는 특징이 있는데,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곳에서 가장 약한 자인 여성의 몸은 쉽게 침범되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창녀라는 프레임을 씌워가며 너무도 쉬이 파괴된다.



폭력의 객체는 여성이다. 그러나 폭력의 주체는 성별 불문이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대물림 되는 폭력의 끝은 쉽게 그 곳의 가장 약한 자인 여성을 향한다. 약자인 여성도 더욱 약한 자인 여성을 그저 바라본다. 혹은 폭력을 휘두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학습된 무기력이며 아버지(남자)를 꼭대기에 둔 가부장적 구조를 재생산하기도 한다. 그 안에서 폭력을 휘둘러야하는 이유는 수만가지가 생겨나는데 그 누구도 그것을 멈춰야하는 이유는 찾지 않는다. 


막을 자가 아무도 없으면 사람들이 무슨 일까지 할 수 있는지 볼 수 있도록, 살갗이 찢긴 자국들을 보며, 방어할 수 없는 이에게는 잔인함이 항상 이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p.126, 『상중喪中』)


그리셀다 아주머니의 집은 이 단편집이 그려내는 폭력 그 자체의 공간이다. (『그리셀다』) 예쁘고 반짝거리고 미키 마우스 모양,인형 모양, 곰돌이 푸 모양의 케이크가 있는 마술같은 그리셀다 아주머니의 집. 보기에는 아름답고 좋은 공간이지만 코 끝에는 오래 묵은 냄새가 난다. 먼지 냄새가 자욱하다. 사람의 눈은 블라인드로 내려 가릴 수 있고(『블라인드』), 예쁜 케이크로 현혹시킬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실제로 썩어가는 냄새는 숨길 수 없다. 밖에서 멀쩡해보여도 그 은밀한 내면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죽은 것들보다 살아 있는 것들을 더 무서워해야' (p.33, 『괴물) 하는 공간. 깨고 나면 그만인 악몽이 아니라 깨어서 더 선명하고, 어디로도 벗어날 수 없는 집.


우리는 역겨운 것, 구역질 나게 하는 것, 더러운 것을 혐오하고 보기 싫어한다. 작가는 감추어진 폭력을 드러내는 현장에 사람들이 가장 보기 싫어하는 배설물이라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p.208, 옮긴이의 말)


종교 역시 사방이 막힌 가정과 같이 은밀한 폭력의 장이자, 여성 착취 구조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주체가 된다. 여성은 그 안에서도 외면당하고 가장 신과 가깝다는 이 역시 남성을 위해 여성의 고통에 발벗고 나서지 않는다. 허울 뿐인 기도는 어느 여성도 구원하지 못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 그 자체같은 자비와 함께 자신의 죄책감을 놓고 간 성스러운 남자(예수)는 여성만 남음으로서 자유를 찾은 집 안에 다시 남자를 부활시켜 돌려보낸다. (『상중喪中』) 



작가는 대담하며 솔직하다. 어떠한 꾸밈과 비유가 없다. 가장 아래에서 가장 강한 자를 향해 소리를 낸다. 그 메시지를 못 알아들을 사람은 없다. 성경에 나오는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의 이야기를 모른다 할지라도, 결국 작가가 하고싶은 말은 전달이 된다. 아는 이에게는 고정관념이 이중으로 깨지는 경험을 하게 하고.

 

 

나는 대담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특히 가장 약한 자가 권력 최상층에 그저 몸으로 밀고나가 부딪히는 것을 좋아한다. 어떠한 비상구 없이, 안전장치 없이. 그 날것같은 외침, 더러운 자의 손에서 벗겨지는 고상한 자의 향기로운 베일과 그 안의 오물들이 드러나는 순간. 그리고 이 책은 정말로 그 자체의 책이다. 매 단편이 이 작가가 쓰는 마지막 이야기인 마냥 그 안에 절제와 망설임은 없다. 이야기의 힘이 강해서 읽는 중에 다른 생각은 할 수 없게 하는 책이다.


 



+ 진짜 너무 좋은 책이다. 너무너무. 어떤 좋은 책은 읽고 나면 하고 싶은 말이 한바가지로 쏟아지는 데 어떤 충격적인 책은 읽고 나면 사고를 정지시킨다. 『투계』는 그런 책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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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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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를 내고 인터뷰나 낭독회 등에서 틈만 나면 술 얘기를 하고 다녔더니 주변 지인들이 작가가 자꾸 그런 이미지로만 굳어지면 좋을 게 없다고 충고했다. (첫 문장)


나는 술을 즐기지 않는데, 그냥 맛이 없기 때문이다. 술 마실 바에는 커피를 더 먹지. 대학 신입생 때는 멍청하게도 잘 마시는 게 좋은 건 줄 알고 선배들이 주는 술을 족족 받아마시면서 예쁨 받는 게 무슨 삶의 목표인 사람 마냥 살았다. 다행스럽게도 주량이 약하지는 않아서 큰 사고 없이 잘 먹었고, 그 덕에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평생 먹을 술 대학 다닐 동안 다 마신 것 같다. 지금은 몸에도 안 좋은 거 맛까지 없어서 안 먹지만. 


