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 - 팔도 최고의 족집게 선생부터 기상천외한 커닝 수법까지, 처음 읽는 조선의 입시 전쟁
이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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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교육이라 하면 어떤 상이 먼저 떠오르는가. / 첫 문장


한글을 뗐을 무렵부터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대학입시를 위한 지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커다란 목표 하에서 자잘한 시험들을 통과해가며 어찌저찌 한 차례 치르고 나면 인생의 방향에 따라 다를 뿐 또 다른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또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흰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요 하면서 머리를 쥐어싸매고 어떻게든 암기하려 몸부림치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니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나 싶다. 고매한 선비들은 맨날 정자세로 앉아서 글을 읽고 꼼수같은 건 절대 쓰지 않겠지. 



이윤경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도 아이에게 힘든 공부를 시키며 “지금 고생하면 남은 인생은 편하게 살 수 있다”라고 속삭였다. 왜 공부하는가. 출세하기 위해서다! 과거에 급제해 높은 관직에 올라 부와 명예, 권력을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다! (p.19)


조선과 시험을 묶어보면 그저 그 시절 어른들의 바른 자세, 어떻게 공부했는지, 몇 번을 읽고 반복했는지,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정도가 연결되면서 떠오른다. 누가 경복궁이 사교육 1번지이고, 조카 답안지 훔치기(이거 진짜 충격적) 이런 생각을 하겠는가. 심지어 입주 과외에 입시 정보를 꿰겠다고 고급 정보를 탐색하는 그 시절 조선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 조선판 <스카이 캐슬>이 따로 없다. 


1442년(세종 24년) 성균관과 사학(四學)의 유생 26명이 북한산의 유명 사찰인 덕방암으로 몰려갔다. 조용한 곳에서 공부하기 위함도 아니었고, 템플스테이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도 아니었다. 이단을 척결한다며 절을 때려 부수고, 승려들을 두들겨 패기 위해서였다. (p.305)


깡패인지 학생인지 모를 인간들의 행패는 충격적이고 (가증스럽게) 출세에 대한 욕망을 포장한 율곡 이이나 100일 된 아기한테 과거급제하라는 정약용, 임금이 된 가방끈 짧은 개똥이 등 위인전으로나 읽었던 인물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역시 재미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꼭지 중 하나는 허균이 누나인 허난설헌의 남편을 매우 싫어해서 글로 흉을 보는데 "천재이면서 선녀 같은 우리 누나는 괴롭힌 매부(새끼)는 진짜 무식하고 별거 없는데 시험 답안지 쓰는 요령만 좋아서 답안지 하나는 잘썼다"ㅋㅋㅋㅋㅋㅋㅋㅋ심지어 이게 중국까지 소문나서 '못생기고 재주 없는 놈' 타이틀이 붙은게 진짜 웃음포인트.


심지어 그래도 선비들을 모아 관직에 오를 공무원을 뽑는 시험인데 뭔가 대단한걸 물어보겠지 싶은데, 신기한 질문들이라 놀랍다. 이런게...과거...? 


이를테면 광해군은 섣달그믐이 되면 왜 슬픈지 물었고, 정조는 온 백성이 담배를 피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p.30)


워낙에 흥미롭고 충격적인 사건들이지만 이를 다루는 저자의 글맛이 너무 유쾌하다. 작정하고 웃기려는 글이 아닌데 그냥 툭툭 던지는 말이 웃겨 죽을거 같다. 무심하게 그냥 말을 재밌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딱 그런 느낌.


(진심으로 처음에는 몰랐음. 읽으면서 이 시시콜콜함, 이 툭툭 던지는 유머 어디서 봤는데... 그 책이랑 비슷한데 했는데 진짜 같은 저자였음.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 (위즈덤하우스,2022)) 


전작은 표지만 봐도 유쾌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책은 표지로 유머러스함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더 깜짝 놀랐고 그저 그런 흥미로운 비문학 저서 중 하나로 끝난게 아니라 훨씬 유쾌하게 돌아와서 마지막까지 스트레스받지 않고 즐겁게 읽었다. 



+ 추석 연휴 동안 소설조차 집중하지 못해서 초단편 소설집을 읽었는데 이 책은 끝까지 붙잡은 것만 봐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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