그런데 갑자기 술에 대한 이야기들이 어느 날부터 드라마, 예능에서 우후죽순으로 대놓고 튀어나왔다. 그게 있어야만 시원한 대화가 된다는 듯, 술에 취해 저지른 실수는 낭만의 한순간이 된다는 듯. 그런 이야기들이 술을 다루는 방법은 거의 비슷하다. '사람을 취하게 만들어 진심을 끄집어내기', '긴장을 풀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즉,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체로 이렇게 취하고 저렇게 구르고 술을 병나발로 불면서.



하지만 그렇게 맛난 홍어도 술 없이 먹으라 하면 화가 벌컥 난다. 차라리 먹지 않는 편이 낫다. 북청 물장수의 숫자관념이 '통'과 '냥'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듯, 술꾼의 미각도 안주 아닌 음식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술꾼은 모든 음식을 안주로 일체화시킨다. (p.8)


술 대신 커피라는 입장을 가진 측에서 술이 부러운 것은 단 하나이다. 안주의 다양성. 술안주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만두, 탕, 전 심지어 치즈와 빵까지. 그러나 커피는? 만두와 아메리카노...? 어묵탕에 카페라떼...? 이런 부분이 아쉬워서 자꾸 술과 관련된 산문들을 찾아보게 되는 것 같다. 와중에 이 책을 보게 되었고, 목차가 정확히 술꾼이 아닌 내 취향에도 맞았다. 술보다 안주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야기. 특히 입이 짧은 권여선 작가가 소주와 함께 하는 안주로 입맛을 키워왔다는 부분은 부럽기만 하다. 소주를 잘 마시면 저자처럼 삭힌 홍어도 먹을 수 있게 될까. (하지만 소주든 사케든 정말 맛을 모르겠다...)


삐득삐득 고등어 중 한 마리는 바작바작 굽고 한 마리는 감자 깔고 떙초 넣은 양념에 맵게 조렸다. 생선을 말리면 살이 단단해지고 깊은 맛이 난다. 뜨거운 밥 한술에 구운 고등어 살을 뜯어 먹는 맛은 기름지고 고소하고, 소주 한 모금에 땡초 곁들여 조린 고등어 살을 먹는 맛은 배릿하고 칼칼하다. (p.200)


술꾼을 자처하는 작가의 산문은 소탈하다. 여러 안주에 곁들인 이야기에서는 훈기가 가득한 사람 냄새가 난다. 술에 대한 산문이라 환한 마음으로 즐겁게 썼다는 글들에서는 읽기만 해도 입맛이 싹 도는 메뉴들이 가득하다. 프로슈토, 카프레제, 브루스케타 이런 해리포터 주문 같은 음식보다 냄비국수, 감자탕, 고등어, 부침개 같이 아는 맛이라 먹지 않아도 맛과 향이 감도는 안주들이다. 

작가가 말하듯 이 책은 '독자들에게 건네는 메뉴판' 그 자체이다. 만일 내가 술을 즐겼고, 조금의 요리 솜씨만 가지고 있었다면 매일 그날의 안주에 맞춰 먹으면서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첫날에는 순대, 둘째 날에는 만두, 셋째 날에는 김밥. 나는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인데도 안주가 먹고 싶어서 술을 당기게 하는 글을 보자니 작가님은 진짜 술꾼이 맞구나 생각이 들었다. 원래 영업은 이거 좋다고 좋다고 남 붙들고 설득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엄청 맛있게 먹고 있으면 주위에서 알아서 영업당하는 거다.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술꾼이 아니라 이런 사람이 진짜 술꾼이 아닐까. 제철 따라 안주를 찾고, 모든 음식에 어울리는 술을 찾는 낭만이 있는 사람.



+ 맛있는 술은 마신다. 과일 소주나 스파클링 와인 같은.



각자의 혀에는 각자가 먹고살아온 이력이 담겨 있다. 그래서 혀의 개성은 절대적이며, 그 개성은 평균적으로 봉합되지 않는다. (p.136)

봄에 싹텄던 것들은 여름에 왕성히 자라 마침내 가을이면 완숙에 이른다. 그런 의미에서 맛에 있어서만은 가을이 쇠락의 계절이 아니라 절정의 계절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 절정은 단맛으로 표현된다. 모든 먹을거리들은 가을에 가장 달콤해진다. (p.143)

음식은 위기와 갈등을 만들기도 하고 화해와 위안을 주기도 한다. 한 식구食口란 음식을 같이 먹는 입들이니, 함께 살기 위해서는 사랑이나 열정도 중요하지만, 국의 간이나 김치의 맛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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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 - 팔도 최고의 족집게 선생부터 기상천외한 커닝 수법까지, 처음 읽는 조선의 입시 전쟁
이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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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교육이라 하면 어떤 상이 먼저 떠오르는가. / 첫 문장


한글을 뗐을 무렵부터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대학입시를 위한 지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커다란 목표 하에서 자잘한 시험들을 통과해가며 어찌저찌 한 차례 치르고 나면 인생의 방향에 따라 다를 뿐 또 다른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또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흰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요 하면서 머리를 쥐어싸매고 어떻게든 암기하려 몸부림치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니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나 싶다. 고매한 선비들은 맨날 정자세로 앉아서 글을 읽고 꼼수같은 건 절대 쓰지 않겠지. 



이윤경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도 아이에게 힘든 공부를 시키며 “지금 고생하면 남은 인생은 편하게 살 수 있다”라고 속삭였다. 왜 공부하는가. 출세하기 위해서다! 과거에 급제해 높은 관직에 올라 부와 명예, 권력을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다! (p.19)


조선과 시험을 묶어보면 그저 그 시절 어른들의 바른 자세, 어떻게 공부했는지, 몇 번을 읽고 반복했는지,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정도가 연결되면서 떠오른다. 누가 경복궁이 사교육 1번지이고, 조카 답안지 훔치기(이거 진짜 충격적) 이런 생각을 하겠는가. 심지어 입주 과외에 입시 정보를 꿰겠다고 고급 정보를 탐색하는 그 시절 조선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 조선판 <스카이 캐슬>이 따로 없다. 


1442년(세종 24년) 성균관과 사학(四學)의 유생 26명이 북한산의 유명 사찰인 덕방암으로 몰려갔다. 조용한 곳에서 공부하기 위함도 아니었고, 템플스테이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도 아니었다. 이단을 척결한다며 절을 때려 부수고, 승려들을 두들겨 패기 위해서였다. (p.305)


깡패인지 학생인지 모를 인간들의 행패는 충격적이고 (가증스럽게) 출세에 대한 욕망을 포장한 율곡 이이나 100일 된 아기한테 과거급제하라는 정약용, 임금이 된 가방끈 짧은 개똥이 등 위인전으로나 읽었던 인물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역시 재미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꼭지 중 하나는 허균이 누나인 허난설헌의 남편을 매우 싫어해서 글로 흉을 보는데 "천재이면서 선녀 같은 우리 누나는 괴롭힌 매부(새끼)는 진짜 무식하고 별거 없는데 시험 답안지 쓰는 요령만 좋아서 답안지 하나는 잘썼다"ㅋㅋㅋㅋㅋㅋㅋㅋ심지어 이게 중국까지 소문나서 '못생기고 재주 없는 놈' 타이틀이 붙은게 진짜 웃음포인트.


심지어 그래도 선비들을 모아 관직에 오를 공무원을 뽑는 시험인데 뭔가 대단한걸 물어보겠지 싶은데, 신기한 질문들이라 놀랍다. 이런게...과거...? 


이를테면 광해군은 섣달그믐이 되면 왜 슬픈지 물었고, 정조는 온 백성이 담배를 피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p.30)


워낙에 흥미롭고 충격적인 사건들이지만 이를 다루는 저자의 글맛이 너무 유쾌하다. 작정하고 웃기려는 글이 아닌데 그냥 툭툭 던지는 말이 웃겨 죽을거 같다. 무심하게 그냥 말을 재밌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딱 그런 느낌.


(진심으로 처음에는 몰랐음. 읽으면서 이 시시콜콜함, 이 툭툭 던지는 유머 어디서 봤는데... 그 책이랑 비슷한데 했는데 진짜 같은 저자였음.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 (위즈덤하우스,2022)) 


전작은 표지만 봐도 유쾌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책은 표지로 유머러스함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더 깜짝 놀랐고 그저 그런 흥미로운 비문학 저서 중 하나로 끝난게 아니라 훨씬 유쾌하게 돌아와서 마지막까지 스트레스받지 않고 즐겁게 읽었다. 



+ 추석 연휴 동안 소설조차 집중하지 못해서 초단편 소설집을 읽었는데 이 책은 끝까지 붙잡은 것만 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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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야기는 우리 곁에 있다 - SF와 인류학이 함께 그리는 전복적 세계
정헌목.황의진 지음 / 반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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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인류학적 논의들이 현실에서 당연시되어온 사실을 새롭게 고찰함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낯설게 볼 수 있도록 만든다면, 낯설게 보기의 또 다른 통로인 SF는 상상을 이야기로 구현함으로써 세상을 낯설게 보도록 한다. (p.74)

SF가 유행이라고 밖에 할 수 없겠다. 신작 소설의 대다수는 하드하든 소프트하든 SF적 상상력이 꽤나 가미되어 있고, 사람들은 이를 오락처럼 즐기고 있다. 왜? 


인류학은 그 무엇보다 현실과 밀접하다. 외계인이 인간을 관찰해서 글을 쓴다면 그것이 바로 인류학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SF는 설정상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현실에서는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아 알을 까는 외계인도 없을 것이고(진짜 없나?),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사람을 끄집어 내 선물처럼 보내는 외계 행성의 바다도 없다 (진짜 없나?). 현실에 없고, 있을 법하고 언젠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이 펼쳐지는데 이 상상력의 주체는 결국 인간이다. 어떤 배경으로 그리던 인간이 하고 싶은 말이 담겨있다.


작품은 현실의 남성이라면 절대 겪을 일이 없는, 임신·출산과 유사한 신체적 기능성을 외계 생명체의 숙주라는 독특한 장치를 활용해 남성에게 배치한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진실(작지 않은 신체 변화와 함께 엄청난 고통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도 남성이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지 고찰한다. (p.77, 『블러드차일드』와 생물학적 재생산의 인류학)


소설을 꿰뚫어보는 인류학적 논의의 깊이도 절대 얕지 않다. 책장이 훌훌 넘어가는 가벼움은 아니지만 너무 어렵지도 않아서 천천히 읽었을 때 기분 좋은 지적 쾌감이 오는 정도이며, 생각보다 논의의 거리감이 가까워서 몰입하고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ex.'청소년 유해 관련 도서' 지정으로 성교육 관련 도서를 학교에서 폐기하라고 했던 사건)  


흔히 인류학은 비서구 지역의 이른바 ‘원시 부족’을 연구하는 학문, 혹은 낯선 타문화를 다루는 학문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사실 현대의 인류학자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회문제를 연구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p.201)


​이 가상 민족지 챕터가 굉장히 흥미롭다.


책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가 진짜로 있다고 가정하고 연구지를 쓴 것인데, 상당히 끔찍했다. 물론 설정 자체의 파격은 기존부터 알고 있긴 했지만 그건 전부 가상의 세계라는 한꺼풀의 막이 씌워진 상태였는데, 소설 내 인물들을 인터뷰한 형식도 그렇고 그냥 지금 당장의 옆나라가 그러고 있다고 가정하고 바라보기 시작하니 다가오는 느낌이 놀라웠다. 이름을 부를 필요도 없고, 마음이 있을 필요도 없고 그저 여성은 '걸어다니는 자궁일 뿐'이라는 말이 상상 이상으로 타격이 컸다. SF를 바라보는 생각하지도 못한 방법이었는데 신선해서 바로 다음 챕터로 넘어가지를 못했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블러드차일드』, 『네 인생의 이야기』, 『파견자들』 등 다양한 SF를 인류학적 관점으로 다시 뜯어본다. 읽은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면 훨씬 재밌게 읽을 수 있겠지만, 읽지 않은 시선에서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나만 해도 여기 있는 전 작품을 읽지 않았다. (시녀 이야기 하차, 우빛속...너무 유명해서 손이 잘 안가...ㅠ) 그럼에도 읽는 내내 너무나 즐거웠고 오히려 책을 추천하는 그 어떤 글보다 강하게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SF는 특수한 상황 속에 사람을 밀어넣어 두고 행동 양상을 상상해낸다. 마치 외계인이 인간의 연구를 위해 특수 장치에 사람을 넣고 관찰하듯이. 그런 SF와 사람을 탐구하는 인류학이 만나 퍼즐처럼 짜맞춰진다. 짜맞춰진 자리에는 날카롭게 파헤쳐진 세상이 보인다. If의 세계인 SF를 바라보는 관찰적 학문인 인류학의 조합은 보는 이들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더욱 깊어지게 만든다. 저자들이 다음의 낯선 이야기로 어떤 세계를 보여줄 지 궁금하다. (속편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를 옭아매고, 불평등의 경계로 우리를 나누고,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환경을 파괴하는 기존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넘어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삶도 가능하다는 상상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그 상상을 위한 원천을 인류학과 SF에서 찾고자 했다. 설령 그것이 진부하게 보이더라도, 세상은 더 많은 ‘착한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p.29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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